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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 전통 속의 신 이야기
옛사람들은 집안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집안에 거처하는 여러 신 가운데 으뜸은 성주신으로서 성주는 집안의 중심인 대청마루에서 집안 전체의 운과 복을 관장한다. 성주신의 신체는 가위로 모양 껏 오려낸 한지와 명주 실타래, 삼베 조각 등으로 꾸미며, 단지에 쌀을 넣은 성주단지를 신체로 모시기도 한다. 대청마루에는 조상의 위패를 모신 감 실을 두어 조상신을 모시기도 하였다. 대청이 없었던 가난한 집에서는 안방 선반에 햇곡식을 넣고 한지로 봉한 단지를 두어 신줏단지 또는 조상 단지, 제석 단지 등으로 불렀다. 여성의 공간인 안방에는 아기를 점지해주고, 생명을 돌보는 삼신할미가 깃들어 있다. 삼신의 신체는 박으로 만든 바가지에 쌀을 넣고 한지로 봉하거나 바가지 대신 작은 단지를 봉해 시렁에 올려놓기도 한다.
부엌에는 불과 재물을 관장하는 조왕신이 기거한다. 조왕신의 신체는 부뚜막 솥단지 위에 ‘조왕단’이라는 턱을 따로 마련해 그 곳에 정화수를 떠 올려놓는 것으로 신체를 삼는다. 그런가 하면 집안의 출입구인 대문에는 수문장신이 지킴이 노릇을 한다. 옛사람들은 모든 복의 들고 낢이 대문을 통하며, 액운의 들고 낢도 대문을 통한다고 믿어왔다. 하여 수문장신의 신체는 가시가 숭숭한 엄나무를 걸어놓거나 동물의 뼈 또는 말린 쑥을 걸어놓아 잡귀와 액운을 물리치고자 했다. 집 뒤란에도 집터를 관장하는 터주신이 깃들어 있다고 여겼다. 터주신은 장독대 근처에 모시는데, 일반적으로 짚 주저리를 세워 신체로 삼는다. 이것을 터주가리 혹은 터줏대감, 토지 막이라 부른다.
부엌의 조왕중발에 정화수를 떠놓고 조왕을 모셨다(전남 구례군 토지면).
장독에는 자식의 건강을 돌보는 칠성신이 깃들어 있다. 칠성신에게 빌 때는 조왕신에게 빌 때처럼 항아리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빈다. 따로 신체를 두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지역에 따라 터주가리 모시듯 곡식을 담은 단지를 신체로 삼는 곳도 있다. 뒷간은 측신이 가족을 보호하고 관장하는 곳이다. 대체로 뒷간에는 따로 측신의 신체를 모시지 않지만, 새로 뒷간을 짓거나 옮길 때면 반드시 날을 받아 고사를 지냈다. 이밖에도 집에는 업이라는 것이 재복(재물)을 관장한다고 믿었다. 업은 헛간이나 지붕을 비롯해 집안 곳곳에 깃들어 있으며, 대체로 집 구렁이나 족제비를 업신으로 여긴다. 제주에서는 업을 칠성이라 하여 뭍에서의 짚 주저리보다 훨씬 큰 ‘칠성 눌’ 주저리를 세워 모신다. 샘물이나 우물에도 용신(또는 용왕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으며, 외양간에도 우마 신이 가축의 건강과 안전을 관장하고, 마당에도 오방신장이 나쁜 액운을 막아준다고 여겼다.
옛날 우리에게 집이란 사람과 신이 한데 어울려 공존하는 공간에 다름아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함께 진행된 미신타파 정책이 우리네 옛집에서 신을 강제로 쫓아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사람들도 점차 그 신들을 믿지 않게 되면서 집안에 머물던 신들도 하나둘 믿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신들이 떠난 집에는 이제 성주대신 TV가, 삼신 대신 컴퓨터가, 조왕 대신 냉장고가, 수문장신 대신 인터폰이 신들의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요즘의 아이들에게는 이제 그것들이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대청마루 대들보에 한지와 명주실로 신체를 삼아 모신 성주(경북 안동 하회마을).
