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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1차대전당시 각국의 인구,경제, 사회상황.
1. 러시아: 가장 낙후되고 폭압적인 전제국가.
(1)내부 모순=> 볼셰비즘의 등장.
*1913러시아 인구: 1억5600만명
*1913러시아 GDP : 2323억5100만
=> 의외로 러시아의 GDP 수준이 굉장히 높음을 알 수 있습니다.
카페 내 관련 참고글: KWEASSA공의 소련과 공산주의 관련 글들을 같이 보시면 상당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도 그 분글 보고 배운 게 많아서요. ^^;;
19C초반무렵의 러시아는 당시 3100만의 인구 중 2000만명 이상이 농노였습니다.
차르와 귀족들이 백성의 고혈을 짜내며 이끌어갔던 나라였습죠. 뭐~. 유명한 얘기니까.
농노해방은 1861년에야 이루어지죠. 이후에도 차르들은 시대를 역행하여 자신들의 권위를 강화하는 반동정치를 펴나갑니다. 그와 별도로 공업발달은 19C말부터 급속히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농민에서 노동자로 신분이 바뀐 사람들 처지가 나아졌냐하면?
아시다시피 절대 아닙니다!! 이러면서 슬슬 마르크스 사상에 영향을 받은 공산주의 사상이 싹트죠.
본격적으로 공산주의 혁명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피의 일요일’사건이 일어나면서부터로 알고 있습니다.
*1905. 피의 일요일 사건: 제정러시아의 페테르스부르크 앞에 한 신부가 20만명의 인파를 몰고 찬송가를 부르며 행진했음. 이 행진은 군대의 무자비한 총성으로 진압됨.
정치에 무관심한 무능한 군주 니콜라이2세와 그의 일가 => 그는 땡중'라스푸친'에게 정치를 일임했다.
'피의 일요일' 사건 이후에 그가 쓴 일기를 보아도 그가 얼마나 현상파악을 못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2)낙후된 사회 : 비효율의 극치.
ⓐ문맹률이 높아 군사훈련에 어려움이 있을 지경.
ⓑ기계화 수준은 무지 낮음. =>산업은 노동자들의 수작업률이 높음.
ⓒ전투병에 대한 후방지원의 효율성이 극히 떨어짐.
EX) 러시아 전투병 1명 유지 : 후방지원인원2명.
독일, 프랑스 전투병2명 유지 : 후방지원인원1명.
ⓓ야포 조병창: 야포생산하고 수리하는 곳은 페테르스부르크(현재의 레닌그라드)가 유일함.
나머지 조병창은 겨우 수리만 가능한 실정.
(3)다민족, 다종교, 다문화국가: 하나로 통합하기 겁나 힘들었음
민족주의의 성장 때문에 골치 아픔.
EX)우크라이나,핀란드(1914년에 러시아지배햇음), 폴란드(러시아, 오스트리아, 독일에 분할당했음.) 등 각지 민족주의자들의 전쟁참여거부,태업등등.
(4)군대조직의 허술함.
ⓐ징병체계가 허술 => 징병회피인원이 많음.
EX)비슬라브계와 이슬람국민들은 믿을수없다하여 병역면제.
ⓑ독일 연평균 28만명이 징집, 훈련됨.
독일과 비교도 안되게 많은 인구를 가진 러시아가 독일보다 아주 조금많을뿐인 33만5000명 징집,훈련함.
ⓒ독일 징병대상자 중 건강 안좋은 인원 면제 판정 37%
러시아 징병대상자 중 건강 안좋은 인원 면제 판정 17% => 러시아는 허약한 병사가 군대에 많이 있었음.
ⓓ독일 부사관,사관 비율 전체군인원의 12%
러시아 부사관, 사관 비율 전체군인원의 2%
ⓔ러시아군의 훈련, 장비는 독일군에 비해 상당히 열등했음
EX)기관총 공급이 거의 없었음!!(독일은 기관총의 효율성을 인식하고 다량의 기관총을 부대에 보유하고 있었음.)
