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규나의 말이 벌집을 건들어 난리를 보았다.
"역사적 트라우마 직시 담았다는 소설듣고 죄다 역사왜곡"
5.18광주 사태의 소설 "소년이 온다" (우리 군대가 작혹하게 학살)
제주 4.3,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경찰 시민 학살)
노벨상 축하를 해야 하지 만
모든 것은 아무리 한 곳을 몰아 가도 아닌 것 아니다.
진실은 꼭 세상을 밝힐 것이고 아니면 어두운 터널안에서 헤메일 것이다.
"맑끔한 가을 아침 단상" 그리고 그냥 해 본 소리
"이하 중앙일보 에서 일부 가져옴"
언론사의 댓글 창은 때아닌 이념 논쟁이 불붙었다. 한강의 수상이 못마땅한 사람들의 분노가 창을 가득 메우고, 그에 대한 반박이 이따금 따라붙었다. 분노는 한강의 작품이 4·3과 5·18을 피해자의 입장에서 서술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비뚤어진 역사의식에서 나온 왜곡된 작품”이 지구촌 가장 큰 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도, 축하할 수도 없는 것 같았다. 분노는 한강과 작품을 선택한 노벨상위원회로까지 향했다. “선풍기 앞에서 원고를 날려 (가까이 떨어진 순으로) 정했나”라는 1980년대식 비아냥까지 등장했다. 노벨상위원회는 한강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을 쓴 점을 높이 샀는데, 댓글러들은 트라우마를 더욱 벼려 혐오의 무기로 키운 듯하다.
그들의 분노를 보며 한강에게 맨부커상을 안겨준 『채식주의자』가 떠올랐다. 꿈에서 본 트라우마 때문에 육식을 거부하는 주인공 영혜에게 사람들의 핍박이 쏟아지고, 결국 정신병 증세로 빠져들어 가는 과정을 세 사람의 시각에서 세심하게 그린 연작 같은 작품이다. 영혜는 고기에 끌리지 않았을 뿐인데, 사람들은 이유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비정상이라고 부르며 ‘채식주의자’라는 이름표를 붙인다. 허윤진 평론가는 초판 말미에 붙인 해설에서 “생각보다 타인의 습성과 문화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그럴 땐 그/녀를 그저 자연스럽게 움직여가도록 놓아주는 것도 이해의 방편 중 하나”라고 썼다. 역사적 사실을 피해자 입장에서 다시 들춘 작품이 탐탁지 않을 수 있다. 큰 상을 탔다고 모두가 나서 축하할 의무도 없다. 다만 굳이 남의 집 잔칫상을 뒤엎을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첫댓글 한국사회 일각이 한강의 소설을 둘러싼 왈가왈부로 소란하다. 어떻게 읽든 독자의 자유지만 "<픽션은 역사도 다큐도 아니다>" 기뻐하고 축하해야 온당한 일인데 자신의 독법과 역사의식을 강요하며 "당신은 좌냐 우냐"? 고 묻는 야만을 목도 한다. 편 가르기는 그만하자, 정신건강에 해롭다. <박돈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