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ttps://cafe.daum.net/1107/Y4PX/1970
이지끼을 님, 이지끼을 님과 저는 2011년 2월에 ‘{뉴스앤조이} 박창진 [예수님은 신인(God-Man)인가 (완결편)]’ 댓글란에서 만났습니다. ㅡ{뉴스앤조이}에서 이지끼을 님 별명은 ‘예관 아비’였고, 제 별명은 ‘평양 1907 부흥’을 염두에 둔 ‘new 2007’이었습니다.ㅡ 그 만남은 {양무리 마을}과 {개혁주의 마을}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해명한 뒤 증거가 없어 거짓말로 인정하고 사과까지 했음에도, 제 명예를 계속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다음 글은 윗글 끝단에서 옮깁니다. 가독성을 위해 제가 다듬어 옮깁니다.
예전에도, 비록 이같이 설명할 수 없었지만,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120 명이 아니라 12 사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계 님은 제 글을 인용하면서 “120 문도”라는 말을 추가해서 마치 제가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120 문도였다”고 말한 것처럼 조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제가 교정을 허락했다고 우기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계 님은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을 했고, 이제는 그 조작을 덮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이지끼을 님이 문제 삼으신 글입니다. 위 링크 글 속에 이지끼을 님이 링크하신 글입니다. 제가 2018년 3월 13일 18시 58분에 {개혁주의 마을}에 올린 글입니다.
김홍전 <오순절 성신 강림: 방언으로 한 찬송(할렐)의 효과>// 이지끼을 님 해석과 같은 해석입니다.
https://cafe.daum.net/reformedvillage/j4J2/107?q=%EC%9D%B4%EC%A7%80%EB%81%BC%EC%9D%84%20120&re=1
이지끼을 님, 이지끼을 님이 ‘자신의 글에 제가 120 문도를 넣어 자신의 글을 “조작”해 “왜곡”한 글’이라며 링크하신 윗글을 보면, 댓글이 ‘79 개’로 적혀 있습니다. 그 ‘79 개 댓글’에는 제 댓글도 많고 이지끼을 님 댓글도 많습니다.
이지끼을 님 댓글도 많은데, 10 년이 다 돼가는 이 시점에서 이지끼을 님은 제가 이지끼을 님 글을 교정하면서 ‘120 문도’를 넣은 일을 두고 “사계 님은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을 했고, 이제는 그 조작을 덮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라는 엄청난 말로 제 명예를 계속 훼손하셨습니다.
이지끼을 님, 왜 그때, 2018년 3월 제가 이지끼을 님 글을 “조작”한 그 게시글 댓글란에 이지끼을 님이 여러 댓글을 달았던 그때 저에게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과 “조작”을 따지지 않으셨습니까?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120 명이 아니라 12 사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라도, “비록 이같이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재세례파들이 흘린 핏값을 함께 치르실 것 같은데 괜찮으신가 봅니다.” 하는 저주와 한 게시글에만 써도 될 댓글, 여러 게시글 여기저기 적으신 “간단하게 거짓말을 하며 넘어가려는 것을 보니 어떤 영을 받으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하는 정죄와 함께 “조작”, “우기는데”, “거짓말”, “신의”, “조작”, “거짓말”이라는, 정죄를 넘어 저주까지 하신 이런 심각한 문제를 다루는 일에서 제 게시글도 읽으며 대응하셔야, 저에게 “세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니고”라는 유치한 소리 듣지 않으십니다. 또 링크합니다.
https://cafe.daum.net/1107/Y4PX/1970
다음은 위 링크 글에 적힌 댓글입니다. 가독성을 위해 제가 다듬어 옮깁니다.
이지끼을 26.04.02. 08:53
그리고 제 글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셨던 곳과 사람들 (6)]에 댓글 다신 것은 보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전에 아무리 설명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으시니 제가 포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부분으로 갑니다. 링크합니다.
https://cafe.daum.net/reformedvillage/D3IK/116
다음은 위 링크 글에 달린 댓글들입니다. “댓글 다신 것은 보지도 않았던 것 같”은지, “포기했던 것”인지, ‘이지끼을 님 논쟁 태도에 관한 제미나이 평가’대로 《“어렵다.”며 논점 회피》였는지 살펴보십시오. 가독성을 위해 이지끼을 님 댓글들은 제가 다듬어 옮깁니다.
