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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어수선하다.
대통령의 국정농단 때문이다.
언론은 말한다. 대통령은 공조직을 팽개쳐두고 사인(私人)과 한통속이 되어 정부 조직을 사유화하고, 사면권을 악용해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아내는 등 국정을 농단하고 헌정을 문란하게 했다, 라고. 결국 국가를 사당화했고 헌법정신을 위배했다는 것이다. 헌법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자격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대세다. 전 국민의 심정을 대변한 것이다. 정말이지 나라가 멈춰 서고 있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한다. 대통령은 거부하고 있다. 대통령 1인과 5천만 국민의 대치 정국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1인이 중요한가 5천만이 중요한가! 답은 명확하다.
국제 정세도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미국은 새 정부가 들어선다. 주변 경쟁국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일본 아베는 일착으로 트럼프를 만나고 왔다. 중국의 시진핑은 철옹성을 구축할 태세다. 우리만 퇴보하고 있다. 역으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모든 언론이 연일 성토한다.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도 잇따르고 있다. 학생들까지 나섰다. 직장인, 어린아이들까지 대동한 주부, 중고생들까지 전 국민이 들고 일어섰다. 광화문 광장엔 100만 명이 모였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이다. 국민의 이름으로 대통령 하야를 명령한 것이다.
급기야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오늘 최순실·안종범·정호성씨를 구속 기소하면서 대통령이 상당 부분 이들과 공모 관계에 있다고 밝혔다.
지금 중요한 역사적인 순간이 흐르고 있다.
훗날,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2016년 가을날 광화문의 함성을.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내 나라가 위태로울 때에, 내 주변사가 어지러울 때에 나는 이렇게 행동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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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백두대간 30, 31구간을 연속해서 넘었다. 30, 31구간은 댓재에서 백복령까지이다. 이 구간을 대간 종주자들은 마의 구간으로 여긴다. 하루에 넘기에는 벅찬 거리이기 때문이다.
이 구간을 넘으려는 단독 종주자들은 많은 고민을 하였을 것이다. 댓재에서 백복령까지를 1구간으로 끊을 것인지, 아니면 2구간으로 끊을지를 놓고서다. 29킬로미터가 넘는 긴 거리이기 때문이다. 본인은 고민 끝에 2구간으로 끊기로 했다(댓재에서 이기령, 이기령에서 백복령). 야간산행이 두렵고, 14시간이 넘는 장거리를 하루에 걷기가 힘들어서다. 결과는 만족이었다.
백두대간 30구간은 댓재에서 이기령까지이다. 댓재는 삼척시 하장면과 미로면을 잇는 잿등이고, 이기령은 동해시와 정선을 잇는 잿등이다. 이 구간에는 햇댓등, 934봉, 1028봉, 1021봉, 목통령, 1243봉, 두타산, 박달령, 문바위, 청옥산, 연칠성령, 망군대, 고적대, 사원터, 갈미봉, 1143봉, 898 등의 높고 낮은 산과 잿등 그리고 무수한 무명봉이 있다.
이 구간도 무난하게 마칠 수 있는 그런 구간이다. 이정표가 잘 되어 있고, 헷갈릴만한 갈림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 구간에 있는 두타산과 청옥산은 많은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명산이고, 고적대를 지나면서부터 나타나는 암벽 비경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수려하여 한 시도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이다.
다만 한 가지 맘에 걸리는 것은, 구간의 종점인 이기령에서의 야영 문제이다. 이기령은 옹달샘도 있어서 야영지로는 적격이나, 주변에 무속인들이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낯선 설치물들이 현란하게 널려 있어, 이것들과 함께 밤을 보내야하고, 또 민가와는 6킬로미터 이상 격리된 깊은 산골이라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취약지역이라는 것이다.
하루 전날 출발하여 동해역 역사 안에서 아침 첫 버스시간까지 대기하고 있다가, 동해역앞 버스정류장에서 6시 15분에 출발한 삼척행 버스로 삼척까지 이동한 후, 삼척버스터미널에서 7시 30분에 출발하는 하장행 버스를 타고 댓재까지 이동한 후, 30구간 종주를 시작하였다.
