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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장영실과 갈릴레오 갈릴레이
앞부제: 나란히 보는 두 과학자 이야기
글: 윤영선, 김슬옹
그림: 정수
대상 연령: 11~14세
판 형: 152*220mm
쪽 수: 148쪽
가 격: 13,000원
발행일 : 2018년 7월 16일
ISBN : 979-11-86452-31-8 74990
담당자 : 김경미(070-8833-3170)
하늘을 꿰뚫어 본 두 과학자
한반도의 장영실과 이탈리아반도의 갈릴레이
장영실과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서로 다른 시간을 산 인물이다. 장영실은 1400년대 조선에서 살았고 갈릴레이는 1500년대 이탈리아에서 살았다. 하지만 두 인물에게는 모두 과학자로 활동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두 사람은 한반도와 이탈리아반도, 이렇게 모두 반도에서 살았다.
‘나란히 보는 두 과학자 이야기’ 《장영실과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장영실과 갈릴레이의 삶과 과학 활동, 두 사람이 밝힌 과학 원리 등을 나란히 두고 보여 준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다른 시대를 살았던 두 인물을 나란히 두고 살펴볼 수 있는 이유는 두 사람 모두 하늘의 별을 관찰하며 자연의 원리를 파악하려 노력한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시간과 시계의 소중함을 드러냈고 여러 발명품들을 남겼다. 이 책은 장영실을 통해 갈릴레이를, 갈릴레이를 통해 장영실을 좀 더 넓게 알 수 있도록 꾸몄고 비슷한 시기를 산 여러 과학자들의 활동 내용도 전한다.
《장영실과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장영실과 갈릴레이를 나란히 두고 보게 하는 동시에 과학과 역사도 나란히 두고 볼 수 있게 한다. 장영실과 갈릴레이는 과학자인 동시에 우리에게는 역사 속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과학자로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며 비슷한 시기의 동양과 서양, 조선과 이탈리아의 역사를 전한다. 8장에 담긴 ‘과학, 말하고 쓰기’에서는 장영실과 갈릴레이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와 상황 등을 바탕으로 토론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장영실과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샛별처럼 빛나는 방방곡곡 여성 위인들》에 이은 ‘숨쉬는책공장 인물 이야기’ 두 번째 책이다. ‘숨쉬는책공장 인물 이야기’ 시리즈는 여러 인물들의 삶을 돌아보며 역사를 익히고 타인을 이해하며 미래에 대한 꿈을 키우도록 하는 시리즈다.
▮지은이
글 윤영선
1965년 충북 제천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단국대학교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2011년 제5회 웅진주니어문학상 장편동화 부문 대상
을 수상했고, 2014년 제12회 푸른문학상에서 청소년 중편소설이 당선되었어요. 지은 책으로는 《수탉이 알을 낳았대》, 《내 말 좀 들어 주세요》, 《병아리 얼마예요?》, 《국 아홉 동이 밥 아홉 동이》, 《잃어버린 미투리 한 짝》, 《도대체 공부가 뭐야? 》, 《나는 블랙 컨슈머였어!》, 《성경인물 고사성어》, 《괜찮아요, 할머니!》, 《박씨 성을 가진 노비》, 《글쓰기 대장 나가신다!》 등이 있고, 시리즈 그림책 30여 권을 지었습니다. 《국 아홉 동이 밥 아홉 동이》의 ‘쌀 나오는 바위’는 초등4학년 2학기 국어활동 책에 수록되었습니다.