…(인용 시작)…
四季 朴埰同 22.03.05.11:30
다음은 누가복음 24장입니다.
四季 朴埰同 22.03.05.11:30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36 이 말을 할 때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해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해 두려워하며 어찌해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四季 朴埰同 22.03.05 11:31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 율법과 선지자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뤄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됐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52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四季 朴埰同 22.03.05.11:36
32절 “그들”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입니다.
33절 “그들”은 “열한 제자(사도)”입니다.
36절~52절에 수차례 적힌 “너희”와 “그들”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와 ‘열한 사도’와 33절 “그들(열한 사도)과 함께 한 자들”입니다.
四季 朴埰同 22.03.05.11:36
《“바대인, 메대인, 엘람인…” (행 2:9~11)이라는 말이 있으니, 이 자리에 이방인들도 있었다고 많이 오해하는데 ~~~ 유대계 바대인, 유대계 메대인, 유대계 엘람인…이라는 의미입니다. 모두 유대인들입니다.》 하셨습니다. 이 주장을 두고는 사도행전 2장 10절에 적힌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로 이미 지적을 해 드렸건만, 확증편향 때문에 한 치 진전도 없으십니다.
이 점은 {무물 카페}에서도 지적하신 회원이 있었는데, {무물 카페}에서 주장하셨던 대로 또 “이방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인데, 사도행전 저자인 누가는 이들을 이방인으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하시겠지요. 아니면, {무물 카페}에서 저에게 쓰신 댓글대로 “누가는 이들을 이방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로 한 발 뒤로 물러서시든지요.
이지끼을 22.03.05.13:56
누가복음 마지막 부분은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장 6절~14절까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날 기록으로 누가복음 마지막 부분을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 승천을 목격한 사람들은 11 사도였습니다. 예수님 승천을 목격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11 사도입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24장 50절~53절은 사도들이 성전에서 오순절 날까지 하나님을 찬송했던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도행전 1장을 {개역 한글 성경}이나 {개역개정 성경}으로 보면 예수님 승천을 목격한 사람들이 11 사도였다는 것이 분명치 않습니다. 영어 성경이나 {새 번역 성경}을 보실 것을 권합니다.
이지끼을 22.03.05.13:56
《이 주장을 두고는 사도행전 2장 10절에 적힌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로 이미 지적을 해 드렸건만, 확증편향 때문에 한 치 진전도 없으십니다. 이 점은 {무물 카페}에서도 지적하신 회원이 있었는데, {무물 카페}에서 주장하셨던 대로 또 “이방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인데, 사도행전 저자인 누가는 이들을 이방인으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하시겠지요.》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확증편향인지 살펴봅시다.
그러니까 사계 님은 그 사람들, 곧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여전히 이방인들이라는 것이지요? 반면에 저는 그들이 이방인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누가는 유대인으로 개종한 이방인들은 이방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가만이 아니라 당시 유대인들 모두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은 그 오순절에 믿는 자들이 된 삼천 명에 속하는 자들입니다. 사계 님 생각에 따르면 “이방인들”이 오순절에 믿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지끼을 22.03.05.13:59
베드로는 고넬료와 그 일가를 만났을 때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10장
28절: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절: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사도행전 2장 오순절이 AD 30년 경이라면 고넬료에 관한 기록은 AD 37년 경입니다. 고넬료에 관한 누가 기록은 고넬료와 그 일가가 이방인으로서 처음 복음을 받고 믿는 자들이 된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이 “위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베드로와 사도들 그리고 형제들이 이때까지는, 이방인들도 구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베드로와 사도들은 오순절에 “이방인”들이 믿는 자들이 되었던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까? 아니면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을 이방인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인가요?
확증편향이라는 말을 많이 하며 비판하시는데, 자신의 확증편향이 심해져 간다는 것은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고운 말로 비판하시면 좋겠습니다.
四季 朴埰同 22.03.05.15:01
“누가복음 마지막 부분은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셔 놓고 “예수님 승천을 목격한 사람들은 11 사도였습니다.” 하시는군요.
