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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한글: 하나님의 우정이 내 장막 위에 있었으며
개역개정: 하나님이 내 장막에 기름을 발라 주셨도다 (다소 거리가 멀게 의역되었습니다)
새번역: 하나님과 친밀하게 사귀던 그 시절
공동번역: 하느님께서 나의 처소를 감싸주시던 그때
가톨릭 성경: 하느님의 우정이 내 천막을 감싸던 때
쉬운성경: 하나님과 집에서 달콤한 교제를 나누던 날들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이 우리 가정을 지켜주던 때
한글킹제임스: 하나님의 비밀이 내 장막 위에 있었을 때
현대성경: 우리가 살고 있던 장막을 손수 어루만져 주셨던 때
새한글성경 (2025~2026년 최신 번역): 하나님과 나누는 친밀한 사귐이 나의 천막에 있을 때
여러 영어 역본(NRSV, ASV, RSV)에서도 이를 'friendship of God(하나님의 우정)'으로 일관되게 번역했고, NIV는 'intimate friendship(친밀한 우정)', KJV와 마틴 루터의 독일어 성경은 'secret of God(하나님의 비밀)', 유대인 역본은 'converse of God(하나님의 담화, 교제)'으로 번역했습니다. 중국어 성경은 절친한 친구의 정을 뜻하는 '밀지정(密之情)'으로, 일본어 성경은 '시타시미(친밀함)'로 표현했습니다. 단어의 결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누릴 수 있는 가장 깊고 다정한 친밀함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성경에 나타난 우정의 백미(白眉)를 살펴보겠습니다. 백미는 '흰 백' 자에 '눈썹 미' 자를 씁니다. 옛날 중국 마씨 집안의 다섯 형제가 모두 재주가 뛰어났는데, 그중 맏이인 마량의 눈썹에 흰 털이 났었고 그가 가장 출중했습니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여럿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물건을 '백미'라고 부릅니다. 우리 현대 역사에서도 경제부총리를 지내신 조순 박사님이 눈썹 위에 흰 털이 길게 나 있어서 백미라는 고사를 떠올리게 하곤 했습니다. 성경 역사 속 우정의 백미는 단연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입니다.
이들의 우정이 전개된 배경은 이스라엘 왕국의 초기 역사입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등극하여 주변 이방 민족들을 물리치며 기초를 다질 때였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열왕기상 13장과 15장에 기록된 두 번의 중대한 영적 실패(제사장 고유의 직분을 침범하여 제사를 드린 일과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좋은 가축을 남긴 일)로 인해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됩니다. 사울 왕은 외모도 출중하고 백성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나 불순종으로 인해 비극적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블레셋의 거인 장군 골리앗을 물맷돌 하나로 쓰러뜨린 소년 다윗이 역사의 전면에 출연합니다. 다윗이 큰 공로를 세우자 백성들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며 환호했고, 이에 깊은 시기심을 느낀 사울 왕은 다윗을 원수로 여겨 죽이려고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사울 왕의 가족 관계를 보면 아내 아히노암과의 사이에서 아들 요나단, 말기수아, 아비나답, 이스보셋(에스바알)과 딸 메랍, 미갈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사울 군대의 총사령관은 그의 숙부의 아들이자 사촌 동생인 아브넬이었습니다. 이 집안은 베냐민 지파 기스의 가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삼엄한 권력의 역학 관계 속에서, 사울 왕의 장자이자 왕세자였던 요나단과 도망자 신세가 된 다윗 사이에 불꽃 같은 우정이 싹텄습니다. 사무엘상에 기록된 이들의 관계를 바탕으로 '참된 우정의 7대 특징'을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서로의 마음이 연결되는 우정입니다(삼상 18:1).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사울과 대화를 마쳤을 때,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영적으로 깊이 연결되는 것이 우정의 시작입니다.
둘째, 서로를 심히 기뻐하는 우정입니다(삼상 19:1). 사울 왕이 요나단과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공식 명령을 내렸을 때,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기뻐하므로" 그를 숨겨주고 사울 앞서 변호해 주었습니다. 왕세자가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 지위를 위협할 수 있는 다윗을 기뻐하고 보호한 것입니다.
