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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영국의 수도인 런던에서 정토불교대학을 수료한 분들을 위한 졸업식 및 수계식이 열렸습니다. 저녁에는 즉문즉설 강연이 있었습니다.
새벽 4시, 각자 방에서 천일결사 기도를 한 후 간단히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파리 정토회 총무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은 총무님에게 이틀 뒤 독일에서 열리는 정토행자대회에서 만나자고 인사를 하고 파리 역으로 출발했습니다.
파리 역으로 가는 길에 최근 불에 탄 노트르담 대성당이 보였습니다. 화재의 흔적이 남아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 여명이 비치는 파리의 풍경을 눈에 담아보기도 했습니다.
이른 아침인데도 파리 역은 관광객과 출근객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런던행 열차 수속대에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출국하기 위해 줄을 서있는 동안 누군가 입국서류를 치고 가서 종이서류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스님은 서류를 주워 본래 자리에 두었습니다. 스님의 이런 모습 하나하나가 일상에서 깨어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가르침 같습니다.
유럽은 유로 레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출국 절차와 입국절차가 한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파리 역에서 런던역까지 2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습니다. 출입국 절차를 밞고 스님도 함께 큰 짐을 옮기며 기차에 올랐습니다.
런던역에 도착하니 런던 정토회 총무 이혜숙 님이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총무님은 오늘 런던 기차가 파업하는 날이라 다른 날 보다 길이 매우 혼잡스럽다고 설명해주며 다른 지역에서 졸업식과 수계식에 오는 분들이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지 우려를 하기도 했습니다. 권금영 님과 그레이스 님의 차를 타고 바로 출발했습니다.
수계식과 졸업식이 열리는 장소에 도착하니 런던・뉴몰턴 정토 법회, 독일 정토회 등에서 참가한 봉사자와 수계자들이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하며 웃음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다들 반갑게 스님께 인사를 올렸습니다.
잠깐 짬이 나서 최말순 님이 스님의 낡은 가사를 정성스럽게 기워주셨습니다. 스님은 바늘귀에 실을 꿰어주셨습니다.
10시부터 법륜스님을 수계법사로 모시고 유럽지구 정토행자 22명의 수계식을 시작했습니다.
런던 법회는 2014년 스님이 세계 100강을 하고 난 후 이듬해인 2015년에 생겼습니다. 그 이후 런던 분들은 계속 독일 뒤셀도르프로 가서 정토불교대학 졸업식과 수계식에 참가했는데 드디어 오늘 처음으로 런던에서 수계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어려운 가운데 졸업을 하고 수계를 받는 22명에게 축원과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붓다 클럽에 들어온 것을 축하하면서 부처님의 일생을 짧게 요약해주었습니다. 부처님은 아무도 가지 않아서 아무도 몰랐던 길을 탐구할 수밖에 없었고, 끝내 그 길을 찾으신 뒤에는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임을 아시고 전법에 나서셨다는 내용이 좋았습니다. 또한 “우리는 남을 괴롭히고 또 나 자신을 괴롭히는데 이는 짐승도 하지 않는 행동입니다. 범부중생은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사는 것이니 이제라도 수행의 길로 나아가서 우선 남과 나를 괴롭히는 것부터 멈추어야 합니다”라는 부분도 지난 일요일 천일결사 입재식에서 한 법문을 상기시켜주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스님은 다섯 가지 계율을 강조하며 법문을 마쳤습니다.
“계율을 너무 추상적으로 해석하지 마세요. 수계를 받고 여러분이 제일 많이 묻는 게 ‘모기를 죽여도 되느냐’ 예요. (모두 웃음) 소, 돼지는 잡아먹고, 자기 애는 때리면서 모기는 죽여도 되냐고 물어요. 모기를 죽여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선 사람이 가야 할 최소한의 길을 가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최소한 이 다섯 가지는 지켜야 합니다. 첫째,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지 말라. 모기까지 안 죽이면 더 좋고요. 두 번째,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지 말라. 세 번째,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하지 말라. 즉 상대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네 번째, 욕설하고 거짓말을 하지 마라. 다섯 번째, 술 마시고 취하지 말라.
