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1971년 여름, 미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가 베이징 난웬(南苑) 비행장에 내리면서 한 말이다. 키신저의 이 말은 참 여러 가지 것을 함의한다. 자기가 제국주의자라는 말 같기도 하고 제국주의자가 아니라는 반어처럼도 들린다. 중국에 미안함을 표시하는 말 같기도 하고 오만함을 드러내는 말 같기도 하다. 이 말이 퍽 괜찮아 보였는지 이듬해 봄 중국을 최초 방문한 미 대통령 리처드 닉슨도 북경 칭화대에서, "내가 바로 미 제국주의자 닉슨"이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21년 중국 공산당이 만들어진 이래 공산 중국을 단 한 번도 나라 대우는커녕 정권 취급도 하지 않았던 미국이 어째서 중국에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는지, 그리고 시종일관 미국을 제국주의라고 저주해오던 중국은 왜 미국의 악수 제의를 선뜻 받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최소한 20세기와 21세기 두 세기에 걸친 동서 역사의 핵심을 간파하는 일과 직결된다.
미국과 중국의 화해는 미국 측으로서는 '대 베트남전쟁', 중국 측으로서는 '소련과의 반목' 이라는 현안 난제와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갖는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으로 악화되어 가고 있던 여론을 오히려 적극적인 평화지향정책으로 반전시킬 수 있다고 계산했고, 중국은 가까이 있는 소련으로부터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멀리 있는 미국을 끌어들여 이용한 것이었다.
중미정상화담, 즉 마오쩌둥과 리처드 닉슨의 만남은 1972년 2월에 이루어졌다. 아래 글은 마오와 닉슨이 두 번째 만났을 때의 정황이다. 당시 마오의 건강은 최악의 상태였다고 한다.
- 평생 논쟁을 즐긴 마오쩌둥은 이날도 수십 년 간 적대시하던 미국의 전직 대통령과 논쟁을 벌였다. 헤어질 무렵 천천히 찻잔을 들었다. 손에 힘이 없어 보였다. 건배 제의를 눈치 챈 닉슨도 찻잔을 높이 들었다. 마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들릴락 말락 했다.
“우리는 수십 년간 바다를 사이에 두고 원수처럼 지냈다. 원수 진 집안이 아니면 머리 맞대고 의논할 일도 없다. 원래 싸우다 지치면 친구가 되는 법이다. 서로를 위해 건배하자. 이제 나는 술을 못 마신다. 군자의 사귐은 담백하기가 물과 같다는 말이 있다. 술이 없지만 물은 있다. 물로 술을 대신하자.”
닉슨과 수행원들은 마오의 매력에 흠뻑 취했다. 닉슨도 마오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하며 화답했다.
“세상에 어려운 일은 없다. 등산하듯이 한 발 한 발 기어오르면 된다.”
- 이상 『중국인 이야기』 지문 인용
참고로 1972년 중미정상회담의 대화록은 아직도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2012년 발간된 헨리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On China)』를 보면 이때의 대화가 비교적 상세히 나와 있다. 아마 김명호 교수의 글은 헨리 키신저의 책을 참고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앞에 있듯이 헨리 키신저가 중국 땅을 처음 밟은 것은 1971년 7월이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고전하고 있었다. 미국 내에서는 반전 여론이 고조되어 있었다. 이미 후보 시절 베트남 철수를 암시하는 발언을 한 바 있는 닉슨은 1969년 대아시아 외교노선인 '닉슨 독트린'을 발표해 놓은 상태였다.
① 미국은 앞으로 베트남전쟁과 같은 군사적 개입을 피한다.
② 미국은 아시아 제국(諸國)과의 조약상 약속을 지키지만, 강대국의 핵에 의한 위협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란이나 침략에 대하여 아시아 각국이 스스로 협력하여 그에 대처하여야 할 것이다.
③ 미국은 ‘태평양 국가’로서 그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계속하지만 직접적 ·군사적인 또는 정치적인 과잉개입은 하지 않으며 자조(自助)의 의사를 가진 아시아 제국의 자주적 행동을 측면 지원한다.
④ 아시아 제국에 대한 원조는 경제중심으로 바꾸며 다수국간 방식을 강화하여 미국의 과중한 부담을 피한다.
⑤ 아시아 제국이 5∼10년의 장래에는 상호안전보장을 위한 군사기구를 만들기를 기대한다.
나는 이토록 '뻥'과 미사여구로만 점철된 외교정책문서를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닉슨 독트린이 발표된 것은 1969년의 일이다. 만약 이 독트린대로만 실행되었다면 지금 북미관계나 남북관계는 대폭 개선되어 있을 것이다. 아니, 우리는 이미 통일을 성취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닉슨 독트린 5개 중에서 실천된 항목은 단 하나도 없다. 이것은 닉슨이 워터게이트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한 것도 작은 이유가 되겠지만 우리는 여기에 보다 본질적인 원인이 개재해 있음을 알아야 하겠다.
방금 나는 닉슨독트린에서 실행된 항목은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이 말을 수정하고자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닉슨독트린은 실행되었는데 단지 선별적으로 실행되었다는 점이 핵심이다. 최소한 중국와 베트남에는 이 닉슨독트린이 적용되고 있다. 반면에 한국과 일본에는 이 독트린이 반대로 적용되고 있다. 한편 미국과 조선(북)은 이 독트린을 놓고 대립과 모색을 반복하고 있다.
헨리 키신저와 리처드 닉슨은 자기들 말대로 제국주의자였는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트럼프가 제국주의자라는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제국주의자란 무엇인가? 제국주의자란 강하고 자주적인 상대와는 공존을 모색하고 그 반대인 상대에게는 제국으로 군림하는 '기회주의적인 강자'를 뜻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