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절 일승법을 믿고 알다
1 그때 혜명수보리, 마하가전연, 마하가섭, 마하목건련 들이 부처님에게서 일찍이 없었던 법을 들었으며,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 주시는 것을 보고는 희유한 마음을 일으켜 기뻐 뛰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오른편 어깨를 걷어붙이고, 오른편 무릎을 땅에 꿇었다. 그리고 일심으로 합장하여 몸을 공손히 굽혀 부처님의 얼굴을 우러러보며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희들은 대중 가운데 상수 제자로서 또 나이 늙고 오래되어 스스로 이미 열반을 얻어 더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다시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벌써 오래 전부터 법을 설하셨습니다. 저희들도 그때부터 자리에 있었으나, 몸이 늙고 피곤하여 다만 공. 무상. 무작만을 생각하고, 보살도와 신통력에 자재하여 부처님의 세계를 깨끗이 하며, 중생을 제도하기를 마음에 즐겨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저희들로 하여금 삼계에서 나와 열반을 증득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이제 저희들은 이미 나이 늙었으며, 부처님께서 보살을 교화하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는 좋아하거나 즐겨하는 생각을 내지 못했습니다. 저희들이 지금 부처님 앞에서 성문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 주심을 보고, 마음이 무척 즐거워 미증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홀연히 희유한 법을 얻어 듣고 스스로 기쁘게 여깁니다. 한량없는 진귀한 보배를 구하지 않았으나 저절로 얻었습니다.
2 부처님이시여, 저희들이 이제 비유로써 이 뜻을 밝히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이 어릴 때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하여 다른 나라에 가서 오래 살기를 십년, 이십년, 드디어는 오십년이 되었습니다. 나이는 점점 늙어가고 더욱 궁하고 가난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의식을 구하다가 우연히 본국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찾지 못하고 어느 한 성 안에 머물렀습니다. 그 집은 아주 넉넉해서 재물과 보배가 한량이 없어 금. 은. 유리 등이 모든 창고에 가득 찼으며, 많은 시종과 일군들이 있고, 코끼리. 말. 수레. 소. 양들이 수없이 많으며, 들어오고 나감에 따라 이익 됨이 다른 나라까지도 미치며, 장사하는 고객도 또한 매우 많았습니다.
이때 빈궁한 아들이 여러 시골과 도시를 거쳐서 마침내 그 아버지가 머물고 있는 성중에 이르렀습니다. 아버지는 늘 아들을 생각하고, 아들과 헤어진 지 오십여 년이 되었건만, 아직도 다른 사람에게는 이 일을 말하지 않고, 단지 혼자서 생각해 왔습니다. 마음으로 한탄하고 뉘우치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이는 늙고 재물은 많아 금. 은과 같은 진귀한 보배가 창고에 가득 차 있으나, 물려줄 자식이 없으니 하루아침에 죽어 없어지면 재물은 흩어지고 말 것이다.’ 맡길 곳이 없어 은근히 항상 그 아들을 그리워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내가 만일 아들을 얻어서 재물을 물려주게 되면, 마음이 가벼워서 다시는 더 근심 걱정이 없으리라’고… .
부처님이시여, 그때 궁한 아들이 품팔이로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아버지의 집 대문 곁에 서서 멀리 그의 아버지를 바라보니, 사자상에 걸터 앉고 보배상으로 발을 받치고, 모든 바라문과 권세 있는 왕족들이 모두 공경히 둘러 있었습니다. 값이 천만이나 되는 진주 영락으로 그 몸을 장엄하고, 관리와 백성과 시종들이 손에 흰 불자를 들고 좌우에 공손히 서 있으며, 보배의 장막을 치고 여러 가지 꽃 깃대를 늘이고 향수를 땅에 뿌렸으며, 여러 가지 이름난 꽃을 흩으며 늘어놓아 내어오고 들여가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가지가지로 장엄하게 꾸며서 위덕이 한없이 높았으므로, 궁한 아들이 아버지가 큰 세력이 있음을 보고 공포심이 생겨 거기서 왔던 것을 후회하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이가 혹시 임금이거나 임금과 같은 사람이 아닐까? 여기는 나같은 사람이 품팔이할 곳은 아니구나. 차라리 가난한 마을에 가서 힘껏 일할 곳에서 의식을 얻는 것이 쉽겠다. 만일 여기 오래 있다가는 혹시 눈에 띄어 붙들리면 강제로 잡아 부릴지도 모른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고 빨리 도망치려 했습니다.
