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트와 행커치프는 반 하트 옴므(Van Hart Homme). 셔츠는 빈폴(Bean Pole). 보타이는 타임 옴므(Time Homme).
서태훈 | 사는 게 재밌다 하루하루 즐거웁다
“만약 태훈이가 고문을 당할 일이 생긴다면 고문하는 사람이 짜증낼 거예요. 애가 하도 밝아서! 듣기 좋은 말도 얼마나 잘한다고요.” 김기리가 말한다. 서태훈은 “피노키오도 아닌데 선의의 거짓말은 할 수도 있죠”라고 받아친다. 악의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까만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감기에 걸려 목이 아프다면서도 시종일관 조리 있게 말을 잇던 서태훈은 오늘도 즐겁다. 그리고 종종 진지하다.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몇 번이나 읽었다고 하던데,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어요?
어릴 때부터 외국 여행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TV에서 하는 여행 프로그램이나 <탈무드>에 나오는 랍비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사막이나 인도네시아의 시장 풍경을 상상했어요. 이 책은 류시화 시인의 인도 여행기잖아요. 다른 여행 서적들이 정보나 경험담 위주인 것에 비해 서정적인 면이 좋았어요. 수필은 읽다 보면 ‘그렇구나’ 하고 끝인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은 감성적인 표현 때문인지 여운이 남아서 계속 읽게 되더라고요. 수채화 같은 책이에요.
‘리얼리T’와 ‘불편한 진실’에서는 진지한 정극 연기를 많이 보여줬는데 실제 성격은 어때요?
낙천적이에요. 가끔 부당한 일을 당할 때에도 ‘에이 뭐’ 이러고 넘어가는 일이 많아서 옆에서 보는 사람이 저 대신 화를 낼 정도예요. 그런데 사실 고민한다고 바뀌는 게 아니잖아요? ‘에이 뭐 어때’ 하고 넘어가는 거죠. 재건축이 빠르다고 해야 하나? 겉으론 멀쩡해 보이는데 속으로 삭이고, 그런 것도 없어요.
부러운 성격인데요? 주변에 사람들도 많겠어요.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편이에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좀 섭섭해하기도 해요. 난 너랑 되게 친한 줄 알았는데 넌 다른 사람들하고도 다 친하더라면서요. 다행히 <개그 콘서트(이하 <개콘>)> 선배들이 예뻐하고 술자리에도 많이 불러줘요. 피곤하거나 안 좋은 일이 있어도 티를 안 내서 그런가 봐요.
여자 친구한테도 잘해줄 것 같아요.
김기리 선배는 한번 사귀면 오래 사귀는 타입인데 저는 그렇지는 않아요. 하지만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오랜 시간 동안 지켜보는 편이에요. 이 사람이 지금 내게 보여주는 모습이 진짜 모습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 때까지요. 그래서 여자친구도 성격이 밝으면 좋겠어요. 우울한 사람은 별로예요.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 웃찾사)>에서 특채로 데뷔했다가 작년에 <개콘> 가족이 됐어요. 신인치고는 단독 프로그램을 빨리 시작한 편인데 어떤 개그를 하고 싶나요?
깔끔하게 웃기는 걸 좋아해요. 비방용 개그나 성인용 개그는 사석에서 하는 걸로 충분한것 같아요. 섬세한 연기도 좋아해서 드라마나 영화 연기를 재현하는 ‘리얼리T’를 하는 게 즐거웠어요. 지금은 황현희 선배랑 ‘불편한 진실’을 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죠. 어떤 개그를 했을 때 내가 더 많은 쾌감과 희열을 느낄 수 있는지 알게 됐다고나 할까요? 사람들이 개그맨을 자기보다 낮게 보고,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웃잖아요. 그런데 황현희 선배의 코너는 ‘아 그래, 우리가 사실 저렇지’ 하고 오히려 보는 사람들을 깨닫게 하는 면이 있어요. 웃기면서 박수까지 받는 거죠.