글 김슬옹
고등학교 1학년 때 한글 운동에 뛰어들어 우리말과 글의 슬기롭고 옹골찬 옹달샘이 되고자 ‘슬옹’이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35년간의 한글 운동과 연구 공로로 문화체육부장관상을 받았고 EBS 한글 지킴이로 뽑힌 바 있습니다. ‘동아리’라는 말을 백기완 선생님과 함께 처음으로 퍼뜨리기도 했습니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전문위원, 한글학회 연구위원, 한글문화연대 운영위원, 국어운동단체연합 국어문화원 부원장, 세종나신곳성역화국민위원회 사무총장, 세종학교육원 원장, 전국독서새물결모임 독서교육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은 어린이 책으로는 《웃는 한글》, 《누구나 알아야 할 훈민정음, 한글이야기 28》, 《한글을 지킨 사람들》, 《퀴즈 세종대왕》, 《역사가 숨어 있는 한글가온길 한바퀴》, 《역사를 빛낸 한글 28대 사건》(김응 공저) 등이 있습니다. 3회 창비 청소년 도서 대상, 38회 외솔상, 대한민국독서진흥대상 등을 받았습니다.
그림 정수
언제나 양손 가득 무엇이든 담아 주시던 할머니의 사랑처럼 따뜻한 마음을 그림을 통해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사랑하는 두 고양이와 함께 지내며, 아이들이 웃고 즐기며 볼 수 있는 그림책을 기획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www.onjungs.com
▮차례
글쓴이의 말
시작하며
1장 두 과학자의 출생과 성장 012
장영실
1. 관기의 아들 장영실
2. 관노가 된 어린 장영실
3. 동래 관청의 맥가이버
4. 운명아, 나를 따르라
갈릴레오 갈릴레이
1. 음악가의 아들
2. 수학과 교수 갈릴레오 갈릴레이
2장 신의 세상에서 인간의 세상으로 030
1. 세상의 중심
2. 갈릴레이의 낙하 실험
3. 낙하 실험의 진실
4. 토리첼리의 진공
5. 만약 진공이라면
3장 발명으로 편리한 생활 042
1. 위대한 두 발명가
2. 장영실의 나라, 발명의 조선
3. 측우기 발명과 농사 혁명
4. 박연을 도와 악기를 만든 장영실
5. 발명왕 갈릴레이
4장 시계 발명으로 달라진 세상 058
1. 시계의 탄생
2. 조선 시대 시간 읽기
3. 돈에 새겨진 과학
4. 시간 문화를 창조한 장영실
5. 놀랍고 반가운 시계 발명
6. 시계 발명은 농업 혁명의 길
7. 시계의 종류와 역사
5장 하늘을 꿰뚫어 본 두 과학자 078
1. 하늘을 보는 장영실
2. 별을 보는 갈릴레이
6장 두 과학자를 도와준 사람들 104
1. 장영실을 도와준 사람들
2. 갈릴레이를 도와준 사람들
7장 두 과학자의 시련과 영광 112
1. 장영실의 시련
2. 재판받는 갈릴레이
3. 장영실 시대의 서양, 갈릴레이 시대의 조선
4. 마지막 날들
8장 과학, 말하고 쓰기 126
▮내용 발췌
장영실은 1400년대 조선에서 활동한 과학자이고,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i, Galileo)는 1500년대 후반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과학자다. 장영실이 갈릴레이보다 100년 이상 앞서 태어나고 활동한 것을 알 수 있다. 두 과학자는 하늘의 별을 통해 자연의 원리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시간과 시계의 소중함을 드러낸 과학자들이다. 장영실과 갈릴레이는 반도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한 면은 육지로 이어진 땅인데, 대륙에서 바다 쪽으로 좁다랗게 뻗은 육지를 말한다. 동해, 서해, 남해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장영실과 긴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반도의 갈릴레이는 태어난 시대는 다르지만 둘 다 하늘을 꿰뚫어 본 과학자라고 할 수 있다.
-10쪽 중에서
장영실은 관노였지만 씩씩하게 자랐다. 취미는 밤하늘 별 관찰하기였고 특기는 대장간에서 각종 공구를 만드는 것이었다. 장영실이 청년이 되면서 그 재주 또한 성숙해졌다. 동래에서 장영실이 영특하다는 입소문은 멀리 퍼져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태종(조선의 세 번째 왕으로 세종의 아버지)이 관리들에게 지방 각지에서 특출한 인물을 추천하라고 했다. 이러한 추천 제도가 ‘도천법’이다. 도천법에 따라 동래 관청에서는 장영실을 추천했다. 그때부터 장영실은 한양 궁궐에서 일하며 살게 되었다.
