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세례자는 헤로데의 비도덕적인 행위에 대해
충언을 하다가 그의 미움을 사고 만다.
요한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헤로디아는
간계를 부려 결국 요한을 죽게 만든다
이는 의인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악의 세력이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보여 준다(복음).
의인의 희생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죄악이 따릅니다.
죄는 전염성이 강해서 주변을 오염시키고
어느새 그것이 정당성을 갖고 힘을 얻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동참하는 세 인물,
헤로데와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와 헤로디아의 딸에게서도
악의 세력이 어떻게 일하는지 아주 잘 드러납니다.
헤로데는 동생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자신의 비윤리적 삶을 지적하는 요한에게
늘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헤로데보다 더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은
사실 헤로디아였습니다.
헤로데에 붙어 권력을 누리며 살던 헤로디아는
이를 반대하는 요한 때문에 늘 불안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비윤리적 삶을 지키려고
임금의 마음을 사로잡은 딸을 이용하여 요한을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헤로디아에게서 발생한 악한 계략이 그녀의 딸을 오염시키고,
이것이 다시 헤로데의 권력의 힘을 움직여 의인을 죽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의 권위와 기득권을 지키려고 예수님을 죽일 계략을 꾸민 대사제와 원로들,
여기에 동조하는 유다의 배신,
영문도 모르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군중들,
정치적 이해관계로 무고한 이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빌라도,
약자를 조롱하는 병사들,
이 모든 사람이 예수님 수난과 죽음에 관여한 사람들입니다.
의인을 희생시킨 이 모든 사람이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늘 자신을 돌아보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식별하며 살지 않으면
의인을 죽게 하는 또 하나의 동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말과 행동 때문에 누군가가 크고 작은 희생을 당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하루하루 잘 살피며 살아야 합니다.
신앙인은 세상 눈치를 보며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보다 주님의 뜻을 살피면서 그 뜻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마태 14,8)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자
스스로 고난을 자처하며
광야 길을 떠났던
세례자 요한이었건만
광야에서 외치는
그의 정직한 소리를
유난히도 싫어했던
한 여인의 미움을 받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그의 머리가
세상에서 가장 누추한 쟁반 위에
떨어지고 말았네.
미움과 질투는
의로운 이를
단번에 쏘아 떨어뜨리는
날카로운 화살촉이라네.
- 김혜선 아녜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