사람들이 개그맨을 ‘낮게 본다’고 말했는데 그런 시선을 자주 마주치나요?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워낙 오래된 인식이라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개그맨들만 노력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요. <개콘>만 잘되면 되는 게 아니에요. 지금은 <코미디 빅리그>도 있고 <개그 투나잇>도 있잖아요. 개그 판이 계속 힘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진지하네요. 덜 알려진 당신의 모습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새벽 1~2시쯤 잠자기 전에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사람 없는 길을 걷는 걸 좋아해요. 홍대에 사는데 광화문, 경복궁을 지나 대학로까지 가면 두 시간 정도 걸리거든요. 그러고서는 택시 타고 돌아와서 잠자리에 들어요. 걸을 때는 아무 생각을 안 하게 되니까 기분이 좋아져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그러는 것 같아요.
- 슈트는 트루젠(Trugen). 셔츠는 더 셔츠 스튜디오(The Shirts Studio). 넥타이는 니나리치 맨(Nina Ricci Man). 시계는 벨앤로스(Bell&Ross).
장유환 | 천천히 걷는 남자
캔 뚜껑 하나 따주고서 “오빠야”라며 생색 내는 ‘그 말만은’의 소심남은, 진짜 장유환이 아니다. 차라리 그는 “네, 저는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수천억원의 흥행 수익을 올린 영화 제작자입니다”라고 또박또박 말하는 ‘더 레드’의 번듯한 엄친아에 가깝다.
<개그 투나잇>을 방청하러 간 적이 있어요. 당신이 나올 때마다 여자들의 함성이 커지더라고요. 원래 인기가 많은가요?
주변에 여자친구들은 많은 편이에요. 얼마 전에는 제일 친한 여자친구의 결혼식 사회를 보기도 했죠.
친하게 지내는 여자가 많으면 여자친구가 질투하지 않나요?
제가 오해를 일으킬 만한 행동을 하지는 않으니까 그 문제로 다툰적은 없어요. 예전에는 여자친구한테 어떻게 해줘야 되는지를 잘 몰랐던 것 같기는 해요. 스무 살 때 처음 연애를 했는데 아무래도 여자는 남자친구한테 의존하는 게 있잖아요. 그래서 생기는 문제가 무조건 여자친구 잘못이라고 생각했어요. 두 명, 세 명 같은 문제로 다투다가 알게 됐죠. 제가 잘못한 것을요.
학교 다닐 때는 어땠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수업시간에 반 아이들이 졸면 선생님이 제게 애들 잠 좀 깨도록 웃겨보라고 할 정도였어요.
홍익대 국제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면 ‘4년제 대학’이라는 사회적 조건을 충족한 셈이잖아요. 개그맨이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군대에 있을 때 매일 일기를 썼는데 그때 생각했어요. 네가 만난 사람 중에 너보다 재미있는 사람 있어? 없어. 그럼 나 같은 사람들이 개그맨을 하는 거겠지? 오케이, 하자. 이거였어요.
자신감 넘치는데요? 학교 다니면서 <웃찾사>에 계속 출연했던거예요?
2007년에 SBS 공채 9기로 개그맨 데뷔를 했어요. 프로그램 하면서도 학교 다니고, 교수님들께서 많이 눈감아주셨죠. 자신만만한 것처럼 말했지만 막상 처음 대학로 무대에 섰을 때 기본적인 발성이나 연기가 하나도 안돼서 좌절했어요. 노력해야겠다 싶어서 그때부터는 정말 열심히 했죠.
<개그 투나잇>이 작년 11월에 시작했잖아요. ‘그 말만은’과 ‘더 레드’가 지금까지도 간판 코너 역할을 하고 있는데 기분이 어때요?
<개그 투나잇>을 준비하는 동안 핸드폰 대기 화면에 ‘시작할 때 코너 두 개!’라고 적어놨었어요. 그 목표를 일단 달성했다는 게 제일 행복했죠. 앞으로의 목표도 이뤄나가는 힘이 생겼어요.
‘더 레드’의 홍현희도 ‘그 말만은’의 홍윤화도 코믹한 역할이잖아요. 똑같이 망가진다고 해도 개그우먼과 개그맨을 보는 사회의 시선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함께 코너를 하는 동료로서 어때요?