“예수님 승천을 목격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11 사도입니다.”에는 동의합니다. “예수님 승천을 목격한 사람들은 열한 사도만이었다.”는 이지끼을 님 주장에 동의해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 수나 예수님 승천에 관한 각 복음서와 사도행전 기록들에는 ‘모순’처럼 보이는 ‘상이’한 기록들이 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이 ‘모순’처럼 보이는 ‘상이’한 기록들을 내세워 ‘하나님 말씀으로서 성경의 권위, 성경의 영감’을 부정합니다. 그러므로 굳이 ‘모순’처럼 보이는 ‘상이’한 기록들을 두고는 거론하지 않습니다. 다만,
四季 朴埰同 22.03.05.15:02
누가복음 24장 30절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장소를 예루살렘과 멀리 떨어져 있는 “베다니”, 감람산(올리브산) 기슭 “베다니”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베다니’는 ‘예루살렘’과 가까운 곳이 아닙니다. 즉,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거리에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성경 학자들에 따르면, ‘베다니’와 ‘예루살렘’ 거리는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거리”의 “약 2.5 배 거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장 12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 그들이 올리브산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이 산은 안식일에도 다닐 수 있을 만큼 예루살렘에서 가까웠다. {바른 성경}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개역 개정 성경}
四季 朴埰同 22.03.05.15:04
“누가 확증편향인지 살펴봅시다. 그러니까 님은 그 사람들, 곧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여전히 이방인들이라는 것이지요? 반면에 저는 그들이 이방인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고 주장하신 뒤, 고넬료 예를 드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 10절에서 누가는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로서 이방인을 말하는데, 이지끼을 님은 고넬료 예를 드셔 놓고도 여전히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고넬료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임’을 모르시는군요. ㅠㅠ.
혹시나 사도행전 10장 2절 “그가 경건해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를 두고 “고넬료가 유대교로 개종했다는 뜻은 아니다.”는, 억지 주장을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지끼을 22.03.06.16:47
누가는 사도행전 1장 1절~2절에서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누가복음)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라고 말씀합니다.
누가는 자신이 쓴 누가복음 마지막 부분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명하셨다는 것을 기록하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누가복음 24장 50절~53절이 11 사도들에 관한 말씀으로 봅니다.
그리고 저는 고넬료가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이었다는 말은 처음 듣습니다. 그러면 제가 말씀드린 “위법”이란 말은 베드로가 잘못 말한 것인가요?
사도행전 2장 10절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고넬료에게 가서는 유대인으로서 이방인들과 교제하는 것이 “위법”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세 번 환상과 말씀으로 베드로 마음을 바꾸신 것입니까? 오순절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 줬던 것을 기억나게 하시면 충분한 일이었는데…. 안 그런가요?
四季 朴埰同 22.03.06.19:38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행 2:1)
라마드 목사님께서 원어 성경 분석으로 사도행전 2장 1절에 적힌 장소 “한(同) 곳”은 사도행전 1장 13절에 적힌 “다락방”, ‘120 문도가 모인 다락방임’을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베다니와 예루살렘의 거리’에서 ‘행간 의미’를 찾으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러함에도 “저는 누가복음 24장 50절~53절이 열한 사도들에 관한 말씀으로 봅니다.” 해 버리시는군요.
이 같은 이지끼을 님 해석대로 하면, ‘세례 요한 어머니 엘리사벳으로 시작해 주님 잉태와 탄생과 세례 요한 사역’을 기록한 누가복음 1장 5절~3장 20절은 누가의 기록이 아니군요. 사도행전 1장 1절에 따르면,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누가복음)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이니까요.
四季 朴埰同 22.03.06.19:38
“저는 고넬료가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이었다는 말은 처음 듣습니다.”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0장 2절은 “그가 경건해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적고 있는데, 이 구절에 적힌 “하나님”은 고넬료에게 “알지 못하는 신”(행 17:23)이었습니까? 고넬료가 “알지 못하는 신”을 경외(하나님 사랑)하며 구제(이웃 사랑)에 힘쓰며 항상 기도(하나님 사랑)했는데, 고넬료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돼 기억하신 바가 됐”(행 10:4)습니까? 고넬료가 “알지 못하는 신”을 경외했음에도 “유대 온 족속이 칭찬”(행 10:22)했습니까?
