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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일어나.
다시 승석은 파이팅 자세를 취한다.
승석: 지금처럼 그냥 달려들어서는 안돼. 펀치를 피하면서 가슴을 파고드는 거야.
가필도 다시 자세를 취한다.
승석: 자, 들어와. 내가 공포의 저편으로 데려다 줄게.
가필: 그래. 죽여라 죽여!
가필, 다시 돌진한다.
승석의 왼 주먹이 날아온다.
가필이 눈을 감는다. / C.U
하얀 불꽃이 터진다.
/ White Out.
EXT. 버스 정류장
가필이 지하철 게이트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간다.
버스 정류장에는 벌써 샐러리맨들이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가필, 정류장 15m 앞 즈음에서 걸음을 멈춘다.
샐러리맨들이 가필을 바라본다.
잠시 후, 버스가 도착한다.
버스 운전사가 가필을 발견하고 씨익 웃는다.
INT. 가필의 집. 주방
오른쪽 눈두덩이 시커멓게 멍이 든 채 식사를 하고 있는 가필
아내가 그런 가필을 바라본다.
가필: (겸연쩍게 웃으며) 지나가던 사람이랑 부딪혔어.
EXT. 어느 공터
공터 바닥에서 가필이 자빠져있고 그 위에서 승석이 유도의 조르기를 하고 있다.
승석에게 깔려 목이 조인 채 발버둥치는 가필. 그러나 벗어날 수 없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가필이 승석의 팔을 친다.
그제야 목에서 팔을 푸는 승석.
가필은 바닥에 꿇어앉아 숨을 들이쉬며 잦은 기침을 한다.
승석: 방금처럼 경동맥을 계속 압박하면 대체로 7초 후엔 정신을 잃어.
가필: 7초 이후엔 어떻게 돼?
가필의 질문에 승석 정색을 하며 가필을 바라본다.
승석: 뭣 땜에 싸워?
가필: 딸을 위해서…….
승석: 또?
가필: (잠시 머뭇거리며) …….
승석, 잠시 가필을 바라보다가
승석: 짱가는 태욱한테 폭력을 휘두르고 싶어 해. 폭력에는 정의도 없고 악도 없어.
폭력은 그냥 폭력일 뿐이야.
가필: …….!
승석: 중요한 걸 잊으면 안돼.
Jump Cut To:
공터 구석에 서 있는 나무에 방석이 노끈으로 묶여있다.
가필은 나무를 향해 돌진해 방석 부위를 어깨로 들이받으며 나무기둥을 붙들고 씨름을 한다.
몇 번씩 반복하는 동안 승석은 한쪽 켠에서 책을 보고 있다.
승석, 책을 덮고 가필에게 다가오며
승석: 자, 다시 공포의 세계로 들어갈 볼까?
죽을상이 되는 가필.
INT. 가필의 집. 주방
양쪽 눈두덩이 모두 시커멓게 멍이 든 채 식사를 하고 있는 가필
아내가 그런 가필을 바라본다.
가필: (어물쩡) 지나가던 사람이랑 부딪혔어. (씨익 웃으며) 다른.. 사람이랑…….
어이없어 하는 아내.
공사장
공사장 건물 3층에 승석이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 만든 난로에 장작불을 지피고 있다.
건물 아래에 가필이 늘어뜨려진 밧줄을 노려보고 서 있다.
주변에 많은 아이들과 노인들이 구경을 하고 있다.
승석이 불을 지피고 골조 기둥에 기대어 앉아 책을 펼친다.
가필, 심호흡을 하면서 밧줄을 잡으려 손을 뻗는다.
왠지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가필이 막 밧줄을 잡으려 할 때 3층에서 승석의 목소리가 들린다.
승석: 힘은 머리에서 태어나는 거야.
가필, 멈칫하고 승석을 올려다본다.
승석은 느긋한 자세로 책을 읽으며 덤덤히 가필에게 말한다.
승석: 머리로 안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힘은 죽어버려.
