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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5. 큐티
창세기 48:1 ~ 22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는 이스라엘
관찰 :
1) 요셉을 축복하는 이스라엘
- 1절.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 야곱이 나이를 많이 먹고 병들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요셉은 두 아들과 함께 고센 땅에 있는 야곱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 2절.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말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 야곱은 나이 먹어 거동이 불편했습니다. 야곱을 간호하는 이가 요셉이 왔다는 기별을 해 주었습니다. 야곱은 힘들지만 침상에 앉아서 요셉과 요셉의 아들들을 맞이했습니다.
- 3절.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 야곱은 요셉을 보고 그를 축복했습니다. 야곱은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신에게 나타나 복을 주셨다는 것을 먼저 언급합니다. 즉, 자신이 비는 복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축복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그렇기에 담대하게 심지어 바로도 축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지신 분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위로 복을 받은 야곱이기에 누구든지 복을 빌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던 것입니다.
- 4절.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 전능하신 하나님은 루스에서 야곱이 생육하고 번성하게 될 것이라 언약해 주셨던 것을 리마인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할 것이라고 언약하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결국 어디로 이어지게 될 것인가를 말했습니다.
- 5절.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 야곱은 요셉이 애굽에서 낳은 두 명의 아들들이 자신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다른 형제들보다 두 배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의미였습니다. 고대에 장자가 다른 형제들보다 최소 두 배의 유산을 받았던 것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장자의 명분이 르우벤이 아닌 요셉에게 주어진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명분은 차자 에브라임에게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에브라임이 때마다 나타나 자신들의 장자권을 언급하게 되는 것입니다.
- 6절. “이들 후의 네 소생은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의 유산은 그들의 형의 이름으로 함께 받으리라” => 야곱은 만일 요셉이 자녀를 더 낳게 되더라도 더 많은 유산이 요셉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주는 유산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주어지고, 요셉의 다른 자녀가 생기면 그들이 받을 유산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주는 것들 중에서 받을 것이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요셉을 야곱의 장자로 세워주는 것이 분명한 말이었습니다. 야곱은 나이 먹고 늙어서 기력이 쇠한 상황에서 자신의 기업을 아들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고민했고, 자신이 생각한 바를 아들들에게 전달하게 됩니다.
- 7절. “내게 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도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 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아직도 먼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 야곱이 라헬을 얼마나 사랑했고, 또 지금도 그리워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표현들입니다. 야곱은 라헬을 에브랏, 곧 베들레헴에서 장사했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2)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엇갈려 축복하는 야곱
- 8절.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이르되 이들은 누구냐” => 야곱은 알면서 요셉의 아들들의 정체를 묻고 있습니다.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라 축복하기 위해서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한 것입니다.
- 9절. “요셉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뢰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 요셉은 자신의 아버지 야곱이 자신보다 축복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이스라엘이 되었고, 또한 축복의 여정을 걸어오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눠주는 축복을 기뻐하며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 야곱을 보아 알았기에 요셉은 이 기회에 자신의 아들들이 야곱의 축복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 10절.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말미암아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 이스라엘은 나이가 많고, 고생을 많이 해서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아버지 야곱의 앞으로 이끌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더듬으며 두 명의 손자를 축복하게 됩니다. 눈이 어두워 두 형제를 더듬으며 또한 입을 맞춤으로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 11절.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자손까지도 보게 하셨도다” => 야곱은 정말로 요셉을 생전에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요셉 뿐만이 아니라 요셉의 두 아들들, 즉 손주까지도 보게되었음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 12절. “요셉이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 요셉은 기력이 연약한 아버지 야곱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으로 인해서 힘들어 하실까봐 야곱의 무릎에서 두 아들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 13절.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 야곱은 이 때 희한한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보통 장자에게 오른손을 얹고 축복하는데, 야곱은 오른손으로 차자인 에브라임에게 얹었습니다. 요셉은 이것을 원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시기에 야곱은 그렇게 순종했습니다.
- 14절.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 장자와 차자의 머리에 얹는 손의 위치를 일반적이지 않게 엇바꾸어 올렸습니다.
- 15절.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 야곱은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했습니다. 그것은 또한 요셉을 축복하는 것과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야곱의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신을 기르신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인생이 고생이 심한 인생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데 그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늘 함께 하셨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믿음은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순간동안 함께 해 주셨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 16절.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 야곱은 요셉의 아들들이 복받기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름으로 칭하게 될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환란에서 건져주신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복 주시길 간구한 것입니다.
- 17절. “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손을 엇갈린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른손을 므낫세에게, 왼손을 에브라임에게 얹게 하고자 했습니다.
- 18절.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 요셉은 구체적으로 아버지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장자는 므낫세이기에 므낫세에게 오른손을 얹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볼 때, 요셉보다 야곱이 더 영적으로 깊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요셉은 꿈에 대한 해몽과 하나님의 지혜를 다루는 부분에 대해서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 임할 하나님의 축복을 논하고, 장차 이루실 하나님의 일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야곱이 요셉보다 우월했습니다. 야곱은 그의 인생의 고난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축복의 여정을 지나왔던 것입니다.
