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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
민족적(슬라브족)으로나 언어적으로 뚜렷한 단일민족 국가이다. 폴란드어가 가장 널리 사용되는 언어이며
인구의 약 90%가 가톨릭교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점령하에 폴란드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600만
명이 죽음을 당했으며 그중 유대인의 수가 약 300만 명으로 당시 폴란드에 거주하고 있던 대부분 유대인이
학살당한 것으로 추산된다. 폴란드는 다른 유럽국가들과 비교해 전후 최고의 자연인구 증가율을 기록했다.
영토는 312,685Km2(남한 99,900Km2의 3.2배)이며, 인구는 약 39백만명이고, 현재의 수도는 '바르샤바'다.
폴란드의 역사는 오랜 과거 몽고, 스웨덴으로 부터 근세에는 독일, 러시아 등 외부로 부터 수난을 받아왔다.
폴란드인 중에는 공산국가 최초 1990년 초대 민선 대통령을 지낸 자유노조 창시자였던 노벨평화상 수상자
레흐 바웬사와 교황 바오로 2세가 있고 노벨화학상 수상자였던 퀴리 부인이 있다. 그리고 쇼팽의 아름다운
선율이 느껴지는 곳이 폴란드이기도 하다...
폴란드는 수도인 바르샤바에 가보지 못해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동 유럽에 속해 있는 여러 나라 중 다소
낙후되어 있는 느낌 이었다. 폴란드 땅은 열이 많아 겨울에도 잔디가 죽지 않고 파란색을 유지한다고 한다.
풍부한 미네랄 성분과 강한 열을 지닌 흙으로 감자재배가 적격이며, 이런 이유로 인해 폴란드 감자는 세계
에서 가장 뛰어난 가격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이런 감자를 먹고 자란 돼지고기는 질과 맛이 우수하다고 한다.
또한 감자가 많다보니 이를 주성분으로 한 보드카는 폴란드가 원조라 한다. 러시아의 보드카는 구소련시절
폴란드를 지배했던 이유로 이곳 보드카를 소련 제품으로 상품화 했다 한다. 특산품 쇼팽보드카 1병 35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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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우슈비츠
폴란드 입성 후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쉰들러 리스트
촬영지였던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였다. 폴란드남부
크라코프에서 서쪽으로 50㎞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인류를 향한 야만의 극치이며 인간이 저지른
가장 잔혹한 행위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고
원래는 작은 공업 도시였다고 하는데, 폴란드어로는
오슈비엥침 (Oswiecim)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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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로 향하는 아침 하늘은 회색으로 무겁게 내려 앉아 있었다. 그곳을 관람하는 분위기를 위해 비가
내려주는 것이 좋을것 같다던 가이드의 바람대로, 버스에서 내려 수용소로 발걸음을 옮길 때 빗방울이 떨어
지기 시작했다. 마치 이곳에서 죽어나간 수백만의 영혼들이 흘리는 눈물처럼...
수용소정문에는 녹슬은 간판이 아직도 바람에 흔들리며 을씨년스럽게 걸려있다. 독일어로 Albeit Macht Frei
(일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가 새겨져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 누구나 일해야만 되고, 지쳐 보여서도 안되며
아파서도 안된다던 당시 분위기에서 이곳으로 끌려왔던 소년과 부녀자, 노인들이 여기서 어떻게 처신했을지
생각해보면 몸서리 처질일이다.
가시철망과 고압전류가 흐르는 울타리, 기관총이 설치된 감시탑을 갖춘 공포의 수용소는 1940년 만들어졌고
폴란드 정치범과 유대인들이 수용 되었다. 열차로 실려온 사람들 중 쇠약한 사람이나 노인, 어린이는 곧 바로
공동 샤워실로 위장한 가스실로 보내 살해되었다. 이처럼 가스, 총살, 고문, 질병, 굶주림, 심지어 인체실험을
당하여 죽은 사람이 450만 명으로 추산된다 하는데, 3분의 2가 유대인이라 한다.
반세기전 나치에 의해 끌려온 유대인들의 심정은 얼마나 비통했을까. 당시 잔혹성을 표현한 영화 피아노에서
보았듯이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가 다른 것이 이 있다면 팔목에 다윗의 별을 달고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곳은
겉으로 보기에 평화로워 보였다. 하지만 수용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음산함을 느끼게 된다. 학살한 시체를
태웠던 소각로, 카펫을 짜기 위해 모아둔 희생자들의 머리카락, 유대인들을 실어 나른 철로와 고문실 등 끔찍
했던 광기의 역사를 되새겨 본다.