오고가는 교통편은 산행기록 맨 뒤에, 또 산행기록 중간 중간에 자세하게 부기하였음을 알려드리며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후기를 올린다.
백두대간 제30구간(2016.11.13, 일. 흐림)
댓재에서(08:07)
하루 전날인 11.12(토) 밤, 청량리역에서 밤 11시25분에 출발한 정동진행 기차는 다음날 새벽 04:05분에 동해역에 도착.
날씨는 포근하다. 동해역 역사 대기실에서 시내버스 출발시각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역사 대기실은 깨끗하고 조용하다.
6시쯤에 동해역을 빠져 나선다. 삼척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은 역 앞 50미터 지점에 있다(CU 편의점 맞은편). 06:15분에 출발한 버스는 06:35분에 삼척버스터미널에 도착.
이곳에서 오늘 종주의 들머리인 댓재로 들어가는 버스는 7시 30분에 있다. 1시간 정도의 빈 시간을 이용해 아침식사를 하기로 한다. 종주 때 아침 식사는 특히 중히 여긴다. 그날의 에너지를 채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당 음식이 형편이 없어 기분이 잡친다. 콩나물국 한 가지가 먹을 수 있는 반찬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자던 생각은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이곳에서 7시 30분에 출발한 하장행 버스는 꾸불꾸불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 08:07분에 댓재에 도착한다. 버스 안에 있던 몇 명의 등산객 중 이곳 댓재에서는 나와 함께 부부 등산객 두 분이 더 내린다. 두 분은 나와는 반대방향으로 올라간다. 아마도 함백산 등산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이곳 댓재는 내게 좋은 추억을 남긴 곳이다. 지난번 29구간 종주를 마치고 이곳에서 삼척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때 나를 삼척까지 자기 차로 태워다 준 청년이 있었다. 날은 무척이나 춥고 어둠까지 덮쳐 초조할 때였다. 그날 이후, 삼척이라는 도시와 그 청년의 모습은 내내 나의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날씨는 포근하지만 몹시 흐리다. 일기예보와는 차이가 난다. 조금은 염려가 된다.
버스 안에서 미리 등산 채비를 갖춘 덕에 바로 출발할 수가 있다. 댓재 휴게소를 비롯 댓재의 아침 풍경 몇 컷을 카메라에 담고 바로 출발한다. 들머리는 산신각 우측 옆이다.
오늘 넘어야 할 30구간은 이곳 댓재에서 이기령까지이다. 댓재는 삼척시 하장면과 미로면을 잇는 잿등이고, 이기령은 동해시와 정선을 잇는 잿등이다. 이 구간에는 목통령, 두타산, 박달령, 청옥산, 고적대, 갈미봉 등의 높은 산과 잿등이 있다.
이 구간을 준비하면서 많은 고민이 있었다. 구간 거리 때문이다. 원래 29킬로미터가 넘는 댓재에서 백복령까지를 한 구간으로 끊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자기 차량으로 들머리와 날머리를 용이하게 이동할 수 있는 산악회 소속 회원들이다. 반면, 본인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단독 종주를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댓재에서 이기령까지를 한 구간으로 끊는 것이다. 아마도 단독 종주자 대부분이 같은 고민을 하였을 것이다.
08:09, 산신각을 지나자마자 키 작은 산죽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어서 듬성듬성 돌계단이 이어지기도 한다. 산죽이 보이지 않을 때쯤 돌길로 변한다. 08:19, 첫 번째 이정표를 만난다(두타산 6.1킬로미터).