이때 장자는 사자의 자리에서 아들을 곧 알아보고,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며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나의 재물을 이제야 맡길 곳이 생겼구나. 내가 늘 아들을 생각하였으나, 만나볼 도리가 없었는데 뜻밖에 이제 스스로 오니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구나. 내가 비록 나이가 늙었으나 이런 때를 위해서 탐내고 아끼었노라.’ 장자는 곧 곁에 있는 사람을 보내어 급히 가서 데려오게 하였습니다. 그때 명을 받은 사람이 급히 쫓아가서 잡으니 궁한 아들은 놀라 크게 부르짖었습니다. ‘나는 조금도 죄가 없는데, 어째서 잡으려 합니까?’라고. 심부름꾼은 그를 붙들기가 급하므로 더욱 강제로 끌고 돌아왔습니다. 이때 궁한 아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죄 없이 잡혔으니 필연코 죽게 되리라 하고, 더욱 겁을 내어 기절해서 땅에 쓰려졌습니다. 아버지는 멀리서 이를 보고 심부름꾼에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을 쓰지 않을 터이니 강제로 끌어오지 말라. 얼굴에 찬물을 뿌려 깨어나게 하고, 다시 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그 아들의 마음이 얕고 졸렬함을 알고, 또 자신의 호귀한 것이 아들의 마음을 놀라게 한 것임을 잘 알았기 때문에, 아들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았으나, 방편으로써 다른 사람에게는 내 아들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명을 받은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지금 너를 놓아 줄 터이니 뜻대로 가라.‘ 하니, 궁한 아들은 기뻐서 미증유를 얻고 땅에서 일어나 가난한 동리에 가서 의식을 구하였습니다. 그때 장자는 그 아들을 달래어 들어오게 하고자, 방편을 만들어서 얼굴빛이 초췌하고 위덕이 없는 자 두 사람을 비밀히 보내되, ’너희들은 그곳에 가서 궁한 아들에게 서서히 말하라. 여기 일할 곳이 있으니 너에게 품삯은 배로 주리라 하여, 궁한 아들이 만약 허락하거든 데려다가 일을 시켜라. 만약 무엇을 시키느냐 묻거든, 곧 이렇게 말하라. 너를 데려다가 똥거름을 친다 하고, 우리들 두 사람도 또한 너와 같이 일하리라고 하라.‘
이때 두 사람은 곧 궁한 아들을 찾아가서 만나 보고 이런 말을 다 일러주니, 궁한 아들은 먼저 그 값을 받고, 같이 와서 똥거름을 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보고 불쌍히 생각하여 안타까워했습니다. 또 다른 날 창가에서 멀리 아들을 보니, 몸이 말라 초췌하고 먼지투성이로 더렵혀져 있었으므로, 곧 영락으로 꾸민 부드러운 옷과 장엄구를 벗어 놓고 떨어지고 냄새나는 옷으로 갈아입고, 바른 손에는 거름치는 그릇을 가지고 성난 듯 얼굴로 여러 일꾼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부지런히 일할 것이며 게으름을 부리지 말라.‘ 그는 이러한 방편으로써 그 아들에게 가까이 하였습니다. 그 뒤 다시 아들에게 말하기를 ‘이녀석, 너는 항상 여기에서만 일하고 다른 곳에는 가지 말라. 네에겐 품삯을 더 주리라. 모든 소용되는 물건에 조금도 어려운 생각을 하지 말라. 그리고 늙은 일꾼이 있으니 부려서 쓸 일이 있으면 부리라. 스스로 마음을 편히 가져서 나를 네 아버지같이 생각하고 걱정하지 말라. 어째서 그러냐 하면, 나는 늙고 너는 젊은데, 네가 일할 때에는 다른 일꾼들처럼 속이거나 성내거나 원망하는 말이 없구나. 그래서 이다음부터는 내 친아들과 같이 하리라.’ 하고, 장자는 그 자리에서 다시 이름을 지어 주면서 그를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궁한 아들은 이러한 대우를 기뻐하였으나, 아직도 그 자신은 객으로 온 천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연유로 이십 년을 두고 늘 똥거름을 치고는 마음에 서로 믿고 친해져서 출입은 어렵지 않게 했으나, 그가 머무르는 곳은 아직도 본래 있던 곳이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그때 장자는 병들어 스스로 오래지 않아 죽을 것을 알고, 궁한 아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는 지금 많은 금. 