이 다섯 가지의 기준은 모두 ‘남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계를 받은 이후로는 아무리 못해도 이 다섯 가지는 지켜야 합니다. 만약에 과거 업식 때문에 깜빡 놓쳤다면 깊이 참회를 해야 해요. 계를 어겨놓고 ‘너도 성질 나봐라!’ 이러면 안 돼요. 이 다섯 가지는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참회의 대상입니다. 계를 어긴 것이 큰 죄라는 것이 아니라 합리화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어서 불자로서 다섯 가지 계율을 반드시 지킬 것을 서원하는 수계의식을 가졌습니다. 수계자들은 의자에게 일어나 호궤 합장 자세를 취한 후 오랜 세월 동안 지은 허물을 참회하고 수행자로서 살아갈 것을 발원하는 연비의식을 경건한 마음으로 진행했습니다.
다음으로 스님은 22명의 수계자 한 명 한 명에게 수계증과 불명을 수여하고 그 의미도 자상하게 해설해주었습니다. 오직 해외에서 수계식을 할 때만 주어지는 특혜이자 가끔은 웃음이 넘치는 시간입니다. 수계의식과 부처님께 헌화를 마치고 스님의 간절한 발원에 모두 숙연해졌습니다. 멀리 미국 뉴욕에서 와서 수계식에 참석한 이정인 해외지부 사무국장님의 영접사를 끝으로 수계식을 마친 후 수계자들과 기념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단체사진을 찍고 나서 스님은 수계자 한 명 한 명과도 개인 사진을 찍었습니다.
잠깐 자리를 정돈하고 바로 불교대학 졸업식과 경전반 졸업식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유럽지구 김선희 지구장의 경과보고가 있었습니다.
유럽지구는 2017년 졸업식 이후 독일 정토회와 유럽지구에서 총 25명이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법회 3명, 베를린 법회 3명, 파리 법회 6명, 런던 법회 6명, 뉴몰든 열린 법회 7명입니다. 오늘은 이 중 17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경전반은 뒤셀도르프 10명, 뮌헨 법회 5명, 프랑크푸르트 법회 5명, 베를린 법회 1명, 런던 법회 8명으로 총 29명 졸업생 중 11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이어서 스님의 졸업 축하 말씀이 있었습니다.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1년, 2년간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꾸준히 다녀 졸업하게 되어 반갑고 기쁩니다. 정토불교대학은 수계식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종교나 철학으로서의 불교가 아니라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주로 가르치고 있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무지를 깨쳐서 괴로움이 없는 해탈과 열반으로 가는 길, 나의 어리석음을 깨쳐서 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길을 제시합니다.
불교대학은 4개의 교과과정으로 되어있습니다. 먼저 실천적 불교사상을 공부하고 나면 깨달음의 장에 다녀와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좋은 길을 2600년 전에 고타마 싯달타가 제시했기 때문에 다음으로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합니다. 그리고 인도 성지순례에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부처님의 일생을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또한 그분의 가르침의 요지는 불교의 근본 교설입니다. 근본 교설을 공부하고 나면 이 가르침에 기반한 위파사나 수행, 즉 명상수련을 다녀와야 합니다. 그런 다음 네 번째 과정이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와 여기서 배운 것이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불교의 역사를 배우게 됩니다. 소승불교가 종교적으로 흐르자 원래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고 하여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났고, 대승불교가 중국에서 지나치게 철학으로 흐르게 되자 중국에서 선불교가 일어났습니다. 이 선불교가 다시 또 종교화, 철학화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정토회에서는 다시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자 해서 이렇게 공부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다는 연기법이 적용되지 않는 것은 불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불교의 실천 활동을 관통하는 것은 중도 사상입니다. 중도 사상을 벗어나도 불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수행의 목표인 해탈과 열반을 벗어나도 불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소승, 대승, 선불교 등을 다 거쳤고, 전통이 이렇게 흘러왔기 때문에 이것을 다 배워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본을 다 배우고 실제로 경전을 가지고 다시 공부를 해보는 것이 경전반 과정입니다. 소승 불교의 소의경전은 아함경입니다. 부처님께서 생활 속에서 말씀하신 것을 경전으로 만든 것이 아함경이기 때문에 몇 번만 읽어봐도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승불교의 초기경전이 반야심경과 금강경입니다. 그리고 선불교의 초기 입장이 신심명과 육조단경입니다. 선불교의 핵심은 육조단경에 다 들어있습니다. 또한 한국불교에서 대승경전인 화엄경의 비중이 큽니다. 화엄경을 요약한 것이 의상조사 법성게라서 법성게를 공부합니다. 최소한 이 정도는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2년을 다녀야 불교대학 완성본이 되는 것입니다.