제가 왜 이 문제를 거론했습니까? 사도행전 2장 10절은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이방인들)”이라고 적고 있음에도, 이지끼을 님이 아무 설명도 없이 “~~~ 이 자리에 이방인들도 있었다고 많이 오해하는데 ~~~ 이들이 이방인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 모두 유대인들입니다.”고 주장하셔서 거론한 것 아닙니까?
四季 朴埰同 22.03.06.19:38
라마드 목사님과 저는 2012년 여름 {양무리 마을} 연중론 비평 토론 때 ‘고넬료 경건은 중생자 경건이 아닌 유대교 경건임’을 말했습니다. 중생하지 못한 자이긴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고넬료를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으로 본 것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고넬료를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할지라도, ‘율법의 관점’, ‘유대교 관점’, ‘할례자들 관점’에서는 고넬료는 여전히 이방인이었습니다. “유대 온 족속이 칭찬”했던 고넬료가 ‘엄밀한(좁은) 의미에서 개종’을 뜻하는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행 11:2~3)입니다.
이지끼을 22.03.09.10:03
라마드 님께서 밝히셨다고요? 다락방에서 방언을 한 것을 성전에 있던 유대인들이 들었다는 말씀이네요.
가끔씩 news에 나오는 western wall 이 그 벽(담)인데 그 성전 밖의 다락방에서 얼마나 큰 소리로 말해야 그 성전 안에 있는 사람들이 듣습니까?
그리고 방언 후에 이 사람들이 바로 대화를 시작하는데, 그 큰 성전 벽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오순절에 유대인들이, 그것도 성전 기도시간인 9시에 성전 밖의 어느 다락방 근처에 그것도 삼천 명이 몰려 있었나요?
라마드 님이 쓰는 원어 성경은 1898년에 발행된 YLT 98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조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이지끼을 22.03.09.10:01
고넬료는 유대인인 베드로에게 유대교 개종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이 위법이라고 했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 번의 환상과 말씀으로 그 마음을 바꿔서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따라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왜 우리가 이런 대화를 하는 것입니까?
누가는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을 이방인들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제가 말한 것에 사계 님이 문제를 제기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저는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누가도 그렇게 기록했다는 것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제 고넬료가 할례받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셨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저 보고 확증편향이라는 말씀은 없네요.
이지끼을 22.03.09.10:06
그곳에 이방인들이 있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있었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메대인 등을 외국인, 이방인들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이창모 목사 등이 좋은 예가 아닙니까?
그리고 ‘ㅎㅈㅇㅎ’님도 자신의 논문에 그렇게 썼던데 나중에라도 찾아 보십시오, 실수가 아니라 제가 보기에는 조작 같습니다.
四季 朴埰同 22.03.09.13:59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행 2:2)
때가 제3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행 2:15)
{성경} 여러 사가 사필史筆이나 누가 사필史筆은 ‘축약’의 특징이 있다는 것은 칼빈 선생님도 가르치셨고 김홍전 목사님도 가르치셨습니다.
“이 같은 이지끼을 님 해석대로 하면, ‘세례 요한 어머니 엘리사벳으로 시작해 주님 잉태와 탄생과 세례 요한 사역’을 기록한 누가복음 1장 5절~3장 20절은 누가 기록이 아니군요.”에서 ‘행간 의미’를 읽지 못하신 채, “다락방에서 방언을 한 것을 성전에 있던 유대인들이 들었다는 말씀이네요. ~~~ 방언 후에 이 사람들이 바로 대화를 시작하는데 ~~~ 성전 밖 어느 다락방 근처에 그것도 삼천 명이 몰려 있었나요?”라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를 무시하시는군요.
다락방에 모인 120 문도에게 성령께서 임하실 때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낸 효과는 무엇이었을까요?
