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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가 맺는 결실은 그것을 받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성사는 합당한 마음가짐으로 받는 사람들에게서 열매를 맺는다. | |
“성사, 하느님의 은총을 매개”
‘상징적 의미가 아닌 실재’ 합당한 마음 있어야 결실
지난 호에서 가톨릭 교회의 모든 성사(聖事)에 깔려있는 첫 번째 원리인 「성사성의 원리」에 대해서 알아봤다.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 그 무엇이 보이는 현세적인 그 무엇 안에 서려있다는 것이 성사성의 원리였다. 이 원리와 맞물려 있는 두 번째 원리가 매개(媒介)의 원리이다. 이 원리는 성사의 실제적 효력과 관련된 원리이다. 이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성체의 기적 이야기
세상 사람들이라면 도무지 믿으려 들지 않을 이야기가 하나 있다. 이탈리아의 란치아노에서 발생했던 성체의 기적 이야기이다.
약 700년 경 이탈리아 란치아노 지방 바실리오 수도회 소속의 한 수사 신부가 성체(聖體) 안에 그리스도가 실재(實在)하신다는 사실에 대해 큰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는 사제가 미사 중에 빵과 포도주 위에 손을 얹어 기도하면 그것들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성변화(聖變化)의 교리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성사를 집전하면서 하느님께 그 의심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어느 날 그가 성변화를 위한 성찬의 기도를 바친 후 성체를 나누어주려 하는데, 그의 눈앞에서 정말로 빵은 살로, 포도주는 피로 변했다. 그 경이로움에 얼마동안 말문을 잃고 있던 그는 평정을 되찾은 후 그 자리에 있던 신자들을 제대 앞으로 나오게 하여 주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보게 하였다.
수도회에서는 그것들을 값비싼 상아 그릇에 보관해 오다가, 1713년 그것들은 다시 정교한 은제 그릇 안에 보존해 왔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이것들은 란치아노의 성 프란치스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현대에 와서 교회는 그것들의 진짜 성분검사를 과학자에게 의뢰하기에 이르렀다. 1970년 11월, 의학전문가 팀이 조사에 착수하기 위하여 소집되었다. 오도아르도 리놀리 교수가 그 팀의 리더가 되었는데, 그는 그 조사를 시작할 무렵 이 일에 대단히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12월 중순 경에 이르러 그는 수도원장에게 첫 번째 공한을 보냈다. 그것은 대단히 짧았으나 아주 극적인 전보였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은 살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1971년 3월 4일, 완전한 보고서가 마련되었다. 그 분석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였다.
『이 살은 진짜 살이며, 이 피는 진짜 피이다. / 이 살은 심장부위의 근육조직으로 되어 있다. / 이 살과 피는 사람의 것이다. / 이 살과 피는 다섯 조각 모두 동일한 혈액형(AB)을 가졌다. / 이 피에서 신선한, 정상의 피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들과 똑같은 정상 비율의 단백질이 발견되었다. / 이 피에는 다음과 같은 성분들이 발견되었다: 염화물, 인, 마그네슘, 포타슘, 나트륨, 칼슘. / 이 살과 피는 어떠한 화학적 방부처리 없이 1200년간 자연 상태로 대기 중에 노출되어 있었으나, 특이현상으로 남아 있다. / 검증에 응한 현대과학은 란치아노의 성체 기적의 확실성에 대해 분명하고도 일관되게 응답하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매개의 원리
개신교회에서도 부활절과 같은 특정한 날에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빵」과 「포도주」는 주님의 「몸」과 「피」를 상징할 뿐이지 결코 실제적으로 몸과 피가 되지는 못한다고 주장한다. 성사가 단지 상징적인 의미만 지닌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 가톨릭 교회는 성사가 그저 표징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표징이 나타내는 실재, 곧 구원의 은총을 실제로 베풀어 준다고 믿는다. 이를 우리는 「매개(媒介)의 원리」라고 부른다. 하느님은 성사적 행위 가운데 신앙의 대상으로만 현존하지 않고 그 행위를 통하여 무엇인가를 능동적으로 성취하신다. 하느님과의 만남은 단지 양심(良心) 안에서만 또 의식(意識)의 내적 성찰에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성사적 행위들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여기서 우리는 개신교회가 「매개의 원리」를 부정하는 이유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개신교회는 이 「매개」에 대한 믿음에 마술(魔術)의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판에 박은 형식이나 요식행위를 통해 하느님이 「짠!」 하고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런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들의 지적처럼 성모님과 함께 기도드리는 묵주의 9일 기도 역시 횟수만 채우면 된다는 식의 기복적인 믿음의 소지가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점을 유념하여 우리의 보물과 같은 성사가 주술행위로 전락하지 않도록 항상 깨어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구더기 무섭다고 장 못 담그랴』라는 말이 있듯이, 이런 위험 때문에 성사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옳지 못한 처사이다. 이는 성사의 제정자(制定者)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과소평가한 데서 연유한다.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이며 명령이다. 시대를 초월해서 나약한 인간에게 다가오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적 보장책이 바로 성사인 것이다.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루가 22, 19). 이는 당신이 시키는 대로 행하면 당신께서 늘 새롭게 현존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이나 다름없는 말씀이다. 바로 이 예수님의 약속 때문에 「기념(=성사 집전)」은 하느님의 은총을 「매개」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사효성과 인효성
매개의 원리는 성사의 사효적(事效的) 효력의 원천이 된다. 가톨릭 교회는 칠성사가 「사효적으로(ex opere operato: 「성사 거행 그 자체로」)」 효력을 가진다(가톨릭교회교리서 1128항)고 가르친다. 칠성사는 교회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행위인 것이다.
교회의 이름으로 성사의 예식이 거행되면 거룩한 상징과 집전자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시게 된다. 예식 자체의 힘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성사의 사효적 효력이라 한다. 이와 더불어 가톨릭 교회는 성사의 인효적(人效的) 효력을 중히 여긴다. 인효적 효력의 은총은 개인의 심적, 영적 준비 상태의 여하를 따라 내려지는 은총을 말한다. 성사가 그 자체로 효력을 지니지만, 회개와 믿음을 통한 인간의 응답 없이는 성사의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성사의 인효적 효력이라 한다. 이에 대하여 교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그렇지만 성사가 맺는 결실은 그것을 받는 사람의 마음가짐에도 달려 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128항). 『성사는 합당한 마음가짐으로 받는 사람들에게서 열매를 맺는다』(가톨릭교회교리서 1131항).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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