가필, 승석의 말을 듣고 밧줄을 노려본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한다.
잠시 후 눈을 부릅뜨고 다시 밧줄을 잡는다.
그리고 힘차게 밧줄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구경하는 사람들도 가필과 함께 용을 쓰며 구경한다.
가필은 정상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올라간다.
이제 거의 정상에 다다랐다.
가필은 기압을 넣으며 마지막 힘을 쏟아 붓는다.
눈앞에 승석의 모습이 보인다.
마침내 가필의 발이 3층 난간에 닿았다.
가필이 난간에 다리를 올리고 바둥거리며 밧줄에 매달려 있다.
이 때, 승석이 손을 내민다.
가필, 승석의 손을 잡고 무사히 3층에 올라선다.
정상에 서서 가필이 아래에 모여 있는 구경꾼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아이와 노인들이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쳐 준다.
Jump Cut To:
시간이 흘렀다.
장작불은 작은 불꽃을 내며 서서히 꺼져 가고 있다.
가필과 승석은 3층 난간에 걸터앉아 저물어가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다.
승석은 새 스니커즈를 신고 있다.
가필이 혼잣말처럼 이야기를 시작한다.
가필: 나는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왔어. 다른 사람에게 조금도 부끄럽지 않게…….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부끄러워.
우연한 기회에 자네들을 만나 그걸 깨닫게 되었어.
나는 고작 평범한 샐러리맨이고, 세상을 바꿀 힘은 없지만…….
그래도 난……. 강해지고 싶어…….!
가필, 승석을 힐금 바라보며
가필: 근데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왜 날 도와주겠다고 결정했어?
가필의 질문에 잠시 말이 없던 승석이 입을 연다.
승석: 나 흉터 말이야…….
침묵을 깨고 승석이 독백처럼 이야기를 시작한다.
승석: 십칠 대 일로 싸웠다는 거 거짓말이야.
가필, 말없이 승석의 말을 듣는다.
승석: 중학교 때 동네에서 싸움이 났어. 내가 살았던 동네는 후져서 그런 일이
허다해. 근데 그날은 좀 심했어.
술에 취한 아저씨가 칼을 들고 미친 듯이 휘둘러대는데……. 사람들은 아무도
말릴 엄두도 못 내고, 그래서 내가 끼어들었어. 그러다가 칼에 찔렸어.
승석, 잠시 이야기를 멈추었다가 다시 말한다.
승석: 날 찌른 아저씨의 눈은 시뻘갰어. 진짜 무서웠어…….
병원에서도 시뻘건 눈의 아저씨에게 찔리는 꿈을 매일 꿨어.
얼마나 무서웠던지 상처가 다 나은 후에도 난 병원에서 나오질 못했어.
아저씨 딸 처럼…….
가필, 놀란 표정으로 승석을 본다.
승석: 우리 아빤 내가 초등학교 때 이혼 하고 집을 나갔어.
가필: …….!
승석: 그 때 만큼은 아빠가 날 찾아 올 줄 알았어. 결국 오지 않았어…….
가필: …….
승석: 병원에 있는 동안 난.. 어떤 영웅이 나타나 날 병원에서 데리고 나가주길
원했어.
가필, 승석의 이야기를 들으며 멀리 석양을 바라본다.
승석, 잠시 이야기를 멈추다가
승석: …….빨리 강해져서……. 짱가가 날 지켜 줘…….!
가필, 승석의 고백에 놀라 승석을 바라본다.
승석, 멀리 시선을 두고 잠시 그렇게 앉아 있다가
승석: 아 씨……. 쪽 팔려. 오늘 밤 잠은 다 잤네.
가필, 승석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승석의 머리를 막 헝큰다.
두 사람의 모습이 마치 부자지간처럼 다정하게 느껴진다.
Jump Cut To:
불꽃은 거의 사라지고 빨갛게 남아있는 불씨가 남아있는 장작더미 위로 두 개의 가느다란
물줄기가 나와 불씨들을 끄고 있다.
