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에 없어서는 안 될 28가지 원소는?
얼마 전 원자번호(원자핵 양성자 숫자) 117인 원소를 만들었다는 연구결과가 ‘피지컬리뷰레터스’에 실리며 주기율표 식구가 하나 더 늘어나는 게 확실시되고 있지만(국제순수응용물리학화학연맹의 승인만 남았다), 사실 이런 ‘합성’ 원소들은 수명이 무척 짧은, 실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데 의의가 있는, ‘덧없는 존재’들이다. 자연계(지구)에 있는 원소는 모두 92종. 원자번호 1인 수소에서 92인 우라늄까지다.
그렇다면 이 92가지 원소 가운데 우리 몸을 이루는데 필요한 건 몇 가지나 될까. 물론 보통 사람들 몸을 ‘분석’하면 대략 60여 가지 원소가 검출된다고 하지만, 존재한다고 해서 꼭 필요한 건 아니다. 납이나 카드뮴처럼 우리 몸을 ‘오염’시켜 문제(중독)를 일으키는 원소도 있다. 따라서 어떤 원소가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것인가를 판단하려면 아래의 ‘기준’을 충족시키는지 알아봐야 한다.
1. 원소 결핍이 생리적 기능장애로 이어진다.
2. 이때 원소를 보충해주면 기능장애가 개선된다.
3. 생리적 기능을 생화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주기율표에 본 인체에 필수적인 원소 27종. 짙은 녹색은 유기분자에 기본이 되는 네 원소. 녹색은 꽤 존재하는 원소들. 연두색은 미량일지라도 필수적인 원소들. 노란색은 포유동물에 꼭 필요한 것 같은데 생화학적 기능은 불명확한 원소들. 최근 연구결과 여기에 브롬이 추가돼야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막스플랑크연구소 제공
최근까지 이 기준을 통과한 원소는 27가지라고 한다. ‘그거밖에 안 되나. 나도 다 맞출 거 같은데.’ 이런 생각을 하는 독자들처럼 필자도 ‘과학상식’을 바탕으로 한 번 추론해보겠다. 먼저 CHO로 표기되는 탄소, 수소, 산소로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아미노산을 생각하면 질소(N)와 황(S)이 추가될 것이고 핵산에서 인(P)이 떠오른다.
신경전달을 생각하면 나트륨(Na)과 칼륨(K)이 포함돼야 하고, 뼈를 이루는 칼슘(Ca)과 불소(F)도 추가다. 피의 붉은색에서 철(Fe)이 떠오르고 갑상선호르몬에서 요오드(I)가 생각난다. 위산(염산)을 생각하니 염소(Cl)도 추가다. 꽤 많이 생각한 것 같은데 아직 열네 가지나 남았다. 지금부터는 좀 반칙을 해서 전공 공부를 할 때 주워들은 것들을 동원해야겠다.
먼저 마그네슘(Mg)과 망간(Mn), 아연(Zn)으로 특정 효소가 활성을 띠려면 꼭 필요하단다. 구리(Cu)도 비슷하게 쓰인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그리고 수년 전 비소박테리아 논문이 나왔을 때 비소(As)도 극미량 필요하다는 구절을 읽었다(물론 인을 대신해 핵산 골격에 쓰이는 건 아니고). 셀레늄(Se)도 드물게 아미노산에서 황을 대신해 들어가는 일이 있다. 필자가 지금 짜낼 수 있는 건 여기까지로 문헌을 통해 찾은 나머지 8종은 다음과 같다.