소총,탄약 공급도 많이 떨어졌음.
(좌)1914년 탄넨베르크 회전이후의 러시아군 포로, (우)1917년 동부전선지도
1914년 러시아는 동프로이센을 침략했다가 탄넨베르크에서 대군이 전멸당하였다.
동부전선에서는 독일군이 러시아의 영토에 깊숙이 진출했었다.
(5)러시아의 낙후된 사회기반 인프라.
러시아는 워낙에 많은 넓은 땅덩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원이야 무진장하지요.
그런데 워낙 넓은데 반해 러시아의 기간시설이 그 때까지 전쟁 수행하기 충분한 수준으로 확충이 안 된 것이 문제지요.
(사실 이 것은 투르크와 오스트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러시아의 경우는 책읽다 정말 뜨악~~!할 수준이라는 거지요.)
㉠당시 모스크바와 페테르스부르크 일대만 공업화가 된 수준이었고 철도망이 넓은 땅덩이 수준에 비해 굉장히 미약한 수준이었습니다!
EX)군부대 동원 예
ⓐ예비역=> 각부대로 수송.
ⓑ각 부대에 병사,대포, 군마, 수레, 전선으로 수송 => 병력수송이 끝났습니다.
ⓒ군부대에 식량, 탄약, 무기, 말먹이(단일품목으로 최대부피) 수송
ⓓ석탄수송. => 군부대 보급입니다.
=> 동원에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실제 물자를 나를 기관차는 2만대, 화차는 54만대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영국이 보유한 기관차 숫자보다도 적지요. 이러니 동원한 병력을 나르고 군대에 보급품 날라주고 그 외에 각 도시에 필요한 식량과 연료 갖다주는 데 엄청나게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6) 국민들 전쟁수행의지 부족.
원인은 제가 볼 때 엄청나게 많은 땅덩이를 점유한 국가다보니까 엄청나게 다양한 인종들, 그리고 종교로 인해 하나로 통합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이 것을 뒷받침하는 재미있는 통계가 있습니다.
EX) 1914-1918 각국의 전사자 100명당 포로, 실종자 비율
러시아 251명
오스트리아-헝가리 150명
이탈리아 92명
독일 65명
프랑스 46명
영국(영연방국가병사 포함) 21명
=> 러시아 병사들은 다른 나라병사보다 포로가 될 확률이 컸거나 혹은 다른 나라병사보다 더 쉽게 항복했다 볼 수 있습니다.
(7)러시아 경제의 파탄 => 폭동 발생!
석탄(1차대전 당시 주 동력원입니다!!!) 발트해 연안 항구에서 영국 석탄을 수입합니다.
㉠그런데 이 항구로 가는 해로를 독일 해군이 봉쇄합니다.
이로써 우크라이나에서 석탄을 운반해야했습니다. (거리 1000마일)
㉡투르크 참전, 동맹국이 흑해항구를 봉쇄
=> ‘갈리폴리’전투의 연합국 대참패 => 러시아: 지중해에서 연합국의 군수지원 못 받음.
㉢연합국의 긴급조치: 북극해 근처의 아르한겔스크항으로 물자수송.
또 근처 무르만스크항 만들기시작함.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항으로 물자수송.
=> 그러나 아르한겔스크항은 1년중 절반은 얼어붙어있는 항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물자오려면 거리 6000마일.
-> 러시아의 당시 철도 인프라 생각해보십시오. => 두 항구에 심각한 물자 정체현상 발생함.
㉣1917 러시아 수도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자연발생적인 파업, 폭동, 혁명 크리로 가게됨. &11
2월혁명으로 임시내각을 결성하는 알렉산드르 표도르비치 케렌스키
그는 '소수파'라는 뜻의 "멘셰비키" 총수였다.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는 10월혁명으로 정권을 잡았다.
더 알고싶으신 분들은 카페검색에서 kweassa대공의 이름으로 검색하시면
내공비급을 얻으실 수 있으리라.
