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브샤브/ 황 정 현
회원들이 변산 격포를 야외 놀이 활동 장소로 정하고 하루의 계획을 세워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중국 발 미세먼지의 혹심한 위세로 시내 음식점 실내로 방향을 틀고 주저앉게 되었다. 어렵게 계획된 야외 행사라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친목을 위한 공동의식으로 점심과 저녁에 이르기까지 자리를 같이 하며 나눌 이야기들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아쉬웠다. 차선책으로 평화동 신축건물 5층에 자리 잡은 뷔페식당에서 점심을 즐기기로 의견을 모았다. 주 메뉴가 샤브샤브 해물 및 소고기 절편을 섞어 육수에 넣어 살짝 익혀 먹는 요리였다.
샤브샤브는 원래 몽골 징기스칸 때부터 유래한 음식이라 하나, 오늘날에는 일본 요리로 알려진 게 분명해 보인다. 끓는 국물에 얇게 썬 고기, 야채, 해물 등을 데쳐 양념장에 재워 먹는 요리로서의 어원상 샤브샤브가 ‘살짝살짝/찰랑찰랑’이라는 일본어 의태어라고 알려졌다. 어원상으로 볼 때 맵다거나 얼큰하다거나 하는 남성적 센 맛과 거리가 있음직한 여성적 맛의 기류인 듯싶다. 부드럽고 약간 싱거운 재료를 섞어 익혀 드는 음식이며 어느 정도는 인위적 가공을 거쳐 개개인의 입맛에 따라 해물과 소고기를 가미하여 즉석요리해서 드는 재미도 있다. 둘러앉은 사람마다 다를 입맛과 기호에 따라 가감하는 음식재료를 억지로 들어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다.
어떤 의미이던 모임의 분위기를 흥겹게 이끌어 가기위해 개인의 구미를 조정하고 적절하게 식욕을 만족시킬 식사량만 섭취하면 그만일 것이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을 특별한 이벤트나 실속 있는 프로그램이 준비되어있지 않은 탓인지 허우룩한 식사의 시간을 건너갈 뻔 했다. 다행스럽게도 신 수필가 회원께서 그윽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특 오디 와인 두병을 가져왔기에 붉으레한 화기애애가 잔잔히 감돌기 시작했다. 품위있는 정열의 표상인 와인을 작은 술잔에 따르고 건배사를 목정님이 제안할 때, 우리는 하루의 들뜬 풍요를 즐기는 마음으로 크게 ‘위하여’를 제창하였다. 깡마르고 무미건조한 지난 시절의 지루함을 한방에 날릴 듯 한 그윽한 향과 맛은 뽕 주의 특유한 취흥이 가져다 준 하루의 선물이었다. 달보드래한 술로 주고받는 잔이 오가며 조금씩 홍조를 띠어가는 회원들의 얼굴이 멋있고 고왔다. 감칠맛의 와인이 목뒤로 몇 순배 이어지는 뒤끝에 알딸딸한 감흥이 절로 일었다. 모름지기 신 수필 회원에게 감사의 정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세심하게 회원들을 위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띄울 충분조건을 미리 생각해준 그 마음에 도타운 감동이 일었다.
감각적 따뜻함과 흥취로 분위기가 무르익어갔고 와인 잔이 더 부딪쳐 청랑한 소리를 냈다. 두 병의 와인이 달착지근한 맛으로 유혹당한 기분에 홀렸던지 몇 순배 돌고나서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 여운의 미진한 표정들이 소주 두 병을 더 주문함으로써 직성을 풀었다. 점차 취기가 오르고 아슴한 경지의 큰소리가 나올 즈음, 배가 부르기 시작했다. 자리를 파하고 남은 시간을 함께 어울릴 장소를 찾은 게 모악산 도립미술관으로 가자는 제안이 나왔다. 미리 예정된 계획이 없었기에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회원이 없었다. 모악산 미술관으로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미술관에 박 시인이 근무하고 있기에 전화로 우리 회원들이 방문하게 됨을 알렸다. 미술관의 찻집에 들어서니 박시인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특유의 밝고 명랑한 미소와 청아한 목소리로 환영의 인사를 나누고 차를 대접해주었다. 그녀의 서글서글한 성품에서 우러나오는 인간미는 청순하고 예의바른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하늘거리는 모습은 영락없이 코스모스와 닮았다.
