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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6. 큐티
창세기 49:1 ~ 33
야곱이 아들들을 축복하고 눈을 감다
관찰 :
1) 아들들을 부르는 야곱
- 1절.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 야곱은 자신의 죽음을 알았습니다.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에 야곱은 아들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아들들을 축복하며 앞날에 대한 예언을 말하고자 합니다.
- 2절.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 야곱은 아들들에게 자신이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기쁘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이스라엘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라 명령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며 도달하게 된 영적 영역에 대해서 아들들이 듣고 깨닫게 되기를 바랬습니다. 야곱은 참으로 자신의 신앙이 아들들에게 이어지길 기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이스라엘이 번창하게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2) 르우벤, 시므온과 레위
- 3절.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 르우벤은 야곱의 맏아들입니다. 르우벤으로 인해서 야곱은 후사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르우벤은 동생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기를 원했습니다. 때론 르우벤의 영향력이 동생들에게 미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르우벤은 힘이 쎈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총명하지는 못했습니다.
- 4절.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 르우벤은 자신의 정욕을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물의 끓음”이라는 의미는 “음탕하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야곱은 르우벤이 빌하와 성관계를 맺은 것에 대해서 죽을 때까지 그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맏아들이 자신의 아내 중의 하나와 성관계를 맺은 것으로 인해서 야곱은 너무나 분노했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 5절.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 시므온과 레위는 디나가 세겜에서 수치를 당했을 때, 세겜의 모든 남성들을 죽였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야곱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서둘러 세겜에서 나와야 했고, 이스라엘의 모든 권속들이 죽음의 위기를 넘어가야 했습니다.
- 6절.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 야곱은 그 때 너무나 힘들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의에 대해서 자신은 상관이 없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죽이고자 하는 모의가 있는 집회에 관여하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혈기대로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겜의 가축들의 발목 힘줄을 끊어버렸습니다. 너무 잔인한 행위를 했습니다. 야곱은 그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 7절.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 저주와 같은 이 예언은 그대로 성취됩니다. 시므온 지파는 출애굽 이후 인구조사의 결과 장정의 숫자가 유다 지파의 1/3에도 미치지 못하는 22,000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시므온 지파는 다른 지파들처럼 독자적인 기업을 얻지 못하고 유다 지파 중에서 몇몇 성읍만을 할당받게 됩니다. 레위 지파도 독자적으로 기업을 얻지 못하고 이스라엘 각 지파의 영토 중에 48개의 성읍에 흩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3) 유다
- 8절.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 유다에 대해서는 야곱이 놀라운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 유다라는 이름이 찬송이라는 의미이고, 형제들의 찬송이 된다는 것은 형제들을 이끄는 지도력을 소유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수의 목을 잡는다는 것은 원수를 추격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요셉이 꿈을 꾸었던 것과 같이 형제들이 유다에게 절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말합니다. 즉, 유다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태어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 9절.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라는 의미는 유다의 후손 중에서 정복자가 나올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을 통해서 이 예언은 성취됩니다. 그리고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전히 성취됩니다.
- 10절.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 “규”는 “왕이 들고 있는 막대기”를 의미합니다. 즉 유다의 자손들이 끊이지 않고 왕권을 계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거쳐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망하기까지 유다의 후손들이 통치권을 이어감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 11절.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 평화의 상징인 나귀를 풍요의 상징인 포도나무에 매었다는 것은 평화와 풍요가 더불어 주어질 것임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그런 일이 자주 이뤄지게 될 것임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너무나 흔하게 포도나무를 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유다가 누리게 될 평화와 번영, 그리고 물질적인 축복이 참으로 놀랍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하는 표현들입니다.
- 12절.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 본문은 유다의 자손들이 누리게 될 물질적인 풍요에 대한 상징 적인 표현으로 유다 자손들이 많은 가축을 소유하여 그 젖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장차 누리 게 될 가나안 땅의 물질적 풍요와 번영에 대한 예언인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의 성육신으로 인하여 모든 성도들이 누리 게 될 영적으로 풍성한 삶에 대한 예언입니다.
