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진보학자. 1929년 평북 삭주군 대관면에서 태어났다. 1957년부터 1964년까지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 1964년부터 1971년까지 조선일보와 합동통신 외신부장을 각각 역임했다. 1960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신문대학원에서 연수했다. 1972년부터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겸 중국문제연구소(이후 중소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 박정희 정권에 의해 1976년 해직되어 1980년 3월 복직되었으나, 그해 여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다시 해직되었다가 1984년 가을에 다시 복직되었다.
1985년 일본 동경대학 초청으로 사회과학연구소에서 그리고 서독 하이델베르크 소재 독일연방 교회사회과학연구소에서 각기 한 학기씩 공동연구에 종사하였다. 1987년 미국 버클리대학의 정식부교수로 초빙되어 'Peace and Conflict' 특별강좌를 맡아 강의하였다. 1995년 한양대학교 교수직에서 정년 퇴임한 후 1999년까지 동대학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를 역임했다.
리영희의 글은 그가 겪어 온 역사적 사건들 속에 동시대의 통념을 뒤엎는 진실의 힘을 담고 있다. 현대사와 국제정치의 현실을 보는 시각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불러일으킨 고전적 계몽서로 평가받는 그의 저서들은, 중국관계·베트남전쟁·일본의 재등장 문제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해내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또한 사랑과 증오가 교차하는 극단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저자의 육성으로 전하는, 지식인의 삶과 사상에 관한 기록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주요 국면을 살펴보기도 하였다. 한 인간으로서 부딪혀야 했던 갈등과 번민, 고통의 순간을 솔직하고 가식 없이 담아낸 그의 체험이야기는 재미와 감동을 더해주며, 나아가 한국 현대사에서 한 인간이 감당해야 했던 고뇌의 무게를 짐작하게 한다.
지은 책으로 『전환시대의 논리』(1974), 『우상과 이성』(1977), 『분단을 넘어서』(1984), 『80년대 국제정세와 한반도』(1984), 『베트남전쟁』(1985), 『역설의 변증』(1987), 『역정』(1988), 『自由人, 자유인』(1990), 『인간만사 새옹지마』(1991),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 『스핑크스의 코』(1998), 『반세기의 신화』(1999), 『대화』(2005) 및 일본어로 번역된 평론집 『分斷民族の苦惱』(1985), 『朝鮮半島の新ミレニアム』(2000)이 있다. 편역·주해서로는 『8억인과의 대화』(1977), 『중국백서』(1982), 『10억인의 나라』(1983)가 있다.|||1941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사를 마치고 동대학원을 졸업해 1966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1972부터 1974년까지 중앙대학교 등에서 강사로 지냈으며, 1974년 긴급조치 시기에 문학인사건으로 투옥되었다. 『월간독서』『한길문학』『한국문학평론』 등 여러 문예지의 편집주간으로 일했고, 1979년에서 1983년까지 ‘남민전’ 사건으로 복역하였다. 1998년 복권되어, 현재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문학평론가로도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민족의 상황과 문학사상』, 『문학과 이데올로기』, 『우리 시대의 소설 읽기』, 『한국현대문학사상사』 등을 비롯해 20여 권이 있다. 『민족의 상황과 문학사상』에서 그는 식민지시대 이래 우리 민족이 겪어온 외부적 압력과 내부적 분열의 극복이라는 민족적 과제에 우리 문학이 어떻게 대응해왔는가를 규명함으로써 민족문학의 실상과 그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첫댓글 차라리 노무현 시대나 이명박 돈지옥 이후에 돌아가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합니다. 험난했던 인생만큼이나 죽음도 험난한 시대이니 그분의 운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ㅠ.ㅠ 이제 또다른 우상과의 싸움은 바로 우리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