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푸른 잠 / 문은성
모든 슬픈 저녁마다 나는 늙은 사냥개를 불러들이지 목줄을 채우지
않은 나의 개는 빈 들판을 가로질러 와 아프지 않은 나의 상처를 핥는다
죽은 것들이 곁에 있다 죽은 것들만이 오히려 미풍을 느끼는 저녁이다
훈련은 새벽까지 계속된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빈숲을 가로질
러・・・・・ 결국 아무것도 거머쥐지 못한 사냥개의 이빨이 나의 곁으로
되돌아와 나의 살점을 깨문다 독한 침을 질질 흘리는 개의 아가리를 벌리며
나는 사라지지 않는 육식의 습성을 확인하지만
훈련은 그대로 종료될 뿐이다 사냥에 실패한 아가리가 닫히고 개는
깊은 잠에 빠진다 깊은 잠이 그를 살아남게 할 것이다 잠이 비로소 그를
완성하는 것이다 이토록 기나긴 새벽을 위해
사냥한 적 없는데 우리 곁에 죽은 것들이 너무 많다 모두 한 번도
사냥당하지 않은 것들인데
나의 늙은 개는 그것들 사이에서 잠들어 간다
새벽이 깊어갈수록 나무들은 머리를 풀어 헤치고
숲은 잠든 것들을 마구 소화시키기 시작한다
숲의 빈 내장 속 허기가 우리 몸을 핥아 내린다
한 바퀴 돌고 두 바퀴 돌고・・・・・・ 수백 번을 돌아서 아무것도 물어뜯지
못하는 것이 개의 훈련이다 아무것도 잡아먹지 못하면서 그저 새벽의
숲이 만들어내는 소용돌이 속으로 돌고돌아 사라져가는 것이
개가 익혀야 할 기술이다
개의 실력은 날로 늘어가면서
개는 정말 사라져간다
이미 죽어버린 것들 사이에서
그 역시 하나의
정지한 사물로서
나는 그의 털을 쓰다듬는다
깊은 겨울의 호흡 속으로 빨려가면서
그는 지금 단 하나의 정확한 목적을 수행하고 있다
세상 모든 새벽이 아침으로 돌아온다
검은 숲의 머리가 잠든 것들을 내려다본다
2022년 9월호 현대시 신인추천작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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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지/공모전 당선 詩 소개
검푸른 잠 / 문은성. *2022년 9월호 현대시 신인추천작품상
시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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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6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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