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출어람靑出於藍
은빛수필문학회 정석곤
전북도민일보를 보면 제자 이길남 글이 눈에 띈다. 매주 연재하는 <이길남 선생님의 글쓰기>다. 공감하며 끝까지 읽는다. 언제부터 연재했는지는 모르지만 3년 전에 그 글을 모아 두꺼운 <글 잘 쓰는 법> 이론서를 출간했다.
인간으로서 남이 나보다 잘 되기를 바라는 게 마땅하다. 현대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 경쟁 사회에서는 한 피를 나눈 형제자매간까지도 그렇지 못하다.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민이, 부모는 자녀들이, 교사는 학생들이 잘되는 것을 바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예부터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지금도 내겐 변하지 않는 한가지 마음이 있다. 기도는 못 하지만 제자들이 나보다 더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곧 청출어람이 되는 소원이라고나 할까? 내 묵은 일기장과 다이어리에는 밤하늘에 별같이 제자들의 이름이 박혀있다. 32년 동안 담임을 맡았다. 중간 전근이 두 번 있었으니까 서른네 번의 제자들 이름이 있다. 어느 해와 근무지를 생각하면 그 얼굴들이 희미하게나마 떠오른다. 이름이 가물가물할 땐 일기장과 다이어리를 뒤적여본다. 그들이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새록새록 얼굴이 사무치기도 한다.
.
이길남, 50년 전 세 번째 근무지인 순창동(지금 옥천)에서 만나 일기장에 들어왔다. 4학년 2학기 때였다. 다음 해는 5학년 남자반을 맡아 떨어졌다가, 6학년 때 또 담임으로 만났다. 2년 반, 2년, 1년 반 1년짜리 제자들이다. 그녀에게는 1년 반짜리라 특별한 관심을 주지는 않았을 성싶었다. 아마 가운데 쯤 키에 명랑한 소녀로 열심히 공부하며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학교생활을 했다는 생각뿐이다.
30년 만일까? 진안군 관내에서 만났다. 그 뒤론 우리 만남을 쭉 이어오고 있었다. 초청장 없이 몰래 ‘약식 정년퇴임식’을 했는데 어느새 알고 축하 화분으로 식장을 빛내주기도 해 놀랐었다. 제자는 일찌감치 글쓰기를 시작했는지 어린이 글짓기 지도와 동시와 동화 작가로 등단하고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다. 게다가 이름난 작가들 동시집에 삽화까지 그려주고 있다. 나날이 천국을 소유한 어린이들과 글 밭을 가꾸고 있어, 이제는 인정을 받아 상도 받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문단 장르는 다르지만 사제간에 두어 단체의 회원으로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다.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올해는 큰 경사가 난 게 아닌가?. 교원문학회 제7회 ‘교원문학상’을 받았다. 나보다 한 해 늦게 회원이 되었는데도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교원문학상은 본회의 발전을 위한 노력도 보지만, 기준을 앞세워 퍽 까다롭다. 나도 그 상을 기대해보았으나 좀 험한 말투로 조족지혈鳥足之血이었다.
그런데 아동문학가인 제자는 현직 여자 교장으로서 그 일을 끈질기게 해내고 말았다. 심사 기준을 따라 최근 3년 동안 이론서 《글 잘 쓰는 법》, 동시집 《아기 반딧불이》, 시집《봄강》 3권을 출간하여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정말 장하다. 내가 상을 받은 만큼이나 아니 더 크게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교원문학》 8호에 살짝 써놓은 수상소감을 읽고 몸 둘 바를 몰랐다.
“저를 문학소녀로 이끌어주신 정석곤 은사님께 이 수상의 영광을 돌립니다.”
자기를 문학소녀로 이끌어주었다니 착각한 게 아닌가? 믿어지지 않아 받아드릴 수가 없었다. 다만 자랑스러운 이길남 제자가 중국 순자荀子의 《권학勸學》에 나오는 말, 청출어람을 견주어 말 할 수는 없지만, 자랑스러울 뿐이다. 제자로서 땀 흘리며 노력해 스승에 대한 예의를 다 했기 때문이다. 제자 이길남! 앞으로도 문인으로서 번성하는 기세가 크게 일어나 잘 뻗어 나가길 바란다.
(2023.5.20.)
※ 청출어람靑出於藍 : 푸른 물감은 쪽에서 나왔다. 쪽에서 나온 푸른 물감이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