●비소도 실리콘도 필요
원자번호 순서로 보면 먼저 리튬(Li, 3번)이다. 이차전지의 총아인 리튬은 주기율표에서 나트륨, 칼륨과 같은 족(알칼리 금속)에 있는데, 극미량(약 30ppb, ppb는 10억 분의 1)이지만 건강유지에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다음으로 원자번호 5인 붕소(B)로 식물에서는 매우 중요한 원소(세포벽 유지에 필요)이고 동물에서는 역할이 명확하지 않지만 칼슘 흡수에 관여하고 유전자 변이로 적정 농도로 존재하지 않으면 근육퇴행위축증이 나타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주기율표에서 탄소 아래에 있는 실리콘(Si, 14번)도 필요하단다. 우리 몸에 약 20ppm(ppm은 100만 분의 1) 존재해 질량 기준으로 15위다. 실리콘은 뼈 성장에 필수적인 원소로 알려져 있다. 다음으로 원자번호 23번인 바나듐(V)으로 쥐와 닭을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 결과 결핍될 경우 성장 장애와 생식 장애로 이어진다. 또 인슐린 민감성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기율표에서 바로 옆에 있는 크롬(Cr, 24번)도 필수 원소로 결핍될 경우 포도당 대사에 문제가 생기고 RNA 작용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으로 원자번호 27인 코발트(Co)로 비타민B12 분자를 구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주기율표 옆의 니켈(Ni, 28번) 역시 특정 효소가 활성을 띠는데 필요하다고 한다. 끝으로 원자번호 42인 몰리브덴(Mo)으로 활성을 띠려면 이 원소가 있어야 하는 효소가 20여 가지라고 한다.
‘유해한 것들로 알았는데 우리 몸에 필요했나?’ 주로 뒤에 언급된 원소들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한 독자들도 꽤 있을 텐데, 그렇다. 이들 대다수는 인체에 ppb 단위로 존재하고(총량으로는 수 밀리그램 수준), 많이 있으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킨다. 도처에 있는 원소이므로 넘치면 넘쳤지 모자라는 일은 거의 없다. 따라서 이런 원소들의 결핍으로 일어나는 증상은 거의 보고되지 않았고, 그 결과 우리 생존에 꼭 필요하다는 사실이 비교적 늦게 알려진 것들도 있다.
상피조직에 존재하는 기저막은 콜라겐 네트워크가 지탱한다. 삼중나선분자인 콜라겐은 말단(NC1육합체)이 설필리민 결합을 통해 연결되면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퍼옥시다신이라는 효소가 이 과정을 촉매하는데, 이때 브롬이온이 꼭 있어야 한다. - 셀 제공
●염소가 브롬 대신하지 못해
학술지 ‘셀’ 6월 5일자에는 우리의 생존에 꼭 필요한 28번째 원소를 발견했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그 주인공은 바로 브롬(Br, 원자번호 35)이다. 미국 밴더빌트대 연구진들은 초파리의 기저막을 구성하는 섬유성 단백질인 콜라겐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브롬이 꼭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만일 브롬이 결핍되면 배아 발생에 문제가 생겨 알을 깨기도 전에 죽는다. 연구자들은 이 과정이 초파리뿐 아니라 하등동물인 해면에서 고등동물인 사람에 이르기까지 동물 전반에 보존돼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사람에서도 브롬이 필수원소라고 주장했다.
기저막(basement membranes)은 세포외기질(extracellular matrix)의 한 형태로, 상피조직의 세포 사이에 존재하며 구조를 유지하고 세포간 신호전달에 관여한다. 다세포생물이 진화할 때 식물세포는 세포벽을 만드는 쪽으로 진화하면서 마치 벽돌을 쌓듯이 세포들이 모여 하나의 개체를 이룬 반면, 움직여야 하는 동물은 세포가 말랑말랑하면서도 서로 연결돼 있어야 했기 때문에 세포외기질을 발달시켰다. 쉽게 말해서 우리 몸은 수십 조개의 액체 거품(속이 채워진)이고 거품 막이 세포외기질인 셈이다.
콜라겐은 3중나선 구조로 국수가닥을 연상하면 되는데, 따라서 이대로라면 기저막에 깔아도 튼튼하지 못하다. 따라서 콜라겐 사이에 화학결합이 일어나 서로 엮이면서 거대한 그물망이 형성되면서 세포외기질이 튼튼한 구조를 지니게 된다. 그런데 정작 기저막을 이루는 콜라겐 단백질 네트워크가 어떤 결합을 하고 있는지는 오랫동안 생화학자들을 괴롭히는 문제였다.