4) 스불론, 잇사갈, 단, 갓, 아셀, 납달리
- 13절.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 스불론 지파는 해상 무역으로 유명한 항구 도시 시 돈을 통하여 무역업과 상업에 종사하게 됨으로 야곱의 이 예언이 성취됩니다.
- 14절.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 야곱은 잇사갈이 육체적으로 힘이 쎈 종족이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잇사갈은 “나귀”라고 표현되듯이 수동적이고 우직함으로 자신들의 힘과 능력을 바르게 사용하지는 못했습니다.
- 15절.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 잇사갈은 힘이 세고 우직하지만 성실히 일했지만 형제들의 노예가 될 것이라 예언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예언과 같이 잇사갈이 피지배계층이 되어 많은 납세와 고역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 16절.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 이 예언은 재판관이며 동시에 통치자의 역할을 하였던 사사 ‘삼손’을 통해서 성취된 것으로 봅니다. 삼손은 ‘나실인’ 으로서 20여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고 통치했습니다.
- 17절.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 이 예언은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던 사사 삼손이 이스라엘의 막강한 대적 블레셋을 쓰러뜨린 일과 단 지파가 라기스를 정 복하기 위해 ‘뱀 처럼’ 간교하게 공격을 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 18절.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 갑자기 이러한 간구가 나온 이유에 대해서 야곱은 아들들을 축복하며 기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후손들에게 메시야의 구원이 임하게 될 것을 간절함으로 기도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아들들의 면면을 생각해 보면서 주님의 은혜가 없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 수 없겠다는 생각으로 주님의 구원을 간구한 것입니다.
- 19절.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 야곱은 갓 지파가 순탄한 삶을 살지 못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도리어 대적을 추격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요단 동편 북쪽에 정착한 갓 지파는 암몬과 모압, 그리고 시리아 사람들에 의해 많은 침략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침략을 물리치고 전쟁에 연단되어 용사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 20절.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 아셀 지파는 갈릴리 호수 서쪽의 기름진 고원을 차지하게 됩니다. 갈멜 산에서 시작된 이 기름진 땅은 북쪽 시돈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 21절.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 야곱은 납달리에게 암사슴의 축복을 빌고 있습니다. 암사슴은 아름다움과 떼지어 다니는 것에 대한 이미지를 갖습니다. 납달리는 암사슴처럼 자유와 민첩성을 누릴 것이라는 예언으로 해석합니다. 납달리는 갈릴리 호수의 북서쪽 풍요로운 지역을 기업으로 받게 됩니다.
5) 요셉, 베냐민
- 22절.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 야곱의 예언과 같이 요셉의 축복은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통해 이스라엘의 두 지파가 형성되는 두 배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에브라임은 특별히 풍요로운 땅을 기업으로 받고, 북왕국 10 지파를 대표하는 지파가 됩니다.
- 23절.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 야곱은 요셉의 후손들이 비록 큰 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지만, 때로는 큰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 24절.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 입음이라” => 요셉의 후손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이스라엘 중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지파가 됩니다. 하지만 그들이 북 이스라엘에 속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방 신들을 섬겼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진멸하시고 이방 민족의 포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다만 이들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은 참된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시는 분을 통해 구원을 얻게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참 목자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야곱은 아들들을 위해서 축복하는 과정에서 장차 오시게 될 메시야를 대망하는 신앙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 25절.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 야곱은 험악한 인생 속에서 많은 대적자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렇기에 요셉을 위한 기도, 사실은 자손들 모두를 향한 기도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은 야곱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었습니다. 야곱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 하늘의 복과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빌어주고 있습니다.
