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자의 노래
비 개인 여름날 쉽게 볼 수 있는 지렁이는 몸이 마디로 이어진 환형동물에 속한다고 한다. 흔히들 사람들에게 하찮고 보잘 것 없는 비유로 쓰이는 대상으로 지렁이는 일컬어져 왔다.
전 세계에 약 4,000종(種)에 이르는 지렁이는 실은 인간에게 매우 유용한 존재이다. 친환경적으로 쓰레기를 분해하고 토양을 변화시킴으로 생태계를 보존하여 농작물 생산을 풍족하게 해준다. 그리고 여자들에게는 그 체액으로 립스틱과 립글로즈의 원료가 되어주기도 하며 더러는 낚시꾼의 미끼가 되기도 한다.
윤곤강 시인은 1947년 여름 휴전선을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잘려진 지렁이로 빗대어 민족 분단의 현실을 가슴 아파하는 〈지렁이의 노래〉를 불렀다. “---나면서부터 나의 신세는 청맹과니 눈도 코도 없는 어둠의 나그네이니/ 나는 나의 지나간 날을 모르노라/ 닥쳐올 앞날은 더욱 모르노라/ 다못 오늘만을 알고 믿을 뿐이노라/---집도 절도 없는 나는야 남들이 좋다는 햇볕이 싫어 어둠의 나라 땅 밑에 번드시 누워 흙물 달게 빨고 마시다가/ 비 오는 날이면 땅위에 기어 나와 갈 곳도 없는 길을 헤매노니/ 어느 거친 발길에 채이고 밟혀 몸이 으스러지고 두 도막에 잘려도 붉은 피 흘리며 나는야 아프고 저린 가슴을 뒤틀며 사노라”
지나간 날도 모르고 닥쳐올 앞날도 모르면서, 왜 그들은 비 오는 날이면 땅위에 기어 나와 갈 곳도 없이 헤매다가 비참한 모습이 되는 것일까. 지렁이들은 땅속으로 비가 고이면 숨 쉴 수가 없어 땅위로 나온다고 한다. 마치 난파선을 타고 험한 파도를 헤치며 자유의 땅을 찾는 비장한 몸부림을 연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내 작열하는 여름의 태양 아래 그 꿈틀거리는 몸짓들은 포장된 길이나 아스팔트 위에서 방황하며 죽어가기도 하고, 토막 나 있거나 허옇게 퉁퉁 불어 터진 채 널브러져 있다. 때로는 포식자들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이들을 볼 때마다 막대기로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기도 하지만 언제나 이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러한 벌레들의 죽음을 보며 류시화 시인은, “벌레 한 마리가 풀섶에 몸을 움크린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죽은 시늉을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며칠 뒤 가서 보니 벌레는 정말로 죽어 있었다. 작은 바람에도 벌레의 몸이 부서지고 있었다. 벌레만도 못한 인생을 나는 살았다. 죽은 벌레를 보며 벌레만도 못한 인생을 살았다고 나는 말한다”라고 고백하였다.
어쩌면 우리는 벌레보다 못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말 성서 번역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일컬어,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하였다.
흠정(欽定) 역본에는 'thou worm Jacob'이라고 되어 있으나 한글 번역은 ‘너 벌레인 야곱아’를 ‘지렁이’로 대치하였다. 쉬운 말로 번역된 영어 성경에는 ‘Small and weak as you are'라고 하여, ’보잘 것 없고 하찮은 존재’임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예수는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라고 이스라엘 백성을 연민으로 대하였다. 지향하는 목표도 없고, 가야 할 목적지도 모른 채 그냥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나그네의 길에는 안내자가 필요하다. 그는 궤도를 벗어날 때는 적절한 신호를 우리에게 보내줌으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감사의 노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선한 목자가 있다. 다만 우리가 그를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