은과 진귀한 보배가 창고에 가득 찼으니, 그 중에 많고 적음을 네가 다 알아서 가지라. 내 마음이 이와 같으니, 이 뜻을 알아서 처리하라. 왜냐하면, 지금 나와 너는 서로 다르지 않으니, 주의해서 빠져나감이 없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때 궁한 아들은 가르침을 받고 여러 가지 물건과 금. 은과 진귀한 보물과 모든 창고를 맡아 가졌으나, 조금도 그것을 취할 생각이 없었으며, 여전히 본래 있던 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는 하열한 마음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까닭입니다. 다시 얼마가 지난 뒤에 장자는 아들의 마음이 점점 커져서 큰 뜻을 이루어, 스스로 그전 마음이 비열하였다는 것을 깨달은 줄 알고, 임종할 때를 당해서 그 아들에게 분부해서, 친족과 국왕이며 귀족들을 다 모이도록 하고 선언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알아주십시오. 이는 곧 내 아들 내 친자식입니다. 그가 어려서 아무 성 중에서 나를 버리고 도망하여 갖은 고생을 한 지가 오십여 년, 그 본 이름은 아무개고 내 이름은 아무개입니다. 옛적 본래 성중에서 근심하고 찾아다니다가 홀연히 이곳에서 만나게 되었으므로, 이는 실로 내 아들이요 나는 실로 그의 아버지입니다. 지금 내 소유인 모든 재물은 다 이 아들의 소유이며, 그전에 출납한 것도 죄다 이 아들이 알아 할 것입니다.’
부처님이시여, 이때 궁한 아들은 아버지한테서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서 미증유를 얻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의 본심은 바라는 바 없는데, 지금 이 보장이 저절로 들어왔다’고… .
3 부처님이시여, 큰 부호인 장자는 곧 부처님이시고, 저희들은 모두 아들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늘 말씀하시기를 저희들을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들은 삼고에 얽히어 생사의 고해에서 갖은 열뇌를 받으며, 어리석고 아는 것이 없어, 작은 법에 즐겨 탐착하였습니다. 오늘 부처님께서 저희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사, 모든 희론의 법인 똥거름을 없애 주셨습니다. 저희들이 이 가운데서 부지런히 더욱 정진하여 열반에 이르러 하루의 품삯을 얻었습니다. 이미 이것을 믿고는 마음이 아주 기뻐 스스로 만족하여 말하기를 ‘불법 가운데서 부지런히 정진하였으므로 얻은 바가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저희들의 마음이 번거로운 욕망에 집착해서 작은 법을 즐겨하고 있음을 먼저 알려 주시고는, 짐짓 그대로 버려 두시며, 너희들이 마땅히 여래의 지견보장을 가질 분수가 있다고 분별하지 않으시고, 부처님께서는 방편력을 가지고 여래의 지혜를 설하시건만 저희들이 부처님을 따라 열반의 하루 품삯을 얻고서는 이를 크게 얻었다 하고, 이 대승법을 구할 뜻이 없었습니다.
저희들은 또 부처님께서 여래의 지혜를 모든 보살에게 열어 보이시며 연설하시건만, 저희들은 몸소 여기에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저희들 마음이 작은 법을 즐겨하는 줄 아시고, 방편력으로써 저희들 근기를 따라 설하시지만, 저희들이 본래 참된 불자인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야 저희가 알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지혜를 아끼지 않으셨다는 것을. 왜냐하면, 저희들은 예로부터 참된 부처님의 아들이었건만 작은 법만을 즐겨하였습니다. 만약 저희에게 큰 법을 즐겨할 마음이 있었더라면, 부처님께서는 곧 저희를 위하여 대승법을 설하셨을 것입니다. 지금에야 이 경 가운데서 오직 일승만을 설하십니다.
그런데 옛날에 보살들 앞에서 성문들이 작은 법을 즐김을 꾸짖었으나, 부처님께서 실은 대승으로써 교화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말씀드립니다. 본래 바라고 구하는 마음이 없었건만, 지금 법왕의 큰 보배가 저절로 들어왔으니, 불자로서 당연히 얻어야 할 것을 이미 다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