찻집을 나와 미술 작품 전시실로 갔다. 작품에 대한 깊은 감상이라기보다 보편적 수준의 감식안으로 그림의 뜻을 읽었다고 하는 편이 솔직한 표현이었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작품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을 거쳤을 것이나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시간은 짧았다. 그림의 구도와 표현하고자 하는 초점과 고갱이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응시와 관조의 시간이 넉넉해야 할 듯싶은데, 대부분 힐끗 스쳐보는 모습이다. 작가의 고심이 서린 그림 속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헤아리기엔 감상자들의 바쁜 일상으로 매몰되어, 왔다 간 흔적으로만 기억될 것이다. 특히 대작으로 여겨지는 100호 이상의 그림 앞에서도 싱겁게 둘러보는 감상으로 그치고 마는 면면들이 많다. 화가 개개인의 정신적 산물이며 수많은 날들의 치열한 고뇌의 흔적들이 응고되어있을 작품을 주마간산 격으로 감상하는 것은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여긴다. 그럼에도 정신일도의 감상에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전율적 작품을 볼 수는 없었다. 나의 가볍고 깊지 않은 감식안의 한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프랑스 루불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던 다빈치 그림 ‘모나리자의 미소’ 앞에서도 잠시 발돋움하며 관람객들 틈에 다소곳이 머물러 보았을 뿐, 세계적 걸작이 주는 벅찬 감동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얼치기 감상자이며 전문적 소양이 부족한 딜레탕트에 불과하였다. 그럼에도 도립미술관에서의 작품 전시 목록 설명과 그림의 주제를 밝히는 글이 멋있게 잘 쓰여 있음을 보았다. 글이 나타내고자 하는 내용을 문학적 운치를 더하여 멋있게 윤색한 문장들이 문학가들도 새겨 읽어야할 안내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미술관에서 나와 다시 평화동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저녁 회식과 밤으로의 여흥을 위한 시간이 아니었다. 원래부터 예정된 계획이 없다보니 길거리에서 우왕좌왕하는 꼴을 연출하는 게 참으로 쑥스러울 지경이었다. 오후 3시 반에서 5시 사이의 어중간한 시간을 가볍지만 허벅지게 보낼 곳이란 노래방뿐이었다. 그러나 밤이 이슥하여 열곤 하던 관행으로 그 방들이 우리를 위한 놀이터로 제공되는 곳은 없었다. 그런 황망 중에 저만치서 뒤따르던 여류회원들은 슬며시 하나 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예전에 그리 했듯이 그들 나름의 발칙한 이탈을 감행하는 듯싶었다. 별다르게 흥밋거리도 없을 남성 회원들의 수수꽃다리만도 못한 늙다리들을 뒤따르기엔 내키지 않은 마음이 앞설 것이 분명했을 터이다. 이마만큼 늙은 나이에 아직도 챙겨야 할 여성성의 경계심과 정체성으로 안온한 가정으로 가려는 관성을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시종여일하게 지켜온 삶의 질서와 서있는 자리와 처지를 끔찍하게 고수하려는 본능을 스스로 자각하여 각자도생의 길로 갔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이가 가르치는 초월적 관행을 습득한 지혜로 우리 회원들이 약속한대로 밤까지의 여로에 어김없이 동참해야할 의무가 있었을 텐데 아쉽기만 했다. 그날 하루만이라도 맑은 정신의 서방님께 흐린 괘념을 심어주어도 미래의 삶에 지장이 없을 터이고, 영화로운 가정의 실팍한 구도가 바뀌지도 않을 것인데도 그랬다.
다행스러운 것은 여성 회원들이 자리에 없게 되었다 해서 남성회원들이 기가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부드럽게 먹고 즐기는 한국식 샤브샤브는 저녁회식의 막걸리 술판에서 명료한 구색을 갖추고 등장했기에 우리만의 서슬 푸르게 걸쭉한 대하장강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쾌한 음담과 패설을 깔고 주취의 힘을 빌어 천하를 농단하는 이야기의 꽃들을 거나하게 술자리에 뿌렸다. 삶의 가벼움은 이때 쯤 온갖 스트레스를 뭉개고 생명의 온도를 높였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