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포 장날 1
이진규
삼륜차가 젖은 먼지 일으키며
새벽달을 밀어낼 때쯤
먼데 사람들은 귓속 후비며
고개를 넘어온다
비단장수의 번들한 말놀음
땜장이, 양은솥 두드리며
걸쭉한 넋두리
시골 아낙의 치마 속을 들추고
대장장이 풀무질에
붉어진 고개 너머 망태 영감
긁어댈 할망구 떠올리며
식어버린 괭이 날 들고 긁적일 때
용댕이 최영만 씨는 진작부터
"그려-안 그려."
"뭐가 그려."
"최영만 이가 그려."
허정허정 삿대질에 장을 돌면
먼데 사람들은
붉은 해를 짊어지고
뉘엿뉘엿 돌아가네
*용댕이- 충주시 앙성면 용포리(용당 마을)
화병(花甁)
이진규
뒤뜰에
별꽃보다 환한 얼굴
웃음을 짓다
석류알 붉은 입술로
꽃잎에 입을 맞추네
선녀의
손에 안긴 꽃들이
꽃병에 들기 전에
제 몸에 박힌 가시 옷을
스스로 벗는데
사내는
붉게 물든 얼굴로
제 목마름 하나하나
따가운 바늘에 찔린 듯
가슴 조리게 훔쳐보다
끝내는
제 마음껏 손질하여
석류알 붉디붉은 입술을
화병에 담아두고
그윽이 바라봅니다
풀잎의 자리
이진규
앉은뱅이 향나무 틈바귀에 자라난
풀잎들의 삶을 논하지 마오.
앉은뱅이 향나무 틈바귀에 자라난
풀잎들의 자리를 탐하지 마오.
별빛 흐드러지게 피는 날
별빛 나락 모으다 지친
풀들을 위해 노래만 하오.
향나무그늘 밑에 어쩌다
어쩌다 내리는 이슬은
풀잎들이 먹을 수 있게 하오.
머잖은 날에 그들이 가고 말면
그 풀잎 조울던 그 자리
명년(明年) 봄까진 나라도 지켜 주리다.
콩밭에
이진규
이익도 나지 않는 콩밭,
꺾여진 관절 밑에
맥없이 누워버린 잡풀 위로
엉켜진 꿈들이 나와
끝 모를 이랑을 헤매고
숨 멎도록 차오르던 열기, 밀치고
밭머리 기어오르던
먹장구름, 후려치듯 퍼붓다
달려가는 발끝에 으스러질 때
비에 젖은 꿈들이 콩알처럼 맺힌다.
전방에서
이진규
적막강산(寂寞江山)에
묻히어 버린 푸른 물결들이
유유히 흐르도다.
그 물결
너무도 근엄하여
숨소리 잦아지고
그 푸른 초막 아래
내가
평안히 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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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산마루님 아름다운 시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고 건필하소서
'콩밭에' 시 행간에 들어서자 불현듯 가슴으로 장대비 쏟아져내리는 슬픔을 맛보고 맙니다. 고향의 어머니가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시가 참 깊어 감동으로 감상 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편안함을 느끼고 갑니다.
삶의 일부분이 여기 있는것 같아 머무르다 갑니다...행복 하소서~~
서정시인 님, 해닮 님, 여우꼴 님, 맑은 구름 님... 이렇게 저의 소작을 읽어 주시고 답글까지 올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조금 더 고뇌하고, 조금 더 곰 삭인 후에 글을 띄워야 함을 알면서도 모자란 제 글을 성큼 올렸습니다. 글을 올리곤 항상 후회하면서도 말입니다. 더 노력하여 좋은 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님 이거 서정시 인가요?? 이거 창작시 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