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Ⅱ-76]40년만에 처음 들어보는 사투리
고향으로 내려온 지 7년, 아내가 있는 멀쩡한 넘이 왜 월말부부로 사느냐고 묻는 이가 많다. 왜 그럴까? 요즘 가끔씩 홀로 자문할 때가 많다. 처음엔 홀로 계신 아버지를 모신다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요양원에 가신 마당에 농사를 본격적으로 짓는 것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시골의 큰 집을 차고앉아 혼자 살 필요는 없다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대처생활 40여년 동안 노후의 삶은 고향에서 마치겠다고 작정한 ‘나홀로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도 있지만, 내가 태어나고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고향이 나의 영원한 안식처(安息處)일 거라는 생각은 확실했다. 애향심(愛鄕心) 때문이 아니었는데, 7년 정도 살다보니 없던 애향심도 생겼다. 고향이 있어도 이런저런 상황으로 가지 못하는 많은 이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참 행복한 놈이지 않은가.
더구나, 내가 태어난 방, 딱 그 장소에 편백나무 침대를 놓고 잠을 정할 때마다 ‘고종명’(考終命)을 생각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있듯, 나는 그곳에서 쉬이(수월하게) 자연사(自然死)하기를 진심으로 빈다. 그리고 영원한 사랑의 대명사, 우리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우리들의 ‘큰 산’ 아버지야 당신의 아버지, 당신의 할아버지, 두 분의 인생보다 이미 열 살을 더 사시고 계시지만(올해 100세 상수上壽를 맞았다), 나는 아버지의 장수(長壽) 유전자만큼은 이어받고 싶지 않다. 훗날, 그것이 10년 후, 15년 후일지 모르지만, 나의 의지로 가능한 ‘죽음의 방법’에 대해서도 여러 번 생각해 봤다.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나무래도 할 수 없지만, 고향에 사는 빼놓을 수 없는 이유 하나가 ‘언어’(言語)라고 하면 좀 엉뚱할 것인가? 아니다. 나는 ‘고향의 말’이 좋다. 어머니 자궁 속에서부터 들었던 ‘탯말’을 어느 때 들으면 왜 그런지 나는 기분이 좋고 행복해진다. 할머니가, 어머니가 자주 쓰시던, 오래 전에 잊혀진 말들을, 고향의 누군가로부터 들으면 나는 왜 박수를 치면서 좋아하고 신기해하는 걸까? 남원 사매면의 한 카페에서 발견한 『전라의 말들』(손정승 지음, 유유출판사 2024년 펴냄, 213쪽)이라는 책을 보고 반색을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전라도 토박이 말로 이뤄진 문장 100개를 예시하고 간단한 설명(풀이)를 한 것인데, 하나하나 읽을 때마다 그 ‘찰진 맛’에 “역시 우리말이야” 연신 감탄했다. 그 책의 부제는 <이것을 읽어블믄 우리는 거시기여>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는가? 또한 『전라도 우리 탯말-어머니와 고향이 가르쳐준 영혼의 말』(한새암 등 공저, 소금나무 2006년 펴냄, 336쪽)이라는 책을 오래전부터 내가 애장(愛藏)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탯말을 아시는가? 우리 언어와 국어의 제대혈(臍帶血)이 곧 탯말이다. 이해가 되시면 당신은 언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다.
아무튼, 사설이 길어졌지만, 지난 토요일 남원 어느 횟집에서 7인이 주고받은 ‘우리의 말’로 그날밤 우리는 아주 ‘풍성한 시간’을 가졌다. 나이 16세에 고향 남원을 아예 등진 58년생 독보적인 전각예술가 친구를 환대하는 자리에서, 그 친구가 하는 첫 마디 “(자신을 반겨주니) 객광스럽다”였다는 말에 좌중이 뒤집어졌다. ‘객광스럽다’는 무슨 뜻인가? 어원도 모르지만, 뭔가 고맙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한다는 뜻일 게다. 1986년에 돌아가신 할머니로부터 여러 번 들었던 말을 40여년만에 처음으로 들었다. 아아-, 이런 말을 아직도 쓰는 전라도출신 친구가 있구나. 객지에서 50년도 넘게 떠돌았건만, 이런 탯말을 잊지 않고 적재적소에 사용할 지 알다니? 놀라웠다. 그 친구가 연이어 쏟아내는 전북지역의 사투리 내지 방언 때문에 화제가 만발했다. 너도나도 권하는 술잔에 그 친구가 천연덕스럽게 쏟아내는 “왜 그리싼대요?” “왜 그리싸시오?” “욜로 뽀짝 오시오” “아심찬허요” “섬닷허요” “내동” “거시기 머시기” 하는 바람에 웃음이 그칠 줄 몰랐다. 원주민들보다 전북지역의 사투리와 방언을 몇 배 더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예술가 친구는 아마도 가출이 아닌 출가를 한 고향을 한시도 잊지 않고 산 것같았다. 그가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너무나 오랜만에 들은 말들이기에 그 말의 뜻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아 우리는 그 뜻에 대해 설왕설래했다. 우리의 언어가 이런 ‘진기한 풍경’을 낳은 것이다.
‘왜 그리싼대?’라고 말할 때 고저장단(高低長短)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되는데 왜 그렇게 요란스럽냐?는 뜻이나, 특별히 싫지 않다는 뉘앙스가 담겨야 한다. 끝부분을 조금 길게 빼야 하는데, 타지방 사람들은 흉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뽀짝’은 ‘가까이’라는 뜻의 부사이고 ‘아심찮하다’는 ‘미안하고 고맙다’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섬닷하다’는 차린 반찬 등이 조금 부족하고 어설퍼 미안하다는 뜻의 겸양어이다. ‘내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의 뜻이고, ‘거시기’는 어떤 상황에서는 쓸 수 있는 ‘만능언어’로 생각하면 된다. 얘기인즉슨, 이런 말들이야 우리 언중(言衆)사회에서는 사실 천지삐까리이지만, 불쑥 불거진 몇 단어 때문에 그날의 모임이 한층 즐거웠다는 말이다. 『전라의 말』 책의 저자 손정승씨는 100개의 문장을 예시하며 “시상에 이라고 귄있는 말이 이쓰까?”라고 했다. ‘귄있는 말’은 성기고도 절묘한, 꼬숩고도 구수한 말을 일컫는다. 이래서, 이렇기 때문에 ‘전라의 말’은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지만, 여전히 살아있다는 말을 하고자 나는 이 꼭두새벽에 이 졸문을 쓴다. 좌우지간, 40여년만에 처음 들어본 ‘객광스럽다’는 말 때문에 허벌나게 웃은 그 밤이 또 그립다. 고향을, 고향의 말을 ‘1도’ 잊지 않고 살아온 친구야,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