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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오르톨랑의 유령>
저자: 이우연
오르톨랑은 조리법이 너무나 잔인해 금지된 프랑스 멧새 요리입니다. 작은 새의 눈을 뽑고 상자에 가두어 과일과 견과류를 먹인다고 해요. 오르톨랑이 밤에 게걸스럽게 먹는 본능을 이용한 것인데요 비대해진 새를 산 채로 프랑스산 브랜디에 담가 익사시킨 후 굽는 요리입니다
[오르톨랑의 유령]는 아픔과 고독 속에 살고 있는 존재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한 이우연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입니다.
단편마다 고유한 단 하나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는데요. 청소도구함에 갇힌 소녀, 미로의 한복판에 선 소년, 비행기를 추락시킨 기장, 염산 테러를 당한 여자, 비현실적인 상황에 처한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들의 외로움, 절망, 갈망이 쉴 새 없이 메아리처럼 울리는 느낌을 받았어요.
[출판사 서평]
“무한한 밤을 탈출하지 못한 존재들, 그들은 그들만의 진실로서 살아있다.”
감각적이고 매혹적인 문체로 존재의 틈을 탐색하는 이우연 작가의 세 번째 소설 『오르톨랑의 유령』은 혼자임을 피할 수 없는, 그러나 고독 속에서도 불가능한 갈망에 가 닿기 위해 분투하는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홀로임에 느끼는 절박한 외로움과 결코 닿을 수 없는 희망에 대한 갈망들을 강렬한 언어로 짧고 폭발적인 이야기들에 담아 전한다.
작가는 “이 글은 동시에 혼자일 수만은 없는 것들이 혼자 이상을 원하는 장소들에 관한 글이다. 이곳, 비현실적인 악몽 속에 거주하는 것들은 누군가에게 가 닿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들은 더럽고 비좁은 틈새에서 불가해한 중얼거림을, 도저히 믿기 어려운 악몽들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언어로 번역하려 몸부림친다. 그것들은 불가능한 밤을 스스로 번역하고 해석한다. 그 언어가 마침내 누군가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원하면서.”라고 이 소설을 소개한다.
이 책의 화자들은 혼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따위로 혼자 소리를 내고, 청소 도구함 속에서 오지 않는 아이들을 기다리고, 속할 수 없는 푸른빛으로 돌진하면서 견딜 수 없는 외로움과 갈망을 소리친다. 하지만 홀로 내는 소리는 아무런 반향도 없이 홀로 사그라든다.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그 소리는 원하는 이에게 결코 가 닿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소설 속의 조각들은 어떤 소리들을 만든다. 대답하지 않는 작은 개에게 말을 걸고, 피아노의 뼈를 으스러뜨릴 듯 두드려대며, 바이올린의 현에 베고 싶은 것처럼 손을 날카롭게 미끄러뜨린다.
이런 소리들의 파동 속에서 화자들은 살아 있다. 그들은 겁을 먹거나 죽음을 결심하고, 절망에 안식하지만, 그럼에도 살아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 그들 자신이 아닌 것에 가 닿기를 원하고 좌절하면서 살아간다.
소설 속 문장들은 불가능한 희망 (혹은 절망)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삶을 사는, 명명되지조차 않은 존재들을 떠오르게 한다. 특히, 이 책의 제목인 오르톨랑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 소단원 「주방」은 멧새의 일종인 오르톨랑의 잔인한 요리법에서 오르톨랑이 겪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묘사하면서, 철저한 고독 속에서 살고 있는 존재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날카롭고 절박하게 표현한다.
조종실
"여러분은 제가 선택한 날짜에, 제가 선택한 미래에, 제가 선택한 장소에서 죽는 겁니다!"
[조종실] , p25
[조종실]은 조종사가 고의로 비행기를 추락시킨 사건이 생각나게 한 단편인데요. 자살 비행으로 무고한 승객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를 뉴스에서 본 적이 있었어요.
소설은 기장의 시선으로 마지막 기내방송을 하는 장면을 묘사해요. 가해자의 일방적인 목소리라 사실 처음에는 불편했어요. 그럼에도 왜 작가가 이 인 물에게 목소리를 부여했을까 생각해 보았어요.
교실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은 천사처럼 착한 아이들이었다.(...) 어째서 나는 그들의 상냥함과 다정함을 허락받지 못한 것일까.(..) 그들에게는 나를 끌어안아야 할 의무가 없었고 그들은 나 없이도 얼마든지 선하고 다정할 수 있었다.