-23쪽 중에서
갈릴레이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원래 음악 학원을 했는데, 먹고살기가 빠듯해지자 옷감 파는 가게를 운영했다. 넉넉하지 못한 집의 장남이었던 갈릴레이는 아버지 권유로 의대에 진학했다. 아버지는 갈릴레이가 의사가 되어 많은 돈을 벌어 집안을 일으키길 바랐고, 어려서부터 똘똘했던 갈릴레이는 의대에 어렵지 않게 합격했다. 하지만 갈릴레이는 의대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는 의학보다는 수학이나 물리학에 관심이 더 많았다.
-25쪽 중에서
측우기는 비의 양을 정확히 잴 수 있는 기구다. 측우기를 장영실이 발명했다고 전해지지만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처음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세종의 첫째 아들 향(문종)이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그는 1441년(세종 23년) 8월 호조에서 서운관에 측우기를 설치할 것을 건의했다. 우량계(세계 최초)로 비가 내린 양을 정확히 재어 적어 놓을 것을 건의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앞뒤 맥락으로 볼 때 장영실이 관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47쪽 중에서
장영실은 과학자인데 악기 만드는 일에 왜 참여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악기 재료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금속이나 광물을 재료로 해서 일정한 음률을 갖는 악기를 만드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태평소 같은 금속 악기를 여러 개 만들 경우, 금속을 잘 아는 과학자가 필요했다. 여러 종류의 금속을 녹이고 틀을 만들어 악기가 일정한 소리를 내게 하고 여러 광물을 캐고 구별하여 다듬거나 혼합하는 일에는 과학 지식은 물론 금속을 다루는 기술도 필요했다. 장영실만 한 기술자가 없으니 세종은 박연을 장영실에게 보내 악기를 함께 만들게 했다.
-49쪽 중에서
지금은 흔하지만 갈릴레이가 발명할 당시에는 아주 희귀한 물건이었다. 갈릴레이는 대포나 총을 쏠 때 거리와 각도를 계산하기 위해 컴퍼스를 기하학적으로 개량해 군사용 컴퍼스를 만들었다. 이 컴퍼스는 2개의 판판한 팔을 묶어서 벌릴 수 있는데, 팔 길이는 각각 30cm, 폭은 3cm정도였다. 팔에는 산술적이고 기하학적인 여러 규칙에 따라 눈금을 새겨 놓았다. 90도 각도의 호가 붙어 있어서 직각을 그릴 때 직각자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또 그 호에는 각도를 새겨 놓았기 때문에 각도를 측량하는 도구로도 이용했다.
-57쪽 중에서
장영실이 살았던 조선 시대에 시계가 발명되기 전에도 시간을 보는 체계적인 방법이 있었다. 장영실은 여러 가지 발명품을 만들었다. 그중에 가장 빛나는 발명품은 물시계와 해시계다. 시
계가 생겨나자 시간의 개념이 명확해지고 사람들은 그 시간에 따라 일정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시계가 사라진다고 상상해 보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시계만 사라졌을 뿐인데?’ 하겠지만 세상은 뒤죽박죽 전혀 다른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반대로 시계가 없던 세상에 시계가 생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뭔가 분명한 세계가 생겨날 것이다. 장영실은 시계가 없던 조선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준 셈이다.
-60쪽 중에서
1437년은 무척 중요한 해다. 왜냐하면 자격루가 일상생활에 사용된 지 3년이 지났고 이때부터 여러 시계가 발명되었기 때문이다. ‘규표(圭表)’라는 기계가 있다. ‘규’는 단위를 뜻하는 말로 ‘시간 단위를 측정하는 기계’라는 뜻이다. 해의 높이와 해가 지는 것을 측정하는 일종의 해시계라고 할 수 있다. 해시계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 가장 먼저 사용된 시계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11~13세기경부터 막대를 이용한 해시계를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신라 시대부터 해시계를 사용했다고 하지만, 세종 때 와서야 제대로 된 해시계를 사용하게 되었다.