경전반을 이수한 사람은 이제 이론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중심으로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실천 활동을 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체험하는 데 집중해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공동체라 하지 않고 수행공동체라고 합니다. 물론 일부는 종교적 요소, 철학적 요소도 들어있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핵심 목표는 수행입니다. 학습적으로는 불교대학, 수행적으로는 깨달음의 장을 통해 정토회에 첫 발을 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졸업생 중 깨달음의 장 다녀오신 분이 절반이라고 하니 모든 정토회 활동의 첫발이 깨달음의 장이므로 유럽에서 깨달음의 장 수련을 할 때 꼭 참석하기를 당부하였습니다. 이어 개근을 한 파리 법회 이정화 님과 정근을 한 런던 법회 두 분께 큰 박수로 축하를 보내고 지도법사님이 직접 사인한 책도 선물로 주었습니다.
한편 지난 1년 동안 부처님의 바른 법을 가르쳐 주신 스님에게 정토불교대학생을 대표해 졸업생이 꽃다발을 증정했습니다. 졸업생 일동은 ‘스승의 은혜’ 노래를 다 함께 부르면서 스님께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고, 바쁘신 일정 속에서도 수계식과 졸업식을 거행해 주신 스님에게 대중은 감사한 마음을 담아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사홍서원을 끝으로 오후 1시 40분이 다 되어 수계식과 졸업식을 모두 마쳤습니다. 간단히 졸업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3시간 40분에 걸쳐 진행된 졸업식과 수계식을 모두 마치고 준비해 온 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행사에 사용한 의자를 한 곳에 모으는 뒷정리를 정토행자들과 함께한 후 스님은 강연장 근처에 정토회원 댁에서 쉬다가 강연장으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행사장을 나오니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런던은 비가 많이 오는데 총무님은 비로 인해 강연장에 사람들이 적게 올까 봐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김경아 님 댁에 도착하자 반갑게 스님께 인사하였습니다. 김경아 님은 이전에 스님과 역사기행도 다녀왔고 또 세계 100강 때에는 스님과 수행팀이 남미 강연 중에 아버님 댁에 머물렀다고 얘기를 해주어 더 반가웠습니다.
탈북 재영교포 한 분이 저녁식사를 준비해서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북한식 두부밥과 예쁜 색깔로 곱게 물든 부침개 등으로 소박하고 정갈하게 준비해주었습니다. 스님도 반갑게 인사하고 두부밥과 간단한 죽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바로 강연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강연장은 인근에 위치한 Canada Water Library 도서관 내에 위치한 소극장이었습니다. 도서관에 도착하니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입구에서부터 안내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스님을 초청하여 강연을 해서인지 봉사자들의 얼굴이 신나고 즐거워 보였습니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가운데 150석의 소규모 극장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자 극장 측에서 의자를 더 깔아주었습니다. 준비된 의자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들어와 봉사자들 포함하여 약 180여 명이 함께 했습니다.
사전에 준비된 즉문즉설 동영상을 진지하면서도 즐겁게 보다가 7시 정각이 되자 유민경 님의 사회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소개 영상이 끝나자 큰 박수소리와 열렬한 환호와 함께 스님이 무대 앞으로 등장했습니다.
“잘 지냈어요?”