현희를 보면서 가끔 ‘지금 저 표정은 너무 심한 거 아니야?’하고 깜짝 놀랄 때가 있긴 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객석 반응을 보면 이해가 가요. 사람들이 웃거든요. 가장 중요한 건 그거잖아요. 망가지는 것을 본인이 불편해하지 않는데 주변에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두 권의 책을 가지고 왔어요.
<생각의 좌표>와 <몰입>, 이 두 권 모두 작년에 읽은 책이에요. <생각의 좌표>는 그동안 제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주입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죠. 개그맨은 생각하는 직업이잖아요. 항상 아이디어를 구체화해야 하고요. <몰입>은 바로 그 생각을 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책이에요.
당신이 하고 싶은 개그는 어떤 거예요?
여러 가지 다 해보고 싶어요. 캐릭터 개그, 공감 개그,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가는 개그 등 전부요. 코너 하나를 잘해서 반짝 스타가 되었다가 다음 코너를 준비하지 못하고 잊혀지는 개그맨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그 말은 어떤 개그든 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처럼 들리기도 해요.
개그맨에게 코너는 중요한 재산이에요. 그러다 보니 코너를 하나 맡으면 일희일비하게 되는 면도 있어요. 하나를 해서 잘되면 ‘계속 이런 식으로 갈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죠. 하지만 코너는 길어야 수명이 1년인데 제 스스로 제약을 둘 필요는 없는것 같아요. 저를 믿어야죠.
‘재미있는데 잘생겼다’는 말, 들어봤어요?
“너는 잘생겼는데 웃기기까지 해서 좋아”라고, 정확히 들었어요.
- 슈트는 반 하트 옴므. 셔츠와 안경은 에르메네질도 제냐 (Ermenegildo Zenga). 시계는 폴 스미스 바이 갤러리 어클락(Paul Smith by Gallery O’clock). 넥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용진 | 이 남자, 수상하다
‘예삐공주’ 분장을 지운 이용진은 라이트급 복서 같다. 가벼운 몸 놀림으로, 별 거 아니란 듯이 센 주먹을 날린다. 최고의 유행어인 ‘조으다, 시르다’의 주인공이면서도 개그보다 여행에 대해 더 많이 말하고, 언젠가는 개그를 그만둘 수도 있다고 하는 그의 말에 레프트 잽, 라이트 잽, 계속 두드려 맞다 보면 알게 된다. 지금 링 한복판에 서있는 이 남자가 얼마나 매력적인 변칙복서인지를.
<코미디 빅리그2>에서 라이또가 1위를 했는데 소감이 어때요?
시큰둥해요. 소나기랑 비슷한 것 같아요. 어차피 하나가 끝나면 또다시 시작해야 되는 거니까요. 비가 오면, 또 맑은 날이 오는 것처럼요.
‘시르다’, ‘조으다’가 이렇게 유행어가 되었는데도 시큰둥하다니 놀라운데요?
부담스러워요. 정작 전 다른 프로그램에 나가서도 그 말을 잘 안 하거든요. 유행어인 것 같긴 한데 사실 예삐공주로 여장하는 자체가 어색했거든요. ‘오빠 노스페이스 잠바 사주세효’ 같은 대사를 하게 될 줄 몰랐어요.
그래도 굉장히 여유로워 보여요.
속은 썩어 있어요. 여행을 병적으로 좋아하거든요. 원래 <웃찾사> 때부터 녹화 하나 끝나면 몇달은 여행을 갔다 왔어요. 그렇게 정리가 되어야만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는데 지금 계속 못 떠나고 있으니까 갑갑해요.
아예 개그를 그만두고 프랑스에서 여행 가이드를 하려고 한 적도 있다면서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좋아해요. 군대 가기 전에 파리에서 한 달 반 정도 살았는데 혼자 머물기에 참 좋은 도시더라고요. 서른까지는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하면서 살고 싶어요.
여행을 좋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어요?
