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전파는 교리의 전파가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가 설립되는 것을 의미한다. 1세기 사도와 제자들이나, 예수의 전파 사업은 그것이 곧 하느님의 나라의 설립을 의미했으며, 땅끝까지 전파한다는 것은 온 세계가 하느님의 나라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가 귀신들린 자를 고치고 병든 자를 치유하면서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였다고 하셨다. 또한 사도들 역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설립되고 확장됨에 따라, 하느님의 나라가 설립되었다고 하였지, 보이지 않는 영적 하늘이란 곳이 있어서, 2000년 후에 비로소 하느님의 나라가 설립된다는 생각은 꿈에서 조차 하지 않았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의 삶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초월자의 강제적인 힘으로 설립시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의 공동체가 참으로 하느님의 통치 아래서 평화와 사랑으로 연합되어 선을 행하면서 행복한 삶을 영위할 때,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임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을 의미하지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의 나라의 완성은 시작된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삶이 외부 사회에 입증되어 감에 따라 점차적으로 확장되어 온 세계가 완전한 평화와 정의 그리고 사랑이 충만한 사회가 될 때 하느님의 나라는 완성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전파는 교리의 전파라는 측면에서 생각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삶의 방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래서 회개가 필요하며 새 인간성의 옷으로 갈아 입겠다는 결심으로 침례로써 공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느님의 나라의 설립은 경제, 정치, 문화 등 모든 면에서의 변화를 의미하므로 기 소속된 사회와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전파의 중심에 섰던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소속된 사회의 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그들이 유대 땅에 국한되어 살고 있다면 이방 사회의 법은 그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을 것이다. 이방 사회의 법이 유대 사회의 율법보다 열등하다고 볼 수는 없다. 단지, 유대 사회의 율법은 그들의 신 야훼를 중심으로 설립된 법이었고 이방 사회, 곧 로마의 법은 신적 사회가 아닌 인간 사이의 관계와 질서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진 법이라는 점에서 다른 것이다. 앞으로 설립될 참 조직도 역시 그들 만의 영토가 존재할 수는 없다. 이미 존재하는 나라에서 설립되어 그들 사회의 법에 예속된 상태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 사회가 제한된 가운데서도 생산과 분배에 있어서 탁월함을 입증함으로써 그리고 원만한 인간의 관계를 만들어 감으로써, 이방사회의 관심을 끌게 되고 그들도 참여하고자 하는 의욕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하느님의 나라는 확장될 수 있다. 사실, 1세기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거의 바울 한 사람의 노력으로써 설립된 것은, 교리적 힘이 아니라, 기 설립된 공동체가 이교도들의 삶의 방식보다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간다고 느꼈기 때문에 급물살을 타고 그리스도가 전파되었던 것이다. 이 세계가 폭력적으로 무너지고 불연속 상의 하느님의 나라가 설립될 수 있다는 생각은 상상이고 추측이며 광신적 사상이다. 그것은 인간의 노력을 마비시키며 오직 도박적 희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이 참으로 옳다는 것이 입증됨에 따라, 세계 정부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란 특정 종교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적 정신과 삶의 방식을 터득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