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는 복음의 핵심
교황 프란치스코의 권고 <복음의 기쁨> 34-39항 번역문
III. 복음의 핵심에서부터 34. 우리가 모든 것을 선교에 맞춘다면, 그것은 메시지를 소통하는 방법에도 영향을 줄 것입니다. 인스턴트 커뮤니케이션과 때때로 편견을 갖는 미디어 보도를 볼 수 있는 오늘날, 우리가 전파하는 메시지는 왜곡되거나 부수적 측면에 환원될 위험이 아주 큽니다. 그런 식으로 교회의 도덕적 가르침이 본래적 의미가 담긴 맥락에서 벗어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전파하는 메시지가 부수적인 것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이 부수적인 것은 그리스도의 메시지 핵심을 담고 있지도, 전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우리는 현실적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청중이 우리가 말하는 것의 배경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간주해서는 안 됩니다. 혹은, 복음의 핵심은 우리가 말하는 것에 의미, 아름다움, 매력을 부여하는데, 청중이 우리가 말하는 것을 그 복음의 핵심과 연결시킬 수 있다고 간주해서는 안 됩니다.
35. 선교 스타일에서 사목 직무는 수많은 교의를 집요하게 토막 내서 전달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누구도 배제하거나 제외하지 않고 모든 이에게 실질적으로 다가갈 선교 스타일과 사목 목표를 채택한다면, 메시지는 본질적인 것에 집중해야만 합니다. 메시지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웅장하며, 가장 매력 있으며, 동시에 가장 필요한 것에 집중해야만 합니다. 메시지는 알기 쉬워야 합니다. 메시지는 그 깊이와 진리를 놓치지 않으면서, 무엇보다도 강력하고 설득력이 있어야 합니다.
36. 계시된 모든 진리들은 같은 거룩한 원천에서 나오며, 같은 신앙심으로 믿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진리들 가운데 어떤 것은 복음의 핵심을 직접 표현하는데 좀 더 중요합니다. 그 가운데 가장 빛나는 것은 돌아가시고, 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히 드러난 하느님이 구원하시는 사랑의 아름다움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 교리의 여러 진리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와 이루는 관계는 서로 다르므로, 진리의 서열, 또는 ‘위계’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교회의 도덕적 가르침을 포함한 교회의 모든 가르침에 대해서, 그리고 신앙의 도그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37.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교회의 도덕적 가르침은 덕목들 사이에, 그리고 그 덕에서 나오는 행동들 사이에 그 나름의 ‘위계’가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디아 5,6)입니다. 이웃을 향한 사랑의 행동들은 성령의 내적 은총을 가장 완벽하게 겉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새 법(the New Law)의 기초는 성령의 은총 안에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에서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토마스는 그래서 외적 행동과 관련해서, 덕목 가운데 ‘자비’야말로 가장 위대한 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자비는 그 자체로 덕목 가운데 가장 위대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덕들은 자비를 중심으로 움직이며, 무엇보다도 그 덕들의 부족함을 메워주기 때문입니다. 그 자비를 통해 그분의 전능하심이 가장 위대하게 드러납니다.”
38. 공의회의 가르침에서 사목적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의회의 가르침은 교회의 오랜 신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첫째, 복음을 가르칠 때 균형감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이는 어떤 주제를 빈번하게 다루는지, 가르침에서 그 주제를 얼마나 강조하는 지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례주년에서 어떤 본당 사제가 절제를 열 번 말하지만, 사랑이나 정의를 두세 번만 말한다면 불균형이 나타나고, 엄밀하게는 복음을 가르치거나 교리를 가르칠 때 가장 많이 제시되어야 할 그런 덕(사랑과 정의)을 간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총보다는 법에 대해서, 그리스도보다는 교회에 대해서, 하느님의 말씀보다는 교황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할 때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39. 덕목 사이에는 유기적 일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적 이상에서 그 어떤 덕도 제외될 수 없음과 같이 어떤 진리라도 부정되어서는 안 됩니다. 복음 메시지가 갖는 통합성은 해체되어서는 안 됩니다. 게다가 각 진리는 그리스도교 메시지가 갖는 조화로운 전체성에 결합됐을 때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모든 진리들은 중요하며 서로를 밝게 비춰줍니다.
가르침이 복음에 충실할 때, 특정 진리들이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분명해집니다. 또 이 때 그리스도교 도덕이 단순히 스토아 철학의 한 형태도, 자기 부정도, 단순한 실천 철학도, 혹은 죄와 거짓의 목록도 아님이 분명해집니다. 그 모든 것 이전에, 복음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사랑의 하느님께 응답하도록, 다른 사람에게서 하느님을 보라고, 다른 사람의 선익을 찾아 길을 나서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 초대를 모호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모든 덕들은 사랑의 이 응답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 초대가 강하게 그리고 매력적으로 빛나지 않으면, 교회의 가르침의 체계는 사상누각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는 가장 큰 위기입니다. 이는 가르치는 것이 자칫 복음이 아니라 특정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교의적 관점 혹은 도덕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메시지는 그 신선함을 잃을 위험이 있을 것이며, “복음의 향기”가 더 이상 나지 않을 것입니다.
번역: 박동호 신부
서울대교구 신정동 성당,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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