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우정을 꿈꾸며
문보근
저녁노을처럼
황혼을 근사하게 함께 물들어 갈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면 비 온다고
눈 내리면 눈 내린다고 소소한 일까지
소식 전하고 싶은 친구,
자치기 놀이 하자고 아이처럼 졸라도
"이 나이에 무슨" 하고
핀잔을 주기보다는
"그래"하고 농담을 받아줄 줄 아는 친구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대전쯤에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의 관계는 난로와 같아서
멀면 관계가 추워지고 가까우면 쉽게
상처를 주고받기에 적당한 거리라면 좋겠다.
나이 들어서는 헐렁한 옷이 편하듯
우아한 사람보다는
푸성귀같이 수수한 인품이
황혼을 함께 하는데 더 좋으리라.
그는 재력가가 아니어도 좋다.
지위가 낮아도 좋다
다만 바위처럼 과묵하고
아랫목처럼 은은했으면 좋겠다.
비 오는 날 비 맞고 지나가는 사람을 위하여
대문밖에 우산 하나 내놓는 센스와
눈 내리는 언덕을 빗질하는 따뜻한 사람,
새에게 새장을 만들어 주기보다는
창문을 열고 하늘로
새를 날려주는 사람,
찬 바닥에 누워 잠든 사람 앞을 지나
한참을 가다가 다시 되돌아 와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덮어 주고는
자신은 떨어도 좋은 사람.
그 사람이 내 친구가 된다면
나는 그 친구로 인하여 크게 부끄러운 자 되어
결국은 나도 이 시대에
초 한 자루 되리,
인생은 깊고 깊어 사는 것
그래서 누구나 황혼은 너덜 너덜대는
옷 한 벌 같은 것.
그래도 괜찮은 것은
그는 바늘이 되고 나는 세실로 깁고깁어
황혼이 아름다워 지리,
잘 익은 친구는 한 그루 연리지 나무,
욕심껏 따로따로 자랐지만 고목이 되어서는
서로에게 그늘이 되어주는
참다운 친구,
어린 시절은 재밌는 동화책 한 권이라면
황혼 때는 심오한 시(詩)집 한 권.
그래서 어릴 적엔 새를 노래하다 하루가 가고
황혼 때는 갈대숲을 거닐며
인생을 노래하다 세월이 간다.
그래서 어릴 적엔 눈사람을 위해 꿈꾸고
황혼 날엔 강물에 빠지는
눈발 대신 악몽을 꿈꾼다.
친구는 꽃송이라면
우정은 향기 같은 것.
꽃송이는 너와 나라면 향기는 우리인 것이다.
나는 황혼을 시처럼 살고 싶.다
그런데 그 친구는 시 낭송을 좋아했으면 하는
까닭은 왜일까?
나는 시를 쓰고
그 친구는 시 낭송을 한다면
우리의 황혼이 얼마나 새뜻할까?
그 친구와 만남도
아주 특별한 동기였으면 하는 것이
실수로 잘못 건 내 전화가
인연이 됐으면 좋겠다.
"여보세요
김현동 씨 휴대폰 아닌가요?"
"잘 못 거셨네요,
나는 김동현입니다....."
이 에피소드를 오래오래 되뇌며
황혼 우정이 익어가고 싶은 것이다.
카페 게시글
세상사는 이야기
황혼 우정을 꿈꾸며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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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0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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