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로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동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만수로15~94번길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동
만수리(萬樹里)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에 있는 리(里).
면의 동부에 위치한 농촌마을이다. 본래 풍천 임씨들의 묘막이라 하여 묘막이라 불렀는데 1987년 군조례에 의거 묘막이전의 이름인 만세동에서 유래하여 만수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냉골, 만수동, 묵밧추리 등이 있다. 냉골은 만수동 남쪽에 있는 마을로 지대가 냉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묵밧추리는 만수동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1946년에 신설하였다 한다. 특산물로 버섯과 벌꿀이 있다.
만수리(萬水里)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에 있는 리(里).
당미골과 같은 골짜기와 향교평과 같은 들에 자리잡은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당미, 덕굴, 방죽안, 안터, 양달말, 원앞, 음달말, 토매간이 있다. 당미는 만수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하여 당산이라고도 부른다. 덕골은 마을이 덕굴고개 밑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방죽안은 마을에 방죽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안터는 당미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양달말은 당미 양지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앞은 옛날에 원집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음달말은 당미 음달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토매간은 마을에 토매간(방앗간)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만수리(萬樹里)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북부에 있는 법정리(里).
평지가 대부분의 지대를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용성천이 마을 북부와 동부를 감싸며 흐르고 있다. 만수리의 북부와 동부·남부에는 각각 해발 고도 100여m의 산지가 형성되어 있고, 남부에는 내산[111.2m]이 솟아 있다. 남부의 경계에는 연내골이라는 고개가 있다. 남부와 서부에는 금강(錦江)의 지류인 용성천(龍城川)이 남서~북동 방향으로 흐르고 있고, 하천 유역에는 해발 고도 40여m의 충적 평야가 펼쳐져 있다. 용성천 연변에는 인공제방이 축조되어 있다.
조선 말기 공주군 목동면(木洞面) 지역으로,
-1914년 목동면 만수동·어전리(於田里)·소삼산리(小三山里)가 통합되어 만수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이인면 만수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하천 연변의 평야 지대에 만수, 괘재, 느랏, 상만·아래만수동 마을·흔덕골 등이 있다. 만수 마을은 물이 많다는 뜻에서 붙여진 지명이며, 괘재 마을은 아래만수 북서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느랏 마을은 아래만수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넓은 밭이 많다 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으며, 아래만수 마을은 만수 아래 위치한다 해서 아래만수 마을이라 불린다.
면적은 4.53㎢이며, 총 경지 면적은 78.27㏊로 면 전체 면적의 5.36%를 차지하고 있다. 여러 소하천 주변은 벼농사 지대이며, 논에서는 벼 재배가, 산기슭에서는 밭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총 77세대에 189명(남 101명, 여 8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2016.3.31 현재).
문화 유적으로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9호인 연평부원군 신도비가 있다. 지방도 651번이 서부에서 북동~북서 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시도로 16번이 남~북 방향으로 뻗어 남쪽으로는 오룡리에, 북쪽으로는 검상동에 각각 연결된다. 이외에도 소규모의 도로가 지방도 651번과 시도 16번에 연결되고 있다.
만수리(萬壽里)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에 있는 리(里).
만수산 자락에 위치하며, 낮은 산지와 구릉지이다. 남쪽에는 반교천이 흐르며, 천 주변에 빈발들이 있다. 수리바위가 있다. 행정리로 임수대(臨水臺), 동구(洞口)마을이 있다. 임수대는 1918년경 전장리에서 면사무소청사가 이전해 와 면소재지가 되었다. 외산시장(外山市場)도 그 무렵에 수신리 무수(舞袖)마을에서 이곳으로 이전되어 지금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동구마을은 무량마을이라 불리다가 1914년 군폐합으로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동구마을로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무량(동구), 부둣골(부도), 북두머니(부두머니, 북두리)등이 있다.무량은 무량사의 입구가 된다 하여 붙여졌고, 부둣골은 부도가 있다 하여 붙여졌다. 북두머니는 전에 칠성제를 지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문화재로는 무량사 극락전, 5층석탑, 석등, 당간지주, 김시습 부도 등이 있다.