햇댓등에서(08:28)
이제부터는 6킬로미터쯤 되는 두타산을 향하여 오른다. 등로는 가파른 오르막으로 변하고 주변은 소나무 군락지로 바뀐다. 바람 한 점 없이 조용한 산길이다. 이정표가 있던 지점에서 10여분 만에 햇댓등에 도착한다(08:28). 정상에는 표석과 이정표가 있다(두타산 5.7). 우측 아래로는 댓재로 올라오는 도로가 보인다. 좀 전에 버스를 타고 올라오던 바로 그 도로이다. 좌측으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등로 주변은 잡목이 주류를 이룬다. 안부에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오르면 소나무가 많은 곳에 이르는데(08:40), 이곳에도 이정표가 있다(두타산 5.2). 완만한 능선 오르막이 계속된다. 934봉에 이르러 우측 옆등으로 진행한다. 최근에 등로를 정비한 흔적들이 뚜렷하다. 말뚝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또 산죽이 나오면서 잠시 후에는 안부에 이른다. 안부에서 오르다가 또 이정표를 만난다(두타산 4.8). 주변은 참나무가 주류를 이룬다. 로프가 나오더니 오르막 막바지에 암릉이 이어진다. 잠시 후에 1028봉에 이른다(09:09). 작은 빗방울이 뺨에 닿는다. 날씨가 몹시 흐리다.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곳 이정표는 두타산이 3.9킬로미터임을 알린다. 정상은 안개가 자욱하다. 날씨만 좋다면 두타산이 한눈에 보일 텐데 아쉽다. 내려간다. 우측에 큰 바위가 있다. 산죽지대가 나오고 다시 무명봉에 이른다(09:21). 무명봉 정상에는 삼각점과 약간의 공터가 있다. 역시 이곳에서도 안개 때문에 주변 조망이 제로다. 바로 내려간다.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1021봉에 이른다. 이곳에도 이정표가 있다(두타산 3.3). 빗방울이 그치고 잠시 햇빛이 나오기 시작한다. 산죽길을 걷다가 다시 무명봉에 이른다(09:42). 이곳 무명봉 정상에도 잡목과 약간의 공터가 있다. 이젠 두타산이 2.6킬로미터 남았다. 내려가는 길에는 노송이 많고 다시 산죽길이 이어진다. 내리막 끝에 안부에 이른다. 통골재다(09:51).
통골재에는 잡목이 많다. 좌측은 삼척시 하장면 변천리로 내려가는 길이고 우측은 미로면 구룡골로 내려가는 길이다. 좌측은 길이 뚜렷하나 우측은 흔적조차 희미하다. 직진으로 오른다.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이곳도 최근에 등로를 정비한 것 같다. 가파른 오르막이 끝나면서 이정표가 나타난다(두타산 1.4).
두타산 정상에서(11:07)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잠시 오르다가, 1243봉 직전에서 갈림길에 직면한다.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우측 옆등으로 진행하게 되는 두 길이다. 당연히 옆등을 택한다. 잠시 후에는 두타산 정상에 이른다(11:07).
두타산 정상에는 넓은 공터, 정상석, 묘지 1기, 이정표 등이 있다(청옥산 3.7, 무릉계곡 6.1). 정상에서 부부 등산객의 도움으로 인증샷을 먼저 남긴다.
두타산은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 남서쪽에 있는 산이다. 동해시와 삼척시 경계에 위치한다. 높이는 1,353미터이다. 산 이름인 두타는 불교용어로서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 수행을 닦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태백산맥의 주봉을 이루고 있으며, 북쪽으로 무릉계곡, 동쪽으로 고천계곡, 남쪽으로는 태백산군, 서쪽으로는 중봉산 12당골이 있다. 4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청옥산을 포함하여 두타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곳 두타산과 청옥산은 2008년 11월 14, 15일 양일간에 오른 적이 있다. 그때는 무릉계곡을 통해 입장권을 구입해서 올라왔고, 감시인을 만나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 그때의 두타산 산행기를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 당시 정상에서의 소회 부분을 그대로 옮겨 본다.
“정상은 넓은 공터로 이루어졌다. 신기하게도 한 가운데에 무덤이 있다. 무슨 무덤이기에 이런 곳에?
그 위쪽으로는 지형도와 정상 표시석이 있다. 지형도는 글씨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 헤졌다.
