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오백 년을
땅속에서 지켜온 영화"
"공주 공 산 성 (公 山 城) 탐방..,"
(금서루,공북루,진남루 등.,)
"공주에서 공산성(公山城)이 꼭 올라야 할 곳입니다.
금강을 북으로 하고 천년의 요새를 이룰 수 있어 백제의 왕도로
선택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백제 때의 유물이야 남아 있지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역사의 숨결을 느끼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없을 듯 합니다.공산(公山)의 능선과 계곡을 따라 쌓은 성벽인 공산성은
웅진백제시기(475~538)를 대표하는 고대 성곽입니다.백제 땐 *웅진성"
고려시대엔 "공산성"으로 고려시대 인조 이후엔 *쌍수성"으로
불려졌다고 합니다.비단길 같은 금강을 감아 휘도는 고풍스런
성곽을 따라 걷다보면 1500년 전 고대 왕국 대백제의 멋진
향기가 가슴 속 깊이 전해져옵니다."
(멀리서 바라본 공산성)
"공주에 "입성" 하려면 반드시 긴 금강을 가로지르는 금강교를 건너야 합니다.
금강교를 가로질러 공주 시내로 들어가기 전에 바로 왼쪽으로 공주 시가를 외호하고
있는 둔덕을 만나게 되는데 그곳이 공산성(公山城)입니다."
"잔잔한 금강 위로 떠 있는 공산성~1500여 년의 긴세월을
버텨낸 성곽길이 공주라는 도시의 뼈대를 잇고 있습니다."
(공산성 금서문 전경)
"사적 제12호인 공산성은 강(금강)을 북쪽에 두고 있으며, 공산성이란 이름은
조선 시대 때의 이름이고 백제 때에는 웅진성이라 하였으며 당시에는 흙성이었을리라
짐작되며 지금 있는 석축은 조선 중기에 새로 쌓은 것이라 합니다."
(금서루 입구 비석군 : 碑石群)
"공주와 관련된 인물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세운 비석들입니다.
공주시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송덕비가 대다수입이다."
(금서루 : 錦西樓)
"성안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지만,
1993년에 복원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공산성 4개의 성문 중 서쪽에 있는 문루(門樓)입니다."
(공산성 성곽)
"동서로 길고 남북으로 폭이 좁은 산성의 길이는 2.2km쯤 됩니다."
(금서루~좌.우 성곽길)
(공산정 오르는 성곽길)
"금서루에서 하늘로 뻗은 계단을 오르고 나니 아찔한 풍경을 선사하는
공산정 전망대가 *오느라 수고했다*는 듯 기다리고 있습니다."
(공산정 : 公山亭)
"공산성 서북쪽에 있는 누각입니다. 이곳에서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금강교 등 공주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공산정에서 바라본 풍경)
"금강교는 상성동과 신광동을 연결하는 다리이며
금강을 붉게 물들이는 장엄한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공산성 성곽길의 백미는 금강을 발 아래두고 금강을 바라보며 걷는
공산정 전망대에서 공북루까지의 성곽길입니다."
(공북루로 내려가는 성곽길)
"변화무쌍한 성곽길은 마치 끊임없이 이어지는 구름길 같았습니다.
삶이 그리하듯 더디 오르는 오르막 길이 있었고 숨 가쁘게
내려가는 내리막길이 있었습니다."
(공북루 : 拱北樓)~유형문화재 제 37호
"공북루(拱北樓)는 공산성 북문으로 강남과 강북을 오가는 남북통로의 길입니다.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문루(門樓)로 조선 선조 36년(1603) 옛 망루터에
다시 지어 공북루라 불렀다고 합니다."
(공북루에서 바라본 풍경)
"공북루 성문 아래로 금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어
문루 위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멋스럽습니다."
(만하루 가는 성곽길)
"내리막길 어디쯤엔 쉬어 가라는 듯
누각과 연못(만하루와 연지)이 새집처럼 자리잡고 있습니다."
(만하루와 연지 : 挽河樓와 蓮池)
"조선 영조 때에 건립된 누각입니다.연못과 금강 사이에 자리잡은 누각은
공산성을 방어하는 기능과 평소 경치를 관람하는 역활을 했다고 합니다."
(연지 : 蓮池)~기념물 제42호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방형의 연못입니다."
(영은사 : 靈隱寺)
"조선 세조 4년(1458)에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영은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의 훈련소롤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전망대로 가는 성곽길)
"금강 위로 용처럼 꿈털대는 성곽길..,
자세히 보면 예쁘고, 오래보면 사랑스럽습니다."
