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보암과 선지자 아히야의 등장
(열왕기상 11장 19-29절)
19-20.하닷이 바로의 눈 앞에 크게 은총을 얻었으므로 바로가 자기의 처제 곧 왕비 다브네스의 아우를 그의 아내로 삼으매 다브네스의 아우가 그로 말미암아 아들 그누밧을 낳았더니 다브네스가 그 아이를 바로의 궁중에서 젖을 떼게 하매 그누밧이 바로의 궁에서 바로의 아들 가운데 있었더라
“하닷이 바로의 눈 앞에 크게 은총(헨)을 얻었으므로”
헨은 호의, 친절이란 뜻으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게된 호의적 감정을 말한다. 하닷이 바로의 보호를 받게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하나님께선 솔로몬을 징계하는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혀여 하닷을 보호해 주셨던 것이다.
“다브네스가 그 아이를 바로의 궁중에서 젖을 떼게 하매”
이는 하닷의 아들 그누밧이 다브네스의 양자로 입양되었음을 의미한다. 젖을 떼는 것은 그 아이는 완전한 생명체로 간주되었다. 그리하여 이 때에는 고유한 종교 의식과 더불어 큰 잔치가 베풀어지는 것이다.
21-22.하닷이 애굽에 있어서 다윗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잔 것과 군대 지휘관 요압이 죽은 것을 듣고 바로에게 아뢰되 나를 보내어 내 고국으로 가게 하옵소서 바로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있어 무슨 부족함이 있기에 네 고국으로 가기를 구하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그러나 아무쪼록 나를 보내옵소서 하였더라
다윗과 요압이 에돔인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공포의 대상이었는지를 잘나타내 준다. 즉 다윗과 요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하닷은 귀국할 엄두를 내고있는 것이다.
다윗이 죽은 해는 B.C. 970년경이며 요압 또한 같은 해에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하닷의 독립 투쟁은 B.C. 940년경으로 추론된다. 따라서 하닷은 에돔으로 돌아간 이래 근 30년 간에 걸쳐 설욕전을 위한 준비를 다졌던 것이다.
애굽이 제공하는 모든 특권과 안락함으로도 붙잡을 수 없으리만치 하닷의 복수심이 깊음을 보여 준다. 이토록 강렬한 하닷의 복수심은 솔로몬의 통치에 얼마만큼 우환이 되었을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하닷이 에돔으로 돌아와 솔로몬의 적수가 된 것이다.
23-25.하나님이 또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자가 되게 하시니 그는 그의 주인 소바 왕 하닷에셀에게서 도망한 자라 다윗이 소바 사람을 죽일 때에 르손이 사람들을 자기에게 모으고 그 무리의 괴수가 되어 다메섹으로 가서 살다가 거기서 왕이 되었더라 솔로몬의 일평생에 하닷이 끼친 환난 외에 르손이 수리아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미워하였더라
“하나님이 또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자가 되게 하시니”
르손은 족장이라는 뜻이다. 그는 소바 왕 하닷에셀의 신하였다. 소바 는 아람족에 속한 한 나라로서 레바논과 안티레바논 사이에 위치하였다. 아람인들은 강력한 통일 왕국을 형성했던 적이 없으며 시리아와 북부 팔레스틴 지방에 여러 개의 조그마한 도시 국가를 이루었다. 그런데, 소바는 사울 왕 시대부터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었다. 다윗은 아람 소바, 아람 나하라임, 벧르홉 등의 아람 왕국들과 싸운 바 있다. 한편 이러한 아람의 여러 소왕국들 중 가장 큰세력으로 성장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도시는 다메섹이다.
“다윗이 소바 사람을 죽일 때에 르손이 사람들을 자기에게 모으고 그 무리의 괴수가 되어 다메섹으로 가서 살다가 거기서 왕이 되었더라”
소바 왕 하닷에셀이 세력을 회복하려고 유프라테스 강으로 진군하는 것을 다윗이 기습하여 대패시켰다. 이후 다윗은 하닷에셀을 도우러 온 아람의 연합군도 패퇴시킴으로써 아람을 속국으로 만들었다.
다윗이 하닷에셀과 아람 연합군을 격파할 때에 르손은 하닷에샐을 버리고 도망하였다. 그리고 불한당과 산적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세력을 키웠다. 그런뒤 솔로몬의 통치 기간 중 다메섹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배력이 약화되자 르손은 이를 점령하였다. 그리하여 다메섹은 르손의 세력을 중심으로 다시 결집된 아람 국가의 중심지가 되었던 것이다.
“솔로몬의 일평생에 하닷이 끼친 환난 외에 르손이 수리아(아람)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미워하였더라”
하닷이 솔로몬에게 반기를 든 이래(B.C. 940년경) 하닷은 솔로몬이 죽을 때까지 솔로몬의 근심거리로 작용하였다. 하닷은 애굽에서 귀국한 후 일종의 게릴라 전투틀 통해 독립을 꿰하였다. 따라서 쉽사리 진압되지 않는 하닷의 활동은 솔로몬에게 눈의 가시와도 같았을 것이다.
수리아는 히브리어 성경에는 아람으로 되어 있다. 아람인들은 대대로 통일국가를 형성한 적이 없고, 대신 필요에 따라 동맹을 맺고 연합군을 형성하곤 하였다. 이 중 수리아라고 번역된 아람은 아람 소왕국들과 구별되는 다메섹의 아람 왕국이다.