커트되면, 가필과 승석이 나란히 서서 오줌을 갈기며 장작불을 끄고 있다.
EXT. 거리. 저녁
가필이 한껏 기분이 좋아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벼운 걸음으로 거리를 걷고 있다.
가필: Bravo, Bravo, 나의 인생아……. Bravo, Bravo……. 나의 인생아…….
문득, 가필이 걸음을 멈추고 어딘가에 시선이 고정된다.
멀리 노래방 간판이 그려져 있는 대형 고무기둥이 인도 한가운데 떡 버티고 서 있다.
가필, 고무기둥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 태클을 하며 쓰러뜨린다.
‘우당탕!’ 소리가 나고 고무기둥과 함께 길 위에 나뒹구는 가필.
가게에서 사람들이 뛰어나온다.
황급히 일어나 달아나는 가필.
Montage
다시 수첩의 빗금이 그어가고 가필의 실전 훈련 장면이 몽따쥬 편집되어 보여진다.
이젠 능숙하게 공을 피하지만, 실전 대결에는 번번이 승석의 펀치를 맞는다.
태욱 역시 체육관에서 맹렬히 훈련을 한다.
INT. 가필의 집. 거실. 저녁
늦은 밤. 불이 꺼진 거실에 혼자 앉아 가필이 TV를 보고 있다.
스포츠 전문 채널에서 뉴스를 하고 있다.
앵커: 전국고교 복싱대회에서 3연패를 달성한 선수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어 태욱의 경기장면과 함께 앵커의 목소리가 들린다.
앵커(V.O): 강태욱 선수는 결승전에서 제일고교의 박철민 선수를 맞이하여 2회에 KO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가필이 태욱의 경기 장면에 집중하면서 앵커의 목소리는 점점 사라지고 사운드는 마치 경기
현장음처럼 생생하게 들린다.
태욱의 소나기 펀치를 맞는 상대 선수의 모습이 화면에 클로즈 업 되어 느린 화면으로 보여 진다.
코와 눈가에 피가 흐르고, 마지막 펀치에 물고 있던 마우스피스마저 날아가고 상대 선수는
링 바닥에 고목처럼 쓰러지고 만다.
가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앵커: 강태욱 선수는 이번 대회를 끝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계획이라고 합니다.
놀란 표정의 가필.
EXT. 공터. 낮
가필과 승석 그리고 개중과 수빈이 공터에 모여있다.
수빈: 일주일 후에 떠난대요.
개중: 일주일? 그렇게 빨리?
수빈: 계획을 변경해야겠어요. 결전의 날을 다시 정해야 해요.
승석: 아직 준비가 안됐어.
한숨 소리와 함께 잠시 침묵이 흐르고
가필: 날짜를 잡아줘…….
아이들 모두 가필을 바라본다.
가필: 약속했잖아.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고……. 더 이상 후회하며 살아가고 싶지 않아.
공터에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수빈: 앞으로 5일 후에 환송회가 있데요……. 그 날 밖에 기회가 없어요.
잠시 생각에 잠기던 승석, 자리에서 일어나며,
승석: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가필: …….?
승석: 시간이 없어. 이제 슬슬 머리를 움직여 봐야지.
정말 강해지고 싶으면 불안을 물리치는 방법을 상상하고 배우는 거야.
그래서 오후는 자율학습!
가필, 긴장한다.
Jump Cut To:
가필, 마치 도를 닦는 사람처럼 벽면을 마주 보고 눈을 감은 채 참선 자세로 앉아 있다.
Cut To: (가필의 상상)
태욱의 펀치에 무방비로 두들겨 맞는 가필.
가필의 얼굴은 피범벅이 된 채 땅바닥 위에 쓰러진다.
쓰러진 가필을 내려다보며 기분 나쁘게 희죽 대며 웃는 태욱.
Cut To:
번쩍 눈을 뜨는 가필.
다시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눈을 감는 가필.
