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종말
원제 : Pat Garrett & Billy the Kid
1973년 미국영화
감독 : 샘 페킨파
음악 : 밥 딜런
출연: 제임스 코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밥 딜런
제이슨 로바츠, 존 벡, 케이티 후라도
배리 설리반, 칠 윌리스, 에밀리오 페르난데즈
해리 딘 스탠튼, 리처드 재켈
서부의 무법자 '빌리 더 키드'는 19세기 미국 서부시대의 실존했던 총잡이로 1859년에 태어나 1881년에 사망했고 21살에 사망하면서 21명을 죽인 전설적인 총잡이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당연히 서부극에서는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 졌는데 빌리 더 키드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팻 개럿 입니다.
팻 개럿은 빌리 더 키드와 한때 친했지만 그를 쫓을 수 밖에 없었던 보안관인데 빌리 더 키드를 추적하여 살해한 인물입니다. 주로 팻 개럿은 빌리 더 키드의 영화에서 보조역할 정도로 등장하였고, 로버트 테일러, 폴 뉴만, 오디 머피,
에밀리오 에스테베즈 같은 유명 배우들이 빌리 더 키드를 연기했었고, 팻 개럿은 그다지 유명 배우들의 역할이 아니었습니다.
'폭력의 미학'으로 유명한 샘 페킨파 감독이 만든 1973년작 '관계의 종말'은 모처럼 팻 개럿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팻 개럿(제임스 코반)과 빌리 더 키드(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는 절친한 친구관계이지만 무법자와 보안관 이라는 숙명적인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눌 수 밖에 없는 관계입니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관계입니다.
빌리 더 키드 역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팻 개럿 보안관 역의 제임스 코반
전형적인 마초 이미지가 가득한 제임스 코반
샘 페킨파 감독은 '하오의 결투(Ride the High Country 62)'를 시작으로 '던디 소령' '와일드 번치' 등으로 우리나라에 알려진 감독으로 굉장히 마초적이고 폭력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입니다. 월터 힐 부류 감독의 전신 같은 인물이지요. 그가 다시 '서부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든 것이 '관게의 종말'인데 이 시기는 낭만적 서부시대의 분위기를 비틀어버린 '마카로니 웨스턴'외에도 이미 '내일을 향해 쏴라' '솔저 블루' '헌팅 파티' '작은 거인' 등 수정주의 서부극들이 등장하여 서부영화의 영웅주의적 허상이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샘 페킨파 본인도 '와일드 번치' 를 통해서 아메리칸 뉴시네마 시대에 걸맞는 영화를 등장시켰고, 추악하고 폭력적인 서부의 면모를 보여준 바 있습니다.
마초적인 감독의 영화인데 배우 역시 가장 마초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제임스 코반 입니다. 제임스 코반은 60-70년대 활발히 활동한 배우 중에서 찰스 브론슨과 함께 가장 마초적 느낌이 강한 배우로 일종의 '더티 섹시'의 원조 같은 인물입니다. 그가 1960년 존 스터지스 감독의 '황야의 7인'에 등장했을 때 율 브리너, 스티브 맥퀸, 홀스트 부크홀츠, 찰스 브론슨 등 1급 배우들 틈에서 그들보다 비중이 높지 않은 칼잡이 '브릿'역으로 출연하여 엄청난 포스를 보인 이후 '대탈주' '샤레이드' '던디 소령' 등에서 비록 조연이지만 굉장히 강한 이미지를 발산했습니다. 60년대 후반부터 주연급으로도 활약한 그는 비정한 추적을 해야 하는 '팻 개럿'역으로 잘 어울렸습니다.