셋째, 서로의 소원을 이루어 주는 우정입니다(삼상 20:4). 다윗이 사울의 살해 위협을 피해 도망하다 요나단을 만났을 때, 요나단은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라고 선언했습니다. 친구의 필요와 소원을 조건 없이 들어주려는 헌신입니다.
넷째,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는 우정입니다(삼상 20:17). 다윗이 요나단에게 "내게 죄가 있다면 차라리 네가 나를 죽이라" 고백할 정도로 절박할 때, 요나단은 다윗을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요나단은 다윗보다 나이도 많고 왕세자의 신분이었지만, 자기를 비워 친구를 생명처럼 아꼈습니다.
다섯째, 서로를 위하여 슬퍼해 주는 우정입니다(삼상 20:34). 매달 초하루(월삭) 조정의 문무백관이 모여 식사하는 자리에 다윗의 자리가 비자, 사울 왕은 분노하여 다윗을 옹호하는 요나단을 향해 단창을 던져 죽이려 했습니다. 요나단은 심히 노하여 식사 자리를 떠났고 둘째 날에는 먹지 않았으니, "이는 그의 아버지가 다윗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다윗을 위하여 슬퍼함이었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친구의 억울한 처지에 깊이 공감하며 눈물 흘리는 우정입니다.
여섯째, 함께 울어주는 우정입니다(삼상 20:41). 들판에서 화살을 이용한 비밀 신호로 사울의 살해 의도를 확인한 후, 요나단은 다윗을 만나 피차 입을 맞추고 "같이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위해 위험을 무릅쓴 왕세자 요나단에게 세 번 절했고, 두 사람은 붙잡고 통곡했습니다. 슬픔을 함께 나누며 우는 관계입니다.
일곱째,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는 우정입니다(삼상 23:16). 다윗이 십 황무지 수풀에 숨어 지극히 낙심해 있을 때 요나단이 목숨을 걸고 찾아왔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라고 하였습니다. 절망에 빠진 친구에게 인간적인 동정을 넘어 영적인 새 힘을 공급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이끄는 것이 우정의 최종적인 도달점입니다.
네덜란드의 거장 렘브란트가 그린 <다윗과 요나단>이라는 성화를 보면, 이 슬프고도 위대한 두 친구의 부둥켜안은 눈물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이러한 진실한 벗을 단 한 사람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결코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이후 블레셋과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과 형제들과 함께 길보아산 전투에 출전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요나단과 그의 형제들은 장렬히 전사하였고 사울 왕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 비보를 전해 들은 다윗은 깊은 애통에 잠겨 사울과 요나단을 위해 슬픈 조시(弔詩)를 지어 불렀습니다. 사무엘하 1장 26절의 고백입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자신을 그토록 아껴주던 신실한 벗이자 형님이었던 요나단을 향해 바친,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추모시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간관계를 맺습니다. 한국의 유명한 문학가 유안진 교수의 수필 중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명작이 있습니다. 지초와 난초처럼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맑고 성숙한 친구 관계를 소망하는 글입니다. 김치 냄새가 나고 옷을 대충 입었을지라도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 나눌 수 있는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을 마음 놓고 보여주어도 뒤돌아서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 때로 변덕을 부려도 애교로 받아주고 부드러운 충고를 아끼지 않는 친구를 바라는 수필의 고백처럼, 진실한 우정은 인생의 가장 고귀한 선물입니다.
성경에는 인간 사이의 우정을 뛰어넘는 참된 친구가 또 등장합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향해 가장 위대한 친구로 다가오셨습니다. 누가복음 12장 4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고, 요한복음 11장 11절에서는 죽은 나사로를 가리켜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하셨습니다. 지극히 다정하고 친밀한 벗의 모습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15장 13절로 15절에서 친구의 정수를 선포하셨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당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주심으로 참된 우정의 극치를 몸소 확증하셨습니다. 심지어 마태복음 26장 50절에서 겟세마네 동산에 자기를 군대와 함께 잡으러 온 가룟 유다를 향해서도 끝까지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고 부르셨습니다. 배반하는 자를 향해서도 친구(헤타이로스)라는 명칭을 쓰시며 인류를 향한 그분의 넓은 사랑의 가슴을 보여주셨습니다.
