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법사/샐리 하비 리긴스/신소연,김민구/민음사/2010
현장 600-664..
629 서역으로 당 태종(599-649, 재위 626-649),16년만에 귀국
태종은 처음엔 불교에 별로 호의적(-)
현장은 일직 철이 든 조숙한 소년. 기것해야 13세때, 수나라의 동도,낙양에 위치한 현장 형이 기거하던 절(정토사)에 나라가 20명의 승려에게 계를 내린다는 조칙이 내려짐. 수백명 지원자, 혀장도 절문앞에서 어슬렁거리다 수계를 주재하려온 황제의 고나리와 대화. '네 이름 무엇&몇살? 현장은 간절히 비구되기 원한다며 그 이유를 묻자, <마음은 멀리로는 여래를 따르고, 가까에로는 유법(遺法)을 빛내고자 하는 것입니다.>p23 5년 정도 정토사에서 형과 함께. 수 왕조는 618년 몰락.
-현장은 장안에서 어릴 때 이미 범어도 배움
-키는 6척이 좀 못됨.
629년 8월, 떠나기 며칠 전 현장은 장안의 탑안에 들어가 여행 안정을 빔. 그날 밤 꿈에, 수미산이 나타남. 꿈속에서 대해를 건너려 하자, 돌로 된 연꽃이 솟아나 그를 지탱해줌. 그러나 산은 너무 높아 오를 수가 없었음. 그 때 갑자기 거센 돌풍이 불어 산꼭대기에 올려줌. 사방의 시야가 확 트였는데, 이때 현장이 본 끝없는 수평선이란 그가 앞으로 방문할 수많은 나라 상징한 것. 그는 황홀한 기쁨 속에 깨어남. p28-29
-현장은 장안에서 한 술인(術人)으로부터, 옻칠한 안장에다 금구(쇠장식)을 매단 붉고 야윈 늙은말을 타고 갈 것이라는 예언 들음.그런데 반타가 서른 번도 넘게 사막횡단했다는 노인을 소개할 때 그 노인이 바로 이런 말을 타고옴. 주저없이 현장은 늙은말과 자기의 젊은 말을 바꿈. 이 말이 나중에 현장이 길을 잃었을 때 본능적으로 오아시시로 향해 현장을 살렫줌.
-처음 현장의 재가 제자를 자처하며 안내를 해주기로 한 서역인 <반타>, 오히려 여행 첫날 밤 현장을 살해하려 했다가 주저하다 놔둠. 이후 혼자 길을 가다 길을 잃고 실수로 손에서 물주머니마저 떨어뜨려 순식간에 갖고 있던 물 전부를 모래 속에 잃음. 그는 절망하여 중국으로 다시 되돌아가다, <천축에 이르지 못하면 동쪽으로 돌아가 사느니 차라리 얼굴을 서쪽으로 향하고 죽겠다>던 자신의 맹세가 생각남. 그래소 4일낮과 5일 밤을 야윈말과 함께 서쪽으로. 탈진해 쓰러지면서 그는 자비로운 관음보살에게 기도. 그러자 이슬이 구법승과 말에 떨어짐. 시원한 바람이 붐. 그는 깊은 잠에. 꿈속에서 창과 기를 든 대신(大神)이 소리치는 꿈. <왜 열의를 갖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잠만 자느냐?> 이 소리에 잠을 깨 십리를 더 갔을 때, 말이 본능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감. 오아시스 발견. p31-33
-현장은 위험에 처하면 간절히 관음보살을 염하고, 반야심경의 주문 외움. 여러 해 전 현장은 병자를 절에 데려와 먹을 것, 옷을 주었는데, 그가 감사의 표시로 반야심경을 가르쳐줌.p33
-현장은 그 후 가는 곳마다 거의 왕들의 호의 받음&서역에 가지 말고 자신과 살 것 요청.
ex1.고창왕-첫번째 만난 왕. 협박까지 했으나 <폐하의 후의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잘 알겠다. 그러나 저는 법을 찾으러 서쪽에 가려는것이기에, 법을 얻기도 전에 중도에 그만두는 것은 온당치 못합니다>. 이에 고창왕이 감금시키고 당으로 추방하려 하자 단식. 그러자 왕은 손수 그를 공양함.p43
-천산 산맥을 넘고...
-산적들에 죽을 뻔도.
