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경에서 발보리심을 일으킨 이후 불교적 생활의 두번째 측면은 반야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이다
화엄경에서 이 실천은 깊게 보현보살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보리의 삶 (보리행) , 즉 깨달음의 삶은 보현행이다
보현보살은 그럼으로써 화엄경에서 문수보살과 대비된 채 조명된다 인격이라는 관념이 여기에서 도입 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반야경에서 반야는 온통 비인격이다
스즈키 212 선에서 화엄으로
스즈키 선사가 보현행원 = 깨달음의 행 증명(신나) 각주 보완
첫댓글 깨달음의 삶은 보현행이다 !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마하반야바라밀 _()()()_
고맙습니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마하반야바라밀_()()()_
다시보니
반야경에서 반야는 온통 비인격이다
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습니다._()()()_
뭉치면 반야, 펼치면 화엄이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반야는 볼수도 느낄 수도 없는 것이니 현실을 살고있는 중생들은 각성이 없다면 알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 비인격인 것인데
만약 보현행을 통해 반야를 눈 앞에 펼친다면 대단히 명료하게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문수의 지혜가 보현의 행으로 현전하는 셈이 되니까요.
나의 공경, 찬탄, 공양, 참회의 형태로 너무도 생생하게 알 수 있으니 반야가 인격체를 통해 나타나는 게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