만수리(萬壽里)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에 있는 리(里).
평지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두승저수지 가까이에 있다. 자연마을로는 상만, 하만, 서당촌이 있다. 상만은 만수리의 윗마을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하만은 만수리의 아랫마을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서당촌은 마을에 서당이 있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특산물로는 내장산 복분자, 단풍미인쌀, 새송이버섯등이 있다.
만수리(萬壽里)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에 있는 리(里).
동락산의 끝자락에 자리한 산촌지역으로 주위에 만수소류지가 있다. 물이 좋으므로 만수동 또는 만수라 하였는데, 만민의 피난처란 뜻에서 만수로 부른다고도 한다. 자연마을로 대곡과 운치마을이 있다. 대곡마을은 만수리 중 윗쪽에 있어 상만 혹은 대굴로 불리다가 대곡으로 개칭되었다. 운치마을은 풍수설에 의한 지형이 운중발용(雲中發龍)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운치라고 부르게 되었다.
만수리(萬樹里)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있는 법정리(里).
만수리는 대부분 30m 이하의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서쪽으로 당큰지들이 있고, 동쪽에는 저수지인 만수제가 있다.
만수리는 조선 시대 진도군 명산면(命山面)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금천리(錦川里), 회동(回洞), 구송리(九松里) 일부와 나주군 종남면(終南面) 신기리(新基里)를 병합하여 만수리라 하고, 시종면에 편입하였다.
만수리는 만석굴이라고도 하는데,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전하는 바가 없다.
한 개의 행정리가 있으며, 원만수(元萬樹) 마을, 금천(金泉) 마을, 새터, 웃춤, 햇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만수리의 원만수 마을은 만수동의 윗추메와 아래대미를 합하여 만들어진 마을로 원만수 마을 등성이를 몸통으로 하여 나비가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형국의 명지라 하였다. 그러나 나비 날개 부분에 마을 뒤 12골에서 합류되는 순방죽[저수지] 때문에 나비가 날을 수 없어 마을에 재앙을 가져온다는 설이 있었다. 실제로 1967년~1968년에 대한해(大旱害)를 겪은 후 행정 당국과 지역 주민들이 뜻을 모아 순방죽을 위 골짜기로 이동하여 설치하였다고 한다. 금천은 만수 남쪽에 있는 마을로 좋은 샘이 있으며 옛 서당 너머가 된다 하여 서당너메라 불렸다. 새터는 햇골 동쪽에 새로 된 마을이며 웃춤은 만수의 위쪽 마을이라 하여 웃춤이라 한다. 햇골은 만수 서쪽에 있는 마을로 ‘횟골장’이라는 시장이 었었다 하여 횟골, 횟골장터라 하였고 회동이라 불린다.
면적은 3.656㎢이며(2012년 11월 기준), 총 139세대, 276명(남자 145명, 여자 13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2014.12.31 현재).
만수리에는 조선 인조 때 이괄(李适)의 난 평정에 큰 공을 세운 김완 묘소 및 신도비[전라남도 기념물 제50호]와 만수리 만수 고분군이 있다. 만수리 북서쪽으로 지방도 820호선이 지난다.
만수리(萬樹里)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에 있는 리(里).
옛 이름은 지당(池塘) 또는 만수이다.
본래 전라남도 강진군 백도면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금당리·항리의 각 일부가 병합되어 지금의 명칭으로 해남군 북평면에 편입되었다가
-1983년 북일면에 편입되었다.