* 성주: 집안신 가운데 으뜸은 역시 성주신이었다. 옛날 사람들은 이 성주신이 집안의 모든 길흉화복을 관장하고, 각각의 여러 신들까지 거느린다고 여겼다. 성주신이 신들의 대표였던 만큼 성주(성조, 상량 신이라고도 함)의 신체는 집안의 중심이 되는 대들보나 안방, 대청마루에 모셨다. 마루가 없거나 초가삼간인 경우 부엌에 조왕신과 더불어 성주를 모시기도 했다. 대체로 성주는 대들보나 기둥에 한지와 명주실(또는 무명실)을 늘어뜨리거나 삼베 등을 명주실에 묶어 신체를 꾸몄다. 지역에 따라 성주단지(성주 독)를 모시는 곳도 있다. 툇마루 구석에 항아리를 놓고, 그 안에 햅쌀(돈을 같이 넣어두는 곳도 있다)을 넣어 놓는 방식이다. 이 성주단지 속의 쌀 빛깔과 쌀 위에 그려진 무늬를 보고 집안의 길흉을 점치기도 했다. 가령 빛깔이 안 좋거나 무늬나 자국이 어지럽게 나 있으면 집안에도 어지러운 일이 생길 징조로 여겼다. 성주단지에 쌀을 담는 까닭은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곡물이고, 곡물 가운데 으뜸이 쌀이었으므로, 그것도 그해의 햅쌀을 성주에게 바치는 극진한 예우로 집안의 안녕을 기원했던 것이다.
조상신을 모시기 위해 짚으로 상청 꾸밈을 해놓은 모습(경북 경주시 양동마을).
* 조상신: 옛날 양반가옥에는 대청마루에 감실을 마련하고 조상의 위패를 모셔두었는데, 이를 따로 ‘상청’이라 하였다. 상청을 모신 마루에는 신성한 곳임을 알리기 위해 지붕에는 눈비를 막는 풍채를 치고, 기둥에는 짚을 감아 꾸몄으며, 봉당에도 짚이엉을 깔아 함부로 출입하는 것을 막았다. 일반 서민의 집에서는 4대까지의 조상신을 모시는 단지를 안방 선반에 두어 신줏단지 또는 조상 단지라 불렀다. 이 단지 안에는 추수가 끝난 뒤 햇곡식을 넣어 창호지로 봉해 두었는데, “집안에 근심이 생기면 양이 줄고 벌레가 꾀며, 좋은 일이 있으면 양이 늘어난다고” 여겼다. 또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는 조상 단지에 햅쌀을 넣는 것을 대신해 ‘올계심니’(그 해 일찍 거둔 벼로 음식을 해 맛보는 일)라 하여 햇곡식으로 떡과 밥을 해 조상에 바쳤다.
조상단지는 지역에 따라 제석 단지 또는 귀 독, 귀궤상자, ‘귓것 단지’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 삼신:예부터 우리네 조상들은 출산을 관장하는 ‘삼신 할머니’(지앙, 지양할매, 산신 등으로도 불림)가 있어 아이를 점지해 준다고 믿었다. 그래서 여성의 공간인 안방에 삼신을 모셨는데, 바가지에 쌀을 담아 선반에 올려두거나 쌀을 담은 무명 자루(이것을 제석 주머니라고도 불렀다)를 방구석에 매달아 두거나 가위로 길게 오려낸 창호지를 길게 늘어뜨려 신체를 삼았다. 아예 삼신 단지를 따로 두는 경우도 있었다. 과거 삼신을 극진히 모신 까닭은 삼신이 한 가문의 대를 잇는 자식을 점지해 줄뿐만 아니라 사람의 수명과 건강까지 삼신이 관장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일부 지역에서는 집안의 으뜸 신인 성주신과 삼신을 오누이 관계라고 말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삼신은 원래 집안에서 살고 있는 신인데, 가정이 불화하거나 삼신을 잘 받들지 않으면 집을 나가 버린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아이가 아프다는 것이다. 집을 나간 삼신할머니는 은행나무에 붙어사는데, 다시 모셔들이려면 대나무를 은행나무에 대고 정성을 들여 빌면 대나무에 접신한다는 것이다. 이 대나무를 이불 같은 것으로 꼭 싸서 산모가 있는 방이나 병이 난 아이의 방에 모셔 놓으면 순산을 하고 아이의 병도 낫는다고 한다.