四季 朴埰同 22.03.09.14:34
{무물 카페}에서 “온 집”(행 2:2)이라는 표현을 내세워, 이지끼을 님 주장에 반론하신 회원이 있었습니다. 또한 “이 사람들”(행 2:15)이라는 표현을 내세워, 이지끼을 님 주장에 반론하신 회원이 있었습니다. ‘내 해석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없으신 채, 이런 반론들에는 귀를 기울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 채 사도행전 3장 사건을 사도행전 2장 사건에 들이대신 것을 보면, ‘확증편향’ 맞습니다.
“아니면 오순절에 유대인들이, 그것도 성전 기도시간인 9시에 성전 밖 어느 다락방 근처에 그것도 삼천 명이 몰려 있었나요?” 하셨습니다. 삼천이라는 숫자는 성인 남자들만을 뜻한다는데, 삼천 명만 몰렸겠습니까? 그런데 성령께서 120 문도에게 임하신 시간이 “성전 기도시간인 9시”(행 3:1)였습니까?
四季 朴埰同 22.03.09.14:04
“누가는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을 이방인들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제가 말한 것에 사계 님이 문제를 제기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하셨습니다. 이미 제가 {무물 카페}에서도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을 두고 지적해 드렸음에도, 본문에 “누가는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을 이방인들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적으셨습니까? 즉,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에 관해 설명하셨습니까?
“메대인 등을 외국인, 이방인들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이창모 목사 등이 좋은 예가 아닙니까?” 하셨습니다. 제가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성경}을 왜곡하는 이창모 목사’입니까? 즉, 제가 ‘이단들처럼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성경}을 왜곡하는 이창모 목사’처럼 “메대인 등을 외국인, 이방인들로 오해”한 적 있습니까?
…(인용 끝)…
위 댓글들을 복사해 두 AI에게 평가를 부탁했습니다. 챗 지피티 평가만이라도 잘 살펴보십시오. 링크합니다.
https://cafe.daum.net/1107/YlDw/47

첫댓글
하나씩 답변 드립니다.
저의 글을 조작한 것에 말씀드립니다.
저는 님이 저의 글을 인용한 것은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글을 조작하셨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된 것입니다.
어느 누가 이런 일을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인용의 원칙은 copy & paste 인데, 사계님이 이런 원칙을 무시하는 분이라는 것은 몰랐던 것입니다.
제글을 인용하셔서 고마운 마음, 민망한 마음이 들었었는데
조작하셨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누가복음 24장은 대명사로 이어지는데
누가 누구인지 참으로 분간하기 어려운 24장입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1장을 통해서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사람들이 11 사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마지막의 승천기사는 11 사도들이었다고 이해합니다.
“그런데 제글을 조작하셨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된 것입니다.”→히스테리 그만 부리시고, 그 시점 이야기하십시오.
행 2:9-11절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 . .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 . . 하고
행 2:10절을 보면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 이 있습니다.
제가 언제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없다고 했습니까?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은 유대인으로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드리지요.
제가 멕시코 출신 미국인 가족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들은 유대교를 믿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자신들을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사계님은 이경우 "너희들은 유대인이 아니다"라고 하시겠습니다.
이들은 인종적으로는 멕시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을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유대인은 혈통(모계 계승)과 종교(유대교 신앙)라는 두 가지 요소를 통해 정체성이 정의되는 민족-종교 집단입니다.
전통적으로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혈통적으로 유대인으로 인정받지만, 종교적으로는 유대교로 개종하거나
신앙을 공유하는 사람도 유대인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습니다. "
유대교로 개종하여 유대인들이 되었으니 성전 안에 있을 수 있었겠지요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성전안에 들어 오게 했을까요?
사계님, 님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고
부정하지 마시고 알아 보시면 좋겠습니다.
유대교로 개종했다는 말은
남자의 경우 할례까지 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할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넬료는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이 바로 알고 있는지 부터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지끼을
이지끼을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셨던 곳과 사람들 (6) (다락방이 아닌 성전 그리고 120 명이 아닌 12명)]
https://cafe.daum.net/reformedvillage/D3IK/116
다음 댓글란 하나에 적는 글은 위 링크 글에서 옮기는 글입니다.
