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여행코스 만들기
아침에 침대에서 망중한을 즐기며 나와 바깥양반은 이틀 남은 속초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기 위한 대화를 나눴다.
"오늘은 어디로 가?"
"안 정했어. 웬만한데는 다 가봤고. 오빠가 정해."
"흐응...뭐 먹고 싶은 거는 없고?"
"물회만 못가본데로 가보자. 아야진에 있어."
"그럼 그쪽에서 몇군데 찾아볼게."
나는 바깥양반이 외출 채비를 하는 동안 동백이를 보며, 몇군데 카페를 찜해서 카톡으로 링크를 보내뒀다. 바깥양반이 나중에 폰을 보고 승인을 하는 구조다. 바깥양반은, 마음에 드는 곳 두곳 정도를 골랐고 우리는 오늘의 일정을 시작했다.
16일째의 속초. 날씨는 쾌청하고 포근.
그렇게 찾아간 첫 아야진 카페의 경우, 핫플레이스였다. 바깥양반이 무척 마음에 들어하는.
"왜 여기 미리 찜 안해놨었어?"
"아니. 검색해서 나오긴 했었는데. 이런 데인 줄은 몰랐지."
"흐음...검색이 모자랐군."
바깥양반은 또 신이 나서 층마다 수십장의 사진을 찍었고, 2층부터 3층, 4층의 루프탑까지 돌아다니며 우리는 곳곳 인증샷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이곳은 전경의 오션뷰, 후경의 설악산뷰까지 바깥양반이 딱 좋아하는 곳인데다가 브런치까지 꽤나 잘 팔리는 곳인듯. 그런데 왜 여길 미리 와보지 못했는가, 그것도 아야진이라는 매우 쓸만한 입지에. 그것은 바깥양반의 카페 초이스의 미적감각에 무언가 충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검색 과정에서는 있었고 실제로 와보니 전혀 달랐더란.
"아 오빠가 미리 좀 찾아주지."
"...나에게 선택권을 주긴 하니. 그래도 오늘 와봤으니 다행이네. 여기 스킵했으면 아쉬웠을뻔."
"응. 나중에 또 와보자."
여행 내내 하는 것이 지도 앱으로 카페 찾기다. 바깥양반과 나의 방문지 서칭은 그 방식이 다르다. 바깥양반은 네이버 검색 등을 활용하고 나는 지도 앱에서 실제로 위치 등을 보고 판단한다. 그러니 같은 장소로부터 취득하는 정보도 다르다. 우리의 외출에선 일반적으로, 당연히도, 바깥양반이 미리 코스를 짜고, 짜고, 또 짜고 나서 번아웃이 될쯤에 내게 코스 선택의 여지가 주어진다. 그러니 이번 속초 반달살이에서도 열흘 이상, 바깥양반의 초이스로 꽉꽉 채워진 뒤 3,4일 정도 내가 장소들을 골라보게 되는 일.
나의 경우엔, 바깥양반과 어느 식당, 어느 카페를 가든 그곳에서 얻고자하는 경험이 좀 다르기 때문에 내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바깥양반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경험이 된다. 그 경험을 받아드링고말고는 바깥양반에게 달린 것인데, 오늘은, 썩 괜찮잖아.
미리 미리 내 견해를 들어주었으면 좋겠으랴먄 누구에게나 우선순위는 있다. 일단 나에게 우선순위는 새로운 경험들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바깥양반이 얻고자하는 경험이 나와는 역시 다르기 때문에, 나는 바깥양반의 결정에 따라 여기저기 가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새롭고, 이따금 유익한 경험들을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선순위는 충족된다. 바깥양반의 경우 자기가 꼭 가보고 싶은 곳들을 가는 것이 우선이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그러므로 장기 여행을 와서는 거의 반드시 이러한 흐름이다. 우리 둘이서 그런 부분에서 죽이 맞으니 썩 재밌게 산다.
자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속초에 오면 물회의 우선순위가 있다. 우리의 경우 봉포가 1순위, 청초수가 2순위다. 그리고 속초에 여행을 올 경우 반드시 물회와 닭강정이 1,2순위에서 경합이 이루어지고 나머지 음식들이 그 뒷순번이다. 짧은 일정으로 들를 경우 봉포나 청초수에서 물회를, 만석이나 기타 닭강정 집에서 닭강정을 사고 나머지 음식들을 택한다. 그러니, 일반적으로는 이 우선순위에 의해서 다른 숱한 물회집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물회는 먹어야 하는데, 검증된 맛집 외에 왜 다른 물회집, 다른 닭강정을 먹는 시도를 한다는 말이지.