공터에 이는 먼지바람이 가필을 지나쳐 간다.
Montage
가필의 수첩에 다시 몇 개의 빗금이 그어지며, 가필의 훈련 모습이 보여진다.
가필은 ‘공포의 저편’ 프로그램에 여전히 승석의 잽을 피하지 못한다.
빨간 동그라미가 쳐진 날까지 2일 남았다.
EXT. 도심 거리. 밤
고층빌딩 숲 사이 어느 공터 가로등 불빛 아래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있다.
음악이 흐르고 개중이 아이들의 환호를 받으며 펍핀 댄스를 추고 있다.
아이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승석이 개중의 춤을 보고 있다.
잠시 후, 승석 앞으로 수빈이 다가온다.
수빈 옆에는 여중생 한 명이 서 있다.
승석: (여중생을 보며) 누구야?
EXT. 공터. 오후
가필이 흩어진 공을 줍고 있는데 개중이 가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개중(V.O): 아저씨!
수빈, 개중이 가필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가필: 이 시간에 쟤들이 웬일이야?
승석: 선물을 주겠데.
가필: 나한테? 무슨 선물?
가필 앞까지 온 2명이 가필의 앞에서 길을 터주면 2명 뒤에 여중생 한 명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다. 수빈과 함께 있던 여학생이다. 가필이 어리둥절해 한다.
수빈: 따님 친구에요. 이름은 진희. 그 때 노래방에 같이 있었어요.
가필: …….!
진희: 죄송해요…….
가필: 뭐가……. 죄송하다는 거지?
진희: 그날 다미가 아빠 생일 선물 사야한다고 해서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내가 다미한테 노래방에 가자고 했어요. 다미는 싫다고 했지만
내가 우겨 어쩔 수 없이…….
Flashback To:
INT. 노래방. / 모노톤 화면
진희가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잠시 후, 태욱을 필두로 태욱의 똘마니 용철과 상민 세 명의 남학생이 다미가 있는 방으로
들어온다.
진희(V.O): 삼십 분쯤 지났을 때 남학생들이 들어왔어요. 아마 다미가 화장실에
다녀올 때 찍었었나봐요. 모두 술에 취한 것 같았어요.
태욱은 소파에 앉아 있는 다미 옆에 앉고 나머지 두 명은 진희를 끌고 밖으로 나간다.
INT. 노래방 또 다른 룸. / 모노톤 화면
진희가 용철, 상민과 함께 다른 룸에 갇혀 있다.
상민이 히죽대며 진희를 노려본다.
진희(V.O): 구하러 가고 싶었지만 너무 무서워서 꼼짝도 할 수 없었어요.
Insert / 모노톤 화면
태욱이 다미 얼굴을 주먹으로 가차 없이 때린다.
다미, 피를 쏟으며 노래방 바닥에 쓰러진다.
쓰러진 다미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다시 얼굴을 때리는 태욱.
INT. 노래방 또 다른 룸. / 모노톤 화면
진희를 감시하던 용철이 핸드폰으로 어딘가에 서둘러 전화를 한다.
진희(V.O): 갇힌 지 5분 즈음 지나자 날 감시하던 두 명이 갑자기 당황하며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어요.
EXT. 공터
진희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거 같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다.
진희: 얼마 후 추리닝 차림의 남자와 다미를 때린 남학생이 함께 방으로 들어와
오늘 일을 발설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성형수술을 해도 절대 고칠 수 없을 만큼 뭉개버리겠다고……. 피 묻은 주먹을 내 얼굴에 갖다 대고…….
난 너무 무서웠어요. 정말 무서웠어요.
결국 진희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흘리고 만다.
진희: 정말 다미한테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가필, 울고 있는 진희를 가만히 바라본 후
가필: 너가 사과할 일이 아냐. 앞으로도 다미랑 사이좋게 지내주길 바래.
가필, 손수건을 꺼내어 진희에게 건네준다.
진희, 눈물을 닦고 가필에게 손수건을 돌려준다.