“네!”
“오늘 오시기 어려웠지요?”
“아니요.”
“철도가 파업해서 오기가 어려웠다고 하던데 낭설이었어요? (모두 웃음) 날씨도 안 좋은 가운데 오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어제 파리에 도착해서 저녁에 강의를 하고 아침 기차를 타고 런던에 왔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지 인생 상담을 해 드리는 사람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인데, 진실을 다른 말로 하면 사실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 즉 밖에 가서 하늘에 있는 태양을 보면 분명히 태양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입니다. 그런데 실제의 세계는 반드시 경험의 세계와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왜 경험의 세계에서는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처럼 보일까요? 그것은 지구가 돌고 있는 그 위에 내가 서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움직이는 나 자신을 고정된 것으로 보고 세상을 보기 때문에 바깥세상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그래서 경험이 모두 객관적 사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확인하면 고뇌가 사라져 버립니다.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슬픔, 미움, 괴로움 이런 부정적인 심리상태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을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니까 슬픔을 새삼스럽게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사실대로 알면 슬픔이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마치 꿈속에서 강도를 만나 도망 다니는 사람이 눈을 뜨면 강도가 없어져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본래부터 강도가 없었던 거예요. 그러나 어떤 착각 속에 있을 때는 명백하게 두려움이 있어요. 그러니까 도망 다니면서 그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이 우리가 오늘날 세상에서 추구하는 방법이라면 눈을 번쩍 떠서 ‘어! 꿈이네!’ 이렇게 사실에 기반을 두고 문제를 풀려는 것을 ‘수행‘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 수행적 관점은 종교와도 다르고, 철학과도 좀 다릅니다. 고뇌하는 우리의 삶의 현실로부터, 그 고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목표입니다. 죽어서 천당이나 지옥을 가느냐, 극락을 가느냐, 다시 태어나느냐, 이런 것이 주 관심사가 아닙니다.
우리들의 모든 번뇌, 괴로움의 근원은 무지, 알지 못함, 즉 오류로부터 비롯됩니다. 우리가 보통 태어나면 건강해야 하는데 만약에 병이 났다 하면 신체 작동에서 오류가 생긴 겁니다. 고장이 난 것이기 때문에 그냥 그 고장만 고치면 됩니다. 그것처럼 오류가 생겼을 때 그 오류만 시정하면 우리가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오늘 누구나 다 같이 대화를 해 보는 거예요. 누가 ‘남편 때문에 힘들어요’ 한다고 가정사를 이야기한다고 이해하시면 안 되고, 남편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 그것을 소재로 해서, 왜 괴로움이 생길까 하는 것을 탐구해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이야기든 궁금한 것을 질문하시고, 질문은 실제라야 합니다. 부부간의 갈등도 없는데 그냥 ‘우리 부부는 갈등이 있습니다.’ 이러면 대화가 안 됩니다. (모두 웃음) 뭐든지 있는 그대로. 사실이라는 것이 무엇이냐면, 넘어졌으면 넘어졌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안 넘어져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의도이고 현실은 넘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넘어진 것을 넘어졌다고 아는 것이 사실이고, 그 사실이 곧 진실이고 그것이 곧 진리입니다. 그러니까 진리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그 사실에 기반을 두고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늘 환상 속에서 인생을 살기 때문에 삶이 어려운 것입니다.
토끼, 다람쥐들 사는 것 보면 굉장히 편하게 살고 있어 보이지 않나요? 토끼, 다람쥐도 편하게 사는데, 사람들도 편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여러분들 동물들이 부러울 때 있지요? 많이 힘들면 강아지 보고 ‘아이고 너는 좋겠다, 직장에 안 나가도 되고, 공부 안 해도 되고’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모두 웃음)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강아지가 사람을 보고 부러워해야지 왜 사람이 강아지를 보고 부러워합니까. 여러분들이 애완용 동물을 키우는 것은 강아지한테 위로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는 강아지에게 위로를 받는 여러분들이 불쌍한 사람들이에요. (모두 웃음)
자, 이 정도로 이야기하고 질문을 받겠습니다.”