- 19절.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요셉의 요구에 대해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야곱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둘째였지만 장자권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으로 하나님께서 장차 둘째인 에브라임을 첫째 므낫세보다 큰 자가 되고,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알면서도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왼손을 므낫세의 머리에 얹고 축복했던 것입니다.
- 20절.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 이스라엘은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되 공평한 축복이 아닌 둘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분량대로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 에브라임이 므낫에보다 앞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에브라임은 12지파 중에서 10지파의 지지를 받는 장자 지파가 되었고, 이스라엘이 역사 속에서 자신들의 장자권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게 됩니다.
- 21절.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려니와” => 야곱은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자신에게 하신 언약대로 가나안 땅이 자신의 후손들에게 주어진 땅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향후에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반드시 조상의 땅, 곧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실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 22절.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 야곱은 마치 자신이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세겜 땅을 빼앗은 것처럼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자신의 칼과 활로 세겜 땅을 빼앗은 적이 없습니다. 이 표현은 히브리어의 현재완료형으로 향후에 여호수아에 의해서 이루어질 가나안 정복 전쟁이 마치 야곱 본인이 이룬 것처럼 표현한 것입니다. 야곱은 그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을 기정 사실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아모리 족속”은 함의 아들 가나안의 후손으로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족속으로 가나안 땅에 거주하는 모든 족속의 대표로 여겨진 족속이었습니다. 야곱은 앞으로 있을 일을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야곱이 지금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배양되고 있지만, 장차 가나안을 정복하게 될 그 날이 오게 될 것임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을 축복하고,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후손들이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임을 예언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요셉은 자신의 아버지 야곱이 축복에 대해서는 자신보다 월등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야곱이 연로해서 조상의 품으로 가기 전에 자신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야곱에게로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야곱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해 주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야곱은 그러한 요셉의 의도를 알고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으로는 므낫세의 머리에 얹고 축복했습니다. 요셉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야곱이 눈이 어두워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장차 하나님께서 에브라임을 므낫세 보다 더 축복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었습니다. 요셉도 그러한 정황을 깨닫고 더 이상 아버지 야곱의 손을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2) 야곱은 요셉을 실질적인 장자권을 소유하게 했습니다. 장자는 두 배 이상의 축복을 받았었기에, 요셉의 두 아들을 야곱의 아들들과 동일하게 분깃을 나누어 주었기에 요셉이 장자로서의 축복을 받은 것이나 진배없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애굽에서의 430여년의 시간 동안 에브라임이 장자권을 주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출애굽 할 때와 출애굽 한 이후에 가나안 정복 전쟁과 사사 시대에 이르기까지 에브라임이 장자권을 주장하고 장자로서의 행세를 하게 됩니다. 야곱이 선한 의도로 세워준 장자권을 에브라임 지파는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만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유다 지파의 리더십은 자신들이 아니라 섬기는 리더십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장차 다윗 왕가가 유다 지파에서 나오게 됨으로 인간적인 관점에서의 장자권이 아니라 하나님의 차원에서의 장자권이 하나님의 뜻대로 흘러가게 됩니다.
3) 야곱은 애굽에서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자신에게 언약하신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이 자신들의 후손을 통해서 반드시 이루어지게 될 것임을 확실하게 믿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에 요셉에게 아모리 족속을 쳐서 그 땅을 점령하게 될 것을 자신이 한 것처럼 말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야곱의 신앙을 따라서 요셉도 자신이 죽으면 미이라를 만들어서 나중에 애굽으로 나가게 될 때 반드시 가나안 땅에서 장사를 지내달라고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언약을 맺게 됩니다.
4) 야곱도 요셉도 하나님의 구속사적 관점의 정점으로 나아가게 되면서 개인의 인생의 차원을 넘어서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 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통해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말씀하신 모든 열국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복 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임을 바라보게 됩니다. 요셉의 구속사적 여정은 야곱의 축복의 여정을 통해서 완성이 됩니다.
적용 :
1) 영적 원리가 야곱에서 요셉으로 흘러가게 되고 있습니다. 요셉이 지혜롭고 총명을 비길 자가 없는 사람이었지만, 영적 원리에 대해서는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배우게 됩니다. 자신의 아들들을 축복하는 문제를 통해서 아버지의 깊은 영성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믿음을 통해서 자신이 더 바라보아야 하는 믿음의 영역을 깨닫게 됩니다. 야곱은 험악한 인생을 살았지만 그 모든 순간순간 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해져 갔습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날마다의 순간순간을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는데 날마다 분주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이 관계를 소홀함으로 날마다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살아가게 되곤 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더욱 구합니다. 주님을 소망합니다. 주님을 더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2) 2023년의 고난 주간은 여러 의미로 피가 마르는 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루어 주셔야 하는 것을 다루어 주시고, 성취해 주셔야 할 것을 성취해 주시길 간구드립니다. 참으로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임을 고백합니다. 주여 인도해 주시옵소서.
3) 세상의 지혜보다는 영적 지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요셉과 야곱을 통해서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신령한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해서 다시 마음과 생각을 기울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줌아카데미를 통해서 성령님을 배우고 있는데, 진정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고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