* 조왕: 우리 민속에는 불과 물을 다루고, 음식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공간을 조왕신(조왕 할매)이 관장한다고 보았다. 부엌에서 음식도 만들고 아궁이에 불도 지펴야 했으므로 조왕신은 불의 신, 또는 재물의 신으로 통했다. 부엌이란 공간이 살림살이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고, 아궁이의 불은 바로 그 살림살이를 일으키는 재물, 재산을 의미했던 것이다. 이런 믿음은 부엌에 조왕신을 따로 모시는 공간인 ‘조왕 중발’(조왕단) 혹은 조왕단지를 두게 하였는데, 보통 부뚜막에, 부뚜막에서도 가마솥 위쪽 벽에 두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부엌의 벽에 한지를 붙이거나 명태를 걸어 조왕의 신체를 꾸미기도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부엌의 조왕신이 해마다 음력 동짓달 스무사흗날이면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1년 동안에 일어났던 일을 종알종알 고자질하고, 섣달 그믐날(설날 아침이라고도 함)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한다. 하여 옛날에는 조왕신이 올라가기 전날 밤 아궁이에 끈적끈적한 개엿을 발라 놓았다. 이렇게 하면 조왕신의 입이 달라붙어 설령 옥황상제에게 가더라도 아무 말도 전하지 못하니 액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조왕신을 여신으로 보았는데, 조왕을 조왕할매 또는 조왕각시라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 터주: 터주는 집터를 지키고 관장하는 신이다. 음력 정월 보름쯤에 텃고사를 지내고 지신밟기 또는 마당밟기를 하는 것은 바로 터주를 모시는 의례라 할 수 있다. 터주는 보통 뒤란의 장독대 인근이나 마당에 모시는데, 신체는 짚 주저리를 엮어 세운 터주가리가 일반적이다. 이 터주가리를 두고 터줏대감이라 부르는데도 있으며, 철륭(지역에 따라 철륭은 터주신이 되기도 하고, 장독 신이 되기도 한다) 또는 토주, 뒤꼍 각시라 부르는 곳도 있다. 강화군의 교동 섬에서는 이를 두고 토지 막이라 부른다. 터주가리 속에는 햇곡식을 담은 단지를 넣어두기도 하며, 막대기를 세우고 그 위에 주저리를 감싸거나 그냥 짚 주저리만 세우는 것으로 신체를 대신하기도 한다.
터주신을 모신 터주 항아리 속에는 그 해의 햇곡식을 넣어둔다(충북 제천)
* 칠성신: 옛날 우리네 어머니들은 장독대에 정화수를 한 그릇 떠놓고 가족의 건강과 외지로 떠난 자식의 출세를 빌며 치성을 드렸다. 칠성신은 말 그대로 북쪽 하늘의 북두칠성을 신으로 삼는 신앙으로, 대개 가족의 무병장수와 입신양명, 집안의 무사태평을 빌었다. <부안군지>에 따르면 칠성신에게 치성을 드릴 때는 우선 목욕재계하고 7자가 든 날의 새벽 또는 매월 초사흘 밤이나 새벽에 촛불을 밝히고 빌었다고 한다. 집안의 장독대에 깃든 신을 따로 철륭신이라고도 한다. 본래 철륭은 마을의 수호신이 깃들어 있는 곳을 가리키는데, 집안에서의 철륭은 가족을 보호하는 수호신이 깃들어 있는 곳이란 뜻이라 할 수 있다. 철륭신의 신체는 작은 단지에 곡식을 담아 장독대 뒤에 모신다. 옛사람들은 이 철륭신이 장독대의 고추장이나 된장, 간장 등을 보호하며, 집안을 복되게 한다고 믿었다.
