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노을빛에 비치는 인생 정거장
… 요양원…
노을빛 언덕에서 노인의 생이 비치곤 한다. 첨단 생명 공학이 불러온 “구구 팔팔 이삼 사” “웰 다잉”이라는 신생 흐름이 춤추는 시절이다. 인생 여정 생로병사 끝자락에 인간이 지닌 마지막 간절한 소원이 감추어진 듯도 하다. 그렇다. 어느덧 부모님이 사라진 뒤 풍경이 희미하게 비쳐오는 연말연시의 쓸쓸함이 연필 끝을 재촉한다. 매년 이즈음에는 불현듯 스쳐 가는 장면을 빼놓을 수가 없다. 왜일까? 어떤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인간은 망각 속에서 허부적 거리는 듯한 때가 있다. 어느 인간에게나 젊음은 요원의 불길처럼 영원한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촛불처럼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일부에선 오천만 인구 중 노인 인구가 20%를 차지하는 1,000만 명이란 숫자가 채워지는 시기가 2026년이라고 한다. 어느 시인은 시구절로 표현한 인생의 마지막 정거장은 요양원이라고 한다. 어느덧 애절한 시구절이 가슴속으로 밀려오는 듯한 감성의 출렁임이 우연이 아닌 듯한 요즘의 일상이다.
우리에게 선배 세대인 “노령 계층”은 가장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불행한 옛 시련을 이겨낸 이 땅의 영웅들이다. 혹독한 일제와 참혹한 한국전쟁을 거쳐 잿더미에서 이제는 3만 달러 시대를 이루는데 초석이 되신 분들이지 아니한가? 젊은 시절 영혼을 하얗게 불태운 분들에 대한 사회적 환경, 복지 대책이 싸늘한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 인간에게 젊음은 미처 다 비우기도 전에 또다시 채워지는 힘으로 신이 내린 선물인 듯했었다. 푸른 청춘은 오직 한 번뿐인 기회였다는 것을 알지 못한 점이 젊은 날의 과오라는 점을 깨닫는 시기가 노후의 인생이라는 점이 신비롭기도 하다. 혹자는 인간에게 늙어감은 젊은 날에 끊임없이 타오르던 욕망을 연기처럼 날려 보낸 이후의 삶이 아니냐고 한다. 심지어 늙음은 황혼의 들녘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시기라고도 한다. 하지만 점점 어두워져 오는 시력에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삶의 참모습을 찾아가는 시기인 듯하다. 전후 사정이 이러하니 젊음의 무지에 늙음의 혜안이 조화로운 세상을 꿈꾼다는 사실이 시냇가의 자연스러운 물결의 흐름으로 비쳐온다.
흔히 웰다잉이란 소재가 한참 들썩이는 게 요즈음 실상이다. 어느 의사 부부가 유튜브 영상 속에서 행복한 노후의 삶이란 주제로 노인의 주거 문제를 열심히 설명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여러 지역 곳곳에 소재하는 실버타운의 최근 실상 소개 및 홍보하는 것이 해당 프로그램의 핵심인 듯도 하다. 아무튼 여전히 경제적 부담이 속을 뒤집기도 하니 참으로 아리송한 우리 일상의 단면이다. 하긴 신문 기사의 한 편에는 고독사가 언제나 등장하고 있다. 노인의 자살률이 국내 연간 자살률의 2.3배로 매일 7명에 해당한다는 점이 끔찍한 현실이기도 하다. 효(孝)를 제일의 덕목으로 지켜온 동방예의지국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다는 말인가? 여하튼 동삼(冬三)에 찬바람이 휑하니 불어오니 오 골이 부들부들 떨리는 영혼이 창밖 나뭇가지를 바라보는 시절이 야속하기도 하다.
최근에는 노령인구의 급격한 증가가 노령계층을 둘러싸고 있는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이외에도 핵가족과 맞벌이 가정의 증가 및 경기침체와 개인주의적 인식변화로 전통적 부양 기능의 사라지면서 인생의 마지막 정거장으로 등장한 것이 요양원이다. 여하튼 인생의 3분의 1을 보낼 자신들의 노년에 삶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성숙한 문화가 없었다는 점이 정말 슬픈 현실이기도 하다. 이쯤이면 요양원에 계신 부모님의 심정과 그 가족의 마음을 헤알릴 수 있는 문학적 표현이 심금을 울리는 것이 현실이다. “집에 가고 싶다고/맘대로 갈 수 있간디?/애들이 여기다/ 심어 놓은걸/사람도 나이가 들면/나무가 되나 보다./” 김풍배 시인님의 나무라는 시이다. 김풍배 시인님은 모정이라는 시를 통해서도 “갈치 생선/한토막/젖가슴에 묻어놓고/면회오는/ 아들만/기다리는 구십 노모/아들이/그 말을 듣고/바다만큼 울었네.”라는 시구절로 우리의 실상에 촛불을 당기고 있는 듯하다.
우리 일상에선 도심 속 골목길에서 소곤거리는 아줌마들의 이야기에 귀가 번쩍할 때가 있다. “어휴 요즘 것들은 자기 부모님도 모시지 않으면서 개새끼는 똥구멍도 싹싹 씻어 준다.” 사실 이럴 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감출 수가 없다. 지난 2년에 걸쳐 작고하신 부모님 그림자가 꿈틀거리는 듯하다. 어느 노인에게 요양원은 가족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곳이기도 하다. 마침 이런 연유로 지난 시절 준비해 두었던 시 한 편을 뒤적이는지도 모르겠다. “날개 잃은 새가 되어 힘을 잃어버린/한 노인이 창밖에 날아온 또 다른 새를 바라본다/초점 잃은 눈빛 사이에 애증의 강이 흐르지만/죄송해요. 어쩔 수 없어요..., 눈물 흘리는/창밖의 새를 위로한다/생(生)과 생(生)이 마주 보고/이별을 준비하는 곳 현대판 고려장을 벗어나는/발길은 언제나 무거워 세상을 두드린다.” 흔히 은퇴 이후 삶을 제2의 르네상스 소사이어티 라고 부르는 풍습이 펼쳐지는 요즘이다. 새로운 한 해 승천하는 청룡의 기운으로 축복받는 미래를 꿈꾸어 보는 마음속에 갈색빛으로 춤추는 장면을 어루만져 본다.
2024. 01. 14. 20:10, 저녁에 한 해의 축복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