쓰고나니 웬지 아첨같아서 기분이 좀 거시기하네요. 쩝.
2. 프랑스, 영국, 독일
(1) 프랑스: 의외의 국가.
㉠경제면에서의 의외점: 이때까지도 프랑스의 공업은 소규모공방공업으로서 생산량이 미약했다는군요. 이 부분에서 전 정말 뜨악했습니다. 뭐냐? 프랑스같은 선진국이 당시 공업이 중세길드같은 체제가 20C초까지 이어졌다고?? (O.o);;
EX)1914 프랑스 철강생산량 => 독일의 1/3수준.
음...그 전에 알자스-로렌지방(이 지방도 지하자원산지로 알고 있습니다.)도 보불전쟁 때 빼앗겼으니까.
또 전쟁초기에 북부지방의 철광석,석탄산지는 독일에 빼앗깁니다. => 한 마디로 공업생산은 독일에 비해 열등했다.
대신 농업대국이라 전쟁기간 내내 식량은 자급자족가능.하긴 프랑스가 식량사정면에서 혜택받은 국가죠.
1,2차대전을 제외하고는 식량난은 겪지 않은 국가로 알고 있습니다.
*1914프랑스 GDP : 1342억3000만
㉡프랑스 인구: 4100만명.
㉢프랑스육군 전체적 평가:
전통의 패권국으로서 강자였으나 독일육군과 비교해서
소프트웨어적 측면은 병사의 훈련정도, 부사관의 능력면에서 프랑스군이 열세.
하드웨어적 측면은 포병 장비에서 독일육군보다 열세. 기관총보유측면에서 약간 열세.
병력면은 엇비슷.
동원체계는 당시 유럽에서 프로이센과 프랑스과 가장 우수한 징병체계였음!!!
=> 대체적으로 매우 우수한 육군이었으나 프랑스혼자서는 역부족이니 러시아(무한 인력자원)와 손을 잡은 거죠.
1차대전의 프랑스 영웅 필리프 페탱 장군
그의 지휘하에 프랑스는 독일의 공세를 막았다.
(2)영국 : 전통의 해군강자
㉠경제면:1851. 영국: 전세계 원양 항해선, 철도의 반 정도 소유. 전세계 면직물,석탄, 철 반 이상 생산.
그렇지만 영국의 절대 우세는 오래가지 않고 이러한 공업생산을 미국, 독일이 바짝 추격한다.
1900. 영국 제조업 생산은 독일 제조업 생산과 동등한 수준이며 이 때 미국의 제조업 생산은 영국을 추월한다. 이 당시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는 영국, 독일, 미국 세 나라보다 다소 열등한 정도의 수준이었다.
전쟁이 시작되고 처음에는 식량,원자재 상황이 나쁘지 않았으나 (해외식민지에서 들여오는 물자와 미국과의 교역등으로) 곧 독일의 잠수함에 의한 피해가 계속 누적되어서 1916년쯤에는 식량사정이 악화되 배급제를 실시합니다. (독일에 비하면 식량사정은 새발의 피였죠. 네네.) &12
*1914 영국 GDP : 2268억6400만
*1914 영국 인구: 4600만명.
*1914 인도+뉴질랜드+호주+캐나다 GDP합계: 1083억8100만.
*1914 인도+뉴질랜드+호주+캐나다 인구 : 3억1800만명.
영국식민지들의 영국의 전쟁수행에 대한 기여도를 평가하기 위해 올려보았습니다. ^^;;;;
㉡영해군과 독일해군의 건함경쟁.(1914-1915)비교
1901 존 피셔 제독: 그는 정계의 영향같은 것은 신경쓰지 않으며
영국해군의 발전에 이바지한 인물이었다.
밑의 '전투 순양함'안도 그의 작품이다.
*1906 영국 드레드노트 전함: 배수량 10만 7900톤, 속력 21노트, 구경 30cm주포 10문 장비.