제 2수용소 바르케나우는 제 1수용소에서 3Km 떨어져있으며 10배 이상 규모가 크지만 1945년 전쟁 막바지에
이르자 나치는 대량 학살 증거를 없애기 위해 제 2수용소 막사를 불태우고 건물을 파괴했다. 그러나 소련군이
예상보다 빨리 도착함으로써 제 2수용소의 건물과 막사 일부만 남아 있었다.
넓은 들판에 철조망으로 굳게 둘러쳐진 수용소 외양은 마냥 쓸쓸해 보인다. 세기의 폭력 앞에 절대 복종으로
무기력해야만 했던 포로들을 생각할 때 평화와 자유 그리고 개개인의 인권에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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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크라코프 (크라카우: Krak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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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스와 강 유람선에서 바라본 바벨성 전경
▶ 시내관광을 하고 있는 멋진 마차 (2006.06.03)
교황 바오로2세의 고향으로 14~15세기에 유럽대륙에서 가장 번성했던 폴란드의 옛 수도였다. 남쪽 비스와 江의
상류 둔치에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의 다양한 양식이 혼합된 바벨성이 있다.
도심지 중앙광장에는 이 나라의 문화를 볼 수 있는 건축물들이 곳곳에 건재해있다. 광장에는 직물회관과 마리아
성당이 있다. 직물회관 안에는 다양한 기념품 가계들이 빼곡히 들어 있으며 특산물인 호박 보석가계가 즐비하다.
중앙광장에는 퍼포먼스를 비롯한 다양한 볼거리가 있고, 이곳을 찾은 세계의 관광객 자체가 큰 볼거리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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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엘리츠카
크라코프에서 남동쪽으로 10Km쯤 떨어진 비엘리츠카에는 1978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 받은
소금광산이 있다. 1500만년 전에 바다가 지형변화를 일으켜 지금의 소금광산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지난
7백 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땅 밑에 형성된 소금광맥을 파내고 있는 현장이다. 이곳의 광산채굴 통로만도
320Km에 이르고 있는데 현재 2.5Km만이 관광객에게 공개되고 있다.(서울~부산거리는 450Km 약 1,000리)
이곳 소금광산의 관광 순이익이 하루에 1억이라 하니 관광산업이 주는 부가가치가 얼마나 큰지 짐작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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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화면 상단 주홍색 "카페관리"의 왼쪽에 까만 네모박스(■)를 클릭하면 배경음악이 꺼지면서 쇼팽의 "이별에곡"을 들을 수 있읍니다. 지금 곧 클릭해 보십시오~~~
사진이 너무 작아 얼굴 보기도 힘드네.. 근데 너 따라다니면 난 공부안해도 구경 잘 하겠구만..
역시 솜씨가 좋은사람 글을 봐야한다니까....
우리 6/10 모임과 맞바꾼 기명의 동유럽 여행기가 이제서야 올라왔구나. '쉰들러 리스트'나 '피아니스트'등의 영화를 통해 알았던 폴란드를 기명을 통해 들으니 더욱 생생해 진다.글과 사진 음악까지...이런 여행기를 쓰려다보면 작은 지면에 많은 얘기를 하고싶고 이미지도 많이 넣어야 하므로 사진이 작아졌구나. 부부간의 정, 더욱 다지고 돌아와 그때를 회상하며 새벽 1시 넘어까지 고생한 기명에게 감사를 표한다. 다음편을 기대하며...쌩큐!
동유럽에 간다는 생각은 못해 보았는데, (나는 원래 여행을 안 좋아 하는 편이거든) 기명이 글을 보니 언제 한번 가보고 싶구만. 서유럽보다는 차라리.
이번에 올리는 글이 자칫 자랑으로 비쳐지는 것을 경계하고 시종 겸손을 견지하여 보다 많은 친구들이 이글을 통해 여행의 참의미를 공감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가급적 인물사진을 축소, 배제하고 가능한 한 풍경사진 중심으로 올린다.
기명이 좋은 여행 했구나 ! 여행지가 문제가 아니라 부부가 같이 하는 여행 이젠 중요한 의미가 있는것 같다...
이글이 언제 올라올까 하고 기다렸는데 이제 올라오네..(01)번이니 앞으로도 기대 듬뿍!
여행이랑 역시 좋은 것이여!!! 여력이 될때 한군데라도 더 가봄세!!! 나따라 이집트 가려던 것을 잘 변경하였다. 이집트는 수천년 변하지 않지만 동유럽은 개방의 물결로 조만간 순수한 맛이 사라질텐데 그전에 잘 다녀왔다.
내는 그저 이 글을 읽고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내가 동유럽에 갔다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ㅋㅋㅋ
기명아 여행기 잘 읽었다...폴란드 잘 몰랐는데 덕분에 좀 알게되었네..
이미지도 좋지만 글에 묻어나는 여행중 기명이의 생각과 냄새가 멋있고 향기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