@이지끼을
이 방언을, 자신들이 태어나서 자란 곳의 언어로 들어 이해했던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고, 그리고 이 방언을 들었지만, 이해 못 해서, 방언을 말하는 자들을,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하던 사람들도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바대인, 메대인, 엘람인······” (행 2:9~11)이라는 말이 있으니, 이 자리에 이방인들도 있었다고 많이 오해하는데 “바대인, 메대인, 엘람인······”이라는 말은 이들이 이방인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천하 각국에서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는 유대인들”(행 2:5)이 어떤 나라에서 왔는지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계 바대인, 유대계 메대인, 유대계 엘람인······이라는 의미입니다. 모두 유대인들입니다.
@이지끼을
이지끼을 님, 자 봅시다.
그때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행 2:5)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행 2:10~11)
“모두 유대인들입니다.”??? 이지끼을 님이 아무 설명 없이 “모두 유대인들입니다.” 해서 모두 유대인이 아닌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 유대교로 들어온 이방인들도 있다고 제가 설명해 드렸으면, 【참 더럽고 구질구질한 변명】을 늘어 놓을 게 아니라, “미처 못 봤습니다.” 인정하며 넘어가면 됩니다. 인정하고 넘어가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서로 이런 구질구질한 댓글들 주고받는 일 없습니다.
@이지끼을
“모두 유대인들입니다.”??????? 이 시대 【최고】 신학자 이지끼을 님이 세례 중생론에 꿰맞춘 ‘12 사도설’과 ‘성전설’, 이 프레임에 갇혀서 ‘사도행전 2장 10절~11절’에서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만이 아닌 또 놓치고 있는 게 안 보이실 것입니다. 다음 구절에서 뭘 놓쳤는지 잘 생각해 보십시오.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성전 안에 들어오게 했을까요? 사계 님, 님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고 부정하지 마시고 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하셨습니다.
“사계 님, 님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지끼을 님은 모든 것을 알고 있어서 귀를 막으셨나요? 뉴스에 나오는 “Western Wall(통곡의 벽)”을 언급하셨던 분이, “저는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받았던 사도들이 솔로몬의 행각이나 어느 뜰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셨던 분이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성전 안에 들어오게 했을까요?”???????
@이지끼을
이지끼을 님, 【10 년】 가까이 쌓은 【공든 탑】이 이지끼을 님 【무지】에 따른 【자폭】으로 우르르 무너졌더라도, 그래서 공허하더라도 저에게 【히스테리】 부릴 생각 말고, 이제 이지끼을 님 【무지】가 허문 【공든 탑】 잊고, 차분히 생각해 보십시오.
세례 중생론에 꿰맞춘 ‘12 사도설’과 ‘성전설’ 프레임 갇혀 이지끼을 님이 놓치신 것은 ‘누가복음 마지막장’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만이 아닌 두 가지가 더 있습니다.
①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즉, 누가가 왜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며 독립 구문을 만들어 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② “솔로몬의 행각이나 어느 뜰”이라 하셨습니다. “어느 뜰”에는 성전 【밖】 ‘이방인의 뜰’도 있고, 성전 ‘안’ ‘여인의 뜰’도 있습니다. 물론, 성전 【안】 ‘여인의 뜰’은 개종자 포함 유대인들 남녀노소가 들어갈 수 있는 뜰입니다. ‘이방인의 뜰’은 개종하지 않은 사람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뜰입니다.
@이지끼을
성경의 증거나 예루살렘 성전 구조도는 이처럼 이지끼을 님 ‘12 사도설’과 ‘오순절 성령 강림 성전설’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제발 정신 차리셔서 【“내가”】라는 꿈에서 깨어나십시오.
∎ 성전 【안】 (Inner Courts): 지성소 + 성소 + 제사장의 뜰 + 이스라엘인의 뜰(할례를 받아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 포함 성인 남자들만 들어갈 수 있음) + 여인의 뜰(개종한 이방인 포함 유대인 남녀노소 모두 들어 갈 수 있음) ⇦ 이방인이 들어갔을 시 사형!
∎ 성전 【밖】 (Outer Court/Public Area): ‘이방인의 뜰’과 그 외곽을 둘러싼 ‘솔로몬 행각’.
