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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표 없는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
“잃어버린 우리 문화, 역사, 종교를 알 때 한국인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한 이 책의 「타이틀」은 한민족이라면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명분을 갖기에 충분해 보인다. 한민족의 역사는 우리가 겪어왔고, 우리가 만든 것이다. 이 책은 서점에서 팔기도 하지만, 증산도에 관심을 가진 것처럼 하여 신청해 공짜로 얻은 것이다.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내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어떤 책도 마찬가지겠지만 책을 믿거나 안 믿거나하는 것은 읽은 사람, 즉 나의 몫이다. 해방 이후 나름대로 민족이라는 자각이 싹틀 때 우리 역사를 배운 나로서는 막연히 책의 내용을 믿거나, 맹신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믿지 못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믿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 본다.
증산도 방송인 〈상생방송〉은 몇 번 시청한 적이 있고 방송의 존재를 알지만, 큰 관심은 없었다. 이 책의 저자인 안경전 선생의 북콘서트에도 두어 번 참가 해 본 적이 있는데, 열변을 토하던 그의 모습은 기억하나, 강연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도 깊은 관심을 가지지 못한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기도 한다. 이 책에서도 저자를 소개하고 있는데, “우리는 흔히 불교, 기독교, 유교, 도교만을 종교라 하지만, 신라 때 최치원이 ‘국유현묘지도(國有玄妙之道)’라고 하여 유불선 이전에 우리나라에는 차원 높은 우주의 대도大道, 한국인 고유의 위대한 종교문화가 있었고 소중한 역사서인 『삼국유사』에 실린 옛 기록(古記)과 『환단고기』에는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昔有桓國)’는 구절이 있으며, 환국은 환족이 세운 최초의 국가로서 그것이 환국 – 배달 - 단군조선으로 이어지고, 환국의 통치이념은 ‘홍익인간(弘益人間)’으로 그것은 천지와 하나 되어 우주 광명을 체득한 인간을 말하는 것으로, 이 사실을 모르면 한국인의 참모습을 찾을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 안경전이 석사인지 박사인지는 모르겠으나, 1954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증산도 종도사로서 증산도대학교를 설립해 도생들의 진리 교육과 개벽기에 지구촌을 무대로 활동할 인재 양성에 힘쓰는 한편, 1998년에는 상생문화연구소를 열었고, 2007년 〈STB 상생방송〉을 개국하여 개벽을 넘어 우주 광명과 문화로 새역사를 개창하는 상제님의 진리를 전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주요 저서로는「증산도의 진리」,「이것이 개벽이다」, 「관통 증산도」(1,2), 「이제는 개벽이다」(1,2,3), 「천지성공」, 「생존의 비밀」, 「한단고기」역주, 완간본 및 보급판을 냈다.
단행본으로 350쪽에 이르고, B6 크기에 해당하는 이 책을 100쪽 가까이 읽고 느낀 점은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우리 상고사와 달리, 여러 곳에서 뒤틀린 부분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틀린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설사 배운 것과 다르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일제의 역사 왜곡을 그대로 공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반박할 자료를 찾지 못하는 우리가 스스로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의 강변이 옳다고 해도 여기서 그것을 논박한 자료를 모두 옮겨오기도 결코 쉽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라고 생각되는 부분만은 옮겨볼 생각이다.
우리는 흔히《한국사》가 중국사를 이어왔거나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역사하면 사마천의 《사기》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중국의 정사이고 비조(鼻祖)로 꼽지만, 첫머리에서부터 철저한 역사 왜곡이 등장한다. 전설 속 다섯 왕을 기록한 〈오제본기〉에 그들의 시조라는 황제헌원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황제가 제후들의 군대를 징집하여 탁록의 들에서 싸워 드디어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禽殺蚩尤)”라고. 하지만 우리역사 기록인 『한단고기』는 “치우천황은 배달의 제14대 환웅으로 중원을 경략하여 강역을 크게 넓히고 배달을 가장 강성한 제국으로 만든 분이다. 당시 헌원은 치우천황의 통치하에 있던 서방의 일개 제후였다. 그는 스스로 천자가 되려는 욕심에 반란을 일으켜 탁록 벌판에서 10년간 전쟁을 치뤘으나, 치우에게 패해 신하가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사기》는 정반대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사기》에서 사마천은 “치우가 가장 강포하여 능히 그를 정벌하지 못했다”고 하여 치우는 누구한테도 패한 적이 없음을 역설하면서도 헌원이 치우천황의 목을 베었다고 하였으니, 앞뒤가 맞지 않은 것이다.