맨 뒷자리에 앉아 딴짓을 하고 있었어요.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는데 문득 앞을 보니 아이들 고개가 선생님을 따라서 똑같이 움직이는 거예요. ‘어뭐지? 왜 다들 똑같지? 난 저 속에 들어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더라고요. 원래 공부도 잘 못했지만 그때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계속 생각하게 됐죠. 그러다가 여행에 빠졌어요.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일 때문에 멀리 가시게 됐는데 차를 놓고 가셨어요. 면허는 없었지만 운전하는 법은 대충 알아서 어느날 한번 타본다는 게 목포까지 갔어요. 며칠을 그렇게 혼자 다니다 깨달은 거예요. 여행이 재미있다는 것을요.
18살에 <웃찾사> 무대에 섰죠?
‘옷 잘 입고 키 크니까 모델을 해볼까?’ 하는 것처럼 웃긴다는 소리를 계속 듣다 보니 막연하게 ‘개그맨이 되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찾사>에서 ‘웅이 아버지’를 함께 했던 진호와 중학교 선후배 사이인데 그 친구와 함께 오디션을 보다가 <웃찾사> 무대에도 서게 됐죠.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선택한 게 의외네요. 확고한 주관을 가진 당신에게도 이 책이 필요해요?
이 책을 읽으며 제가 알고 있는 걸 다시 확인한다는 기분이었어요. 원래 책을 좋아해요. 하루키 책은 너무 많이 읽어서 하루키 형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예요. 외수 형도 좋고. 보통 형 책도 좋아요. 이 책은 군대에 있을 때 읽었어요. 군대에 있으면서 처음에는 세상과 고립되어 있다고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 책에서 ‘바닥은 생각보다 깊지 않다’는 문장을 읽고 나니 이곳을 바닥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다른 걸 할 수도 있는 시간인데, 싶더라고요. 그래서 기타와 피아노를 배웠어요. 덕분에 지금 <비틀즈 코드2>에서 건반을 치는 역할도 하게 됐죠.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을 것 같긴 한데, 여행과 개그 중에서 어떤게 더 소중해요?
지금처럼 이 둘의 균형을 유지하고 싶어요. 하지만 어디로 얼마나 떠나든 간에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것 같긴해요. 이 바닥은 굉장히 치열하지만 한편으로는 관대해요. 제가 하는 개그가 재미있으면 결국에는 써주죠. 이번에도 오랫동안 여행을 다녀왔지만 저를 받아줬고, 다음에도 받아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안 받아준다면요?
다른 걸 해야겠죠.
센데요?
개그맨은 무조건 깡다구가 있어야 돼요. 가진 게 없으면 배짱 장사라도 해야죠. 그게 없으면 무대에서 져요. ‘내가 어떻게 하는지 봤어? 그래, 그럼 보여줄게.’ 이런 식으로요.
- 셔츠와 팬츠는 에르메네질도 제냐. 슈즈는 니나리치 맨. 시계는 구찌 워치(Gucci Watch).
김성원 | 열심히 하겠습니다!
“Mark, Shut Up!”은 ‘마셔라!’가, “Sam, You are Good”은 ‘삼육구’가 됐다. ‘LA 쓰리랑’으로 얼굴을 알리고 ‘굿모닝 한글’의 페르난도로 자리매김한 김성원은 <개콘>에서 영어 개그를 구사하는 거의 유일한 존재다.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서 스무 살이 되던해, 멕시코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영어는 기본, 스페인어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남자지만 그가 정작 인터뷰 내내 가장 자주 한 말은 다름아닌 이거였다. “뭐든지 다, 열심히 해보고 싶어요.”
10살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멕시코에 살았다면서요?
멕시코 제 2의 도시라고 불리는 과달라하라(Guadalajara)에 있었죠. 3년만 더 살면 영주권이 나오는데 한국에서 코미디 연기를 하고 싶기도 했고, 한국에서 대학도 가고 군대도 갔다 오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혼자 한국으로 왔어요.
멕시코와 한국은 문화가 많이 다르잖아요. 오랜만에 한국에 왔을 때,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아요.
