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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CO창립 55주년을 맞아 함께 생각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어 아래 글을 붙입니다.
1992년 10월 3일이다.
이날 朴회장은 검은 상복을 입고 가족과 수행원 약간 명만을 대동하고 국립묘지 朴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했다.
향을 사루면서 포스코 2100만 톤의 완공보고를 드렸다.
이 보고는 대단히 뜻이 깊고 역사성 있는 문건이기에 여기에 그 전문을 싣는다.
<각하! 이제 마쳤습니다.>
각하!
불초(不肖) 박태준, 각하의 명을 받은 지 25년 만에 포항제철 건설의 대역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삼가 각하의 영전에 보고를 드립니다.
포항제철은 ‘빈곤타파(貧困打破)와 경제부흥(經濟復興)’을 위해서는 일관 제철소 건설이 필수적이라는 각하의 의지에 의해 탄생되었습니다.
그 포항제철이 바로 어제, 포항, 광양의 양대 제철소에 조강생산 2100만 톤 체제의 완공을 끝으로 4반세기에 걸친 대장정(大長征)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나는 임자를 잘 알아.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어떤 고통을 당해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기 한 몸 희생할 수 있는 인물만이 이 일을 할 수 있어. 아무 소리 말고 맡아!'
1967년 9월 어느 날, 영국출장 도중 각하의 부르심을 받고 달려온 제게 특명(特命)을 내리시던 그 카랑카랑한 음성이 지금도 귓전에 생생합니다.
그 말씀 한마디에, 25년이란 긴 세월을 철(鐵)에 미쳐, 참으로 용케도 견뎌왔구나 생각하니 솟구치는 감회를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형극과도 같은 길이었습니다.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는 불모지에서 용광로 구경조차 해본일이 없는 34명의 창업요원을 이끌고 포항의 모래사장을 밟았을 때는 각하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자본과 기술을 독점한 선진철강국의 냉대 속에서 국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한숨짓기도 했습니다.
터무니 없는 모략과 질시와 수모를 받으면서 그대로 쓰러져 버리고 싶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를 일으켜 세운 것은 '철강은 국력'이라는 각하의 불같은 집념, 그리고 열 세 차례에 걸쳐 건설현장을 찾아주신 지극한 관심과 격려였다는 것을 감히 말씀드립니다.
포항제철소 4기 완공을 1년여 앞두고 각하께서 졸지에 유명(幽明)을 달리하셨을 때는 '2100만톤 철강생산국'의 꿈이 이렇게 끝나버리는가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철강입국(鐵鋼立國)'의 유지를 받들어 흔들림 없이 오늘까지 일해 왔습니다.
그 결과 포항제철은 세계 3위의 거대 철강기업으로 성장하였으며, 우리나라는 6대 철강대국으로 부상하였습니다.
각하를 모시고 첫 삽을 뜬 이래 지난 4반세기 동안 연 인원 4천만 명이 땀 흘려 이룩한 포항 제철은 이제 세계의 철강업계와 언론으로부터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철강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제 힘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필생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이 순간, 각하에 대한 추모의 정만이 더욱 새로울 뿐입니다.
"임자 뒤에는 내가 있어. 소신껏 밀어 붙여봐"하신 한마디 말씀으로 저를 조국 근대화의 제단으로 불러주신 각하의 절대적인 신뢰와 격려를 생각하면서 다만 머리 숙여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각하!
염원하시던 '철강 2000만 톤 생산국'의 완수를 보고 드리는 이 자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던 근영·지만 군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녀분들도 이 자리를 통해 오직 조국근대화만을 생각하시던 각하의 뜻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각하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더욱 성실하게 살아갈 것이라 믿습니다.
저 또한 옆에서 보살핌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을 다시 한 번 약속드립니다.
각하!
일찍이 각하께서 분부하셨고, 또 다짐드린 대로 저는 이제 대임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가 진정한 경제의 선진화를 이룩하기에는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하면 된다'는 각하께서 불어넣어주신 국민정신의 결집이 절실히 요청되는 어려운 시기입니다.
혼령이라도 계신다면, 불초 박태준이 결코 나태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25년 전의 그 마음으로 돌아가 '잘 사는 나라' 건설을 위해 매진할 수 있도록 굳게 붙들어 주시옵소서.