당대최고의 혁신적 전함.
ⓐ드레드노트급 전함 보유수 비교
1914.8 영국 해군 24척 보유 13척 건조 중.
1914.8 독일 해군 13척 보유 10척 건조 중.
1915.8 영국해군 : 독일해군 = 20 : 13
1915.11 영국해군 : 독일해군 = 17: 15
*전투순양함: 영국의 피셔 제독이 취임 후 만든 개념, 기존의 드레드노트급 전함급에서 두터운 장갑부분을 떼버려서 속력 33노트까지 나오게하는 기동성과 화력위주의 고속 전투함.
ⓑ전투순향함 보유수 비교
1915.11 영국해군 : 독일해군 = 5: 4
=> 그러니까 영국의 Royal Navy는 독일의 대양해군을 수적으로 앞서고 있었음.
전설의 퀸엘리자베스급 전함 워스파이트
ⓒ*영국해군의 포탄장약보관과정에서 포탄장약을 소홀히 방치하는 부분이 있으며 기술장비에서는 독일의 우수한 광학장비덕택에 원거리포격전에서 독일이 다소 앞섰다고 하였음. 그리고 철갑탄 사용도 독일이 근소하게 앞섰음*
ⓓ그 외 나머지 통신체계(무선통신으로 몇천미터 떨어진 정찰선과도 기함이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으나
실제 전투중에는 해군의 전통적인 깃발신호로 양측 다 지휘함.)와 해군의 정찰, 전술교리(전투순양함이 정찰을 담당하면서 => 가장 빠르니까요, 교전까지 주도적 역할 담당함.), 계류기뢰이용 방법등도 서로 엇비슷함.
그러나 이러한 전술적인 사소한 차이는
전략적인 영국해군의 우위를 절대 뒤집을 수 없었습니다!!!!!
ⓐ지도보시면 영국 해군이 대서양을 이용하는데
독일보다 훨씬 우월한 지정학적위치를 가지고 있음을 아시게 될 겁니다.
ⓑ건함경쟁에서 항상 모든 종류의 배의 숫자 우위를 영국해군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단!! 잠수함 전력은 영국이 성능, 보유 수 등등 모든 면에서 독일보다 열세였습니다. &13
㉢영국 육군: 징병제를 실시하는 독일육군과 프랑스 육군과는 달리 지원제였음. 그리하여 규모 자체는 보잘것 없음. 그러나 장기복무지원자로 구성되있어서 훈련,교육, 보급 수준 모두 전체적으로 우수했음. &14
(3)독일: 떠오르는 별 => 앞에서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비교대상으로 많이 썼으므로 간략히 쓰겠습니다.
㉠명성높은 참모본부제도 (최초의 시작은 18C말로 본다.)
존 키건 공 왈: 참모본부=> “평시에 전쟁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하였다가 전시에 신속하고 완벽하게 그 것을 수행하는 조직.”
ⓐ참모본부 업무: 적대국 정보, 전사 연구, 체계적훈련과 교육 통해 사전에 전쟁계획 작성.
동시에 일부 참모장교 전투부대 근무하며 지휘관에게 작전조언.
ⓑ1857 헬무트 폰 몰트케 참모총장취임
프로이센군 동원계획 => 전신과 철도 동원에 이용.
이후 독일통일전쟁에서 참모본부제도는 일등공신 역할을 합니다.
=> 전장(=전역)개념을 미리 계획하고 부대의 작전 기동을 미리 준비하고 그에 필요한 정보를 미리 입수하는 등의 일련의 활동은 전쟁의 승리에 아주 유용하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죠. 이후 규모와 권위가 꾸준히 증가합니다. 이 제도를 유럽의 모든 나라가 앞다투어 모방합니다.
EX)프로이센: ‘군대가 국가를 소유한 나라‘
하지만 1차대전전까지 국가행정의 모든 제반사항까지 관리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불필요한 오해와 논쟁이 발생하는 정치적 알력다툼이 발생합니다.
