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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삼국유사><동국통감><규원사화><열하일기><아방강역고><대동수경><환단고기/단군세기.북부여기><대한강역고/백산정계비고>
등에 근거하면 서기전 2333 년 단군 왕검께서 개국한 조선과 서기전 1100 여년 즈음 조선에서 정통이 넘어간 단군 부여 그리고 단군 부여의
제후국이였을 준왕의 조선 및 삼국 이후의 통일신라와 대조영의 진국 및 고려.후조선의 강역은 아래 추정도와 같았습니다.
추정도1 - 우리 민족의 역대 국가 중심지 및 강역
참고 고지도1 - 1750 년 제도 <인도.중국지도>에 표시된 후조선 강역
CARTE DES INDES
ET DE LA CHINE Netherland, Guillaume, Delisle,
1750, 62.7×60.9㎝, 출처- 동북아재단 독도연구소 기욤 드릴(Guillaume Delisle, 1675?
1726)은 18세기 프랑스 최고의 지도 제작 가문을 형성하였다.
그의 아버지인 클로드 드릴(Claude Delisle)은 법학과 지리학 그리고
역사학에 정통한 지도 제작자였다. 기욤 드릴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지도수업을 받았으며, 1718년 최초의 왕실지리학자가 되었다. 그가
그린「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 지도」는 최초의 세부적인 미국 내륙 지도로 알려져 있다. 기욤 드릴은 프랑스 지형도 제작의 태두인 장 도미니크
카시니(Jean-Dominique Cassini)로부터 수학과 천문학을 배운 지도 투영법에 정통한 지도학자였다. 그는 프랑스 과학원의 측량자료를
그 자신이 개발한 투영법을 사용하여 지도화 했는데, 특히 측량 자료가 없는 곳의 지도를 자신의 투영법을 이용하여
보간(interpolation)하였다. 기욤 드릴은 또한 지명 표기를 정확하게 표기한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일찍이 아메리카 대륙 특히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주를 대상으로 영국과 지도 분쟁을 벌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지명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이 지도는 원래 1705년 프랑스에서 동일한
명칭으로 간행된 것을 1750년 네덜란드에서 재 간행한 것이다. 지도의 내용은 1705년 지도와 완전히 동일하다. 이 지도에서는 동해 해역을
‘동양해 또는 한국해(MER DE ORIENTALE OU MER DE COREE)’로 표기하였다. 그는 그의 초기 지도에서 동해 명칭을 동양해와
한국해로 병기하였다. 이전의 지도에서는 동해 해역을 동양해라고만 표시했으며, 이후 지도에서는 한국해로만 표시했다.
위 참고고지도에 보이는 후조선의 북쪽 경계선이 보이나요?
어쨋든 위 추정도1에서와 같이 우리 민족의 역대 국가 중심지 및 강역을 추정하는 근거는 중국의 한 시기 유주 이동 지역에 관한 서국의 25
개 정사 및 정사급 지리지 기록이며 그 기록에 의하면 한 시기부터 청 시기까지의 동북쪽 지명은 아래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추정도2 - 산해관.조양.심양.길림 등의 원래 위치와 왜종이 조작.이동한 위치
(적색 지명- 기원전 202 년~ 1911 년까지, 흑색 지명- 1934 년 만주국지도
이후부터)
결국 서기전 206 년 한 개국시기부터 1911 년 청이 멸망하는 시기까지 약 2100 여년 동안 요동은 지금의 란하 중류 지역인 지금의
승덕과 그 남쪽에 위치한 지금의 반가구수고 지역이였습니다.
추정도3 - <한서> <후한서> <청사고> 지리지에 기록.설명된 유주 소속 우북평군 내 경수.백랑수 및
요동군 내 대요수.
염난수와 낙랑군 내 패수.열수 위치
추정도3-1

즉 추정도2에서와 같이 1911 년 청국이 멸망할 당시 봉천성 치소가 있던 성경 심양은 청국 정사인 <청사고/지리지>에 의하면
경사 곧 지금의 북경에서부터 동북쪽으로 1470 리 떨어져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곳은 현대지도에 표시된 지금의 심양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가장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문헌에 기록된 거리 1470 리가 너무 짧습니다.
지금의 심양까지는 대략 7000 여리 안팎은 되야 할 것입니다.
1470 리에 해당하는 거리는 위 추정도2에 적색으로 표시한 심양 위치입니다.
또 적색으로 표시한 심양 위치는 한 시기에 요동군 내의 북쪽 지점이거나과 현토군의 남쪽 지점이였을 것인데 <후한서/군국지>
요동.현토군의 주석에는 낙양으로부터 동북쪽으로 3600 리, 4000 리 떨어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며 임유관 곧 명.청
시기의 산해관이 축성된 요서군까지를 3200 리라 설명되어 있으니 불과 400~800 리 더 동북쪽에 설치된 요동.현토군이 한국사학계의 통설과
같이 현재의 요동이나 현재의 압록강 지역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신채호가 <조선상고사>에서 `고대의 요수는 란하` `패수는 해성의 헌우록`이라 별 논증도 없이 단정.교시한 바와
같이
<한서/지리지> 요동군 망평현에 주석된 1250 리 길이의 대요수는 낙양으로부터 동북쪽으로 3600 리 떨어지고 대요수뿐만
아니고 현토군을 경유해 흘러오는 2100 리 길이의 염난수까지도 상정해야 하는 지역 곧 지금의 란하 유역을 흘렀다고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단군 왕검께서 개국한 조선부터 고려가 멸망하는 1392 년까지 약 3700 여년 간 우리 민족의 중심 영역은 대요수의 동쪽 지역인
지금의 대릉하 남북 지역이였습니다. 1392 년 태조 이성계가 후조선을 개국한 이후 그 중심지가 대한반도 중앙인 지금의 서울로 옮겨졌지만
평양.평안도.압록강.백두산 등 후조선의 서북강역은 고려 시기의 중심지였던 지금의 대릉하 부근이였습니다.