이제 이토록 【참 더럽고 구질구질】하게 【히스테리성 변명】할 생각 마십시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라는 【교만】을 꺾으십시오.
@이지끼을
주님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 휘장을 찢으신 사건이 뜻하는 것은 ‘구약 제사 제도 【종언】’과 함께(同) ‘예루살렘 성전 제도 【종언】’입니다. 그러함에도, 이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시는 이지끼을 님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입니다.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임’을 열심히 증명하시는 일입니다.
증명하면, ‘신약 교회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시작됐다.’는 ‘오순절 성령 강림 성전 【안】 설’은 살아나겠지요. 살아나 봐야 그게 의미 있습니까?
예루살렘 성전 구조조차도 모르면서 “사계 님, 님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는 【교만】, 【오만】을 부렸다는 사실이 감춰집니까?
@이지끼을 <귀만 비정상이 아니라, 눈도 비정상입니까?>
“그러므로 고넬료는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이 바로 알고 있는지부터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하기야 난독 중증이시니, 【난독증 중증 환자】에게 “제발 상대 글 제대로 독해하십시오.”라고 제가 권면한다면, 권면한 제가 【불후의 바보】이겠지요.
다음은 위 게시글에서 옮깁니다.
@이지끼을
四季 朴埰同 22.03.06.19:38
라마드 목사님과 저는 2012년 여름 {양무리 마을} 연중론 비평 토론 때 ‘고넬료 경건은 중생자 경건이 아닌 유대교 경건임’을 말했습니다. 중생하지 못한 자이긴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고넬료를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으로 본 것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고넬료를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할지라도, ‘율법의 관점’, ‘유대교 관점’, ‘할례자들 관점’에서는 고넬료는 여전히 이방인이었습니다. “유대 온 족속이 칭찬”했던 고넬료가 ‘엄밀한(좁은) 의미에서 개종’을 뜻하는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행 11:2~3)입니다.
사계님이
[[ 제가 해명한 뒤 증거가 없어 거짓말로 인정하고 사과까지 했음에도, 제 명예를 계속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다음 글은
윗글 끝단에서 옮깁니다. 가독성을 위해 제가 다듬어 옮깁니다.]] 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사과하는 것이 사과입니까?
님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10 년이 지난 뒤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10 년이 지났더라도 저와 이지끼을 님이 주고받았던 메시지,
독자들이 독해하기 쉽도록 교정을 허락하신 메시지를 생각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자신의 조작을 덮으려고 제가 교정을 허락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런 메시지를 증거로 보여 줄 수 없으니까 사과하는 것이 사과입니까?
사계님이 잘 알지 않습니까? 그런 메시지나 쪽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님은 자신의 명예를 중시한다고 하셨나요?
자신의 명예를 중시하신다면 그런 일은 하지 마셨어야지요.
그리고 그런 조작을 덮으려고 거짓말도 하지 말았어야지요
자신의 명예는 자신의 언행과 관계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 조작을 하고 또 조작을 덮으려고 거짓말하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명예를 없애는 것입니다.
<세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https://cafe.daum.net/1107/Y4PX/1970
10 년 가까이 쌓은 【공든 탑】이 【교만】과 【무지】에 따른 【자폭】으로 우르르 무너져 이해는 가지만, 위 링크 글 댓글란에 썼던 제 댓글 두 개를 이곳에 더럽게 또 적습니다.
四季 朴埰同 <난독증 중증이시라, 여전히 행간 의미를 못 읽으시네요.> (26.04.02.09:18)
유치원생도 이 정도면 말귀를 알아들을 것 같습니다.
첫째,
“그때는 제가 오순절에 12 사도들이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자세히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신 분이 이지끼을 님입니다.
“그때는” 언제입니까? ‘오순절 성령 강림 시 방언’에 관한 이지끼을 님 글에 제가 독자들 이해를 돕기 위해 ‘120 문도’를 넣어 {개혁주의 마을}과 {무물 카페}에 올린 때입니다. 이때는 준비가 안 돼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四季 朴埰同 (26.04.02.09:19)
둘째,
‘이창모 목사 방언중지론 글’을 비평한 이지끼을 님 글 【주제】는 무엇입니까? ‘오순절 성령 강림 시 방언을 받은 사람이 12 사도냐, 120 문도냐?’입니까? 아니면, ‘오순절 성령 강림 시 방언은 【사람을 향한】 새로운 계시로서 【설교】냐, 【하나님을 향한】 【찬미】냐?’입니까?