오해를 많이 받았죠. 같은 과 여자애들이랑 밥 먹을 때 테이블에서 의자를 빼주는 일이 제게는 자연스러운 거였거든요. 그런데 한국의 스무 살짜리 남자애들은 아무도 그렇게 안 하잖아요.
멕시코에도 <개콘> 같은 프로그램이 있어요?
개그 자체가 완전히 달라요. 멕시코는 <래리 킹 라이브 쇼>처럼 게스트를 초청하는 1인 토크쇼 위주거든요. 그래서 <개콘> 코너의 장단점을 흡수해서 멕시코에서 해보고 싶기도 해요.
생각해둔 소재가 있나요?
혈액형으로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 적은 있어요. 멕시코 사람들은 자기 혈액형도 제대로 모르거든요. 오랜만에 현지 친구들을 만났을 때 장난처럼 ‘너 이렇게 하는 거 보니까 O형 같은데?’ 하고 혈액형 놀이를 했는데 다들 ‘나 진짜 그래!’ 이러면서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서로 다른 문화를 겪어봤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개그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점도 있죠.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분명히 장점이에요. 하지만 10대 시절을 한국에서 보내지 못해 놓친 경험이 아쉽죠.
롤모델이 있어요?
짐 캐리요. 멕시코는 할리우드 문화가 거의 그대로 유입되는 곳이어서 멕시코에 간 뒤 영화를 굉장히 많이 봤어요. 그때 짐 캐리의 영화를 처음 보게 됐죠. 정말 표정 연기의 신인 것 같아요. <이터널 선샤인>에서 보여준 감성적인 면도 좋았어요. 저렇게 잘생겼는데, 어떻게 저런 연기를 할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제 개그맨으로 데뷔한 지 3년째인데 여전히 행복한가요?
처음에 어마어마하게 행복했다면 행복지수가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 같긴 해요. 경쟁이 워낙 치열하니까요. <개콘>은 정말 진검 승부예요. 무대에 올리기 전에 감독, 작가, 개그맨 다 같이 모여 코너를 테스트하는데, 만약에 재미가 없다면 선배도 소용없어요. 방송통신위원회의 기준을 생각하면서 코너를 짜야 하니까 더 스트레스를 받는 면도 있고요.
한국에서 개그맨으로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요?
인맥이요. 나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팀원들과 친해야 확실히 아이디어도 잘 나오거든요. 외국에서 살다 와서 그런지 ‘옹달샘’처럼 서로 오래 알고 지낸 선배들을 보면 부러워요.
개그맨은 머리를 많이 쓰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본인이 지적이라고 생각하나요?
부모님은 늘 “책 좀 많이 읽으라”라고 말씀하세요. 그런데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흐름이나 이슈를 읽지 못하고서 사람들을 웃길 수는 없잖아요.
<스티브 잡스 전기>를 고른 이유는 뭐예요?
아이폰, 아이패드는 굉장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죠. 그걸 만든 사람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이 출간되자마자 바로 샀어요. 지금 70%정도 읽었는데, 스티브 잡스는 인생이 굴곡이 있었잖아요. 어릴때는 아버지한테 버림받기도 하고, 독단적인 성격 때문에 자신이 차린 회사에서 쫓겨나기도 하고요. 뭔가를 극복하고 결과를 일궈낸 사람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지금 하고 있는 ‘이기적인 특허소’의 파인애플 사 때문에 선택한건 아니고요?
그 이유도 있어요. 어떻게 알았어요?
- 슈트는 버버리(Burberry). 셔츠는 니나리치 맨. 서스펜더는 커스텀멜로우 (Customellow), 시계는 루이 에라드(Louis Erard). 헌팅캡과 타이, 행커치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기리 | 만화 같은 남자
‘불편한 진실’에서 황현희의 약점을 폭로하고 ‘생활의 발견’에서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가게 직원으로 등장하는 김기리가 순정 만화의 주인공이 된다면? 여주인공을 힘들게 하는 남주인공 옆에서 그녀를 우직하게 지켜보는 친구 역할일 것 같다. 스스로 ‘미남은 절대 아니고 훈남’이라고 말하는 김기리는 아꼈다가 하는 말이 갖는 무게의 힘을 아는 남자다. 물론 늘 무거운 말만 던지는 건 아니다.