1988년 연구자들은 단백질에서 흔히 쓰이는 네트워크인 이황화결합(-S-S-, 아미노산 시스테인 사이에 일어나는)이 기저막 콜라겐 네트워크도 형성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후속 연구결과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구조가 워낙 복잡하고 불안정해 그 실체는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2009년 마침내 밴더발트데 연구자들이 그 실체를 밝혔다. 즉 아미노산 메티오닌과 아미노산 하이드록시라이신(라이신이 변형된 분자) 사이의 ‘설필리민(sulfilimine) 결합, -S=N-, 즉 메티오닌의 황(S)과 하이드록시라이신의 질소(N) 사이의 이중결합)’이라는, 생명체에서는 처음 발견된 화학결합을 통해서다.
그 뒤 연구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설필리민 결합이 만들어지는지 조사하다가 이 과정에서 브롬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즉 퍼옥시다신(peroxidasin)이라는 효소가 두 콜라겐 분자 말단의 메티오닌과 하이드록시라이신을 결합시키는 반응을 촉매하는데, 이 과정에서 브롬이온(Br-)이 필요함을 입증했다.
즉 브롬이 결핍된 먹이를 준 초파리는 설필리민 결합이 일어나지 않아 기저막의 콜라겐 네트워크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해 기저막이 변형되고 발생 과정에 문제가 생겨 죽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브롬을 보충해주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사실 브롬이 동물의 생존에 필요한 것 같다는 정황증거는 있었지만 ‘유독물질’이라는 선입관 때문에 이를 깊이 파고든 연구자가 없었던 것.
브롬 분자(Br2)는 상온에서 적갈색 액체이지만 끓는점이 낮아 쉽게 휘발한다. 브롬가스를 마시면 폐와 피부가 손상되고 저농도일지라도 장기적으로 노출되면 생식계에 문제가 생긴다고 알려져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그동안 설필리민 결합 반응에 브롬 외에 염소이온(Cl-)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브롬이 꼭 필요한 건 아니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번에 자세한 비교실험 결과 이 반응을 촉매하는데 브롬이 염소보다 5만 배 이상 효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염소의 경우 메티오닌에 하이드록시라이신보다 물분자가 반응하는 걸 오히려 더 촉진해 설필리민 결합 대신 엉뚱한 설폭사이드 결합(-S(=O)-)이 주로 일어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주기율표에서 브롬은 염소 바로 아래에 있지만(같은 할로겐족) 생체반응에서는 상당히 다르게 작용함을 보여주고 있다.
흥미롭게도 브롬이 필수원소라는 게 밝혀지자 그동안 원인이 애매했던 여러 질환이 브롬 결핍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예를 들어 하루에 한 갑 이상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혈중 티오시아네이트(SCN-) 농도가 올라가는데, 그 결과 브롬의 작용을 방해해 설필리민 결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다. 실제로 골초들은 기저막이 변형돼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또 신장질환으로 정기적으로 투석을 받는 경우도 브롬 결핍이 되기 쉽다. 참고로 브롬은 음식을 통해 섭취되고 신장에서 배출된다. 체내 브롬의 양은 3ppm 수준으로 평범한 식단으로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다.
미량만이 필요한 다른 원소들처럼 브롬 역시 과유불급이다. 필자는 20여 년 전 유기화학 실험을 할 때 브롬이 불임을 유발하는 기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상온에서는 브롬은 산소처럼 두 원자로 이뤄진 분자(Br2)로 존재하는데, 적갈색 액체이지만 끓는점이 58.8도이기 때문에 쉽게 휘발된다. 따라서 화학반응 중에 생긴 미량의 브롬 가스를 지속적으로 흡입할 경우(농도가 짙을 경우 오렌지색 증기에 염소가 연상되는(수영장 소독약) 냄새로 알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생식계가 서서히 손상될 수 있다. 물론 요즘 화학실험실은 환기시스템이 잘 돼 있어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