가필: 너가 다미한테 직접 돌려줬으면 좋겠다.
가필, 진희를 보고 빙긋 웃어 보인다.
승석: 내일 모래가 결전이니까 내일은 집에서 푹 쉬어.
가필: 나도 너희들한테 선물을 해 주고 싶은데?
아이들: ?
가필: 내일 시간들 비워나.
INT. 다미 병원. 저녁
가필이 다미 병실 앞에서 다시 기웃거린다.
문틈 사이로 다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가필, 병실 앞에서 돌아서면 가필 뒤에 다미가 서 있다.
당황하는 가필.
그런 가필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다미.
두 사람, 잠시동안 어색하게 말이 없다.
가필: 잘 있었어?
다미,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침묵.
가필: 아빠……. 진짜 담배 끊었다. 벌써 한 달이 지났어…….
가필,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다미, 여전히 말없이 가필만 바라본다.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가필: 아빠.. 갈게…….
가필이 천천히 돌아서서 몇 걸음 옮기자,
다미: 아빠…….!
가필, 걸음을 멈추고 다미를 향해 돌아선다.
다미,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하지만 말을 못한다.
가필: 다미야……. 미안하다…….
가필, 어색한 웃음을 다미에게 보인다.
다미의 눈에 눈물이 그렁 맺힌다.
다미: 아빠……. 가지마…….
가필: 다시 올게……. 아빠랑 같이 집에 가자.
가필, 다시 돌아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다미.
INT. 맥도널드. 저녁
맥도널드 가게에 수빈이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
잠시 후, 학생3, 4가 매장 안으로 들어온다.
학생3: 형 땜에 학원 못 갔잖아요.
수빈: 너희들 형 좀 도와줘야겠다.
EXT. 인천 송도유원지 입구. 오전
푸른 바다가 넓게 펼쳐진 인천 송도 유원지에 가필과 아이들이 들어온다.
아이들 모두는 신나서 날뛰는데 승석이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투덜거린다.
승석: 이 나이에 무슨 유원지야.
EXT. 놀이공원 롤러코스터 앞
가필이 탑승권을 사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다.
그런데 승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신이 나 벌써 탑승구에 올라갔는데 승석은 매표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가필의 일행을 노려보고 있다.
가필은 무언가 눈치 채고 승석에게 다가가 티켓을 흔들어 보이며,
가필: 공포의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승석이 살기어린 눈으로 가필을 노려본다.
가필, 롤로코스터 탑승권을 찢을 듯이 양손으로 잡는다.
가필: 아님 말구.
가필이 탑승권을 찢으려는 순간, 승석 탑승권을 낚아채고는 씩씩대며 탑승구를 향해 걸어간다.
EXT. 롤로코스터
가필과 승석이 나란히 맨 앞자리에 탔다.
롤러코스터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하자 승석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한다.
마침내 롤러코스터가 빠른 속도로 내려가고, 올라가고, 뒤틀리고..
그럴 때마다 가필과 아이들은 좋아서 함성을 지르고, 승석은 겁에 질린 얼굴로 눈을 감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
송도 바닷가
바다가 보이는 양지 바른 곳에 펭귄들처럼 나란히 앉아 있는 가필과 아이들.
바닷바람을 맞으며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지는 해는 서해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잠시 말없이 석양을 바라보다가 가필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가필: 다미는 함부로 낯선 남자를 따라갈 애가 아니야. 난 알고 있었어.
아이들은 석양을 바라보며 말없이 가필의 이야기를 듣는다.
가필: 난……. 너무 귀찮아서……. 안 보는 척, 못 들은 척하며 일상에 달라붙어 있으려고 했어. 그것뿐만 아냐.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느냐고 내 딸을 원망하기도 했어. 그런 날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어……..
외계인이 쳐들어 와도.., 달만한 행성이 떨어져 지구가 폭발 한다고 해도…….
그 애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는데……..
잠시 후, 승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바닷가 쪽으로 걸어간다.