-그는 떠나기 전 잘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도, 사막에서도 기도했으며, 신앙적 이유로 단식도 했다.p83
-잘랄라바드의 불영굴 방문 시. 여기서 연등불 만나 성불할 거라는 수기. 부처는 독룡 고팔라를 제도한 뒤 자신의 그림자를 남겨뒀다 함.p89 이곳 가는 길은 위험. 정말 도적 5명이 칼드고 나타남. 현장은 이곳을 방문하려는 목적을 설명.<나는 불영에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이기에 맹수를 만나도 두렵지 않소. 하물며 당신은 사람들이지 않소이까!?도적은 현장의 두려움 없는 모습에 깜짝 놀라 칼을 거두고 함께 예배.
현장은 어두운 동굴 안으로 들어감. 처음엔 아무것도 볼수없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뉘우치며, 비탄에 빠진 채 엎드려 100배. 그리고 경전 읊으며, 여러 부처를 찬송하고 게송을 되뇌임. 마침내 열심을 다한 무아의 경지에 이르자 암벽에서 한 줄기 빛을 보였다. 또다시 200배를 올리며 진영(眞影)을 보기 전에는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
그러자 드디어 굴 전체가 빛으로 가득 찼고, 벽에 나타난 부처의 그림자를 복 됨. 부처의 몸과 가사는 모두 적황색. 무릎 위의 몸은 극명히 볼수 있었으나, 연화좌 이하 부분은 희미했다. 현장은 불영구에서 본 부처 모습을 모사한 불상을 만들어 말안장 주머니에 넣음. 금으로 만든, 약 3척5촌(106.1cm). 현장은 감히 불여이라는 부처의 실제 모습을 보도록 허락받은 것. p90
-현장은 중국에서 서로 모순되는 불경을 볼 때, 올바른 걸 구별해 내기 얼마나 어려운지 자신의 경험으로 잘 앎. p112
-날라다 대학 승려 수가 최대 만명 by 자은전. p176
-계현은 현장의 방문 받고 눈물. 그는 조카 붓다바드라를 통해, 자신의 병세가 위중하며 3년 전엔 목숨을 버리고 싶을 정도라는 말 전함. 계현의 조카가 전한 이야기-3년 전 어느 날 밤 계현의 꿈에 보살 3명 나타남. 그들은 목숨을 스스로 끊고자 하는 건 옳지 못한 것이라며, 계현 질책. 그가 백성을 많이 괴롭힌 왕이었기에 그 업으로 고통받는 것이라 설명. 보살은 계현으로 하여금 목숨 버리려는 마음 버리고, <유가사지론> 등의 정법을 아직 듣지 못한 이들에게 두루 펼치면 병세 호전될 거라 거 함. 그리고 중국에서 비구가 찾아와 대법(大法)을 배우려 할 것이라 예언. <너는 때를 기다려 그를 가르치라> p170
-현장 귀국 10년 뒤 계현 입적.
-날란다의 대덕들은, 중국이 변경이고 불교르 홀대하므로 떠나지 말기 간청. 현장은 계현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며, 인도에 애정 표하며 유가시지론 가르쳐준 것에 감사. 그러나 현장은 새로 얻은 가르침을 번역하고 그것을 남에게 전해주기 위해 돌아가야만 한다고 역설. 이에 계현은 <이는 실로 보살의 마음과 같다!>며 허락. p185-86
cf 현장 귀국 후 5년인가 뒤에 왕이 죽고 나란다대학도 망함.
-현장은 날란다 대학의 멸망을 예지몽으로 봄.