* 수문장신: 문신, 문턱 귀신, 문간 대신, 문간 대장이라고도 불리는 수문 장신은 대문을 지키는 수호신 노릇을 한다. 옛 사람들은 길흉화복이 다 대문을 통해 들어온다고 믿었다. 하여 액운과 잡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대문에는 가시가 숭숭한 엄나무 가지를 걸어놓거나 호랑이뼈를 걸어놓았다. 잡귀가 이것을 보고 무서워 달아나리라 여겼던 것이다. 죽은 혼령도 대문을 통해 드나든다. 제사 때 대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도 그 때문이다. 옛날에는 지역에 따라 명절이나 제사 때 대문 밖에 짚을 깔고 음식상을 차려 수문 장신에게 바치기도 하였다. 대문을 지키는 수문장신은 집안신 가운데 키가 가장 크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예부터 문신이 있는 문턱은 베고 자는 것을 금했으며, 오고가며 문턱을 밟거나 칼질을 하는 것도 금했다. 수문장신에게 올리는 제사는 대체로 정월과 시월에 제물을 차려 모셨다.
* 측신: 측신은 뒷간을 관장하는 신이다. 측신을 일러 측신 각시, 각시귀신, 정낭 각시, 부출 각시, 칙도부인 또는 뒷간 귀신이라고도 하는데, 아무래도 측신은 젊은 여신이 아닌가 싶다. 측신은 집 안신 가운데 가장 성질이 고약하고 포악하다고 하며, 늘 몸단장을 즐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측신은 머리카락이 길어서 평소에 그것을 세고 있는데, 사람이 갑자기 뒷간에 나타나 놀라면 그 머리카락으로 사람을 뒤집어씌워 죽인다고 한다. <보성 군사>에 따르면 화장을 하다가도 깜짝 놀라면 복수를 하는데, 남자가 실수를 하면 여자 아이를, 여자가 실수를 하면 남자아이를 빠뜨려 죽인다고 한다. 고약한 측신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옛사람들은 뒷간에 들어갈 때 반드시 헛기침을 하거나 침을 뱉고, 발을 굴러 출입을 알렸고, 일을 보면서도 늘 몸가짐을 바로 했다. 옛날 새로 뒷간을 지을 때 반드시 날을 받아 고사를 지낸 것도 측신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부안 군 지>에 따르면 이 측신은 나다니기를 좋아해서 초엿새와 열엿새, 스무엿새 날만 측간에 머물고 나머지 날에는 외출을 하거나 마실을 다닌다고 한다.
강원도의 산간마을에서는 성주를 부엌과 안방 사이의 대들보에 모시기도 한다(강원도 양양).
* 업신:업신은 가정의 운세와 재물을 관장하는 재산 신으로서 집안을 드나드는 구렁이나 족제비, 두꺼비를 그 신체로 삼는다. 사람이 신체가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인업’이라 하며, 대문 앞에 버려두고 간 아이를 업처럼 들어왔다고 하여 ‘업둥이’라고 불렀다. 업신은 곳간이나 헛간, 지붕, 노적가리, 뒤주, 장작더미, 나뭇단, 담 등에 깃들어 있거나 드나들며, 업이 들어오면 재산이 들어와 부자가 되고, 업이 나가면 재산이 빠져나가 망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지역에 따라 업가리라 하여 터주가리처럼 주저리를 세우기도 했고, 업신을 모시는 업단지(뱀 항아리)를 곳간에 두기도 했는데, 이 안에는 쌀이나 다른 곡물을 넣어 두었다. 제주도에서는 집안팎에 짚이엉을 주저리처럼 엮은 ‘칠성 눌’이란 것을 두어 업신인 구렁이 신체를 모셨다.
* 용왕신: 용왕신은 흔히 ‘요 왕신’이라 불리며, 집안의 우물을 다스리는 신이다. 조왕신이나 칠성신에게도 새벽 첫 우물물인 정화수를 떠놓고 치성을 드렸는데, 이는 밤 사이 용왕이 우물물을 뒤집어 깨끗하게 정화한다는 믿음에서 온 것이다. 우리 관습에서 물은 엄청나게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다. 가령 우물이나 샘에 빌거나 강물에 치성을 드리면 아기를 낳는다는 습속은 물이 곧 생명의 원천이라는 관념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음력 정월 보름날 첫새벽에 처음으로 우물물을 마시면 애를 낳는다는 속신으로 이어졌다. 우물에 물 할미(이는 용왕신이라기보다는 삼신할미의 변형된 모습으로 보인다)가 있어 자식을 점지해 주리라 믿었던 것이다.