사방의 산들이 두타산 아래에 있다. 좌측을 봐도 우측을 봐도 산 뿐이다. 동해바다가 시원스럽게 보인다고 했는데 오늘은 볼 수가 없다. 날씨 탓이다. 앞으로 가게 될 박달령과 청옥산이 가까이 보인다.
이 넓은 공터에, 이 높은 정상에 나 혼자다. 예전 같으면 시끌벅적할 곳이지만 오늘은 정적이 감돈다.
정상 표시석을 카메라에 담는다. 희미하지만 주변조망도 몇 컷을 찍어 둔다. 점심을 먹기로 한다.
고지대라선지 바람이 더 분다. 온도도 떨어진 것 같다. 다시 겉옷을 꺼내 입고 출발하기로 한다. 1차 목적지는 눈앞에 보이는 박달령이다. 청옥산을 그 뒤쪽에 둔 중간 지점이다. 내리막길이다. 키 작은 산죽들이 양쪽으로 도열해 있다. 이곳에서 2백 미터를 더 내려가야 된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만큼 내려가면 그만큼을 올라가야 되기 때문이다. “
청옥산을 향해 좌측으로 내려간다. 험한 돌길이다. 돌길에 이어 계단이 이어진다. 주변은 잡목이 주류를 이룬다. 잠시 후에 안부에 이른다(11:32). 안부에서 오르다가 배가 고파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이른 점심을 먹기로 한다.
식사 후 다시 출발이다(11;45).
안부에서 오르면 바닥에 깔린 듯이 키가 작은 산죽들이 계속 나온다. 잠시 후에 무명봉에 이른다(12:01). 이젠 박달령이 0.9킬로미터 남았다. 내려간다. 완만한 능선을 오르내린다. 심한 안개 때문에 주변 조망은 엄두도 낼 수가 없다. 계속해서 산죽과 함께 걷는다.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듯한 날씨다. 그렇지만 날씨는 포근하다. 잠시 후에 박달재에 이른다(12:15).
박달재에는 공터와 잡목 그리고 이정표가 있다(청옥산 1.4).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무릉계곡에 갈 수가 있다. 바로 오른다. 능선에서 좌측으로 진행하니 문바위재에 이른다(12;29). 바위와 쓰러진 나무 그리고 이정표가 있다(청옥산 1.1).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삼척시 하장면 변천리로 갈 수가 있다. 오른다.
너덜길이 이어지고, 능선을 만나서 우측 위쪽으로 오르니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돌길이다. 로프까지 설치되어 있다. 잠시 후에 학등에 이른다(13:08). 이젠 청옥산이 50미터 남았다. 잠시 후에 좌측에 샘터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이더니 바로 청옥산 정상에 이른다(13:10).
청옥산 정상에서(13:10)
정상에는 넓은 공터, 정상석, 이정표(고적대 2.3), 헬기장, 통신시설 안테나 등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근처에 샘터가 있는데, 식수가 충분해 샘터를 확인하는 것은 포기한다. 이곳에서도 등산객의 도움을 받아 다른 등산객과 함께 인증샷을 남긴다.
청옥산은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과 삼척시 하장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높이는 1,404미터. 태백산맥 줄기인 해안산맥에 속하는 산으로 동해쪽 사면은 급경사를 이루나 청옥산과 고적대, 두타산 사이에 형성된 이른바 무릉계곡은 학소대, 관음사, 삼화사, 무릉반석, 금란정, 호암소 등 많은 관광자원이 있어 국민관광지로 지정, 개발되고 있다.
서쪽 사면은 경사가 완만한 편이고, 중봉리와 삼화동 사이에는 연칠성령을 통하여 도로가 이어진다. 조선시대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 전국 각지에서 대들보가 될 만한 목재를 구하였는데, 마침 청옥산 주봉에 있는 소나무가 적재로 결정되어 하장천을 이용, 뗏목으로 운반되었다고 한다.
이곳 청옥산 역시 2008년 11월 15일 두타산과 함께 오른 적이 있다. 그때의 산행기에 적혀 있는 정상에서의 소감을 그대로 옮겨 본다.