근대 전쟁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전략가 헬무트 폰 몰트케(大몰트케)
그는 포위섬멸전에 주력한 인물로서
"스당 포위섬멸전"을 통해 보불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독일군 전쟁사에 절대 빠질 수 없는 인물.
ⓒ1차대전중1916년 명콤비 힌덴부르크와 루덴도르프가 독일경제에 대한 통제권을 육군성과 총참모본부로 일원화한다는 계획에 착수함. 전쟁사회주의 시작.
=> 한마디로 군부가 나라의 모든 자원을 통제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나중에 또 쓸 내용이지만
총력전을 행하면서 자유주의 사회라는 영국,프랑스, 미국 모두 이렇게 합니다. 이 것은 나쁜 게 아닙니다. &15
㉡경제: 공업 생산은 20C초 영국과 엇비슷함.
*1914독일 GDP 2022억700만.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발전에서도 독일은 영국과 더불어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였습니다.
ⓑ독일통일전쟁에 큰 역할을 하였던 철도,교통,통신 인프라또한 굉장히 훌륭하였지요.
ⓒ단 식량 사정이 아주 나빴습니다. ( 이 것은 비단 독일뿐 아니라 모든 동맹국들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 투르크에 해당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다 연합국의 해상 경제 봉쇄조치때문이지요. 사실 해상봉쇄 자체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독일을 제외한 동맹국들 산업인프라가 너무나 열악해서 이 조치는 아주 효과적이었습니다.)
1916년에는 식량사정이 절망적인 상황이 됩니다.
EX) 1916-1917에는 감자 생산이 너무나 떨어져서 독일의 모든 식품을 순무로 만든 것으로 대체합니다.
순무소세지, 순무 빵 등등..
ⓓ독일의 해외식민지는 1차대전에 별 도움이 안 되었습니다. => 해상이 봉쇄당했으니까요. 물자가 올 수가 없죠.
독일인들이 1차대전 후반에 이것만 먹고 살음.
이름하여 순무!!!
사진은 스웨덴 순무!!!
㉢1914독일인구: 6500만명
㉣독일 육군과 독일 해군 => 위에 프랑스육군,러시아 육군, 영국해군과의 비교에서 언급.
㉤독일의 징병체제: 프랑스육군 면에서 언급.
(4)독일, 프랑스, 영국 사회
총력전체제로 나가게 됨.
원자재, 식량 생산, 식량 배급, 물가, 임금, 언론, 교통 등 모든 것을 중앙 정부와 군부가 통제!!!
5. 이탈리아: 기회주의적 처신.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와 '3국 동맹‘을 체결하였다고는 하나
이탈리아는 북부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왕가의 오랜지배를 받았고 남부는 부르봉왕가를 등에 업은 스페인의 오랜 지배를 받았다가 19C중엽에 겨우 통일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독일과는 다르게 북부와 남부의 헤묵은 알력이 존재하였습니다. 거기에따라 징집을 해도 남부의 많은 인원이 징집을 기피하는 현상이 아주 극심하였다는군요. 또한 경제,공업수준이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아주 미약한 수준이라서 1914년에 탄약과 포탄 준비가 거의 준비가 안 된 상태였고 징집회피율도 동원인구중 20%가 넘었다 합니다.
한 마디로 국민들이 전혀 전쟁하고 싶어하지 않은 상태라서요.
그리하여 이탈리아는 1914년 전쟁발발 때 중립을 선언하고 이후에 연합국편으로 넘어갔습니다.
(이 것은 지중해의 패권을 노리는 영국과 프랑스 물밑외교의 한판승리라 보면 됩니다.)
*애시당초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전쟁 전에 이탈리아를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16
*1914이탈리아 GDP : 954억1300만
*1914이탈리아 인구 : 3700만명
6. 오스만 투르크 : 저무는 제국.
오스만투르크는 이미 1877년 러시아와의 전쟁에 패해 발칸반도를 뺏겼습니다.
