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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우즈, 생물학의 뿌리를 뒤흔든 아웃사이더
지난해 12월 30일 84세로 타계한 칼 우즈는 고세균을 발견해 생물분류체계를 혁신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회의론과 적대감을 접하며 스스로를 ‘반항적인 아웃사이더’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해리 놀러 제공
(우즈의) 1977년 논문은 미생물 분야 아니 생물학 전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논문 가운데 하나다.
이 성과는 왓슨과 크릭(DNA이중나선 발견)이나 다윈(진화론 제안)의 업적에 맞먹는 것으로 미생물 세계의 놀라운
다양성에 대한 진화론적 뼈대를 제공했다.
- 저스틴 조넨버그, 스탠퍼드대 미생물학자
필자는 지난해 말 ‘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제목으로 2012년 세상을 떠난 과학자 25명의 삶을 간략히 (그러나
다 합치면 무척 길게) 소개했다.
과학저널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부고가 실린 과학자들이었는데,
가장 최근 부고는 11월 11일 타계한 고생물학자 페리시 젠킨스의 것이었다.
1월에도 과학자 3명의 부고가 실렸다. 1954년 살아있는 사람의 장기(신장)를 이식하는 수술에 처음 성공해 199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의학자 조셉 머리가 11월 26일 93세에 타계했고, 신경성장인자를 발견해 1986년 노벨생리
의학상 수상한 신경생물학자 리타 레비-몬탈치니가 12월 30일 103세로 별세했다.
12월 30일 또 한 명의 위대한 과학자가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바로 미국 일리노이대 칼 우즈(Carl Woese·‘칼 우스’
라고도 쓰는데 발음기호를 보니 ‘z’다) 교수다.
위의 두 사람처럼 노벨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1977년 우즈가 박사후연구원이었던 조지 폭스(현재 미국 휴스턴대 교수)
와 함께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 한편은 글자 그대로 ‘생물학 교과서를 완전히 다시 쓰게’ 만들었다.
강사 권유에 생물학에 뛰어든 물리학도
1928년 미국 뉴욕주 시라쿠스에서 태어난 우즈는 독특한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세계는 ‘자연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자는 거대하고 불가사의하며 매력적이고 늘 움직이지만
변치않는 일관성을 갖고 있는 진리의 세계인 반면,
후자는 일관성이 없고 모순덩어리인데다 믿을 수가 없는 세계라는 것이다.
따라서 진리를 추구하는 우즈는 과학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암허스트대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한 우즈는 기하학 문제를 증명하고 ‘q.e.d.(증명끝)’라고 쓸 때 행복감에
빠져드는 성향으로 생물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 강사였고 훗날 저명한 저온물리학자가 된 빌 페어뱅크가 “너는 물리학 말고 지금 뜨는 분야인 생물리
학을 공부하라”고 조언하자 이에 혹해 예일대 에른스트 폴라드 교수 실험실에 들어갔다.
중성자를 발견한 제임스 채드윅(193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의 제자였던 폴라드는 저명한 방사선물리학자로
생물에 방사선을 쪼였을 때 일어나는 일을 연구하고 있었다.
우즈의 박사논문 주제도 방사선이 어떻게 바이러스를 비활성화시키는가를 규명하는 일이었다.
1953년 박사학위를 받은 우즈는 돌연 의대로 진학해 주위를 놀라게 했지만 2년 만에 폴라드의 실험실로 돌아왔다.
어린이병동에 며칠 임상을 나간 뒤 의사의 길을 포기한 것.
5년 동안 박테리아 포자를 연구하던 우즈는 1960년 제너럴일렉트릭의 연구실에 취직해 자기 실험실을 차리게 됐다.
실험설비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즈는 이런저런 문헌을 읽으며 1953년 DNA이중나선 발견 이후 가장 큰
도전이 유전암호를 해독하는 일(DNA정보가 어떻게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로 번역되는지 규명하는 과정)이라는 걸
발견하고 이 연구를 해보기로 한다. 32살에 이르러서야 비로써 과학의 최전선에 뛰어든 것이다.
