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태화루(太和樓)가 세워진 시내 중심가에는 이전에 로얄 예식장이 들어서 있었다. 막내 누나가 그곳에서 20여 년 전 결혼식을 올렸다. 그 사이 막내 누나 아들이 군대를 다녀오고, 딸은 대학에 다니고 있으니 세월이 유수 같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로얄예식장 건물이 허물어지고 비어있던 자리에 지난 2014년 4월 태화루가 중건돼 120만의 시민 품으로 다시 돌아왔었다. 우리 조상들은 `명당`이라는 좋은 자리에 터전을 닦고 집을 지어 집성촌을 이루고 대를 이어 살았다. 국경을 쌓고 방비를 해도 나라끼리 전쟁을 하거나, 가뭄이나 흉년으로 나라에 기근이 들면 온 백성이 삶을 걱정해야 한다. 또 갑작스레 질병이나 집단 전염병이 나돌면 주검으로 변하는 백성들이 수두룩했다. 이런 까닭에 백성들은 늘 태평성대(太平聖代)를 꿈꾸며 마음속으로는 평화와 안식을 염원했다. 그래서 산 좋고, 물 좋고, 경치 좋은 곳곳마다 정자나 누각이 세워졌는데 이는 비단 풍류를 즐기고, 여가생활을 누리기 위한 것만 아니었다. 이곳에서 왕들과 신하들은 국사(國事)를 논하며 어떻게 하면 백성들을 좀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할 것인가 궁리했던 것이다. 태화루는 진주의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와 함께 영남을 대표하는 누각으로 울산의 전통성과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은 대표적 유적이다. 태화루는 1749년대 학성지 울산지도에 이름이 등장한다. 1910년대 이 지역은 태화나루로 이용됐고, 1960년대 태화교가 건설될 무렵엔 밭이었다가 2007년 로얄예식장이 들어섰다. 그리고 지난 2014년 태화루가 복원됐다. 임진왜란 당시 소실됐던 태화루가 다시 중건되기까지 400년의 역사가 흐른 셈이다. 지금 우리는 태화루의 절경을 값없이 즐기고 누리지만 한편으론 슬픈 역사의 파란만장함이 이곳에 깃들어 있다. 태화루란 이름이 뜻하는 대로 참된 평화는 평소 그다지 귀한 줄 모르다가 잃었을 때야 비로서 값진 진주였다는 걸 알게 되는 하늘이 베푸는 은총과 같은 것이다. 태화루에 오르면 동서로 길게 드리운 태화강의 부드러운 곡선과 강의 둔치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바람에 흔들리는 십리대숲과 건너편의 남산도 가깝고, 태화교를 건너는 차량들의 연잇는 물결과 도시의 높은 마천루 건물들도 보인다.
주변의 사통팔달 열린 도로마다 차들이 분주히 오가고, 바로 앞 태화시장은 5일장마다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산책하며 운동하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 라이더들도 발길이 가볍다. 유유자적 바람 따라 밀려나는 구름을 품은, 계절 따라 다른 얼굴을 하는 하늘도 파랗게 드높다. 밤에도 야경이 좋아 사람들이 즐겨 찾는 태화루는 오늘도 방문객에게 말없는 미소를 짓는다. 태화루를 찾는다면 자가용으로 5~10분 거리의 함월루도 같이 방문해도 유익할 것이다. 함월루는 강을 끼고 있는 태화루와 달리 함월산 중턱에 위치해 같은 듯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중구 성안동 경찰청 바로 맞은편의 함월루는 2015년 세워져 데이트하기 좋고 야경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이름나 있다. 해마다 정초에 새해맞이 해돋이 행사를 실시하면 2천여명의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새해 첫 일출을 가슴에 안고 소원을 빌고 있다. 산에 위치하고 있으니 잘 닦인 조붓한 산길을 경쾌한 걸음으로 산책해도 좋고, 바로 아래 휴게실에서 국산차를 저렴하게 음미하며 쉬어갈 수도 있다. 함월루는 새로 들어선 울산 혁신도시의 본사 건물들과 시가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야간에는 저 멀리 울산대교 불빛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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