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은 그 성격이 어떠하든, 글쓴이의 삶을 반영해야만 그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낼 수가 있다. 그런 점에서 리뷰를 한 편 쓰더라도 글쓴이의 생각이 보이지 않으면, 나에게는 무미건조하게 느껴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저자의 생각과 삶이 충분하게 느껴지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고 여겨졌다. 이 책의 저자는 다양한 수상 경력을 지니고 있는 소설가이지만, 나에게는 무척 생소한 이름이었다. '타인의 역사, 나의 산문'이라는 부제가 의미 있게 다가왔고, 책을 읽는 내내 소설가로서의 저자의 자의식이 강하게 느껴졌다. 여성 문인으로서 활동하면서 느꼈던 다양한 경험과 생각들은 물론,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저자는 그의 산문들에서 아주 진중하게 토로하고 있었다.
소설가인 저자에게 '산문집이라는 형식은 정말로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라는 다짐과 함께, 하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쓸 수도 톱아볼 수도 없는 글들을 모아'서 엮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1부의 맨 앞에 수록된 '여성시라는 장르 규칙'이라는 글에서 시인 박서원의 작품을 인용하면서, 한국에서 여성이 문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와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소설가로 자리를 잡게 되는 과정에서 겪었던 여러 경험들과 생각들, 또는 다른 작가들에 대한 상념들과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기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들이 1부의 글들에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글들을 읽으면서, 글쓰기에 대해서 매우 진중하게 생각하는 저자의 태도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때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삶 속에서 증명하고 싶다'는 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타인의 역사, 나의 산문'이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과거에 이혼한 작은 아버지의 두 딸이 외국에 입양되었고 수소문 끝에 만났던 경험을 풀어놓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지는 글들은 대체로 여성으로서의 자의식과 페미니즘에 입각한 저자의 생각과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에 대한 독후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저자의 유년과 청소년기를 관통했던 1990년대를 '알지 못했던 세계'라고 칭하며 돌아보기도 하고, 우리 사회에서 일상화된 '여성 혐오'의 현상들에 대해서 강하게 문제 제기를 던지기도 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월북작가이자 임화의 부인으로만 평가되는 소설가 지하련의 <체향초>라는 작품에 대한 여성주의적 독법을 다룬 내용이었다. 아마도 최근의 연구들에서는 지하련을 비롯한 여성 작가들에 대한 평가가 새롭게 내려지고 있다고 하니, 작품과 함께 새로운 해석에 대한 글들을 자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3부에 수록된 글들은 대체로 저자가 소설을 쓰면서 소재로 취했던 주변 사람의 삶과 그에 대한 자신의 창작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때로는 소설 속의 등장인물을 작가와 동일시하는 시선에서 움추러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소설가로서의 자신의 작업에 대한 나름의 자부심을 드러내는 내용들이었다. 짧지만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글은 저자가 글쓰기에서 '필드워크의 스승'을 언급한 내용 중에, 최근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게 된 소설가 전성태의 이름을 발견한 부분이었다. 대학생 시절 '빨간 펜을 들고 교정자의 자세'로 작품을 손봐주면서 '그동안 관습적으로 써왔던 잘못된 표현들을 수정'했던 그를 글쓰기의 스승으로 여긴다고 고백하고 있다. 며칠 전 그와 함께 점심을 먹을 기회가 있어 전성태 선생에게 이 내용을 넌지시 전했다. 한참 동안 저자의 대학 시절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대화 주제로 삼았는데, 지인을 통해 듣는 저자의 면모가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 책에 발문을 쓴 소설가 최은영의 '나의 오랜 친구 민정이'라는 글 역시 저자를 이해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고 하겠다. 그동안 저자의 작품을 읽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생각나지 않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자의 작품을 꼼꼼하게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산문이라고 그저 가볍지 않고, 자신의 글과 작품에 대해 진지하게 토로하는 내용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저자의 글을 통해 그가 살아왔던 삶의 내역은 물론, 소설가로서의 자신의 생각을 펼쳐내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었다. 그저 일상을 펼쳐놓고 아름답게만 꾸미려고만 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중심으로 글을 써내려가는 저자의 자세가 더욱 견고하게 느껴졌다.(차니)
출처 https://cafe.daum.net/Allwithbooks/W08g/14?q=%EC%93%B4%EB%8B%A4%EB%8A%94%20%EA%B2%83&re=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