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위원, 이혼 특허 부동산 변호사로 채워져...“노동 문제 이해를 못해”
윤지연 기자
노동자의 권리구제 기능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위원회가 사용자의 징계, 해고 등을 확인 사살하는 역할을 하면서, 노동위원회 제도개선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불법파견, 대량 징계 건을 비롯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도노조 대규모 징계 등에서 시간 끌기와 불공정성 등의 문제를 야기하면서, 노동계를 중심으로 ‘노동위원회 해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민주노총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회’,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등은 8일 오후 2시,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현대차 사건 등 최근 판정사례를 통해 본 노동위원회의 문제점과 대안’ 토론회를 열고 노동위원회의 제도적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현대차, 한진중, 철도 등... ‘불공정성’ 시비 끊이지 않는 노동위원회
현재 중앙노동위원회에는 부산지노위와 충남지노위, 전북지노위를 거쳐 올라온 현대자동차 울산, 아산, 전주 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부당징계 구제재심신청사건이 계류 중이다.
앞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사내하청노동자 1,500여 명은 2010년 11월 파업투쟁을 전개했으며, 이 과정에서 해고 46명을 포함해 1,000여 명에 대한 대규모 징계가 이뤄졌다. 이에 해고자 46명과 정직 이상의 징계자 484명은 현대자동차 및 각 사내하청업체를 상대로 부산지노위에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해당 구제신청에 대해 부산지노위는 지난 2007년, 최병승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과는 상반된 판결을 내놓았다. 1, 3공장은 불법파견에 해당하며, 2, 4공장과 엔진, 시트공장은 불법파견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이었다. 심문회의에서 양 당사자가 각 공장별로 생산 차종만 다를 뿐, 생산시스템과 공정배치 등은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인정했음에도 이 같은 판결이 나오면서, 부산지노위는 정치적 판결 논란에 휩싸였다.
부산지노위와 중노위는 작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관련 구제신청사건에서 역시 공성정 시비에 휩싸인 바 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는 이미 국정감사 기간 동안 국회 여야 의원들이 ‘정리해고를 할 만한 경영상 긴박한 이유가 없다’며 사측의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한진중공업 사태로 촉발된 정리해고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며, ‘희망버스’ 등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사회적 움직임도 거세졌다.
하지만 부산지노위는 2011년 5월 6일, 한진중공업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사건에 대해 회사의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인정해 사건을 기각했다. 중노위 역시 11월 4일, ‘해고 절차 등에 하자가 없다’며 구제신청 재심사건을 기각하면서, 한진중공업 사태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때문에 노동계를 비롯한 시민사회와 정치권은 중노위가 사용자 편향적인 부당 판정을 강행 발표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중노위는 지난 2011년 1월, 철도조조 조합원 192명의 부당해고 구제재심 결과에서도 불공정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중노위는 192명의 조합원 중 41명만 부당해고를 인정했으며, 이미 지노위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아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4명에 대해 부당해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특히 부당해고 이유가 된 2009년 철도파업 당시, 철도노조는 중노위가 결정한 필수유지업무를 유지하며 파업에 돌입했기 때문에, 중노위가 스스로 결정한 내용조차 번복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인정률은 급격히 감소
교섭창구단일화 시정명령은 급격히 증가
전체적인 노동위원회의 운영상황을 보면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2011년 1년간 노동위원회에 제기된 심판사건의 수는 총 10,361건에 달한다. 노동쟁의 조정신청 사건의 수는 695건이다. 나아가 노동위원회의 ‘분쟁해결율’은 무려 95%를 넘어가고 있다.