- 26절.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 야곱은 자신의 축복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축복보다 낫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험악한 인생을 하나님과 깊이 동행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더 많이 받았기에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야곱은 요셉의 총명함을 하나님이 사용하셨고,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큰 민족을 이루는 애굽 이주의 사건이 진행되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브엘세바에서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그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렇기에 요셉의 지파를 축복하며, 그들의 번성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에브라임 지파가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을 통해서 드러나게 됩니다.
- 27절.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 이 예언대로 베냐민 지파는 무척 무례하고 호전적 인 기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사사 예훗의 모압 정벌과 레위인 첩에 대한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 지방 사람들의 극악한 윤간 사건, 그리고 이로 인하여 일어난 기브아 전투에서의 완강한 저항 등에서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 28절.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 하나님은 야곱의 아들들의 받을 은혜의 분량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야곱은 단지 그것을 전달한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축복의 여정을 지내온 야곱은 축복이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큼 주시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아들들을 위하여 축복하는 것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강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전달한 것 뿐이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아들들에 대해 모두 파악하고 있었고, 향후에 그들의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언급해 줌으로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볼 것과 구세주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릴 것을 당부했습니다.
6) 자신의 장례를 부탁하는 야곱
- 29절.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 야곱은 애굽의 문명이 가나안에 비해서 훨씬 발달했고, 모든 면에서 우월한 곳이었지만, 자신의 장례는 막벨라 굴에서 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 30절.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박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 31절.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 야곱은 아브라함과 사라와 이삭과 리브가와 레아와 같이 그곳에 매장되기를 원했습니다.
- 32절.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 야곱에게 있어서 아브라함과 이삭으로부터 가나안 땅이 소유될 것임을 하나님으로부터 언약받았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것은 헷사람 에브론에게서 산 막벨라 굴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야곱은 여전히 가나안 땅이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주신 땅임을 믿었고, 그 땅에 매장할 것을 아들들에게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 33절.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밭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 야곱은 아들들에 대한 축복과 자신의 장례에 대한 이야기까지 모두 마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놀랍도록 신령한 존재로서의 삶을 살아낸 멋진 생애를 이렇게 마무리 하게 되었습니다.
가르침 :
1) 야곱은 자신의 죽음의 시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들들을 모두 불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부어주실 축복의 분량대로 대언을 했습니다. 그 내용은 먼 미래에 대해서까지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긍정적인 부분도 있고, 부정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모든 것들이 다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그렇게 아들들을 축복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구원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차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야 진정한 구원이 임하게 된다는 것을 야곱이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들들을 위한 기도의 중간에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주님께 간구하게 됩니다.
2) 험악한 인생을 살아온 야곱의 일생이 마쳐지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축복의 여정을 살아왔고, 하나님의 축복의 원리를 깨달아 아들들을 축복하며 그 일생을 마치게 됩니다. 힘들고 어려운 많은 역경이 있었지만 도리어 그로 인해서 아브라함과 이삭보다 더 신령한 영역의 삶을 살 수 있었음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총명한 요셉도 야곱의 신령함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사기꾼과 같았던 야곱이 축복의 사람이 된 놀라운 변화가 야곱의 일생이었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3) 야곱은 애굽이 아니라 가나안 막벨라 굴에 장사되길 원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념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백성에게도 돌아갔다는 마지막 절의 표현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구절입니다.
적용 :
1) 야곱의 일생은 축복의 여정을 걷는 인생이었습니다. 장자권을 차지하고자 무리수를 쓰기도 했지만, 결국 야곱의 험악한 인생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심으로 사기꾼 야곱이 축복을 전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들들을 축복하며 눈을 감는 장면은 하나님의 역사의 크심을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깊은 동행으로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낸 야곱의 놀라운 삶이 마무리 되고, 창세기의 종착점에 도달하게 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진 믿음의 여정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어떤 여정을 살아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2) 요셉을 통해서 구속사적 여정이 연결되지만, 그것은 야곱의 일생을 통해서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선명한 그림이 족장들의 일생을 통해서 그려지고 새겨졌습니다. 나의 삶에 대해서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임을 다시금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