바다로 이어지는 난간 거의 끝에까지 가서 걸음을 멈추고 창고에서 보여주었던 춤의 동작을
시작한다.
두 팔을 수평보다 약간 높게 들어 올려 일단 멈춘 다음, 약간 무릎을 굽히고 마치 날개짓이라도 하는 것처럼 두 팔을 바다를 향해 뿌린다. 힘찬 기운이 느껴지는 동작이다.
다시 날개를 어깨까지 들어 올린다음 발레 댄서처럼 한 바퀴 빙글 돌며 완벽한 원을 그린다.
승석의 날개가 그려놓은 원의 궤적이 사라지기도 전에 무릎을 펴고 가볍게 발끝으로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승석은 마치 지고 있는 붉은 태양을 향해 날아갈 듯 날개를 더욱 높이 들어 올린다.
수빈: 매의 춤이래요.
가필, 넋을 잃고 승석의 춤을 바라본다.
수빈: 몽골 씨름에서 승자만이 저 춤을 출 수 있데요.
진정한 승자는 매가 되어 하늘을 날아올라 한없는 자유로 날아간다는 게 승석의
십팔번 대사에요.
가필이 승석의 춤에 넋을 잃고 있자 개중 심술이 난 듯
개중: 저건 춤도 아니에요.
승석이 움직임을 멈추고 날개를 접듯이 천천히 팔을 내린다.
붉은 태양은 승석의 동작과 어우러져 더욱 붉게 이글거린다.
Insert
바닷가를 배경으로 가필과 아이들이 나란히 서서 기념 촬영을 한다.
EXT. 버스 정류장. 저녁
가필이 지하철 게이트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간다.
버스 정류장에는 벌써 샐러리맨들이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가필, 정류장 15m 앞 즈음에서 걸음을 멈춘다.
마른하늘에 ‘번쩍’하고 번개가 치고 이어 천둥소리가 들린다.
가필, 등에 멘 작은 배낭에서 운동화를 꺼내어 갈아 신는다.
샐러리맨들은 가필을 신경 쓰지 않는다.
잠시 후, 버스가 도착한다.
버스 문이 열리고 샐러리맨들은 버스에 올라타기 시작한다.
가필은 운동화 끈을 바짝 조여 맨다.
버스 운전사가 15m 전방에 서 있는 가필을 바라보고는 문을 닫는다.
가필은 배낭을 메고 숨을 크게 들이쉰다.
다시 한번 번개가 번쩍인다.
버스가 서서히 출발하면서 천천히 가필을 지나칠 때 ‘꽝!’하며 천둥소리가 울린다.
마치 천둥소리가 출발신호인양 가필도 힘차게 땅을 차고 달리기 시작한다.
가필의 속도가 빠르지만 버스는 얼마 가지 않아 가필을 따라잡는다.
버스가 두 번째 정거장에 섰을 때 가필이 버스를 따라 잡는다.
도로 가에 있는 가게 주인들이 달리는 가필에게 인사를 한다.
가필도 주인들에게 손을 들어보이고는 맹렬히 달린다.
다시 버스는 가필과 비슷하게 달리기 시작한다.
세 번째 정류장에 버스가 서자 가필은 버스를 제치고 다시 앞서기 시작한다.
그제야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들이 가필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버스는 다시 가필을 추격하기 시작한다.
가필의 앞에 횡단보도가 등장하고 횡단보도에는 빨간 불이 켜져 있다.
가필은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건넌다.
가필 때문에 급정거를 한 승용차 한 대가 경적을 울린다.
가필, 개의치 않고 맹렬히 달려간다.
뒤늦게 교차로에 도착한 버스도 신호에 걸린다.
버스도 신호를 무시하고 가필을 쫓아가기 시작한다.
멀리 노란 표시판이 있는 목표점이 보인다.
가필이 달리는 인도 위에 고등학생 네댓 명이 길을 막으며 걸어온다.
가필: 비켜!!!
