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이번 여름 안거는 연일
불볕 더위로 이어지고 있다.
오랜만에 여름다운
여름을 보내는 듯하다.
한낮의 기온이 33도를 웃돌고 있다.
이런 찌는 듯한 더위에는
산중이라고 해서 크게 나을 게 없다.
넉넉한 숲 그늘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툇마루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줄기에서 땀이 끈적인다.
이런 날은 아랫절에 한번씩 내려
갔다 오는 일도 예사 일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속옷을 새로
갈아입어야 할 정도이다.
올 여름 안거를 나면서 처음으로
시원한 계곡 물에 몸을 담갔다
물 속이 얼음마냥 차가워 얼마
있지 못하고 몸을 말리곤 하였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느라고
숲 속 깊이 들어간 탓이다.
입은 옷을 훌훌 벗고서 물 속에 뛰어
들자니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다.
첨벙첨벙 물놀이를 즐긴 일이
좀 우습기도 하다. 이런
맛도 산중에서 사는 재미이다.
여름철에 가장 곤욕스러운
것은 바로 공양 시간이다
사시巳時 의 법 공양.
점심 때는 가사까지 걸친 법복
차림으로 공양을 한다
더운 음식이 나오는
날이면 더욱 곤욕스럽다
오늘 낮에는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스님네마다 밥 먹는
일보다 땀을 훔치는 일에 더
신경을 쓸 정도였다.
공양을 끝냈을 땐 마치
한증막에서 땀을 뺀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 있었다.
흠뻑 젖은 장삼을 벌써
몇 번째 빨았는지 모른다.
이쯤 되면 밥 먹는 일도 귀찮아진다
정말 한끼 공양에서까지
수행의 엄격함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더운 날이면 내 일상
에도 방일의 틈이 생긴다.
마당 한쪽에 일감을 쌓아
놓고 벌써 며칠째 미루고 있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일에는
이런저런 핑계를 앞세우는 게으름이
습관으로 굳어질까 무섭다
더위 때문에 크게
움직이는 일이 귀찮아진 것이다.
마음까지 지친 탓일까.
방선패를 내걸고 하루쯤 수행
일과를 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선원에서도 정진을 좀 느슨
하게 하자는 얘기가 있었단다.
이런 날은 어느 쪽이건 사정이
같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공부에 완급을 두자는 뜻이다.
선원의 입승 스님은 다른 날과
같이 입선 죽비를 늦추지 않았다
마음 공부에 덥고 추운
날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말로
수좌 스님들의 입을 막았다.
공부하기를 너무 조이거나
너무 늦추지 말라고 하지만
제대로 지켜지는 일은 거의 없다.
나부터도 그렇다.
조이기보다는 늘어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같은 초참은
일관성 있는 공부 분위기를 익혀
나가는 일이 우선이 아닐까 싶다.
그런 까닭에 공부하기에
대중 처소보다 좋은 곳은 없다
"몹시 춥거나 더울 때에는
어떻게 해야 그것을 피할 수
있는지요. 스님?''
"더위도 추위도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겠느나."
"스님, 그러면 더위도
추위도 없는 곳은 어디입니까?'
''더울 때는 그대 자신이 더위와
하나가 되고, 추울 때 또한
그대 자신이 추위와 하나가 되라."
벽암록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동산스님은
참으로 명쾌한 가르침을 주셨다.
더위에 끄달리지 않는 방법은
내 자신이 더위가 되는
방법밖에는 별 도리가 없다.
마음에서 일으키는 덥다는
분별이 여름을 더욱
짜증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여름이 더운 것은 마땅한 이치"
이지 하는
마음의 운용이 필요하다.
땀 흘릴 작정으로 팔 걷어붙이고
나서면 덥다는 느낌이 훨씬 덜하다.
더위와 하나가 되어서이다.
참다운 피서법은
더위에 쫓겨다니는 게 아니라
더위를 잊을 때 가능한 일이다.
떡갈나무 숲에서 울어
대는 매미 소리가 싫지 않다.
무엇이든 제철을 만나야
제 맛이 나는 법이다.
무더위가 없는 여름은 오히려
우리를 맥빠지게 할 듯하다.
농작물도 무더위 속에서
잘 자라고 병충해도 적게 입는다.
우리 텃밭에선
오이가 주렁주렁 커 가고
호박 줄기도 마냥 뻗어가고 있다.
여름 더위는 또 열매
속을 알차게 영글게 한다
담장 쪽에 서 있는
석류나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열매 익는 소리가 눈에 보인다
뒷문을 열 때마다 조금씩 벌어지는
석류를 보는 일이 그래서 즐겁다
자연의 질서를 보고
있으면 고르지 못한 내 일상이
부끄러워질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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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현진스님
고구마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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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7.2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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