오늘은 총 7명이 질문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 나이 들수록 새로운 인간관계가 어렵다는 유학생의 질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어릴 때 질문자가 놓인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질문자는 사물을 보는 관점이 어릴 때와 동일합니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바라보는 관점을 영국에 와서도 동일하게 보는 겁니다. 그러면 영국 사람의 일상이 질문자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때도 있을 겁니다.
어린아이들은 돈 벌 일도 없고, 대부분을 부모가 대신 주니까 이해관계를 다툴 일이 별로 없어요. 아이들은 부모가 대신해주는 기반 위에 둘이서 만나니까 이해관계가 덜 상충하는 거예요. 물론 아이들 사이에도 이해관계가 있지만, 어른하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성인과 성인이 만날 때는 아이들에 비해서 훨씬 많은 이해관계 속에서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질문자가 성인을 만나면서 어렸을 때처럼 같은 관점에서 만났기 때문에 실망이 큰 거예요. 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질문자가 관점을 잘못 잡고 있어요. 질문자는 몸은 어른이 됐는데,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린아이 같은 관점을 갖고 있는 데서 생긴 문제입니다. 현재 여기 살고 있는데 사유체계는 과거를 기준으로 해서 현재를 바라보니까 현실이 이해가 잘 안 되는 거예요.
부처님 당시 인도 사회에서는 그 전 사회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인도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를 해결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바로 그때 현실을 그대로 직시해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어려웠던 문제들을 쉽게 풀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회는 인도도 아니고 한국이고, 인도도 아니고 영국입니다. 오늘날 종교인들의 문제점은 2600년 전에 비해 지금 많이 변했는데, 그때의 사유체계로 지금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 말씀대로 사물을 보면 모든 문제가 풀렸는데, 지금은 그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풀리지 않는 거예요. 이것은 종교의 가르침에 무슨 오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람들이 잘못 받아들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처럼 느껴진 거예요.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것은 누구도, 예수님도 부처님도 생각을 못 하셨어요. 그때의 경험 속에서는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미 인공위성도 발사하고, 망원경을 이용해 훨씬 더 넓게 바라보고 해서 옛날의 경험과 현실이 맞지 않는 것을 이미 발견해 냈어요. 이런 지식이 이미 공유가 되어 있는데, 아직도 2천 년 전 관점을 가지고 계속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류입니다. 지금의 종교인들이 겪는 대부분의 오류가 이런 문제입니다.
질문자도 똑같은 경우입니다. 어릴 때 맺었던 그 관계를 어른이 되어서 그대로 고집하고 있어요. 만약에 형제라면 어릴 때의 형제는 한 가족 구성원이에요. 어머니, 아버지, 아이들과 함께 같은 가족 구성원인데, 커서 결혼을 하면 새로운 가족이 구성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나와 언니, 오빠는 다른 가족 구성원이 되면서 이제는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한 가족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것을 한 가족이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형제간에 갈등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 형제가 커서 재산 가지고 싸우고, 이렇게 갈등을 일으킬 줄은 어릴 때는 생각도 못 했다.’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거예요. (모두 웃음)
그러면 이렇게 갈등을 일으킬 이유가 없는데 왜 갈등을 일으키느냐, 이것이 모두 착각에서 비롯되는 거예요. 예를 들면 나하고 오빠가 한 가족이라고 할 때, 새언니하고 우리 남편은 처음부터 다른 가족이었던 거잖아요. 이렇게 두 가족이 완전히 다른 가족인데, 형제인 본인들만 모르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형제간에 싸우면 다 ‘며느리 탓’ 하는 거예요. ‘다른 데서 시집온 저 사람들 때문에 형제간에 우애가 깨졌다.’이렇게 말하는 것도 오류입니다. 사물의 존재 방식을 잘 모르는 데서 생기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현대사회가 매우 복잡하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의 이론은 100년 전, 또는 150년 전 사회를 객관적으로 분석한 것입니다. 그 틀을 가지고 100년 전 사회를 보면 다 이치에 맞아요. 그런데 세상이 변했으니까 그 인식의 틀을 가지고 지금 세상을 보면 맞지 않습니다. 자신의 인식 틀을 가지고 세상을 봤는데 세상이 이해가 안 되면 세상이 복잡하다고 합니다. 진실은 세상이 복잡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틀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인식의 틀을 바꿔야 합니다. 항상 현재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자기의 인식 틀을 가지고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니까, 그 틀로 세상이 이해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옛날에는 학교 교육을 받고, 지식을 배우고, 이러면 세상에서 유용했는데, 앞으로는 유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활용되던 상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지식과 기술이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는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그래서 교육의 핵심은 그것들을 습득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지식과 기술이 이미 다 인공 지능이나 자동화로 해결이 됐는데 학교 교육에서 계속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다고 하면 그것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근대에서 출발한 오늘날 학교 교육은 낭비적 요소가 매우 많습니다. 투자 대비 이익이 별로 없어요.
