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회근선생은 유마경강의에서 염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불법은 곳곳에서 念를 말한다.(예:사념주, 염불) 그러므로 염한다는 것에 대해 반드시 정확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염한다는 것은 <의식상에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입으로 외우는 것이 아니다. 보살 경계에서의 염주(念主)란, 생각이 끊어져 없어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분별을 일으키지 않고 생각 생각마다 언제나 청정자재함에 머물며 영원히 정(定) 중에 있음을 말한다.
정이란 정좌와 같지 않다. 생각이 청정해지고 난 이후에야 정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이 수행하면서 정좌를 해도 왜 정을 얻을 수 없을까?
그 이유는 첫째, 염한다는 것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고, 둘째, 염이 정을 얻을 수 없고, 정념(淨念)을 식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잡념이 어지럽게 일어난다.
여러분 스스로 반성해 보라. 여러분이 앉아 있을 수 없을 때, 도대체 몸이 앉아 있을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이 앉아 있을 수 없는 것일까? 여러분들은 신체 감각이 견뎌갈 수 없다고 여기겠지만, 사실 본질적으로 말하면 역시 마음이 앉아 있을 수 없는 것으로 바로 염의 문제이다. 믿지 못하겠거든 총으로 당신을 겨누고 있으면서 앉아 있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할 경우 틀림없이 당신은 앉아서 버틸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정념(淨念)이 정을 얻은 이후에야 비로소 총지, 즉 다라니를 얻을 수 있다.남회근 송찬문역 유마경강의, 마하연/2016, 61쪽
불법에서는 서원(願)과 실천행(行)을 말하는데, 아주 많은 사람들이 처음 발심해서 부처님을 배울 때는 그런대로 좋은데 오래 지나다 보면 사람됨의 그림자조차도 안 보입니다. 정말 슬픈 일입니다.
6바라밀 중에서 어느 한 바라밀을 전일하게 닦아 성취가 있을 때에는 나머지 바라밀들도 다 관통하게 될 겁니다. 진정으로 성취가 있게 되면 역량으로 변하게 됩니다. 예컨대 보시의 힘, 지계의 힘, 인욕의 힘 등등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배우면서 정좌, 염불, 예배를 해도 성취가 없는 것은 역량을 형성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수행의 선념(善念)의 염력이 형성되지 않아서 여전히 수시로 자기가 자신의 금생 혹은 과거생의 각종 선악의 업력습기에 끌려가기 때문입니다. 수행성취가 있는 보살은 방편력이 있기에 언제 어디서나 6바라밀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겉모습은 드러내지 않는데, 이것이 방편력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6바라밀에 도달하고 방편의 힘을 성취하여 한 가지도 원만하게 구비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