-교실 p55
[교실]는 심각한 아토피를 가진 아이가 철저하게 소외당한 장면을 쓴 글인데요. 자신을 혐오하는 친구를 원망했다면 덜 마음이 아팠을 텐데요.
또래 아이들은 순수했고 다정했고 상냥했으며 심지어 천사라고 말하고 있어요. 다만 자신에게 그것이 허락되지 못한 것뿐이라고. 처음부터 누구에게도 아픈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는 의무도 책임도 가진 것이 아니니까요.
끓은 염증, 지독한 냄새, 떨어진 피부 부스러기 속에서 홀로 울고 있는 아이가 가여웠어요. 그럼에도 이 작품을 리뷰하고 싶었던 이유는 작품 속 아이가 '나는 살아가겠다'라고 외쳤기 때문이에요.
미약한 다짐일지라도 고름투성이 붉은 몸을 뚫고 그 갈망은 마침내 꽃을 피울 것이라 믿어요. 사그라 든 희망이 많다고 말하지만 전 절망 속에서도 봄을 맞이한 사람들도 정말 많이 봤거든요. 그래서 이 단편소설에 끌렸습니다.
"나는 너희를 용서할 거야. 나는 나를 용서할 거야. 나는 행복해질 거야. 나는 살아갈 거야."
p58
주방
[오르톨랑의 유령]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은 <주방>입니다. 책의 제목인 오르톨랑이 소재가 되는 이야기인데요. 글을 쓰는 사람의 고뇌와 절규가 전해졌어요. 주방의 화자는 암흑 같은 상황 속에서 흔들리고 희미한 이미지에 의지해 글을 쓰는 사람인데요. 거기서 오는 창작의 고통을 오르톨랑에 비유했습니다.
"나는 지옥에서 훔쳐낸 이미지들로 글을 쓴다.이미지들은 파편적인 비명만 내지르고 있기에 아무도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이미지들은 불완전하고 심지어 거짓이기까지 하다.
[주방] p130
오르톨랑의 소리 없는 비명이 언어로 전달되어 너무 아팠습니다. '아직 죽지 않았어. 아직. 아직' 오르톨랑을 아무도 상상하지 않는 것처럼 누구도 자신을 상상하지 않는다고 화자는 말합니다. '나의 글은 잊히고, 낭비되고, 읽히지 않았어'"
화자는 오르톨랑의 울음을 대변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자각합니다. 자신이 살해자에 속하기 때문이죠. 대신 오아시스처럼 솟아난 검은 피의 울림을 증언하기로 다짐합니다. 찰나의 이미지, 부서진 검은 빛, 사라짐의 잔상을 그러모아 글을 씁니다.
소설 후반, 주방에서 한 아이를 마주합니다. 유령의 삶을 사는 존재입니다. 화자는 아이와 마주해 웃습니다. 우리가 미쳐버린 귀신처럼 웃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든 현상될 수 없을 것도 안다고 말합니다.
소설은 여기서 끝나는데요. 그 뒤에 이야기가 조금 더 있었으며... 전 이 스토리가 주인공의 의식화의 한 과정이길 바라며 좀 더 전진된 결말을 상상해 보았어요.
그러나 거짓은 진실들의 단편이다.
<주방> 중에서
특히 <주방>을 읽으면서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이 생각났어요. 사랑하는 연인 구가 죽자 담이는 그를 따라 죽는 대신 그의 육체를 먹는 충격적인 내용인데요.
두 작품 속 죽음의 배경이 닮아 있었고 그 안에 살아있는 갈망을 처절하게 전달한 점에서 비슷하게 전율했어요
<구의 증명>이 사랑하는 존재와 영원히 하나이길 바라는 갈망이었다면 <주방>은 희미한 그 파편을 따라 끝까지 써 내려가겠다는 작가의 갈망이 전해졌습니다.
이우연 소설가는 물거품에도 목소리를 부여해 주시는 분이시거든요.
이우연 작가 소개
2021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2022년 장편소설 [악착 같은 장미들] ,2023년 소설집 [거울은 소녀를 용서하지 않는다] 를 출간했다. 고용되지 않은 배우들, 유령들, 실종자들, 아이들의 불가능한 언어와 함께 산다. 그들을 위한 이상한 공간을 만들고 그 속에서 (그 속을 벌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 틈새에서 갈망하고 소리치고 애원하는 글들을 쓴다. 그들을 원하기 때문에. 존재할 수 없음에도 살아 있는 틈들을 너무나 원하기 때문에 쓴다. 절박하게, 용서받을 수 없을 정도로 원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