리보솜RNA 염기서열에 주목
수년 뒤 안식년으로 프랑스 파리 파스퇴르연구소에 머물던 우즈는 그곳에서 일리노이대 미생물학과 졸 스피겔먼
교수를 만났다.
스피겔먼은 우즈의 천재성에 매료돼 1964년 그를 일리노이대로 끌어들였다.
이곳에서 유전자 부호 해독 연구를 계속하면서 우즈는 DNA와 단백질 사이를 매개하는 RNA가 상당히 중요한 분자
라는 점을 깨닫고 1967년 펴낸 책 ‘The Genetic Code(유전암호)’에서 RNA가 DNA나 단백질이 나오기 전 있었던
원초적인 생체분자라고 추측했다.
훗날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유력한 이론인 ‘RNA 세계 가설’의 기본개념을 생각해낸 것이다.
‘RNA 세계(RNA world)’는 1986년 하버드대의 월터 길버트가 토머스 체크의 ‘RNA효소(ribozyme)’ 발견의 의미를
해설하면서 만든 말이다.
메신저RNA 서열을 해독해 아미노산 사슬을 만드는 단백질 공장인 리보솜을 연구하던 우즈는 리보솜을 이루는
구성성분인 5S 리보솜RNA(S는 침강계수로 앞의 숫자가 클수록 원심분리를 하면 더 빨리 침강한다)를 주목한다.
참고로 리보솜은 리보솜RNA 분자 3개와 리보솜단백질 수십 개로 이뤄진 복합분자다.
5S 리보솜RNA는 약 120개의 염기로 이뤄져 있는데 우즈는 문득 이 염기서열을 비교해 분석하면 미생물을 분류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 동물이나 식물과는 달리 미생물은 마땅한 분류기준이 없어 분류에 애를 먹고 있는 상태였다.
우즈는 단백질공장인 리보솜을 이루는 생체분자인 리보솜RNA에서 돌연변이가 제멋대로 일어날 수 없고(생명을
유지할 수 없으므로) 천천히 일어난다고 보고 각 종의 리보솜RNA 염기서열을 비교해서 서로 얼마나 가까운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추측했다.
자신의 생각에 흥분한 우즈는 연구방향을 돌려 5S 리보솜RNA의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작업을 하다가 1970년대
초 판을 키웠다.
미생물뿐 아니라 동물, 식물의 리보솜RNA도 검토해보기로 한 것.
그리고 이럴 경우 5S 리보솜RNA는 제공할 수 있는 정보가 너무 적기 때문에 약 1500염기로 이뤄진 16S 리보솜
RNA로 타깃을 바꾸기로 했다.
오늘날 분류학의 근간이 되고 있는 16S 리보솜RNA 염기서열을 기초로 한 분자계통학은 이렇게 탄생했다.
당시는 PCR(중합효소연쇄반응)이 개발되기도 전이라 리보솜RNA의 염기서열을 분석하려면 먼저 효소를 처리해
작은 조각으로 자른 뒤 전기영동으로 RNA 조각을 분리해(이를 ‘RNA 지문법’이라고 부른다) 염기서열을 확인해야
했다. 우즈 교수팀은 주위의 무관심 속에서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한 지루한 실험을 수년 동안 계속 하면서 데이터
를 모았다. 그 결과 자신들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놀라운 성과를 얻게 된다.
메탄을 생성하는 박테리아 4종의 16S 리보솜RNA 염기서열을 다른 박테리아나 동식물의 해당 서열과 비교한 결과
둘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만큼 뚜렷한 차이를 보였던 것이다.
당시 지식으로는 당연히 다른 박테리아 무리에 함께 묶여야 했다.
이에 깜짝 놀란 우즈 교수는 메탄생성 박테리아에 대한 연구논문을 뒤지기 시작했고,
그 결과 이들이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즉 모든 박테리아의 세포벽에 존재한다고 알고 있던 펩티도글리칸이란 분자가 메탄생성 박테리아의 세포벽에는
없었고, 메탄을 생성하는데 관여하는 조효소도 특이했던 것.
