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부동(和而不同)
함석헌
가을 하늘 광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一片丹心)일세
씨알에게는 가을이 더욱 좋습니다.
논어에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요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란 말이 있습니다. 화(和)는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여 속으로 하나를 이루는 것이고 동(同)은 속은 서로 딴 것이면서 겉으로 부화뇌동(附和雷同)을 하는 것입니다. 화(和)는 서로 꼭 같기를 요구치 않고 각각제할 것을 하면서도 사심이 없이 서로 하나의 산 전체를 이룬 것이고, 동(同)은 속의 이기심은 여전히 있으면서 이익을 위해서 일치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 차이로 군자 소인의 다름이 환해집니다.
요새 남북회담이 활발히 돼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아무래도 금년 들어 세계적으로 내세울 일은 화해의 기운이 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새 시대를 향한 큰 걸음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요새 남과 북이 회담하는 모양을 보면 북은 남에 비해 너무도 폐쇄적인데다가 서로 자기의 우세한 것을 내세우며 대하려 힘쓰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그래서는 참 화해도 될 수 없고, 참 화해 없으면 통일도 있을 수 없습니다. 서로 결점을 가리우고 저쪽을 내 것으로 만들려 해서 된 결혼이 종당은 파탄이 나고야 마는 모양으로, 남북의 통일문제도 그렇습니다. 한때 부끄럽지만 도리어 서로 있는 대로 자기의 결점대로를 내놓고 말해서만 대화가 성립되고, 대화가 되어야 지난날의 잘못을 청산하고 기쁨으로 새로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새 역사는 나옵니다.
이기심을 버리고 민족 전체를 정말 살리자는 성의가 있으면 있는 대로를 내놓는 것이 조금도 약점이 될 것 없고 도리어 그것으로만 저쪽을 완전히 쓸어안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정말 큰 것입니다.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생존경쟁 철학, 부국강병주의 정치는 지나간 시대에 속합니다. 오는 역사는 화(和)의 역사입니다.
씨알의소리 1972년 9월 14호
저작집30; 8- 75
전집20; 8-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