옛날에는 초, 중, 고 10년 정도만 지식과 기술을 익혀서 50년 정도 활용을 하면, 그것을 익히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월등하게 노동효율이 높았습니다. 지금은 20년 투자를 해도 별로 활용 가치가 없어요. 그래서 초등학교에서 유학까지 들일 비용을 3억이든 5억이든 자본투자로 아이들한테 주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 한문을 배워서, 서당에 다녀서, 과거시험을 쳐서 관리가 되면 그 투자가 굉장히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잖아요. 지금 우리가 다니는 학교 교육은 서당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들이 이렇게 유학도 많이 오고 공부도 많이 하는 데 별로 전망이 밝지가 않습니다. (모두 웃음)
개인의 노력 부족이 문제가 아니고, 시대의 변화 때문에 오는 문제이니까 자꾸 자학하지 마세요. 50년 전에는 영국에 유학을 와 접시 닦으며, 10년 공부해서 석사든, 박사학위를 따고, 한국 대학에서 30년만 교수를 해도 앞서가는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기에 와서, 여러분들이 유학해서, 박사학위를 따 한국 돌아가도 그것이 앞선 지식이 아니에요. 그래서 지금 한국에서 유학생 박사 실업자가 수두룩할 수밖에 없어요. 그것이 한국 사회가 잘못된 것도 아니고, 시대가 바뀐 것을 인식하지 못한 거예요.
질문자가 지금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이 잘못됐어요. 아무도 나쁜 사람은 없습니다. 성인을 만나면서 7살, 10살짜리처럼 그렇게 만남을 유지하자 말하는 거니까, 지금 질문자가 어리석은 거예요. 될 수 없는 일을 추구하고 있어요.
사람을 만났을 때 상대가 이익을 추구한다고 나쁘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만남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그냥 대화를 위한 만남도 있어요. 사람하고 대화를 해 보면 내가 어떤 만남을 원하는가가 하나 있고, 상대는 어떤 만남을 원하는가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이익을 추구하려고 만났는데 상대는 그런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면, 관계를 유지하려면 내가 목표를 바꾸고 상대에게 맞춰야 합니다. 안 그러면 내 목표를 세우려면 관계를 바꾸어야 합니다. 내 목표에 이 관계가 별로 도움이 안 되니까, 이것은 이기주의라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자기의 목표를 비교적 분명하게 하려는 문제일 뿐입니다.
질문자는 지금 법륜 스님을 만나서 부처님께 기도해서 도움을 받아 시험에 합격하려고 한다든지, 108배하면 쉽게 박사 통과가 될까 하는 생각으로 법륜스님을 만났는데, 법륜스님 하고 대화해보니 관점이 다릅니다. 자기 목표를 유지하려면 법륜 스님 하고는 만날 필요가 없는데, 이때 ‘빈다고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자기 생각의 모순점이 발견하면 이제 목표를 바꿔야 하겠죠. 내 목표가 잘못됐구나 하고 전환을 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우울하고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어요. 하루하루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렵고, 죽음에 대해 막연히 공포스러워요.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있을 정도 있데, 어떻게 하면 이런 두려움을 줄일 수 있을까요?