결국 1977년 발표한 논문에서 우즈 교수는 기존의 박테리아(세균)를 유박테리아(eubacteria·진정세균)와
아케박테리아(archaebacteri·고세균)로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고세균이란 이름을 만든 건 메탄생성 박테리아가 생존하는 환경이 30억~40억 년 전 지구의 환경(산소가 없는)
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혁신적인 제안이 담긴 논문이었지만 발표 당시에는 별 다른 반향이 없었다. 그러나 그 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관련 데이터가 계속 쌓이면서 사람들은 점점 이 논문에 관심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1990년 우즈 교수는 새로운 분류체계를 제안하는 논문을 ‘PNAS’에 제출하면서 큰 파장을 몰고 온다.
격렬한 저항 뚫고 21세 들어 채택돼
스무고개란 놀이도 있지만 사람은 어떤 속성에 대해 ‘예 아니오’로 답하면서 사물을 나누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이런 성향이 학문적으로 승화된 게 바로 분류학이다.
분류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이분법, 즉 첫째 고개는 오랫동안 “동물이냐? 식물이냐?” 하는 구분이었다.
17세기 현미경이 발명되면서 미생물의 존재가 밝혀졌지만 사람들은 ‘동물이 아닌 건 다 식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866년 독일의 저명한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은 단세포 생물을 식물에 분류하는 건 무리라고 보고
이들을 원생생물로 따로 분류한 ‘3계 분류법’을 제안했다.
그러나 1937년 프랑스의 생물학자 에두아르 샤통이 세포를 세포내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음을 발견하고 각각 원핵세포와 진핵세포라고 명명하면서 이에 기초한 2계 분류법을 제안한다.
이제 원핵세포 진핵세포라는 이분법이 다시 첫째 고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사실 현재 생물학을 보는 관점은 여전히 이 분류에 기초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분류학의 역사로 돌아와서 1956년 코플랜드는 헤켈과 샤통의 분류법을 모두 반영한 ‘4계 분류법’을 제안한다.
즉 헤켈의 원생생물계를 원핵생물인 모네라(Monera)계와 원생생물계로 나눈 것.
1969년 미국 코넬대의 생태학자 로버트 휘테커는 곰팡이나 버섯 같은 균을 식물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고 보고
균류를 별도의 계로 독립시킨 ‘5계 분류체계’를 제안했고 그 뒤 휘테커의 분류법은 널리 받아들여졌다.
필자도 학창시절 이 분류법을 배웠다.
그런데 1990년 우즈 교수가 드디어 칼을 뽑아 든 것이다.
우즈는 ‘역(Domain)’이라는 새로운 분류단계를 도입해 생물을 3역으로 나눴다.
즉 박테리아(Bacteria·세균)와 아케아(Archaea·고세균), 유카야(Eucarya·진핵생물)가 그것이다.
5계 분류체계에서 모네라계였던 원핵생물이 두 역으로 나뉘었고 네 개의 계가 진핵생물역으로 통합된 것이다.
게다가 논문에 실린 계통수는 더 충격적인 사실을 이야기한다. 즉 진화의 역사에서 봤을 때 고세균은 세균보다
진핵생물에 더 가깝다는 것.
따라서 굳이 2분법으로 첫째 고개 질문을 만든다면 “세균인가? 아니면 고세균/진핵생물인가?”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우즈 교수는 논문에서 “원핵생물이냐 진핵생물이냐로 나누는 건 쓸모는 있지만 의미가 있지는 않다”는
말로 자신의 입장을 요약하고 있다.
전문가가 아니면 세균과 구분하지도 못할 고세균이 첫째고개에서 오히려 사람과 묶여야 한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의문은 계통수를 거슬러가는 방법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가 될 것이다.
