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전임 국왕의 일주일간의 공식 국장기간 마지막 날인 목요일(2.7), 그의 유골을 담은 항아리가 다비식장을 떠나 영원한 안식처인 왕궁으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그의 유골 중 일부는 '다비식' 다음날인 화요일(2.5)에 메콩 강
(Mekong River)과 떤레 삽 강(Tonle Sap river)의 합류점에서 '산골'된 바 있다. 나머지 유골을 담은 황금빛 항아리는 월요일(2.4)에 화장의례가 치뤄졌던 다비식장인 '쁘레아 메루 정원'(Preah Meru field)을 출발하여 왕궁으로 향했다. 이 행렬에는 제한된 수의 왕족들 및 훈센(Hun Sen) 총리와 분 라니(Bun Rany) 여사 등 핵심 요인들만이 참가했다.
시하누크 공의 유골 단지는 왕궁 내에 위치한 꾼티어 보파 스투파(Kantha Bopha Stupa) 인근의 한 탐 속에 봉안되었다. '깐타 보타 탑'은 왕궁 내 사찰인 '에메랄드 파고다'(Emerald Pagoda)에 있는 탑인데, 시하누크 상왕이 아끼던 딸로서 1946년 3세의 나이로 숨진 깐타 보파 공주의 이름을 따서 붙인 명칭이다.
이날 행사는 대중들에게 공개된 행사는 아니었지만, 수많은 캄보디아 국민들이 프놈펜으로 몰려와 존경했던 전 국왕을 추모했다. 스와이 리엉(Svay Rieng) 도에서 올라왔다는 터이 꾼(Thei Kun, 68세) 씨는 공식적인 행사가 끝난 직후, 왕궁으로 향했다. 그녀는 본 방송과의 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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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왕 폐하의 영면을 기원하면서, 그분이 이 나라의 모든 국민들을 보호해주실 것을 바란다. 그래서 우리가 이웃국가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길 바란다." |
오욱 모니(Ouk Mony) 씨는 친구들과 함께 프놈펜으로 올라와서, 지난 일주일 동안의 국장기간 내내 참여를 했다. 그녀는 시하누크 전 국왕을 "국가의 기둥이자 걸출한 영웅"이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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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께서 서거하신 이후, 이제 우리가 믿을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시하누크 국왕은 1970년 미국이 지원한 쿠테타로 실각한 이후 크메르루주(Khmer Rouge)와 동맹을 맺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캄보디아인들은 그를 대단히 존경하고 있다. 그가 이번에 서거하면서, 심지어는 '시하누크 통치기'를 알지 못하는 젊은 세대들에게서조차 그를 우상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음악가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했던 시하누크 국왕이 제작한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많은 캄보디아인들이 감상을 하고 있는데, 특히 그가 사망하자 더욱 그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오욱 모니 씨는 서거한 전 국왕이 캄보디아의 국가 지도자로서 하나의 모델처럼 여겨져야만 할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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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훈센 (Hun Sen) 총리가 상왕께서 행했던 바와 마찬가지로 국가를 잘 이끌어, 그분의 유지를 좇게 되길 바란다." |
첫댓글 시하모니 국왕과 모니니엇 왕대비가
약 120일에 가까운 장례식을 치르느라고..
얼굴들이 정말 많이 상하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이 두 분은 중국의 공식초청을 받아 중국방문 예정입니다..
시하누크 공의 장례식은
결국 중국에서 시작하여 중국에서 최종적인 완결이 될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