(전 망 대)
"발아래로 펼쳐진 금강을 바라보며 숨을 고른 뒤 무수한 소원을 쌓아 올린
돌탑에 돌 하나를 얹어두고 아름다운 성곽길을 따라 임류각,광복루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금강과 공주시가지)
(전망대에서 임류각과 광복루 가는 성곽길)
"성곽길을 걷는 묘미는 이렇게 산능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흐르는 길의
아름다움을 눈과 마음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한참을 바라보아도 아름다운 풍경,
아름다운 길입니다."
(임류각과 명국 삼장비 : 明國 三將碑)~유형문화재 제36호
"명국 삼장비(明國 三將碑)는 정유재란 이듬해(1598)인 선조 31년 공주에 주둔 하였던
명나라 세 장수 이공,임제,남방위의 업적을 기리는 송덕비(頌德碑)입니다."
(임류각 : 臨流閣)
"임류각(臨流閣)은 백제 제24대 동성왕 22년(500년)에 왕국 동쪽에 지어진
누각으로 왕과 신하들의 연회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광복루 : 光復樓)~문화재자료 제50호
"광복루(光復樓)는 공산성 동쪽 가장 높은곳에 위치한 2층 누각으로,
공산성 안에 주둔한 군대를 지휘하던 중군영(中軍營)의 문입니다."
(동문~영동루에서 바라본 공주시가지)
"한때 한 나라의 수도였던 공주는 충청남도의 도청소재지였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매우 한적하고 조용한 아담한 도시입니다."
(영동루 ; 迎東樓)
"영동루(迎東樓)는 공산성의 4개 성문 가운데 동쪽에 잇는 문으로,
이미 무너져 없어진 것을 1980년에 발굴 조사하여 다시 세운 문루(門樓)입니다."
(영동루에서 진남루 가는 성곽길)
"진남루 가는 길은 가려진 나무들 속으로 편하게 이어진 성곽길이
겨울숲의 운치를 더해 주는 것 같습니다."
(진남루 : 鎭南樓)~문화재자료 제48호
"진남루(鎭南樓)는 공산성의 남문이며 시내에서 공산성으로 출입하는 정문입니다.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문루로 조선 36년(1603) 토성이었던 옛 망북루터에
다시지어 진남루라 불려졌다고 합니다."
(성 곽 : 城 廓)
(쌍수정 : 雙樹亭)~문화재자료 제49호
"쌍수정(雙樹亭)은 인조가 이괄(李适)의 반란(1624)을 피해 공주로 잠시 피난 왔을때,
이곳에 머물렀던 일을 기억 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인조는 난(亂)이 평정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자신이 기대었던 ..,"
"...,두 그루의 나무에 *통훈대부(通訓大夫)*라는 벼슬을 내리고,
이곳을 쌍수산성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영조 10년(1734년)에 쌍수(雙樹)가
있던 자리에 정자를 지은 것이 바로 쌍수정입니다."
(쌍수정에서 금서루 가는 성곽길)
"쌍수정에서 금서루까지의 성곽길은 아담한 공주 시가지를 왼편에
성안길을 오른편에 두고 걷는 길입니다."
(왼편~공주시가지)
(오른편~성안길)
(금서루와 공산정)
"금강을 감상하며 공산성 성곽길(2260m) 전체를 한 바퀴 돌아 이곳 출발지 금서루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걸리니 누구나 역사 속의 아름다운 공산성 걷기에
도전해 볼만 합니다.
(공산성에서 바라본 금강 : 錦江)
(금 강 : 錦 江)
"금강은 전북 장수군 수분이 마을 뜬봉샘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다가 충청남도를 휘감고 돌아 공주,부여를 거쳐 군산으로 빠
져나가는,우리나라 6대 강의 하나입니다. 길이 401km에 이르는
장대한 강으로 남한에서 한강,낙동강 다음으로 긴~강입니다."
~~(늘 푸른 평상심을 지니고.,)~~
"거울에 비친 하얀 머리카락이 낮설지 않으면서
나 혼자 웃었습니다. 세월이 생각보다 빠르게 가고 있다고,
남은 날들을 더 잘 살아야 되겠다고, 그래서 좀 더 현명해야
한다고 흰 머리카락이 조용히 일러줍니다.아침에 눈 뜨면 오늘도
감사합니다. 일하러 지하 주차장을 가면서 더욱 더 감사합니다.
하며 엷은 미소를 흘려 봅니다."
"청 풍 명 월~~공주 공산성 탐방...................................................,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