불민한 탓으로, 각하 계신 곳을 자주 찾지 못한 허물을 용서해 주시기 엎드려 바라오며, 삼가 각하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안면(安眠)하소서!
1992년 10월 3일
불초(不肖) 태준(泰俊) 올림.
이 보고서는 지도자의 인격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한번 약속된 수명사항은 몇 십 년이 걸려도 반드시 관철하고야 마는 대장부의 기개, 지도자의 결단에 흔쾌히 따르는 수만 장졸들의 열의와 헌신, 이 모든 것이 응어리진 한 편의의 대서사시이다.
일찍이 제갈공명의 출사표(出師表)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는 선비가 될 수 없노라고 우리의 선조들은 강조했다.
감히 제안한다.
출사표도 의미가 있고, 감동적이다.
그러나 청암 박태준의 준공보고를 읽고도 눈물이 없고, 감동이 없으면 그것은 혼이 없는 사람이라고….
함께 노력하여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하여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뜻을 키우는 디딤돌이 되었으면 한다.
POSCO 55주년 만세! 대한민국 만세!
🤩🤩🤩🍒 이런 사실을 아십니까?
1948년 5월 14일
남한 총선이 끝나고 나흘 뒤 북한은 남한으로 보내던 전기를 끊어 버렸다.
70% 이상 북에 의존해있던 남한의 모든 동력이 멈추고 암흑 천지가 되었다.
전차도 멈추고, 모든것이 마비가 되었다.
이대로 얼마 못가서 남한은 항복을 할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된 바다 건너 미국 발전왕이라하는 '워커 시슬러'는 남한의 딱한 사정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였다.
발전소를 세우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긴급 대안 책으로 함선 두 척에 발전소를 만들어 긴급 한국으로 가져와서 한 척은 부산항에 한척은 인천항에 정박하고 송전선에 전기를 연결하자 남한은 다시 전기를 켤수 있었다.
8년후 경무대 이승만 대통령을 찾아간 시슬러는 작은 상자 하나를 대통령에게 건냈다.
그 상자 안에는 은빛 희미한 작은 우라늄 덩어리가 있었다.
"각하 이 우라늄 덩어리 하 나가 발전소 수천개의 힘을 발휘 할 수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석탄도 기름도 안나는 우리가 어찌하면 좋겠오?
우리도 그런 기술이 필요한대 지금 시작하면 안되겠오?"
시슬러는
"지금부턴 연구해도 20년 후에나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이대통령은
"그럼 당장 시작합시다.
우리 후손들도 빛이있고 따뜻한 세상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오?"
이 대통령의 말을 들은 시슬러는 1956년 미국과 원자력 협력 기구를 만들고,
1959년 서울 화력 발전소를
세우며 시슬러 자신이 직접 작업복을 입고 한국 젊은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쳐주기 시작하였다.
시슬러가 시작한 그것이 지금의 한국 전력의 원조가 된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1.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있어야하고.
2.가난을 끊어 버리겠다는 비전이 있어야 하고.
3.미래를 위한 인재를 키워야 한다. 고 ᆢ
요즘도 배를 타면 1개월을 가야하는 먼 미국 땅에서 아무런 연고도 책임도 없는 이의 이런 희생적 헌신 속에서 기초가 세워졌다. 우리는 이 나라를 잘 지켜 후손들에게 물려 주어야 하는데 ᆢ
이정도 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기관을 하나 만들어 우리나라 건설에 헌신하고 희생한 세계 각처에 사람들을 찾아 훈장도 드리고 국가가 감사 인사를 그 후손들에게라도 해야 하는것이 인간의 도리 아닐까?
개구리가 되었는데
저는 올챙이 시절이 없었노라고
누가 도와 달라고 했냐고
반박하는 한국인들이 나도 한국인이지만 참 많이 미워진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본다.
사람답게 살자.
하나님의 사랑과
나라에 대한 고마움,
부모 형제,
스승이나 이웃 친구,
직장 동료 혹은 선 후배 얼마나 많은가?
은혜를 배은 망덕하지 말자.
* 하나님께서 세계의 이런 유능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셔서 세워주신 우리나라 잘 가꾸고 보존합시다.
세상에 당연한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더 큰 복을 주십니다.
🤩🤩🤩💥한국군이 정말 북한과 전쟁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