가필의 고함 소리에 화들짝 놀라 길을 비키는 고등학생들.
가필: 땡큐!
노란 표지판은 가까이 다가오고 버스는 가필과의 거리를 점점 좁혀온다.
버스의 승객들도 이제 모두 창밖에 고개를 내밀고 달리는 가필을 바라본다.
15m, 10m,……. 승객들이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긴장하며 달리는 가필을 바라본다.
8m, 7m, 6m……. 버스는 거의 가필을 추월할 기세다.
4m,3m,2m,1m
가필: 골인!
골인 지점에서 Stop Motion이 되고, 마치 100m 육상 경기처럼 가필의 어깨가 노란색 표지판에 먼저 도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필이 숨을 헐떡이며 달리기를 멈춘다.
버스도 급정거를 하고 길에 멈춰 서 있다.
가필이 무릎에 손을 집고 헉헉대고 있을 때 버스는 천천히 후진하여 가필 옆에 선다.
가필은 영문을 몰라 바라보면 버스의 승차 도어가 열린다.
버스의 창문은 모두 열린 채 샐러리맨들이 가필을 존경스런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박수 소리가 들린다.
가필은 어찌할 바를 몰라 승차 도어 앞에 선다.
뚱뚱한 운전기사의 눈이 촉촉이 젖는다.
운전기사, 가필을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인다.
마침내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가필,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는다.
INT. 주방. 저녁
가필이 욕실에서 나와 식탁 쪽으로 걸어간다.
식탁 위에는 두툼한 살집의 비프스테이크가 놓여있다.
아내는 돌아선 채 요리에만 열중하고 있다.
가필이 아내를 돌아보며
가필: 알고 있었어?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는 스프를 들고 와 식탁위에 놓고는 다시 싱크대 쪽으로 간다.
아내: 스프는 금방 에너지로 바뀐대.
아내는 여전히 뒤돌아선 채 이야기를 한다.
아내: 스포츠 선수는 시합 전날에는 고기를 먹는대. 그래야 혈기가 왕성해진데.
가필: 그래…….?
가필이 말없이 나이프로 고기를 자르기 시작한다.
아내가 설거지를 하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아내: 한 달 반전에 남학생 한 명이 집에 찾아왔어.
그리고 식단표를 주면서.. 이대로 당신에게 해 주라고…….
가필은 아내의 말을 들으며 묵묵히 식사를 계속 한다.
아내: 같은 날 다미 병실에도 남학생 한 명이 찾아와 병실 벽에 커다란 하얀 종이를 붙이고, 거기다 당신의 체중과 체지방률 같은 걸 적어 넣었어. 그 후로 매일
당신의 신체 변화를 적었어.
가필이 식사를 멈추고 싱크대 쪽 아내를 바라본다.
갑자기 아내가 휙 돌아서더니 별안간 들고 있던 행주를 가필을 향해 던진다.
가필은 반사적으로 얼굴을 살짝 돌려 행주를 피한다.
아내는 가필의 빠른 동작에 놀란다.
아내: 17년을 같이 살았는데 내가 눈치 못 챌 줄 알았어?
토요일도 나가고, 일요일도 나가고, 점점 살도 빠지고, 가슴에 근육도 생기고, 눈에 멍도 들고…….
아내가 싱크대 위에 놓여있던 주걱을 던진다.
가필이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맞는다.
아내는 그런 가필을 바라보고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더니 앞치마를 획 벗어 던지고 주방을 나가 버린다.
가필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바닥에 떨어진 주걱을 주워 식탁 위에 올려놓고 다시 식사를 계속
한다.
INT. 다미의 병실. 복도. 저녁
다미의 병실 앞에 개중이 서 있다.
머뭇거리다가 노크를 하고 병실 안으로 들어간다.
INT. 다미의 병실. 저녁
개중이 다미의 병실에 들어가 다미에게 쑥스러워하며 인사를 한다.