요, 영순네횟집의 경우 아야진에 있어서, 전체적으로 일정을 짜기가 원만하기도 하고, 바깥양반이 손수 검색해서 찾은 곳이고, 여행의 마무리에 물회는 한번 더 먹어야 하고, 하여 방문했다. 이번 여행에서 물회는 네번째. 16일째에 네번을 먹었으니 용케도 물회를 피해온 셈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1박 2일의 일정에서는 방문을 고려하기 어려운 식당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곳은, 아마도 속초나 고성, 강릉 일원에 묻혀있을지 모를 수많은 물회 맛집들도 그러할 테지만, 청초수나 봉포에 뒤지지 않는 맛집.
전복과 해삼이 들어간 특물회가 2만원으로 청초수의 시그니쳐메뉴인 해전물회보다 싸다. 일반 물회는 1만5천원이므로 봉포의 기본 물회 16000원보다 또 싸다. 가게의 입지와 사이즈를 보면 충분히 알법한데, 전국구 대기업인 두 집에 비해 이곳은 콩알만 구멍가게다. 그런데 차를 대고 가게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들어와서 보는 것이 또 틀린 것이, 기계가 음식을 날라주는 앞의 두집과는 달리, 그리고 다른 수많은 물회집들과 마찬가지일 테지만, 점원분들께서 깔끔하게 복장을 차려입으셔서는 아주 빠릿빠릿하게 접객을 하신다.
메뉴의 가격과 내부의 분위기, 그리고 알음알음으로 가게를 가득 채운 많은 손님들로부터 이미 좋은 인상을 받았는데 기본 찬 역시 앞의 두집보다 낫다. 특히 이 미역국의 경우에, 따로 사진을 찍을만큼 맛있었다. 원래 물회집의 상당 지분을 이 미역국이 차지한다. 뜨끈한 미역국으로 먼저 속을 달래고 나서 시원하게 물회를 들이키는 것인데, 미역국이 이리 맛있으니 봉포나 청초수가 생각이 날 턱이 있나. 함께 깔리는 단호박찜, 꽁치졸임, 파래전 등 단순한 구색맞추기용이 아니라 하나 하나 제 몫을 하는 반찬들이 또 반갑다.
본론인 물회와 성게알비빔밥을 말하자면 둘 다 맛있게 먹었다. 양념장이야 시고 맵고 달고 시원하지. 회가 중하다. 1인분씩 시킬 수 있다는 점도 메리트인데, 사실 회전율이 높은 청초수가 해전물회를 2인분 단위로 끊어파는 것이 고약한 상술이지, 1인분으로 이정도 양에, 이 구성이면 더 할 나위 없다. 비빔밥에 성게알은 넉넉한데, 다만 이 철이 좀 쓴맛이 돌 때라고. 그래도 성게알은 성게알인지라 바깥양반은 반드시 시켜서 싹싹 비운다.
여행에서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여행의 본질이기도 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영순네횟집이라면 청초수나 봉포보다 나으면 낫지 덜하지 않다. 게다가 커피머신까지 있다. 어김없이 나는 굳이 한잔 뽑아서 차 앞에서 잠깐 풍경을 바라보며 홀짝거린다.
속초에 온 첫날에 우리가 좋아하는 봉포머구리집을 갔고, 손님을 데리고 청초수는 두번을 갔다. 그리고 나서야 네번째로 영순네횟집에 온 셈이다. 그러나 다음에 속초를 가서 물회를 먹는다면 아마도 여기서 먹을 것 같다. 찰옥수수버무리 말고는 도통 손이 가지 않는 봉포머구리집의 밑반찬보다, 그리고 웨이팅을 해가며 사람구경에 끼어서 해전물회를 비싼 값에 먹는 청초수보다 훨씬 만족도가 높다.