-72쪽 중에서
혼천의(渾天儀)는 ‘혼미한 하늘을 관측하는 천문 기구’라는 뜻이다. ‘혼의’, ‘혼의기’라고도 한다. ‘선기옥형(璿璣玉衡)’이라는 별칭을 알면 무슨 기계인지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선기’는 ‘별’이라는 뜻이고 ‘옥형’은 ‘옥으로 된 천문 관측기’라는 뜻이니까 ‘별을 관측하는 천문 기기’다. 혼천의는 1433년(세종 15년)에 정초, 정인지 등이 고전을 조사하고 이천, 장영실이 만드는 일을 감독해 만든 기계다.
-82쪽 중에서
갈릴레이는 목성의 위성인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 이렇게 4개를 발견했다. 위성은 곧 달이다. 지구는 위성이 달 하나밖에 없지만 목성의 밤하늘엔 많은 달이 뜬다. 목성의 위성은 4개만 있을까? 사실 목성에는 무수히 많은 위성이 있다. 당시 갈릴레이는 가장 빛나는 4개의 위성만 발견했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발견된 목성의 위성은 63개나 된다. 어마어마하지만 이보다 더 있을 수도 있다.
-89쪽 중에서
장영실은 직접 만든 혼천의로 밤하늘의 별과 천체들의 위치를 관측했다. 갈릴레이도 직접 개량한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을 발견했다. 별의 밝기에는 실제 밝기와 겉보기 밝기가 있다. 이 두 밝기는 각각 절대 등급과 겉보기 등급이라는 단위로 나타낸다. 절대 등급은 모든 별이 같은 거리(32.6광년)에 놓여 있다고 가정했을 때 밝기를 나타낸다. 각 별들의 실제 밝기다. 겉보기 등급은 그 실제 밝기에 상관없이 단지 밤하늘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밝기를 나타내는 척도다.
-94쪽 중에서
지동설은 코페르니쿠스가 처음으로 주장한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약 2000년 전에 그리스의 아리스타르코스(기원전 310~230년)가 먼저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고 ‘지구는 하루에 한 번 자전하고, 1년에 한 번 원 궤도를 그리며 태양의 둘레를 돈다.’는 것을 발견했다.
-100쪽 중에서
장영실이 살았던 시기를 대략 고려 말인 1390년에서 조선 세종 때인 1450년으로 잡으면 15세기 전반이다. 이때는 암흑 중세의 혼란과 근대 새벽인 르네상스가 공존하는 시기다. 14세기에서 16세기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반중세 운동이 르네상스다. 그렇다고 17세기부터 근대가 열렸다는 것은 아니다.
-120쪽 중에서
갈릴레이는 1564년에 태어나 1642년에 운명하는데 중요한 활동을 한 시기는 1580년대부터였다. 우리나라는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1545년부터 1567년까지 외척의 횡포를 막지 못한 명종이 나라를 다스렸고, 1567년부터 1608년까지 환난을 막지 못한 선조가 다스렸다. 1608년부터 1623년까지는 인조반정으로 물러난 광해군이 집권했다.
-120쪽 중에서
장영실이 왕의 가마가 부서지는 바람에 책임자로서 곤장을 맞고 쫓겨난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불경죄의 벌이 그 정도에 그친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장영실도 갈릴레이 못지않게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궁궐에서 쫓겨난 이후 이야기는 아무도 모른다. 찬란한 업적에 비해 어둡고 쓸쓸한 마지막이다.
-121쪽 중에서
갈릴레이는 73세인 1637년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78세인 1642년에 운명했으니 무려 5년간이나 실명한 상태로 지냈다. 하지만 아들과 제자들의 도움으로 교육과 집필을 계속할 수 있었다.
-125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