“정상은 밋밋하다. 조용하다. 이곳도 정적이 감돈다. 바람소리만 있을 뿐이다. 위쪽으로는 정상표시석이 있고 가운데에는 헬기장임을 알리는 에이치 자가 새겨져 있다. 그 아래쪽엔 안테나가 있다. 산불감시를 위한 무선중계기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주변 조망은 어렵다. 날씨 탓이다. 푸른 옥돌이 나왔다해서 청옥산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옥돌은 보이지 않는다.
바로 내려가기로 한다.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이곳 정상은 삼거리 갈림길이기도 하다. 좌측은 삼척시 하장면 중봉리로 내려가는 길이고, 우측이 대간길이다. 우측으로 내려간다. 등로는 완만하지만 물기가 서려있어 약간은 미끄럽다. 잠시 후에 안부에 이르고, 안부에서 5~6분을 올라가니 연칠성령에 이른다(13:37).
연칠성령에는 돌탑과 연칠성령 안내판 그리고 이정표가 있다(고적대 1.0). 안내판에는 ‘연칠성령은 예로부터 삼척시 하장면과 동해시 삼화동을 오가는 곳으로 산세가 험준하여 난출령이라 불렸다. 이 난출령 정상을 망경대라 하는데 인조 원년 명재상 택당 이식이 중봉산 단교암에 은퇴하였을 때 이곳에 올라 서울을 사모하여 망경한 곳이라 전해진다.”라고 적혀 있다.
고적대에서(14;17)
이곳에서 우측은 무릉계곡 하산길이고 대간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직진으로 오른다. 망군대를 지나 암릉으로 이어진댜.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힘겹게 올라 고적대에 이른다(14;17). 고적대 정상에는 고적대 안내판, 정상석, 삼각점 그리고 이정표(무릉계곡관리사무소 7.7)가 있다.
안내판에는 “고적대는 동해시, 삼척시, 정선군의 분수령을 이루는 산으로 기암절벽이 대를 이루어 신라 고승 의상대사가 수행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동쪽으로 뻗혀진 청옥산, 두타산이 아울러 해동삼봉이라 일컬어지며, 신선이 산다는 무릉계곡 시발점이 되는 명산으로 높고 험준하여 넘나드는 사람들의 많은 애환이 서린 곳이다.”라고 적혀 있다.
고적대에서 내려간다. 암릉길이 이어지고, 연속해서 돌길과 계단길이 차례로 이어진다. 진달래 군락지가 나온다.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전망대에 이른다(14;40). 고적대에서 이곳까지의 능선이 한눈에 나타난다. 전망대를 지나 10여분을 더 진행하니 이번에는 사원터 삼거리에 이른다(14:51). 이곳에서 우측은 사원터로 가는 길이고 대간길은 좌측이다. 좌측으로 진행한다.
로프가 설치된 암릉이 이어지고, 자작나무 군락지를 지난다. 또 우측 방향에서 암릉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15:20). 암릉 비경을 지나고 다시 자작나무 군락지를 만난다(15;24). 자작나무 군락지에서 10여 분을 더 진행하니 갈미봉 정상에 이른다(15:36).
갈미봉 정상에서(15:36)
약간의 공터가 있는 갈미봉 정상에는 어린 주목이 자라고 있고 특이하게 생긴 정상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직진으로 내려간다. 돌길이 이어지고 계단길, 낙엽길이 차례로 나타난다. 한마디로 걷기 힘든 길이다. 다시 완만한 능선을 오르내린다. 낮은 봉우리 직전에서 좌측 옆등으로 진행한다. 이번에는 너덜지대가 나온다.
나무의자 두 개가 설치된 곳에 이르고(16;31), 바로 자작나무 군락지를 지난다(16:33). 이어서 솔숲길로 진입한다. 특이한 등로를 발견한다. 바닥에 돌이 깔려 있다. 이곳이 대체 어떤 곳이기에 이렇게 돌을 깔아놨을까? 그것도 바닥이 평평할 정도로 질서있게.