카메라, 개중에게서 다미가 있는 병실 쪽을 비추면,
지금까지 승석이 가필의 달리는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인화되어 병실 한 쪽 벽면에 빼곡히
붙여져 있다.
그리고 반대편 벽면에는 커다란 종이에 가필의 체중과 체지방율 등이 기록된 도표가 붙여져 있다.
개중이 다미에게 사진 한 장을 내민다.
유원지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다.
다미: 고마워요.
개중, 무언가 할말이 있는 듯 쭈빗거리고 서 있다.
개중: 저어……. 내일 말이에요. 아저씨가 이기면 내가 제일 먼저 알려 드릴게요.
다미, 개중을 보고 방긋 웃으며
다미: 네…….
다미와 개중, 웃음을 주고받는다.
개중: 그럼……. 안녕히 계세요.
개중이 인사를 꾸벅하고 황급히 돌아나가다가 닫힌 문에 ‘꽝’하고 부딪힌다.
EXT. 병원 옥상. 밤
병원 옥상에 승석과 수빈, 개중이 나란히 서서 난간에 팔꿈치를 대고 서울 도심의 야경을 바라
보고 있다.
수빈: 왜 하필 여기냐?
개중: (어물쩡) 우리 아빠 땜에 꼼짝도 못해.
승석: 준비는 다 됐냐?
수빈: 대충…….
개중: 잘 될까?
수빈: 그냥 박치기 해 보는 거지 뭐.
개중은 담배 한가치를 피워 입에 물고 나머지 두 명은 말없이 서울 야경을 바라보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 타워 팰리스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수빈: 나 나중에 저기서 살거다.
개중: 돈 많이 벌어야 겠다.
수빈: 돈 벌어서 언제 저기 사냐?
개중: 그럼?
수빈: 간단해. 저기 사는 여자 꼬시면 되지.
개중: 정말 간단하네……. (승석에게) 졸업하면 뭐 할거냐?
승석: 뭐 할진 몰라도 갈 곳은 확실히 있다.
개중: 어디?
승석, 책갈피로 가지고 다니던 그림엽서 한 장을 보여준다.
승석: 졸업하면 나 찾지 마라.
개중: 여기가 어딘데?
승석: 몰라. 지구 어딘가엔 있겠지.
수빈: 넌 정말……. 절망적이야.
개중: 사돈 남말 하시네요.
다시 잠시 말없이 서울 야경을 보는 세 사람.
수빈: 이번 일만 잘 되면 세상에 진짜 뻐큐 한번 날리는거다.
수빈: 뻐큐!!
개중: 뻐큐!!
다시 말이 없는 세 사람.
개중: 이번 방학은 너무 금방 갔다.
다시 말없이 야경을 바라보는 세 사람.
INT. 가필의 집. 거실. 밤
유리창에 빗물이 흘러내린다.
불이 꺼진 거실에 가필이 헤드폰을 끼고 TV 앞에 앉아 VTR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잠시 화면이 지지직거리다가 TV에는 갓 돌이 넘어 보이는 여자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어린 시절 다미다. 어린 다미의 귀여운 모습이 영상에 담겨져 있다.
영상을 보면서 빙긋이 웃음 짓는 가필.
이 때 누군가 가필을 뒤에서 살포시 끌어안는다. 가필의 아내이다.
가필의 아내는 가필의 등에 얼굴을 대고 가만히 있다.
TV화면에는 어린 시절 다미가 방긋 웃고 있다.
화면 위로 빗물 소리만 들린다.
EXT. 호수공원 광장. 아침
비가 그친 이른 아침 호수 공원.
이른 시간이라 광장에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뚱뚱한 버스 기사가 여전히 벤치에 앉아 있다.
그러나 이번엔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고 있다.
운전기사, 조심스럽게 벤치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떼어 본다.
그러나 몇 걸음 가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진다.
다시 일어나 몇 걸음 걷다가 또 넘어지는 운전기사.
INT. 가필의 침실. 아침
침실 창문에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개: (표정이 심상치 않다) 지랄하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