또 지금 산동성 조현에 있는 기자묘에서 보듯이 기자는 한반도에 도래한 적이 없는데도 그가 마치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의 왕으로 봉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조선은 마치 중국의 제후국, 즉 식민지로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단고기』는 “상(은)나라 왕족인 기자는 나라가 망하자 고향을 떠나 산시성 태항산 서북 땅으로 피하여 살았고, 말년에는 고향 땅인 지금의 하남성 서화로 옮겼다가 산동성 조현에 묻혔다”고 기록하고 있다. 기자에 대한 최초 기록인 『서경』에도 기자가 조선의 왕이 되었다는 기록은 나타나지 않는다. 조선의 왕 운운하는 것은 훨씬 후대인 《사기》시대에 와서 등장하는 것이다.
요즘은 좀 잠잠한 것 같지만,(관심이 덜해졌는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임나일본부설’은 ‘야마토(왜)시대 신공왕후가 4세기 중엽에 한반도 남부인 임라를 정벌하여 통치기관을 설치했다고 하고, 6세기 중엽까지 가야, 신라, 백제를 다스렸다’고 하는 것인데, ‘조선의 남쪽을 경영했다 하여 ‘남선경영론(南鮮經營論)’으로도 불리고, 임나일본부설은 『고사기』와 함께 일본 최고의 사서로 꼽히는 『일본서기』에 기록된 신공왕후 삼한 정벌을 근거로 한다. 그런데 신공왕후가 살았다는 4세기의 왜는 1백여 개의 작은 나라가 산재해 서로 싸우던 지극히 혼란한 상태였다. 신공왕후는 실존하지 않는 가공인물로 보지만, 실존했다 하더라도 자국의 안위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바다 건너 다른 나라를 정벌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또
‘일본’은 백제가 망한 뒤인 720년부터 사용한 국호다. 그전에는 왜였다. 그런데 어떻게 300년도 더 전에 ‘일본부’가 있을 수 있었겠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임나일본부설은 19세기 말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을 강점할 명분으로 내세운 것으로 그들의 주장으로 끝났으면 문제가 덜하겠지만, 일제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사』를 근거로 그것이 이 땅의 학생들에게는 물론 세계에 널리 알려져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한국의 역사를 중국과 일본이 왜곡하고 그것을 명목적으로 따른 우리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역사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도 문제를 안고 있다. 『삼국사기』의 편수자 김부식은 사대주의자로 중국이라면 꺼벅 넘어갔다. 『삼국사기』가 편찬되기 30년 전 여진족 야골타가 금을 건국했다. 금은 고려와 형제국에서 나중에는 군신관계를 강요했다. 이에 사금(事金)과 배금주의자로 나뉘어 고려 조정은 혼란했다. 80년간 5명의 왕에게 9명의 왕비를 들인 이자겸을 제거한 김부식은 사대를 해서라도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인종은 김부식을 멀리하여 사대를 끊고 고려를 황제국으로 선포하라는 묘청과 정기상 등을 가까이했다. 이에 김부식은 묘청이 이끄는 서경파를 역도로 몰아 제거하고, 조정의 1인자가 되었다. 그러니 조정은 김부식에 의해 더욱 깊은 사대에 빠졌다. 인종도 왕위를 유지할 심산으로 김부식을 더 이상 멀리하지 못하고 1145년(인종23년) 김부식에게 『삼국사기』를 편찬을 명했다.
사대주의자가 편찬한 『삼국사기』는 자주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고구려를 한나라 이후 중국의 동북 모퉁이에 끼인 작은 나라로 깎아내린 것도 모자라 중국의 국경을 침범한 고구려 때문에 한민족이 중국의 원수가 되었다거나, 백제와 고구려가 망한 것은 천자 나라인 수·당에 거역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백제의 시조 비류와 온조는 주몽의 친자가 아닌 소서노가 주몽에게 재가하여 낳은 서자로 폄하하고, 고구려가 망한 후에 대조영에 의해 건국되어 신라와 어깨를 나란히 한 대진(발해)에 대해서는 일언방구도 없기도 하고, 가야에 대해서도 한 줄도 쓰지 않았다. 또 연개소문은 주군인 영류왕을 토막 내 구덩이에 묻었다고 기록했는데, 영류왕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당나라에 나라를 들어 바치려는 것을 알았던 연개소문이 왕의 음모를 미리 알고 왕과 추종세력을 소탕한 것으로, 당나라에 맞서 20년간 싸운 연개소문의 업적은 평가하지도 않았다. 『삼국사기』는 중국에 사대하느라 단군조선에서 북부여-고구려로 이어진 한민족 역사의 계승을 전부 부정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소국주의 사서로 반도사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보다 136년 뒤에 스님이던 일련에 의해 편찬된 『삼국유사』또한 마찬가지다.