다시 갈림길에 이른다(16;48). 역시 이곳에도 나무의자 두 개가 놓여 있다. 이곳 이정표는 이기령이 1.1킬로미터 남았음을 알린다. 이젠 오늘의 목적지도 얼마 남지 않았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솔숲 속으로 들어간다. 솔숲 사이에는 산죽이 깔려 있다. 산죽이 있는 솔숲을 지나니 이번에는 산죽이 깔린 낙엽송 지대를 지나게 된다. 계속 내리막길이다. 이번에는 잡목 숲속에 산죽이 깔려 있는 길을 지나게 된다. 마치 의도적으로 수목을 지정하여 식목한 것처럼 보인다. 걷기 좋은 길이고 아름다운 길이다. 다시 산죽이 깔린 솔숲에 이르더니 잠시 후에 이기령에 도착한다(17:08).
이기령에서(17:08)
이기령에서 특이한 광경을 목격한다. 깊은 산속임에도 돌탑이 있고, 돌탑 주변에는 빨강 노랑 파랑 등 갖가지 색깔의 천들이 만국기처럼 걸려 있다. 금줄도 보인다. 돌탑에는 소원을 빌고 있는 듯한 여성 형상이 매어 있다. 모두 무속인들의 행위로 보인다. 바로 옆에는 소형 평상이 네 개나 놓여 있다. 암튼 분위기가 이상하다.
이곳에서 좌측으로는 임계 부스베리(5.8), 우측으로는 동해 이기동(6.5킬로미터)으로 내려갈 수가 있다. 또 좌측 위쪽으로 150미터 지점에는 옹달샘이 있다.
이곳 이기령을 알리는 안내판에는 이런 요지의 글이 적혀 있다. “이기령은 관직을 꿈꾸며 한양으로 떠나던 이들과 거상을 꿈꾸던 보부상이 지나가던 길이다. 한양길은 장원급제의 꿈을 안고 오가던 선비에게는 희망의 길이요, 장터를 떠돌던 보부상에게는 한 많은 애환의 길이다. 상인들은 영동에서는 소금, 영서인 정선과 삼척 하장쪽에서는 삼베 같은 것을 가지고 이기령을 넘어 다녔다. 이후에는 동해와 정선 임계 주민이 장을 보고자 넘나들던 길이기도 하다.
또 이곳에는 국시뎅이가 있는데, 국시뎅이란 옛길 고개를 넘나드는 사람들이 행로의 무사안전을 기원하기 위하여 돌을 주워 침을 뱉고 쌓은 돌무더기라고 한다. 일명 쿠시라고도 하며 서낭당과 같은 기능을 가진 신령한 장소로 여겨지는 곳이다.”
오늘은 이곳에서 마치기로 한다. 이곳에서 야영으로 하룻밤을 보내고 내일 백복령까지 진행할 계획이다. 다행이도 그렇게 흐리던 날씨도 말끔히 개었다. 약간 염려되는 것은 주변의 낯선 조형물들과 긴 밤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또 11월의 어느 하루가 지난다. - 끝 -
(교통편)
* 갈 때
1. 청량리역에서 동해역까지
ㅇ 청량리역에서 정동진행 기차 이용(자주 있음 07:05, 09:10, 14;13……. 23;25)
* 동서울터미널에서 동해행 고속버스도 있음
2. 동해역에서 삼척 버스터미널까지
ㅇ 동해역 앞 100미터 지점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삼척으로 가는 버스 이용(06:15)
3. 삼척 버스터미널에서 댓재까지
ㅇ 하장행 버스 이용(07;30, 13;30, 16:30)
* 올 때
1. 이기령에서 우측의 동해시 이기동까지는 도보로 이동(약 6.1킬로미터. 1시간 정도 소요).
2. 이기동에서 버스를 이용, 동해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으로 이동
(관련 사진) : 따로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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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쉼없이 걷는 님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백두대간 완주까지 파이팅.!!
감사합니다.
그리고 올리시는 사진 잘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