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벧에돔의 축복 (The Blessings of Obed-Edom)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한 후에 시내 평야에서 하나님의 집인 성막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 온 후에 성막은 실로에 세워졌습니다. 이스라엘이 강대국 불레셋에 시달릴 때에 타락한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는 법궤를 가지고 나가 전쟁을 하면 승리할 것으로 기대하였지만 전쟁에서 패하고 법궤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진실된 법궤 신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불레셋은 법궤를 가지고 있다가 재앙이 임하자 다시 이스라엘로 보냈는데 아비나답의 집에 보관이 되었습니다. 사울 왕은 믿음이 없어서 법궤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다윗은 왕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싶어하였습니다. 그래서 3만 명을 동원하여 법궤를 수레로 운반하게 되었는데 나곤의 타작마당에 왔을 때 수레를 끌던 소들이 갑자기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뒤에 있던 웃사는 법궤가 떨어질까봐 두려워서 법궤를 손으로 잡았다가 그 순간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율법에 하나님의 법궤는 손을 댈 수 없게 되어 있는데 이 법을 어겼기 때문입니다(출 37:5; 민 4:20). 법궤를 기쁨으로 나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슬픔 가운데 웃사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고 다윗 왕은 법궤가 두려워서 예루살렘 운반 계획을 취소하였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법궤를 나르기를 두려워할 때에 오벧에돔은 자기 집으로 법궤를 가져다가 보관하였습니다. 단지 석 달만 법궤를 잘 모셨는데도 불구하고 이로 인하여 오벧에돔은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삼하 6:9-12).
오벧에돔의 복은 소문이 날 정도로 특별한 하나님의 복이었습니다: “혹이 다윗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를 인하여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삼하 6:12). 오벧에돔은 먼저 물질과 재산의 복을 받았습니다. 농사도 잘되고 가축도 잘되어 번창했습니다. 다음으로 고귀한 직분과 사명의 복도 받았습니다: “다윗이 아삽과 그 형제를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머물러 항상 그 궤 앞에서 섬기게 하되 날마다 그 일대로 하게 하였고 오벧에돔과 그 형제 육십팔 인과 여두둔의 아들 오벧에돔과 호사로 문지기를 삼았고”(대상 16:37-38). 다윗 왕은 오벧에돔을 법궤를 지키는 사람으로 임명하고 문지기의 직분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지키는 직무는 당시에 아주 귀한 직분이었습니다. 오벧에돔은 특히 남방 문을 수비했습니다. 이 남방 문은 왕만이 출입하는 문입니다. 좋은 직분과 사명을 맡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복입니다.
오벧에돔의 온 집이 또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삼하 6:12). 역대상에 보면 오벧에돔의 후손들이 모두 하나님의 집을 지키는 봉사자로 복을 받았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대상 26:4-8). 오벧에돔은 아들이 8명이요 후손들이 62명이 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능력있고 어떤 일을 하든지 잘 감당하여 내는 능력자들이었습니다. 자손 중에서 다스리는 자나 큰 용사들이 나왔습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시 112:1-2). 오벧에돔의 형제들도 또한 복을 받았습니다: “저희와 그 아들들과 그 형제들은 다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하는 자니”(대상 26:8). 단지 석 달만 법궤를 모시고 있었는데도 오벧에돔은 이렇게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럼 그가 이렇게 큰 복을 받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벧에돔이 남이 즐겨하지 않는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법궤로 인하여 사람이 즉사하는 사고가 난 마당에 누가 법궤를 모셔오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오벧에돔은 기쁨으로 법궤를 맞이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그의 영적인 시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법궤를 두려워했지만 그는 그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거룩하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게 된 시몬도 복을 받았습니다(마 27:32; 롬 16:13). 하물며 자발적인 헌신은 얼마나 더 큰 복을 받겠습니까? 오벧에돔은 또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을 운반해갈 때 법궤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이사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그 후손까지 영원토록 법궤를 지키는 문지기 반차가 되었습니다. 석 달만 잘 한 것이 아니라 변치 않고 영원히 잘 한 것입니다. 오벧에돔은 또 자신의 이름값을 잘 하였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에돔의 섬기는 자>입니다. 그는 반역자인 고라의 후손으로 가드 사람인데 소외된 지역의 인정받지 못하는 자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람들을 섬기면서 자신의 이름대로 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크리스천’이라는 이름값, ‘성도’라는 이름값,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라는 이름값을 잘 해야 합니다.
오늘날은 하나님의 법궤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전 6세기 바벨론의 공격을 받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 노략질을 당하거나 불에 탔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법궤는 하나님 임재의 가시적인 상징이었는데 히브리서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진리의 말씀이시며, 부활과 생명이 되시며, 우리 영혼의 만나가 되심으로 진정한 법궤가 되신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누구든지 오벧에돔처럼 법궤이신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셔들이는 자는 큰 복을 받습니다. 헬라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Non sine sole ins”(해 없는 무지개는 없다). 비가 와야 무지개가 뜹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오벧에돔과 같이 견디면서 예수님을 섬기고 봉사하고 모시는 자에게는 축복의 무지개가 뜨는 법입니다. 여러분 모두 오벧에돔처럼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심으로 최고의 복된 인생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