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모든 곳에 있어서 단 한 곳이라도 하나님 아버지와 별개인 곳이 있을 수 없듯이 구약과 신약 모든 곳들에 있어서 구주 예수님과도 직결되지 않는 곳이 있을 수 없는 것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오늘날의 우리들, 과거와 현재와 미래, 심지어는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다 마찬가지인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그러한 모든 실상과 범주들에 있어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과 동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결코 복잡할 수 없는 것으로 바로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실 뿐 아니라 구약과 신약 시대, 2000년 교회사,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단 한 시라도, 단 한 번이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분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당연히 오늘 본문에서와 같이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고, 실제로 그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응답하시며 책임지신 일들이 그의 인생 전체에 가득했고 생생하게 경험할 수 되었던 것도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 아닐 수 없는 것으로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시며 성취해 나가심으로 인해 가능한 역사인 것이고 애초부터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이며..
무엇보다 그와 같은 모든 하늘의 힘과 역사들에 있어서, 특히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들에 있어서 바로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분이기에 단 하나도,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반드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 곧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촉점 등과 같은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영생에 이르기까지의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해 필요한 모든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두 다 이루신 구원에 어떤 식으로든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게다가 직접적, 현실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 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행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한 역사와 경험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상 모든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은 구약과 신약 시대, 더 나아가 모든 시간과 공간들을 넘어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마다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으로 인해, 곧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이나 권속들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오실 메시야를 믿고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죄악들과 싸우고 범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말씀의 신앙으로 살아 있는 믿음이 될 수 있도록 구주 예수님에 대해 미리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성막, 성전, 피 제사, 희생 제물, 유월절 어린양, 장대 위의 놋뱀 등과 같은 다양한 예표와 모형들, 약속과 계시들 등을 통해서든, 또는 오늘날 우리들처럼 오신 메시야이신 구주 예수님을 믿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바로 그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을 믿고 사모하며 의지할 수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 그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것이며, 게다가 직접적, 경험적으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해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실제들을 맛보고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 수 없는데..
참으로 그러한 사실은, 곧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역사들, 특히 오늘 본문과 같이 그 백성들에 있어 선한 목자가 되어 주시어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날마다 순간마다 마치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듯한 하늘의 힘과 응답들, 도우심과 예비하심들, 책임져 주심과 풍성함들은 오늘날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하며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들에 있어서도 조금도 다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진정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마다 언제 어디서든, 그 어떠한 때에라도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얼마나 큰 은혜이고 능력이며 복이고 이적인지 말로 다 표현 못하는 정도인 것입니다..
다만 본질적으로는 바로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자체가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이기에 삶의 자리와 인류 역사의 현장들 속에서 죄와 세속과 정욕과 자기 소견과 우상들 등으로 인한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으로 살면서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들에 해매이고 마치 광야를 방황하는 듯한 상태도 될 수 있는 것이기에 언제나 경계하고 겸비하며 두려워할 수 있어야 하고, 혹 그러한 때는 더 늦기 전에 최대한 빨리 자복하며 돌이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며, 실상 다른 그 무엇보다 주야로 더욱 말씀을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깨어 있고 살아 있는 신앙이 되는 것이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은혜와 은사와 응답들, 승리와 복과 부흥들 등에 생각 이상으로 가깝고 전적으로 직결된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23:1~2)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3월 28일(화)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