박성우 민주노총 노동위 사업단 기획위원은 “초심 지방노동위원회와 재심 중앙노동위원회를 거치면서 최초 접수된 약 1만 건의 사건 중 9,500건 정도가 노동위원회를 통해 분쟁이 종결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노사관계 분쟁사건에 미치는 노동위원회의 영향이 대단히 높음을 보여주고 있는 수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동위원회의 담당 업무인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사건과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사건의 인정율은 최근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지난 2003~2007년까지 부해사건의 경우 약 45%, 부노사건의 경우 약 15%이상의 인정율 수준을 유지해 왔지만, 2008년부터는 각각 30%, 3%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 지난 2011년 7월 1일부터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노동쟁의 조정쟁의 신청에 있어 교섭대표노조가 아니라는 이유로 빈번한 행정지도가 이뤄졌다. 7월 1일 이전부터 교섭을 진행해 온 노조의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부인하거나, 사업장 내 복수노조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교섭창구단일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부인하는 행정지도도 빈번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거의 행해지지 않았던 단체협약 시정명령역시 새로운 노조탄압의 수단으로 행해지고 있다. 박성우 기획위원은 “단체협약 시정명령제도는 노사자치주의라는 집단적 노사관계의 원칙과 노사가 합의하여 체결한 단체협약의 위상에 대한 존중에 따라 실제로는 거의 행해지지 않았다”며 “그런데 2009년부터 공무원노조와 교원노조의 단체협약들에 대해 시정명령이 행해지기 시작했고, 소위 타임오프제도가 시행된 이후부터는 주요 사업장들을 표적으로 한 단체협약 시정명령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주목해야 할 것은, 행정관청의 이러한 단체협약 시정명령신청에 대해 노동위원회가 거의 100%에 가까운 인정율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익위원, 노동전문가는 없고 이혼, 부동산, 특허 변호사들이 대다수
노동위원회는 사용자에 비해 열악한 경제적, 사회적 지위에 있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동법원리를 적용한다. 소송당사자가 평등하다는 전제 위에 판단자의 역할만을 하는 법원을 통한 민사소송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노동위원회의 불공정성, 정치적 판단 등의 논란은 노동위원회의 판정 원리가 실제로는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박수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일반적인 노동분쟁유형에 있어서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은데, 집단적, 또는 비정규직 노동분쟁에 있어서는 큰 문제가 있다”며 “법원의 경향은 상대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노동위원회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집단적, 비정규직 노동분쟁은 이기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이유에 대해 박성우 기획위원은 △노,사,송 3자 합의제 위원회 기구로서의 위상 실종 △고용노동부로부터의 독립성 부재 △노동위원회의 입법취지에 맞는 심판원리 부재 △합리적이고 공정한 절차 기준 부재 등을 꼽았다.
박 기획위원은 “2006년 12월, 노사관계로드맵 관련 노동위원회법 개악으로, 민주노총 추천 후보자들은 대부분 배제되고 공익위원의 다수가 노동위원회 자체 추천 후보자들로 채워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공익위원으로 위촉된 변호사들 역시, 노동사건 전문 변호사는 별로 없고 이혼소송, 특허, 부동산 전문 변호사들이 공익위원으로 들어오다 보니 입장 차이가 아닌 아예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공익위원들은 노동위원회의 입법취지, 존재의의에 대한 인식 부족과 운영원리 부재를 겪을 수밖에 없다. 박수근 교수는 “노동위원회의 존재목적과 역할에 대한 인식 약화, 노동현장에서의 실제에 관한 인식차이, 노동법연구자들의 연구동향과 결과를 이해하고 이를 반영하려는 노력의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노위 위원장을 비롯한 각 노동위원회 상임위원 등에 대한 인사권이 사실상 노동부장관에게 있고, 노동위원회의 실질적인 예산권조차 부재한 상황이어서 노동부로부터의 독립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도 존재한다.
때문에 박 기획위원은 “선언적인 노동위원회 폐지 및 노동법원 설립 입장만을 주장하기 보다는 노동법원 설립을 포함한 노동분쟁해결제도의 전반적인 개선을 중장기적인 목표로 하되, 노동위원회 제도 및 운영 개혁활동 역시 보다 활발하게 병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수근 교수 역시 “노동위원회의 기능강화를 위해서는 인사 및 예산 편성 등에 있어서 노동부로부터 독립성이 갖춰져야 한다”며 “또한 공익위원 위촉과 구성에서의 균형성, 상임위원 제도의 정상화, 구제신청사건의 공정한 배정 역시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