이처럼 1911 년까지도 청국의 정사 지리지에 지금의 란하가 요하였다고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34 년 왜종섬아이들이 만주국지도를
만들면서 지도를 조작하여 요하를 지금의 란하 위치에서 지금의 요하 위치로 옮겼던 것입니다. 당시 이러한 조작.이동 상황을 신채호가 정확하게
간파하고 <조선상고사>에서 `고대의 요수는 란하` 또 `패수는 해성의 헌우록`이라 명확하게 설명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지리와 지형지세를 11 세기 경 서토인들이 비교적 정확하게 제도한 지도가 아래 <지리도>입니다.
고지도2 - 서토 송.요 시기 제도된 <지리도> 상단 우측 부분에 표시된 소요수(대요수 지류) 위치와 신라.고려 서쪽
경계
주) 황색 화살표 실선은 원.명.청 시기 압록강을 건너 요택.산해관을 지나 연경, 지금의 북경까지의 사행로임
따라서 서토인들이 세계 4 대 문명지 중 하나인 황하문명지를 헌신짝처럼 버리며 비파형동검이 주로 출토되는 백산문명 곧 저들 서토인들이
이름한 요하문명지는 황제 헌원의 문명이 아니라 단군 왕검과 그 선조들의 문명인 것입니다.
추정도4 - 백산문명 발굴지와 출토물 현황
주) 대릉하.삼차하.갈석산 위치는 서기전 202 년부터 서기 1911 년까지 약 2100 여년 동안
변동없었슴.
1. 소하서문화 - 기원전 7000~6500 년 신석기 문화, 1987 년 적봉시
오한기 소하서에서 발굴.
2004 년 적봉에서 열린 `제1
회
홍산문화국제학술연토회`에서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유국상
발표. 황하 유역의 앙소문화나
장
강의
하모도문화 보다 2000 년 이상 앞섬. 동북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흙으로 빚은 인면상 출토됨.
2. 흥륭와문화 - 기원전 6200~기원전 5200 년 신석기 문화, 1982 년 적봉시
오한기 보국토향
흥륭하촌. 세계 최고의
옥玉
귀걸이, 중국
국경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신석기 집단 주거지와 해자 및
최초의 용 형상물인
猪首龍,
중국 중원지역에서는 발굴되지
않는 빗살무늬토기 발견.
3. 사해문화 - 기원전 5600~ 신석기 문화, 1982 년 부신에서 발굴. 석소룡과
부조 용문양의 도기 파편 발굴, 흥륭와문화
가
발굴되기 전까지는 세계
제1의 옥이 발견되었고 세계
제1의 촌村이였슴.
4. 부하문화 - 기원전 5200~5000 년 신석기 문화, 적봉 북쪽 통료시
파림좌기 호얼토향
부하구문에서
가장 오래된
복골
卜骨
발굴.
5. 조보구문화 - 기원전 5000~4400 년 신석기 문화, 적봉시
오한기 고가와포향
조보구촌에서 발굴.
최초의 봉황 모양의
토기, 방
유적지, 불탄 흔적인 회갱, 최초로 그림이 그려진 채도
발굴.
6. 홍산문화 - 기원전 4500~3000 년 동석병용기 문화(2006 년 유국상),
적봉.조양.능원.건창.건평 등.
1906 년
왜 조거용
장이 적봉
객라심(?)왕부에 방문 적석총 발견, 1935 년 일본 빈전경작이
학술단을 끌고와
31 곳의 무덤을
발굴하여
인골 29 구, 동물뼈 20 점, 청동기 14 점,
도기 16 점, 옥구슬
380 개, 골기 33 점 등
채집품
1000
여 점을
반출해 갔슴. 1943 년 발견된 건평.능원 사이 우하량유적은 기원전 3500 년
경 `초급문명 사회`로
진입되었다고
하였고 1983~1985 년 대대적으로 발굴, 기원전 3500
년까지 올라가는 대형제단.여신묘.적
석총군 발굴.
1979 년 건창(객좌)현 동산취촌에서도
대형 제단 유적
발견,
7. 소하연문화 - 기원전 3000~2000 년 동석병용기 문화,
갑골문 이전의 원시 상형문자인 도부.도문.도부문자 발굴
8. 하가점상층문화 - 기원전 2000~1500 년 청동기시대 문화,
조양시 부근
위영자에서비파형동검
발굴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 우실하 지음. 2007 소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