물론, ‘이창모 목사 방언중지론 글’을 비평한 이지끼을 님 글 【주제】는 ‘오순절 성령 강림 시 방언은 【사람을 향한】 【설교】가 아닌 【하나님을 향한】 【찬미】다.’입니다.
그러면, 제가 독자들 독해를 도우려고 기독교 【정통】 해석인 ‘120 문도’를 넣었는데, 이 삽입이 이지끼을 님 글 【주제】를 “조작”, “왜곡”한 삽입입니까?
세살 먹은 어린애 투정도 아니고, 제발 좀 정신 차리십시오.
@四季 朴埰同
제 글을 안 보신 것인가요?
이창모 목사가 주장한 것은 방언이 외국어 방언이고
사도행전 2장에 이 외국어 방언으로 전도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전도가 아니고 우리의 기도와 찬송과 같은 것이다 라는 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120명이냐 12 사도들이냐 라는 것과는 아므런 상관이 없는 글이었습니다.
님은 도움을 준 것이라고 우기지만, 당시에 제가 오순절에 12사도들이라고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다면
더 쉽게 비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120명이 아니라 12사도들이 방언을 한 것이므로
12사도들이 말한 방언이 외국어 방언이 될 수 없고 고전 14장의 방언과 같은 방언이기 때문입니다.
@이지끼을
오순절 성령 강림 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을 ‘12 사도’가 아닌 ‘120 문도’로 말씀하신 김홍전 목사님 강설 주제는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전도가 아니고 우리의 기도와 찬송과 같은 것이다.”였습니다. 이지끼을 님 글 주제 역시 김홍전 목사님 강설 주제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120 문도’를 더한 이지끼을 님 글은 “당시에는 120명이냐 12 사도들이냐라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조작”, “왜곡”을 따지실 일이 아닙니다.
“님은 도움을 준 것이라고 우기지만,”??? 제가 이지끼을 님에게 도움을 줬다고 우기고 있습니까?
“12 사도들이 말한 방언이 외국어 방언이 될 수 없고”??? 제가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120 문도’가 말한 방언은 ‘최소’ 15 개국 언어임.]라는 글을 올려 외국어임을 밝혔음에도, 이 역시 세례 중생론에 꿰맞춘 성경 본문 훼손입니다.
@四季 朴埰同
제가 어제는 거론안했는데 오늘 말씀드립니다.
"그러면, 제가 독자들 독해를 도우려고 기독교 【정통】 해석인 ‘120 문도’를 넣었는데,
이 삽입이 이지끼을 님 글 【주제】를 “조작”, “왜곡”한 삽입입니까?"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저에게 처음 말한 변명인
"10 년이 지난 뒤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10 년이 지났더라도 저와 이지끼을 님이 주고받았던 메시지,
독자들이 독해하기 쉽도록 교정을 허락하신 메시지를 생각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라는 말은
거짓말인 것이 확인된 것입니다.
님이 임의대로 남의 글에 손을 댔다는 것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님은 저의 글을 조작하고 그리고 이를 덮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이지끼을 <여전히 입만 살아서>
참 이토록 구질구질 더러운 댓글 쓰는 것도 중생의 열매는 아닌데, 이지끼을 님처럼 귀 닫고, 눈 멀고 입만 산 게 중생의 열매인가도 생각해 보세요.
성경 본문을 왜곡 훼손한 것은 중생의 열매인가요?
거짓말???
“그런데 제글을 조작하셨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된 것입니다.”→히스테리 그만 부리시고, 그 시점 이야기하십시오.
이 시점 적으시라니까요.
이토록 벽창호고, 이토록 모자란 사람인 줄 생각도 못 했어요. 불후의 바보 박창진 씨 급이에요.
지금 문제가 제 거짓말인가요? 아이고, 참 대단한 건수 잡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