음악담당에 조연으로도 출연한 밥 딜런
이러한 제임스 코반의 이미지와는 달리 빌리 더 키드를 연기한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은 좀 더 인간적인 캐릭터입니다. '스타탄생' '천국의 문' 등 출연하는 영화들에서 흩날리는 수염과 헝클어진 머리 등 전형적인 자유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준 그는 이 영화에서는 매끈한 생얼로 모처럼 깔끔한 외모로 등장하는데 여전히 자유주의자 같은 모습입니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은 개척시대에서 발전을 거듭하면서 이제 방랑의 무법자 시대는 끝났고, 법과 질서, 재산과 권력이 중요시되는 시대가 되어 갑니다. 팻 개럿은 그런 시대에 순응한 인물이고, 빌리 더 키드는 그런 시대를 거부한 인물로 대조됩니다. 물론 팻 개럿은 여전히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인물인데, 단지 보안관 뱃지를 달고 '법' 집행을 활용하여 여전한 폭력을 휘두룰 수 있는 점이 무법자로서의 포지션과는 다릅니다. 반면 빌리 더 키드는 여전히 서부와 멕시코 일대를 방랑하며 '문명인'의 눈으로 볼 때는 무법자 생활을 하는 처단해야 할 인물이었습니다.
영화의 오프닝은 20세기에 들어서서 빌리 더 키드의 부하들로 추정되는 인물들에게 나이 든 팻 개럿이 살해되는 장면과 1881년 빌리 더 키드와 팻 개럿이 만나는 장면이 교차편집되면서 등장합니다. 둘은 우정을 가진 관계이지만 법과 질서를 사이에 두고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임을 보여줍니다. 빌리 더 키드를 체포하는 대신 떠날 기회를 주는 팻 개럿, 하지만 빌리 더 키드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그곳에 계속 머무르고 며칠 후 팻 개럿에게 체포됩니다. 하지만 그는 보안관 조수를 살해하고 탈출했고, 거대한 현상금이 걸린 빌리 더 키드를 쫓는 팻 개럿의 긴 여정이 시작됩니다.
간지가 나기로는 으뜸인 제임스 코반
폭력과 섹스, 비정함이 함께 어우러진 영화입니다. 전형적인 샘 페킨파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영화인데, 40-50년대의 낭만적인 서부극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입니다. 여기에 놀랍게도 밥 딜런의 음악이 가미되는데 밥 딜런은 노래 뿐만 아니라 배우로도 출연을 합니다. 빌리 더 키드와 친숙하게 지내는, '앨리어스'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칼잡이 역할입니다. 싱어송 라이터이자 컨츄리 뮤지션인 크리스 크리스토퍼슨과 포크음악의 상징 밥 딜런과의 조합은 그 자체로 충분히 어울리는 느낌인데 밥 딜런은 연기와 영화의 음악을 함께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곡 'Knockin' on Heaven's Door' 가 삽입되면서 장중한 분위기를 느껴지게 합니다. 이렇게 컨츄리 포크송이 가미되면서 서부 영화 특유의 황량하고 정적인 느낌이 강하게 울리면서 비정한 내용을 더 잘 살리고 있습니다.
수정주의 서부극 대부분이 그렇지만 이 영화 역시 굉장히 극적이거나 드라마틱한 연출은 없습니다. 40-50년대 아메리칸 정통 웨스턴에서는 빠른 자가 이기는 서부극이었지만 이 영화는 먼저 쏘는자가 이기는 내용입니다. 물론 빌리 더 키드와 팻 개럿은 빠른 총솜씨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낭만주의 서부극에서의 1 : 1 속사대결 같은 장면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총을 가진 서부 세계에서는 살아남기 위해서 비정함을 보여야 했으니까요. 둘의 마지막 장면 역시 그래서 기존 극 영화들과 비교하면 굉장히 단순합니다.