즉 계통수를 따라 공통조상을 찾아보면 사람과 메탄생성 고세균은 약 20억 년 전(물론 추측이다) 공통조상에서
갈라졌다. 이제 이 공통조상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약 30억 년 전(역시 추측이다) 세균과 갈라진 시점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첫째고개의 질문이 성립하는 것이다.
1990년 논문은 즉각 뜨거운 환영(주로 미생물학계)과 격렬한 저항을 동시에 받았는데 놀랍게도 에른스트 마이어와
살바도르 루리아 같은 많은 저명한 생물학자들이 비판의 대열에 합류했다.
결국 우즈는 학계에서 ‘상처뿐인 혁명주의자’로 동정받기도 했다.
필자는 이번 글을 준비하며 1998년 에른스트 마이어가 ‘PNAS’에 기고한 글을 읽어봤는데 좀 충격이었다.
20세기의 다윈이라고 불리며 지난 세기를 풍미한 진화학자 마이어가 94세 때 쓴 글임에도(마이어는 2005년 101세에
타계했다) 감정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글 곳곳에 우즈에 대한 강한 적대감이 느껴졌다.
“지난 100년 동안 생물다양성의 세계에서는 몇몇 놀라운 발견이 있었지만 이것들은 생물다양성 세계지도에 작은
점을 찍는데 불과했다. 반대로 우즈의 고세균 발견은 새로운 대륙을 발견한 것과 같다.”
이렇게 좋은 말로 시작하지만 곧 본색이 드러나 “여기서 우즈가 생물학자로 교육을 받지 않았고 따라서 분류의
원리에 대해 친숙하지 않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우즈의 ‘3역 분류체계’를 비판하기 시작
한다.
먼저 archaebactria(고세균)이라는 말부터 잘못 지은 이름이라는 것.
고세균은 세균보다도 오래 되지 않았고 그 뒤 평범한 환경에서 사는 고세균도 여럿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런 비판에 우즈도 1990년 논문에서 새 용어 Archaea(번역어로는 여전히 고세균)를 썼는데 부적절한 고(archae)
를 고집하고 있어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차라리 메타세균(metabacteria)라는 용어를 쓰는 게 나을 거라고 덧붙였다.
마이어는 “분류는 정보를 저장하고 꺼내보는 체계”라며 “그 목적은 노력과 시간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게 각 항목
을 위치시키는 것”이라고 글을 시작하며 한 줌 밖에 안 되는 고세균(당시까지 175종)을 1만여 종인 세균과 3000만
종이 넘는 진핵생물과 대등한 위치에 두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진화의 개념을 도입하더라도 결국 진화란 “표현형의 사건”으로 “유전자가 아니라 표현형이 선택의 대상”이기
때문에 현미경으로 봐서는 서로 구분하기도 어려운 고세균은 “표현형의 관점에서는 그냥 세균일 뿐”이라는
것이다.
원핵생물과 진핵생물 사이의 엄청난 차이는 무시한 채 두 가지 세균의 미미한 차이를 강조하는 건 이해할 수 없고
따라서 “3역 분류체계에서 어떤 이점도 찾을 수 없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러나 마이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21세기 들어 생명과학 교재 대다수는 휘테커의 5계 분류체계를 버리고
우즈의 3역 분류체계를 채택했다. 이 분류체계가 오늘날 다양한 생물들의 위치를 좀 더 명쾌하게 보여줄 뿐
아니라 생명진화의 역사나 생물 특히 진핵생물의 기원에 대해서도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즈는 2005년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린 인터뷰에서 생물학자가 되려는 학생들에게 아래와 같은
조언을 했다.
“처음부터 생물학을 너무 진지하게 공부하지 마세요. 먼저 가능한 폭넓게 기초 과학 교육을 받으세요.
그래야 나중에 생물학에 입문할 때 과학적 감각을 유지할 수 있고 열린 마음과 호기심을 지닐 수 있답니다.
생물학을 공부할 때는 역사적인 배경부터 시작하세요. 현재 트렌드의 바탕을 이해해야 그 한계도 알 수
있으니까요.”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