1. 환국-배달-조선으로 이어진 한민족 7천 년 시원의 역사를 환인-환웅-단군이라는 가족사로 축소시켰다. 2.‘옛적에 환국이 있었다(昔有桓國)고 하면서도 환국은 제석을 말한다(謂帝釋也)라고 하여 불교 관점의 주석을 붙임으로써 인류사 첫 나라인 환국을 마치 불교 신화 속 나라로 전락시켰다. 3. 배달 시대 두 부족인 웅족과 호족을 마치 동물 이야기처럼 전락시켰다. 4. 단군이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1908세에 산신이 되었다고 하여 고조선사를 신화의 역사로 만들었다. 5. 단군왕검이 도읍한 ’아사달‘을 고려의 수도인 개경으로, 아사달의 다른 이름인 평양을 대동강 유역의 평양으로 해석함으로써 단군조선을 한반도에만 국한된 소국으로 전락시켰다. 6. 중국 사서를 그대로 받아들여 기자 도래와 한사군이 이 땅에 설치된 것으로 기록했다.
이것들은 중국 역사서에도 있는 것이므로 반박할 자료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단 하나 『한단고기』와 얼마 전에 읽은 『부도지』에는 그것들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는데, 이것들을 정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부도지』에 대해서는 따로 적었으니 여기서는 논하지 않되, 『한단고기』는 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오래전에 읽기는 했어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 『한단고기』는 『삼성기』상·하, 『단군세기』, 『북부여』, 『태백일사』등 신라 시대부터 근세 조선에 걸쳐 여러 저자에 의해 편찬된 역사서들을 한 권으로 묶은 한민족의 정통 사서이자 인류 시원 문화의 경전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한단고기』는 조선이 일제에 의해 망한 직후인 1911년 발간된 책이지만, 여기에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되지 않은 한민족의 시원 문화와 역사에 대한 귀중한 자료들이 담겨 있다. 『삼성기』上은 신라 시대 안함로(安含老, 579∼640년)가 저술한 것으로 그는 유불선에 회통한 도승이었으며 『삼성기』下는 원동중에 의해 저술되었다고 하나, 더 이상 확인되지 않지만, 그도 한민족 상고시대인 환국, 배달, 조선 역사의 핵심을 압축한 식견을 가진 인물이었다. 『단군세기』는 이암(李嵒, 1297∼1364년)에 의해 저술된 것으로, 그는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을 지낸 대학자이고, 『북부여기』를 쓴 범장(范樟, ?∼1395년) 또한 공민왕 때 벼슬 한 인물이었다. 『한단고기』의 80%를 차지하는 『태백일사』를 쓴 조선시대 이맥(李陌, 1455∼1528년)은 이암의 4세손으로 왕조실록을 기록하는 찬수관(撰修官)이었다.
그렇다면 『한단고기』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1. 동북아 시원의 역사뿐 아니라 세계사의 출발점을 알려준다. 한중일의 시조뿐만 아니라 서양문명의 근원까지 드러내고 있다. 한민족과 인류 창세 역사와 문화를 밝힌 역사의 원전이다. 2 인간의 기본적 삶의 형태인 의식주는 물론 수학, 천문학, 과학, 철학, 언어학, 문학 등에 이르기까지 태고시대 원형문화를 전하고 있다. 3. 태고시대 영성 문화로 천지가 하나 되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라는 이른바 신교(神敎) 문화를 기록한 ‘인류 종교의 원전’이라는 것이다.
끝으로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강단 사학의 표두로 흔히 이병도(李丙燾)를 꼽는다. 일제 강점기 ‘조선사편수회’일원으로 식민사학자의 하수인 노릇을 한 그였기에 당연한 평가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만년에 단군조선을 인정함은 물론 환국과 신시, 배달도 실존 역사로 인정했다. 오랜 친구였던 최태영 박사가 식민사학의 선구자인 이병도의 생각을 돌려놓지 않으면 우리 역사학이 바로 설 수 없다고 생각해 국문학자 이희승, 방송인 송지영과 오랫동안 설득한 결과였다.
1985년 10월 9일 이병도는 「조선일보」논설에서 기존 학설을 뒤집는 양심선언을 하고, 1989년에는 최태영과 공저로 『한국상고사 입문』을 짓기도 했는데, 그는 일제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今西 龍)에 속아 어리석은 행동을 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 이 책을 저술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후예(어쩌면 제자)들은 “이병도가 노망이 들었다”고 하면서 지금도 전혀 수용하고 있지 않다. 역사도 정치만큼이나 어려운가 보다.
『한단고기』에 대한 내용, ‘잃어버린 대한의 혼을 찾아서, 후천선경, 천지의 꿈을 이루는 대한(大韓)’등 여러 단원이 남아 있으나 차츰 읽어보기로 하고 우선 여기서 접는다. 어쩌면 어려운 이야기남았고, 또 다가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몰랐던 한민족 태고의 역사를 다시 들여다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맹랑함만이 남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 2025.1.31.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