* 우마 신: 우마 신은 농촌에서 가장 중요한 가축인 소를 보호하는 신으로서 외양간에 깃들어 있으며 쇠 구영신, 마대 지신, 마부 신, 군웅 신, 마구간 신 등으로도 불린다. 소뿐만 아니라 모든 가축의 건강과 안전을 관장하는 신이다. 평창의 <도암면 지>에 따르면 집안의 안녕을 빌기 위한 안택제 등을 지낼 때 외양간에도 백설기 떡이나 나물 한 묶음을 매달아 놓는다고 한다. 새 옷감을 짠 경우에도 베의 끝자락을 조금 끊어서 외양간 옆에 매어 달아 가축의 건강을 기원했다고 한다.
출처는 모르겠습니다.
조금 다듬어 올려봅니다.
첫댓글 점점 잊혀져가는 우리 옛 신들을 생각나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넵, 감사합니다.
함께 못해 죄송합니다.
전 주 집회 그림에서 뵈어습니다.^^
@소뚱 한 겨울 소뚱님의 모습과 집회 상황들이 잠시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군요~~!
꼬맹이때 할아버지가 해주시던 이야기들이 생각나네요^^ 소뚱님~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넵, 감사합니다.
저희는 일부라도 보고자란 세대라 조금이라도 공감이 가는가 봅니다.
별거 아닌것같아도 부모조부님들의 그러한 정성과 염원이 로즈쿼츠님이나 전우치님이나 카페의 님들께서 훌륭하게 나오시는 계기가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
@소뚱 맞아요 조부모님, 부모님…특히 할아버지께서 사랑을 듬뿍 주시며 바르게 커라 하셨지요….^^
어디서든 나타나시는 계 정혜님~
고맙습니다.^^
안녕하신가요. 좋은글 올리셨네요. 옛날 미신으로만 내몰앗던
우리의 풍속과 신앙의 가치를 이제야 절실히 절감합니다. 삼신할미...칠성신...정겨운 이름들을 딥스도룡용한테 다 뺏기고 우리는
끝도없는 구천을 배회하고 있네요.
고향과 조상을 송두리채 뺏기고 우리는 무얼하며 지금껏 살아왔는지 모르겠어요.
잠을 자도 밥을 먹어도 숨을 쉬어도 살아있다는 존재감이 요즘은
전혀 없습니다.
가난했지만 인정과 사랑이 넘치던
어린시절이 그리워지네요.
비오는 밤...그때 그시절을 누군가와 두런두런 얘기하고 싶네요.
감사합니다~소뚱님.
안녕하세요.
아모레이아(미별)님
늦게나마 댓글올려봅니다.
미신이라는 말조차도 만들어진 단어이지요. 원래 존재하던 단어는 아닙니다. 다 딥스쪼가리들의 농간에 휘둘리고 있을뿐...
살아있어 살아있을까요?
아모레이아님은 어디든 계시잖아요.
제 마음에도 계시고 존재감을 내버리신 자유영혼...^^
기운내시옵소서...🙏
옛 할머니들께서는 장독대에다가 그릇에 깨끗한 물을 붓고 북두칠성신께 기도 드렸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의 무당이 모신다는 칠성신의 전설이죠. 무속에서 말하길.. 한국 사람들은 칠성줄을 타고났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샤먼도 재미있는 전설이 많고 순수하며 신비하죠..
저희 아버님께서는 어릴적 냄비에 새옹밥을 지으셔서 산속깊이 들어가 기도를 드리고 오시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머님께서는 밥지어 첫 밥을 담아 부뚜막에 올리셨고요.
저희 어릴때까지는 그런 전통이 미약하나마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참 고맙고 소중한 기억들입니다.
정수를올리고치성(정성)을드리는디엔에이 각인된 민족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