-자폐증이 있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아이가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심하게 울어요. 제가 달래다가 안 되면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게 됩니다. 전기충격기라도 사서 화가 날 때마다 지져야 할까요?
-정치세계학을 전공했습니다. 석사로 무엇을 전공하면 북한 문제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우연히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연히 생기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우연을 쫓아 살아도 될까요?
-북한에서 왔습니다. 남북통일을 하는데 50년, 100년이 걸린다면 어떻게 통일을 하게 될까요?
-런던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어요. 일과 생활에 균형이 잡힌 이 곳에서 살아야 할지,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이 있는 한국에 살아야 할지 고민돼요.
스님은 답변을 하지 못한 4명에게 미안하다고 사과 말씀을 하면서 지금, 여기, 나에게 깨어있기를 당부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
“사는 데에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정한 길이 없습니다. 자기 좋을 대로 살면 됩니다. 그런데 자기 좋을 대로 사는데 괴롭다고 하면 모순이잖아요. 자기 좋을 대로 살았는데 왜 괴로워요? 그러니까 이런 모순이 어디서 발생할까, 이것은 밖을 보지 말고 자기 쪽을 들여다보면서 점검을 해야 합니다. 이 세상 그 77억 중에 딱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라도 그래도 그중에서 제일 나은 사람을 고른 것이 현재 내 남편, 내 아내 아닙니까. 현실 가능한 중에 그나마 괜찮은 선택을 했는데 그 사람하고 못 살겠다고 하면 앞으로 어떤 사람 하고도 못 살아요.
그런데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남편이나 아내가 인물이 조금 더 낫고, 돈도 조금 더 많고, 성격도 조금 더 좋고 했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생각하죠? 그러면 나하고 살까요, 다른 여자 남자가 채어 갈까요? (모두 웃음) 딴 남자, 딴 여자가 채어가요. 그리고 좋은 정도도 아니고 아예 부처님이나 예수님처럼 훌륭했으면 좋겠다 하면 아예 집을 나가버려요. (모두 웃음) 훌륭한 사람이 절대 집에 안 살아요.
그런데 지금보다 못하면 어떨까요. 안 그래도 마음에 안 드는데 지금보다 더 못하면 어떨까요. 내가 버려버려요. 그러니까 지금이 딱 적당해서 사는 거예요. (웃음) 불평이 있지만 그래도 현실 속에서는 그것이 현재 내가 같이 살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관계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원하는 게 이루어진다고 행복이 오는 것이 아니라 불행이 자초됩니다. 그걸 아시고 현재 있는 인연에 감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살아야 한다’ 이런 것은 아니에요. 살고 안 살고는 계약 관계거든요. 이것은 계약했으니까 해약을 할 수 있어요. 묶여 살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다른 선택했을 때 낫다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집에 살면 안온한데 굴레라서, 굴레가 문제라 뛰쳐나가니 자유로운 것 같은데 조금 있으면 외로워지고, 외로움을 극복하려고 또 집에 들어갔더니 또 굴레가 생기고, 이와 같은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진정한 자유는 현재 있는 직장, 현재 있는 영국, 현재 있는 가정에서도 별문제가 없다는 자기 내적인 자유를 먼저 얻어야 합니다. 그러면 한국에 가도 자유롭고, 다른 사람 하고도 자유롭고, 혼자 살아도 자유롭고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조건을 옮겨 다니기보다는 현재의 위치에서 자유를 먼저 얻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 가지 관점을 지켜야 합니다. 여기 있으면서 한국 생각 그러니까 저기가 아니고 여기, 그리고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현재, 남의 얘기하지 말고 내 얘기하세요.
자! 여기, 지금, 나 영어로 한 번 해봐요.”