26-29.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또한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였으니 그는 에브라임 족속인 스레다 사람이요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스루아이니 과부더라 그가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는 까닭은 이러하니라 솔로몬이 밀로를 건축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읍이 무너진 것을 수축하였는데 이 사람 여로보암은 큰 용사라 솔로몬이 이 청년의 부지런함을 보고 세워 요셉 족속의 일을 감독하게 하였더니 그 즈음에 여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나갈 때에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가 길에서 그를 만나니 아히야가 새 의복을 입었고 그 두 사람만 들에 있었더라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또한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였으니”
이스라엘 남북 분열에 있어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 인물인 여로보암아다. 그는 북쪽 10지파와 더불어 반란을 일으켰는데, 그 같은 반란은 속국들의 독립 운동이었던 하닷과 르손의 반역과는 달리 혁명적 성격을 띠었으므로 이스라엘 왕국에 더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여로보암이 끼친 종교적 해악은 상당히 큰데, 그는 우상 숭배에 관한 한 대표적 인물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북왕국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순례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금송아지 숭배를 부활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에브라임 족속인 스레다 사람이요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스루아이니 과부더라”
에브라임 족속은 이스라엘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에서 유다 지파와 경쟁 관계에 있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장막 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에브라임은 서편 진지의 주도 세력이었다. 또한 가나안 정복 전쟁의 영웅 여호수아도 이 에브라임 지파 출신이었다. 그 뿐 아니라 왕정 시대에 들어와 예루살렘이 종교적 수도가 되기 이전에는 에브라임 영토의 실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 중심지였던 사실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남북 왕국의 분열 이면에는 그러한 반목을 낳을 만한 뿌리깊은 경쟁 관계가 일찍부터 자리잡고 있었다. 때문에 솔로몬 사후 에브라임과 유다의 반목은 강렬하게 표면화되었으며 대다수의 지파들은 여로보암을 후원하였던 것이다.
“그가 손을 들어(룸 야드) 왕을 대적하는 까닭은 이러하니라”
룸 야드는 말은 복종하기를 거부하다는 뜻이다. 룸은 교만하다, 높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솔로몬이 밀로를 건축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읍이 무너진 것을 수축하였는데 이 사람 여로보암은 큰 용사라(깁보르 하일)”
솔로몬은 유다 지파의 성읍이라 할 수 있는 다윗 성의 보수 공사를 유다 지파가 아닌 에브라임 지파에게 떠맡겼다. 에브라임 지파로서는 이에 불만이 가지게 된 것이다.
깁보르 하일은 강한 힘을 가진 전사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상류 계급의 남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상류계급의 남자는 그 공동체 내에서 군사 행동의 의무와 책임을 가지게 된다. 여로보암은 에브라임 지파 내에서 그러하였던 것이다.
“솔로몬이 이 청년의 부지런함을 보고 세워 요셉 족속의 일을 감독하게 하였더니”
요셉 족속은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를 의미한다. 즉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요셉의 두 아들이다. 그래서 요셉 족속이라고 할 때는 에브라임과 므낫세 두 지파 중 어느 하나를 말하거나 아니면 모두를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이 두 지파는 븍쪽의 가장 강한 지파들이기 때문에 요셉 족속은 곧 북왕국 전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예루살렘에서 일하게 된 요셉 족속의 부역 총 책임자로 임명한 것이다.
“여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나갈 때에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가 길에서 그를 만나니 아히야가 새 의복을 입었고 그 두 사람만 들에 있었더라”
아히야는 에브라임 지파의 성읍인 실로의 제사장 가문의 예언자이다. 아히야는 솔로몬의 우상 숭배를 여호와 신앙에 위배된 상황으로 보고 이를 타개하고 싶었다. 선지자 아히야는 나단 선지자 이후로 부터 솔로몬과 르호보암 시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사자로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아히야가 새 의복을 입었다는 사실은 통일 이스라엘 왕국이 아직 신생 제국에 불과한 시점에서 남북으로 분단되고 말 것임을 상징한 표현인 것이다. 여호와 신앙이 배척된 상황에서는 다윗의 노력과 솔로몬의 다방면의 치적 등도 이렇듯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는 물거품에 불과하다 하겠다.
(요약 정리)
열왕기상 11장 19~29절은 솔로몬의 우상숭배로 인한 왕국의 분열과, 이를 심판하시면서도 다윗을 향한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준다.
솔로몬이 이방 여인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섬기던 우상을 받아들이자, 하나님은 에돔의 하닷과 아람의 르손 등을 일으켜 솔로몬을 대적하게 하셨다. 주변 국가의 위협과 정치적 불안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 내리시는 영적인 징계(사탄의 가시)였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범죄로 인해 나라를 빼앗고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시지만,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솔로몬 당대에는 나라를 찢지 않으시고 한 지파(유다)를 남겨두신다. 하나님과 맺으신 영원한 언약(다윗의 언약)에 기초한 구속의 은혜를 상징한다.
하나님은 언약 백성을 영원히 지키시지만, 잘못된 행동으로 나가면 분명히 사탄의 가시를 동원한다는 사실이다. 사도바울도 사탄의 가시를 세번이나 떠나가게 간구했지만, 하나님은 들어주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사탄의 가시를 사람마다 그 역할에 대비하여 보내주신다. 크게는 나라의 운명을, 적게는 인간관계를 통해서, 또는 개인의 질병이나 삶의 고통을 통해서 내리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회개의 길을 주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