만수라는 명칭은 못에 물이 많은 데서 유래되었다.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동쪽으로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지역이다. 자연마을로는 만수·중앙동·밤나무정(율목정)·엉골·용수동(용사동)·양화·동편·고래미·청룡동 등이 있다. 중앙동은 만수 복판에 있는 마을이고, 밤나무정은 만수 동남쪽에, 엉골은 만수 북동쪽에, 용수동과 양화는 만수 남쪽에 있다. 동편은 양화 동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며, 청룡동도 양화 동쪽에, 고래미는 양화 남쪽에 있다.
만수리(萬水里)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북동쪽에 있는 법정리(里).
북쪽으로는 능주면 광사리, 동쪽으로는 능주면 백암리, 남쪽으로는 능주면 원지리, 서쪽으로는 화순천을 경계로 도곡면 죽청리가 이웃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약간의 구릉과 함께 도르메 마을로 연결되어 있다. 만수리의 동부는 낮은 산지인 산불산(産佛山)과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고, 서부는 화순천 주변에 발달한 평야로 형성되어 있고, 야트막한 구릉지대로 형성되어 있다. 북쪽으로는 구릉지대로 대부분 과수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수동 마을과 연결되어 있다. 마을의 방향은 동쪽 또는 서쪽을 향하고 있다.
수동 마을은 동북쪽으로 산등성이가 감싸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화순천 변에 발달한 평야로 형성되어 있고 남쪽으로는 야트막한 구릉 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구릉 지대에는 대부분 과수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마을의 방향은 남쪽을 향하고 있다.
만수리(萬水里) 지명은 만년동(萬年洞)마을의 만(萬)자와 수동(水洞)마을의 수(水)자를 각각 취하여 지어진 명칭이다.
1789년 조선 '호구 총수'에는 능주목(綾州牧) 동면(東面) 만년동리(萬年洞里)로 기록되어 있으며,
-1867년에 '대동지지'에는 능주목 주내면,
-1895년에는 나주부(羅州府) 능주군(綾州郡) 동면,
-1896년에는 전라남도 능주군 동면,
-1912년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에는 능주군 회덕면(懷德面) 만년동(萬年洞)으로 나오고,
-1913년 능주군을 화순군으로 개칭하면서 화순군 회덕면 만년동,
-1914년 지방 행정 구역 변경에 의해 화순군 능주면 만수리[만년동·수동]로 개편되었다.
만수리의 자연마을로는 만년동(萬年洞), 수동(水洞) 마을이 있다. 만년동 마을이 만수 1리, 수동 마을이 만수 2리이다. 만년동 마을은 마을의 형국이 '만년 동안 부유한 땅이라는 만년부복지(萬年富福地)'라는 말에서 연유한 지명이다. 수동은 처음에 수동(壽洞)이라 불렀으나 가뭄이 심하여 수동(水洞)으로 고쳤다고 전한다.
면적은 1.7㎢이며(2011년 12월 기준), 총 115가구에 남자 137명, 여자 140명으로 모두 27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만수 1리는 총 68가구에 남자 82명, 여자 77명으로 모두 159명, 만수 2리는 총 47가구에 남자 55명, 여자 63명으로 모두 118명이다.
만수리 1구인 만년동 마을의 주산물은 벼, 특산물은 복숭아, 주소득원은 벼와 보리, 복숭아 등 과수이다. 만수리 2구인 수동 마을의 주산물은 벼, 특산물은 복숭아와 배이다. 주소득원은 벼·복숭아·배이다. 국도 29호선과 경전선 철도가 만수리 중앙을 남북으로 지나고 있다. 만수역이 있었으나 지금은 폐역되어 표지판만 있다.
유물 및 유적으로는 향토 민속 유물관, 만수 간이역 터, 화산 정사, 수산 정사, 배현수 소장 고문서 등이 있다. 민속 및 전설·민담으로는 만년동가, 화산정사 8경[비봉산 아침 안개, 양사골 빗소리, 만년토로 푸른 대나무, 고래들 해질 무렵 연기, 대산의 달밤, 이못의 고기, 갈방죽 푸른 모란, 도지등의 낙조], 기우제, 당산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