대중들은 웃으며 “Here, Now, Me!”라고 영어로 답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여기에 딱 깨어 있으면 괴로울 일이 없어요. 이 중에 뭔가 괴로움, 분노, 슬픔, 불안이 일어나거나 하면 여기서 뭘 하나 놓쳐요. 과거 생각을 하든, 미래 생각을 하든, 안 그러면 한국 생각을 하든, 안 그러면 남 얘기하든 그러면 벌써 번뇌가 생기는 거예요.
붓다가 다른 이야기한 것이 없고 이것밖에 없어요. 여러분들도 항상 이 세 가지 ‘지금, 여기, 나’에 깨어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강연을 마치자 2시간 30분 동안 강연을 한 스님에게 청중은 열렬히 환호하며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이어 스님의 책 사인회가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책을 가지고 와서 스님에게 사인을 받고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봉사자들도 시종일관 화기애애하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 봉사를 해서 그런지 즐겁고 기쁜 표정이었습니다. 한 봉사자는 3년째 강연에 봉사하고 있는데 오늘 책 판매도 가장 많이 되었고 가장 보람도 있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책 사인을 받으려고 줄을 길게 서 있는 참가자들에게 오늘 강연이 어땠는지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유튜브로 즉문즉설을 많이 듣고 있다는 두 분은 오늘 강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 너무 좋았고, 감사하고 기쁜 시간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분은 세 번째 자폐 아이를 가진 쌍둥이 엄마의 질문에 진심을 다해 답변하는 스님의 자애로운 사랑이 느껴져서 혼자 울컥하여 눈물을 흘렸다고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유학생이라고 밝힌 한 청년은 가끔씩 유튜브로 스님의 법문을 듣고 하는데 강연장에서 직접 뵙고 참가하기는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혼자 유튜브로 듣는 것보다 현장에서 들으니 훨씬 더 집중되고 더 재미있었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곳까지 와서 강연을 한 스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아주 좋은 시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통일과 개인의 어려움에 대한 질문을 했던 새터민 출신의 교포는 정말 본인이 존경하는 스님을 만나 뵙게 되면 꼭 하고 싶었던 질문을 해서 본인은 좋았는데 본인이 시간을 많이 뺏은 것 같아 다른 사람이 질문할 기회를 없앤 게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꼭 질문하고 싶었던 것을 질문할 수 있었고, 스님을 많이 기다렸던 만큼 좋은 시간이 되어 기쁘다고 했습니다.
뒷정리가 거의 마무리되자 다 함께 스님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도서관 밖으로 나오자 비가 간간이 내리는 날씨라 그런지 어제 파리에 비해 어둠이 짙었습니다. 또 다른 탈북 교포가 스님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습니다. 유럽 중에서는 런던에 가장 많은 북한 출신 교포들이 살고 있는데, 북미 지역에서는 캐나다, 유럽 지역에서는 영국이 초기에 북한 출신 동포들을 대거 난민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또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이 본인이 키가 작아 고민이라고 스님에게 묻고 싶었는데 질문하지 못했다고 다가와서 함께 웃으면서 사진 촬영도 했습니다.
스님은 질문하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대화하다보니 어린아이부터 나이 드신 어르신까지 다양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김세정/최용훈 님 부부가 스님과 수행팀을 모시고 다 함께 오늘 숙소로 돌아오니 밤 11시가 다 되었습니다. 숙소는 런던 중심가에서 조금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데 지나오는 길에 런던의 한인타운을 지나치면서 남북 출신들의 재영교포들이 운영하는 식당들이 나란히 있는 거리를 지나쳤습니다. 남쪽에서 왔느니 북쪽에서 왔느니가 아닌 하나의 Korea 로서 우리 동포들이 편안하게 이국땅에서 서로 협력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해보았습니다. 다시 한번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북한 식량난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북한 주민들과 어린이들의 옥수수 식량지원을 생각하며 런던의 밤이 깊어갑니다.
방배정을 받고 나니 내일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가는 분들이 묘덕 법사님과 함께 돌아와서 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스님도 25시간의 하루를 불대졸업과 수계식으로 보내고 스님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오늘도 오랫동안 스님 방에 불은 꺼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내일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해외 강연 3일째 소식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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