다만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추천을 한들, 누구를 데리고 간들, 앞의 두집이 있는데 굳이 영순네횟집이나, 다른 많은 물회집들이 소중한 1박 2일의 일정에서 간택이 되기란 쉽지 않을 터다. 먹어야 맛을 알테고 먹어봐야 내가 아는 그맛일 것이면 이왕이며 여러곳을 가보는 것이 좋지만, 오늘날의 미식이란 8할은 인증이요 2할은 라이크 카운트라. 그것이 차라리 고맙다. 아껴두고 나만 오기 딱 좋은 맛집.
그리고 카페 두곳을 갔다. 한곳은 조용한, 다른 한곳은 오션뷰를 갖춘, 발리 느낌의.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길이니 우리를 받아주는 곳이 어디든 고마운 일이다. 나는 사람 붐비는 것을 딱 질색으로 하고 바깥양반은 핫플레이스에 와 있다는 만족도가 충족되길 원한다. 그러나 여행의 막바지에 내가 고른 곳 하나, 바깥양반이 고른 곳 하나에 들러서 그럭저럭 한적함을 즐기니 괜찮은 마무리. 그리고 어느곳에서나 커피는 그냥저냥하다. 카페는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데 커피를 제대로 다루는 곳은 없고, 제대로 좋은 커피를 만든다 한들 그것 때문에 오기보단 분위기와 오션뷰가 방문을 정하니, 손님의 입장에선 뭐라 따질 구석도 없다.
다만 여행의 막바지의 한적함 속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참으로 여유라곤 없는 일. 아이가 순해서 잘 참아주다가도 한번 툭 울음을 터트리면 감당이 쉽지 않다. 그러나 또, 어느 곳에 와서든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내 살피는 것을 보면 그것이 기쁘다. 끝없이 새로운 것을 확인하고 그를 통해 지금의 인지자극이 풍성해지길 바랄 뿐.
토요일인지라 오늘의 저녁은 숙소로 돌아와 놀면뭐하니를 보며 회를 먹기로 했다. 여행의 새로운 경험과 우선순위를 고려해 청초호에 있는 청호활어센터에서 구매를 결정했다.
여기가 사실, 청초호에 접해 있고 중앙시장에서 설악대교 방면으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큰 건물이라 속초에 여행을 왔을 경우 수차례는 보는 곳인데 역시나 외지인으로선 잘 오게 되지 않는 곳이다. 속초에서 싸게 회를 먹으려고 하면 중앙시장이 있으니, 그곳에서 닭강정도 살겸 두루 두루 해서 오게 되지 굳이 찾게 되지 않는다.
그러나 청호활어센터가 서울에서 흔히 보는 수산시장 스타일에 가깝고, 가격도 중앙시장보다 아주 약간 저렴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적하다. 중앙시장 지하의 수산시장에서 회를 사는 것은 무척 고역인데, 그 수많은 집들 중에서 한 곳을 고르는 것도 쉽지 않으려니와 그중 인기있는 집을 가서 회를 썰어달라고 하면 2,30분씩 기다리게 되는 일이 흔하다. 반면에 여기서 회를 사면 미리 전화를 해두고, 도착해서 차에서 내려 1분 이내에 픽업 후 다시 탈 수 있다. 그런 조건인데 가격도 저렴. 방어 한마리를 3만5천원에 구매해 회써는 값만 냈는데, 현금이 딱 천원 부족했는데 깍아주셨다. 우리 말고도 사람이 그럭저럭 있는 편이었는데 아마도 현지인들은 이곳에서 회를 썰어가는듯하다. 아니면 이마트에서 그냥 회를 사거나.
김밥은 지난번에 떡볶이를 먹었던 그때그곳. 닭강정도 회도 다 재끼고 김밥 하나 이거 사러 중앙시장까지 다녀오다니.
오늘의 여행은 이렇게 나와 바깥양반 각각 새로운 도전과 경험으로 풍족했다. 유명세나 관습에 기대지 않고 우리가 나름 새로이 개척한 집들로만 가득찬, 그런 알찬 하루.
소울브릿지
고성 봉포해변의 핫플. 그도 그럴 것이 봉포해변도 아름답고 숙박도 워낙 많다. 느즈막히 일어나 오션뷰 브런치를 먹기에 여기보다 좋은 집이 또 없을듯하다. 2층까지가 식사공간, 3층이 차만 마시는 공간. 루프탑 공간이 속초 고성 여러 카페 중에 또 단연 탑클래스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