-인생 마지막 19년을 역경 사업에 헌신. 현장은 중국과 인도 불교 사이에, <경전 중 일부가 누락된 것 이상>의 차이가 있음을 깨달음. p185
-638년 어느 새벽. 날란다에서 동쪽으로 가면 카포타 승원. 그 근처엔 유명한 백단(白檀)관음보살상이 있음. 이 상의 둘레엔 나무 울타리. 거기서 꽃을 던져 상에 걸리면 기도가 이루어진다고 함. 현장은 그가 던진 꽃이 보살상 손에 걸리면 고국으로 안전 귀로가 보장될 것이라 기도. 팔에 걸리면 자신이 도솔천에 태어나 직접 미륵보살 섬기게 될 징표. 목에 걸리면 그런 현장 자신이 불성을 닦으면 성불하게 될 것이란 약속. 현장이 화한을 세 번 던지자 꽃들은 손과 팔과 목에 내려앉음. 이처럼 현장은 역시 자신이 언제 성불할 수 있을지 궁금해 함. 실라바드라(戒賢법사.정법장)의 맥을 이은 현장은 일체 중생 모두에게 불성이 있는 게 아니며, 그래서 누구나 성불할 수 잇는 건 아니라는 생각. 법상종 마찬가지.p191
-대반야경이 너무 길어 일부만 번역을(축역) 하려했음. but 그날 밤 꿈에 현자은 가라픈 산봉우리 오르다 맹수에 쫓기는 꿈. 다음날 완역 결정. 그러자 현장은 다시 미간에서 빛을 발하는 부처와 보살을 꿈. 며칠 밤 계속 자신에게 공양이 내리는 꿈도. p274
-현장은 단 한 자도 바꾸지 않음. 정확한 뜻 전달을 위해 중국에서 가져온 원전 세 벌 모두 대조. 만약 미심한 구절 있거나 잘못된 글자 있을 때는, 마치 누군가가 직접 나타나 명확히 가르쳐주는 것처럼 어려움 해소. 이는 <마치 구름을 걷어내고 해를 보는 듯한 명확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말함 <어찌 나 현장처럼 천박한 마음을 가진 이가 이런 깨달음의 단계와 통하겠는다. 이는 수많은 불보살이 몰래 도와주시는 것일 뿐이리라!>p275
-현장은 자신의 역경 작업이 완성되기 전 죽을지 모른다는 걱정한 듯. 마침내 663년 10월23일, 600권 분량의 대반야경 번역 완성.& 이경전의 완성과 함께 그의 힘도 쇠함. 죽음이 온 것을 직감.
<이제 경전과 관계된 일은 끝났고, 나의 생애 역시 다했네. 내 목숨이 다하면 자네들은 나를 검소하게 보내주게. 나를 들풀로 두르고, 산을 골라 한적하고 궁벽한 곳에 안치해주게>p275
<나는 난초와 영지버섯이 자라는 골짜기에 가서 1억만 구의 불상에 예불드리며 하직 인사를 드리겠노라>. 이에 현장은 예불을 드리려 떠났다 옥화사로 돌아온 뒤엔 수행에만 전념.
어느 날 저녁 도랑 건너가 미끄러져넘어짐. 정강이에 약간 상처 입은데 불과 but 병석에 드러눕고 맘. 그는 신선하고 깨끗한 백련화가 눈앞에 보인다고 말함. 어느 날엔 천인이 나타나 그에게 진귀한 공양 내리는 꿈도 꿈. 시종의 기침 소리에 눈뜬 그는 옥화사의 주지인 혜덕에게 꿈이야기 전하며 말함. <꿈속에 나타난 천인들의 아름다운 용모를 본, 나 현장이 태어난 이래 닦은 복덕과 지혜의 공이 없어진 것은 아닌가 보오.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인과의 원칙이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리오.>
반야심경 비슷한 게송을 읊으니, 젊은 시절 사막에서 갈증으로 죽어가던 순간에 독송했던 반야심경과 비슷한 노래. 사막에서 자비의 보살에게 기도했듯, 죽음의 순간에 미륵에 의지.
현장은 주위 사람에게 이렇게 외침 <나무 미륵여래 응공 정등각! 바라옵건대, 모든 중생과 함께 자비로운 얼울을 하신 부처를 속히 받들고 싶사옵니다. 나무 미륵여래가 계신 곳에 거처하시는 대중들이시여! 원하옵건대, 제가 목숨을 버리고 나면 반드시 그곳에 태어나게 해주옵소서>. 664년 2월5일 밤중에 제자 <대승광>이 현장에게 물음 <화상께선 미륵의 궁전에 태어나기로 결정하셨습니까? 아니면 그렇지 않으십니까?> <나는 반드시 거기에 태어나리라!> 그리고 열반.p278
-현장은 남의 말 잘 믿고 잘 속음. 이게 서유기에 삼장법사의 캐럭트로 희화.
순진하고 누가 무엇을 말하든 숩게 속아넘어나는 인물로 묘사.p12
-대당서역기는 현장이 태종에게 바치는 글을 쓴 것. 그래서 자신의 모습은 부각되지 않음
자은전(대당자은사 삼장법사전)은 동시대 사람인 혜립(慧立)이 흠모의 마음으로 쓴 것.
첫댓글 오래 전에 정리한 현장법사 리뷰를 올립니다.
제 기억에 아마 안성으로 내려온 지 얼마 안 되어 이곳 도서관에서 현장법사 책을 빌려 정리한 듯
대단한 현장법사 리뷰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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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법사의 큰 서원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서원이 중요함을 또다시 공부합니다.
보현선생님의 독후록도 감동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