당신이 선배인데 서태훈과 콤비 느낌이에요. 그런 이미지가 불편하지는 않아요?
태훈이와 느낌이 잘 맞나보다, 그렇게 생각해요. ‘불편한 진실’과 ‘리얼리T’를 함께 했을 뿐인데 감독님도 자연스럽게 ‘너네 둘이 또 뭐 해봐’ 이런 얘기를 하시거든요.
의상을 준비하는데 둘의 키, 옷, 신발 사이즈가 다 같아서 놀랐어요. 성격도 비슷해요?
성격은 많이 다른데 그게 오히려 균형이 맞는 것 같기도 해요. 태훈이가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뱉는 스타일이라면 저는 그중에 몇 개를 걸러서 이야기를 하고 함께 살을 붙여나가죠.
<개콘>의 ‘훈남 콤비’로 불리잖아요. 외모를 가꾸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는 게 있어요?
둘이서 단독으로 ‘리얼리T’를 할 때 3일만에 3kg를 뺐어요. 스스로 잘생겼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이미지가 어떤 건지를 아니까 멋지게 보이고 싶었어요.
훈남이라는 이미지가, 개그맨에게는 단점이 되기도 하나요?
처음 대학로 극장에 섰을 때는 외모 때문에 많이 낙담했어요. 무대에 올라가기만 해도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개그맨들이 있는데 이렇게 출발선부터 달라서 어떻게 하나, 망연자실했죠. 하지만 개그에는 다양한 역할이 있잖아요. 뚱뚱하면 뚱뚱한 대로, 마르면 마른 대로 그 특징을 살릴 수 있는 개그에 집착하기 마련인데 외모에 별다른 특징이 없다는 건 역할을 제한 없이 소화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연기 연습도 열심히 했어요.
어떤 개그맨이 되고 싶어요?
김준호, 박성호 선배처럼 오래도록 자신이 좋아하는 개그를 할 수 있는 개그맨이 되고 싶어요. 스스로 재미있어서 하는 개그는 보는 사람도 알거든요. 김준호 선배는 코너 중간에 본인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거릴 때가 있는데 그게 지금 민망하다는 신호 같은 거예요. 그런데 그런 것조차 재미있고 보기 좋죠.
‘불편한 진실’과 ‘생활의 발견’에 꾸준히 출연하고 있는데 준비하고 있는 다른 코너가 있나요?
약간 ‘또라이’ 같은 걸 하고 싶어요. 지금 <개콘>은 개그가 너무 다양해서 완전히 새로운 걸 자꾸 하려다 보니까 더 찾기 어려운 것 같기도 해요. 사람들은 <개콘>의 개그가 착하다고 하지만 사실 연령대에 따라서 좋아하는 개그가 조금씩 다르거든요.
굉장히 유쾌한 책을 선택했어요.
오쿠다 히데오 책은 다 재미있지만 <남쪽으로 튀어!>는 정말 술술 읽었어요. 주인공 마음에 먹구름이 끼었다는 표현을 읽으면, 그런 기분을 느꼈던 때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만화책을 워낙 좋아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만화책 읽다가 스르르 잠들 때일 정도인데 이 책은 소설인데도 만화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어떤 만화를 좋아해요?
이동하는 틈틈이 웹툰을 보는데 <신과 함께>를 재미있게 봤어요. 소년 만화는 다 좋아하고, <기생수>는 정말 좋아하는 만화예요. 태훈이도 만화를 좋아하거든요. ‘리얼리T’ 할 때 <원피스>를 가지고 개그를 짜려고 했어요. ‘사람이 언제 죽는지 아나?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 속에서 잊혀질 때다!’같은 가슴 짠해지는 명대사가 많잖아요.
두 사람이 한 여자를 두고 싸울 일은 없을까요?
좋아하는 스타일이 달라서요. 전 교양 있고 기품 있는 스타일을 좋아하고, 태훈이는 음…. 예쁜 여자를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