추남배우 에밀리오 페르난데즈도 빌리 더 키드의 절친으로 등장
빌리 더 키드는 곳곳에 친구가 많고 그가 가는 곳에서 사람들은 그를 반깁니다. 반면 팻 개럿은 가는 곳마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마치 귀찮은 존재를 맞이한 것처럼 껄끄러워 합니다. 두 사람의 인간관계에 대한 모습도 굉장히 대조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무법자'와 '보안관' 중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무법자는 반가운 옛 친구 같은 존재로, 보안관은 귀찮고 껄끄러운 존재로 묘사하는 것도 특징입니다. 항간에 빌리 더 키드는 서부의 무법자였지만 일종의 '의적'같은 존재였다는 설도 있고, 실제로 서부극에서 그를 무자비한 악당으로 다루지 않고 낭만적인 인물로 많이 다루고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건 완전히 미화된 포장일거라고 생각합니다. 빌리 더 키드, 팻 개럿 모두, 폭력과 살인을 즐기는 서부의 무법자로 팻 개럿은 현실과 타협했고, 나이가 더 어렸던 빌리 더 키드는 자유로운 서부유랑을 즐긴 것으로 생각됩니다. 누가 악이고 선이다 라는 구분은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아무튼 20세기를 향해 달려가면서 서부에서는 '무법자'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으로 영화에서 묘사되고 있는데, 실제로 과연 서부에 낭만적인 무법자 시대가 있기나 했을까 의문입니다. 노골적으로 '영화'에서 나오는 멋진 영웅과 보안관이 지켜주는 그런 낭만적 서부시대 자체가 없었고, 1 : 1 속사대결이 아닌 뒤에서 쏘고, 숨어서 쏘고 그런 추악한 서부만이 존재했을 것이라는게 더 현실적입니다. 빌리 더 키드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닥 할러데이는 서부의 속사 총잡이로 빌리 더 키드 만큼이나 유명한 인물인데, 그는 빌리 더 키드 만큼 온전한 무법자는 아니었고,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와 친하게 지낸 '명성 무법자'입니다. 그가 카드 놀이중 누구를 죽였고, 손이 무척 빨랐다 라는 것 역시 돌아다니는 서부의 루머일뿐, 그가 과연 귀신같은 속사실력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실제로 죽인 사람의 숫자도 부풀려졌다는 주장도 있고.
눈만 부릅떠도 연기가 되는 제임스 코반
아무튼 서부의 전설적인 총잡이 빌리 더 키드와 팻 개럿의 숙명적인 대결은 우정으로 막을 내린 와이어트 어프와 닥 할러데이와는 대조적인 비극적인 결말이었고, 팻 개럿의 추적과정을 다룬 영화가 '관계의 종말'입니다. 둘의 관계의 종말은 단지 팻 개럿과 빌리 더 키드라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의 끝이 아닌, 무법자로 살아가려는 서부의 낭만적인 허상이 끝났다 라는 것을 보여준 결과입니다. 어쩌면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대와 영웅의 허상은 팻 개럿의 빌리 더 키드의 처단으로 끝난 셈입니다. 우정보다 중요한 법 집행(실제로는 상금)을 비정하게 실현한 팻 개럿인데, 과연 두 사람의 우정의 깊이 자체가 있었는지도 의문이고. 그런 면에서 '관계의 종말'은 굉장히 독특하고 비정한 영화입니다.
ps1 : 투 톱 주인공의 영화지만 제임스 코반의 간지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은 비교가 안되는 느낌입니다. 가만히 눈만 부릅떠도 연기가 되는 타고난 간지를 지닌 제임스 코반입니다.
ps2 : '와일드 번치' '가르시아' '스트로 독' 등 꽤 폭력적인 샘 페킨파의 작품이 국내에 개봉되었는데 '관계의 종말'은 미개봉작입니다. 원제는 '팻 개럿과 빌리 더 키드'인데, 이걸 임의로 '관계의 종말'이라는 출시제를 붙인 것인데 제법 잘 붙인 제목 같습니다.
ps3 : 이름이 제법 알려진 조연급 배우가 다수 단역으로 등장합니다. 서부극에서 멕시코 여자로 자주 등자하는 케이티 후라도, 주연으로도 자주 등장한 제이슨 로바츠, '깊은밤 깊은곳에'의 주인공 존 벡, 추남배우이자 감독인 에밀리오 페르난데즈, 거기에 해리 딘 스탠튼까지(이 양반은 좀 젊었을때도 여전히 앙상함), 그리고 브루스 던도 엑스트라처럼 등장한 것 같은데 어디 나왔는지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여러 장면 나온 밥 딜런의 비중이 그들보다는 높은 셈이지요.
ps4 : 밥 딜런의 낭만적인 음악이 좋은 배경이 된 그 장면 감상하시죠.
https://blog.naver.com/cine212722/221098323706
[출처] 관계의 종말(Pat Garrett & Billy the Kid 73년) 팻 개럿과 빌리 더 키드|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