1892년 영문 시조(Signs of the Times) 기록에는 이런 감동적인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예수는 자신을 비우시고 그 영광을 감추셨다. 그가 신성에다 인성을 입으신 것은 인간을 접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며, 그가 우리의 모든 시련을 익히 아시며 우리의 슬픔을 동경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알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며, 아담의 모든 아들과 딸들이 예수는 죄인들의 친구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신 근본적인 목적은, 우리와 격의 없이 소통하며 '죄인들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부조와 선지자》 294페이지에도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Jesus is our friend)이신데 왜 우리가 배은망덕하고 불신해야 하는가? 우리의 초조함과 걱정은 성령을 슬프시게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가장 위대하고 전능하신 친구가 늘 곁에 계시니 우리는 염려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느 작자 미상의 글인 《예수님께서 보내신 편지(A Letter from a Friend)》의 내용을 보면 주님의 심정이 절절하게 묻어납니다. 하루 종일 대화를 나누고 싶어 기다렸으나 세상 일과 친구들에게 빠져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나를 보며 안타까워하시고, 피곤해 뉘어 잠든 베개 위에 달빛을 쏟아 주시며, 아침에 서둘러 출근하는 뒷모습을 보며 비 오듯 눈물을 흘리시는 다정한 친구의 모습입니다. 대양보다 깊은 사랑을 푸른 하늘과 시냇물 소리, 꽃들의 화사한 색깔 속에 불어넣어 속삭이시며 "제발 나를 찾아다오, 나와 이야기하자, 너를 위해 예비한 보석들이 가득하다" 초청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친구 예수님이십니다. 찬송가 가사처럼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구인지" 날마다 고백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전도와 신앙생활은 "친구 따라 천국 가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진정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면, 먼저 그 사람의 진실한 벗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를 친구 삼아 주신 그 무한한 사랑을 기억합시다. 우리도 이웃에게 참된 벗이 되어 줍시다. 마침내 우리의 영원한 친구이신 주 예수님께서 구름 타고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우리 모두 기쁨으로 그분을 맞이하며 영원한 우정의 잔치에 동참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195번째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핵심 요약 정리
벗과 친구의 성경적 용례
성경에는 벗과 친구라는 단어가 매우 자주 등장하며, 개역한글판에는 총 95회, 개역개정판에는 총 114회 사용되었습니다. '우정'이라는 단어 자체는 욥기 29장 4절에 단 한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벗과 우정
아브라함: 구약(역대하 20:7, 사 41:8)과 신약(약 2:23)을 통틀어 공식적으로 "하나님의 벗(Philos Theou)"이라 칭함을 받은 복된 인물입니다.
하나님의 우정: 욥기 29장 4절의 히브리어 '소드(Sod)'는 하나님과 나누는 지극히 다정하고 깊은 영적 '친밀함', '비밀을 나누는 사귐'을 뜻합니다.
다윗과 요나단: 참된 우정의 7대 특징 (우정의 백미)
① 마음의 연락: 영혼과 마음이 서로 깊이 하나로 연결됨 (삼상 18:1).
② 서로를 기뻐함: 신분과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존재 자체를 심히 기뻐함 (삼상 19:1).
③ 소원 성취: 친구의 필요와 소원을 조건 없이 전적으로 들어줌 (삼상 20:4).
④ 생명 같은 사랑: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친구를 사랑함 (삼상 20:17).
⑤ 함께 슬퍼함: 친구가 당한 모욕과 위기에 진심으로 가슴 아파함 (삼상 20:34).
⑥ 함께 울어줌: 억울한 처지에 놓인 친구를 안고 피차 통곡함 (삼상 20:41).
⑦ 하나님 신뢰 촉구: 고난 중인 친구에게 영적 힘을 북돋우며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도록 격려함 (삼상 23:16).
요나단이 전사했을 때 다윗은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라며 슬픈 조시를 바쳤습니다(삼하 1:26).
가장 위대한 친구: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신성에 인성을 입고 성육신하시어 인류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눅 12:4, 요 11:11).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13). 예수님은 자기를 배반하러 온 가룟 유다까지도 "친구여"라 부르시며 끝까지 품으셨고,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참된 우정의 극치를 확증하셨습니다.
구원의 진리는 친구가 먼저 되어주어 "친구 따라 천국에 가도록" 이끄는 사랑의 실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