이 것을 보고 서구 열강들이 앞다투어 오스만투르크의 변경에 침입하기 시작했는데요.
=> 1881프랑스: 튀니스 차지. 1882영국: 이집트 공격해서 거기 괴뢰정부 수립(수에즈 운하 차지.)
이미 오스만투르크는 이 걸 막을 힘이 없엇습니다.
㉠1914오스만투르크 인구:
또한 이 당시 오스만투르크 인구를 보면 “아니 이게 뭐야?!”할 수준으로 안습입니다.
투르크의 핵심지역 인구:1900만명
변경지역 인구 합이 600만명?!
㉡군사력: 오스만투르크가 동원을 하면 국민 상당수가 면제를 받을 수 있는 수단이 존재했으며
여기에는 투르크 행정의 비능률도 한 몫합니다. 투르크관료가 비능률적인데다가 부패했으므로 징집회피한 도망자들을 제대로 추적해서 잡을 수 없다는 거죠.
하지만 오스만투르크는 독일에 군사고문단을 받아서 나름 군제개혁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오스만투르크의 1차대전 평가가 어떠냐하면
불리한 여건에서도 용맹스럽게 상당히 잘 싸웠다입니다. EX)갈리폴리해전
1차대전 명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터키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튀티르크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는 인물이라 사진도 가장 끗발 좋은 것을 신경써서 넣었음.)
그의 지도하에 오스만투르크 병사들은 갈리폴리에서 연합군을 막아내었다.
역사상 유명한 이 갈리폴리 전투는 러시아 산업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경제: 소아시아지역을 제외하고는 제국내에 통신 인프라가 거의없는 실정이었습니다.
워낙에 기간시설이 부족하다보니까 전쟁시 급격한 수송, 유통과부하를 전혀 견디지 못했다는군요. &17
1914년오스만 투르크의 GDP와 인구 통계는 앵거스-매디슨 지표에서 못 찾았습니다. ㅠ ㅠ ;;
7.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다민족국가의 한계로 인해 안팎으로 몸살을 겪던 나라입니다.
전쟁 중 실종자 수가 러시아 다음으로 높습니다. 허나 전후에 다시 조사하니 실종자 대부분이 탈영한 인원들이었다합니다.
(슬라브 민족들)
=> 동원병력들이 전쟁하기 겁나게 싫어했다!! 이 거죠!!!
*1914오스트리아 GDP : 195억7200만
*1914오스트리아 인구 : 600만명?!
*1913 헝가리 GDP : 164억 4700만
*1913 헝가리 인구 : 780만명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인구는 뭔가 저의 실수가 있는 듯 합니다.
흠..앵거스-매디슨 지표에 나온 그대로 썼는데 아무래도 앵거스-매디슨 지표는 현재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지역에만 나온 인구만 추산한 게 아닌가 싶은데요.....
제가 참고했던 다른 책 [모든 전쟁을 끝내기위한 전쟁]에서는 저 정도로 인구가 적게 나오지 않았거든요..
=>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인구: 5100만명정도.
카페 회원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인구는 저 정도인데
징집가능인원은 12만5000명이라는군요.이 게 뭥미??
8. 미국
이 나라의 외교 패턴은 원래 유서깊은 고립주의 패턴으로 움직였습니다!!
*고립주의: 미국의 아주 뿌리깊은 대전략. 미국은 유럽열강의 세력다툼에 끼지 않고 그런 댓가로 유럽 열강들도 라틴아메리카의 이권에 개입하지 않도록 한다는 전략을 말한다. 이 전략은 미국에게는 아주 적절한 외교전략이었다. 왜냐면 경제적으로 쓸데없는 외교개입으로 불필요한 전쟁 출혈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군사적으로 볼 때도 주변에 군사강국이 전혀!! 없는 미국으로서는 아주 실리적인 노선이었다.
2차대전 이후부터 이러한 미국의 고립주의는 변화하기 시작한다. &18
먼로주의의 주장자 미국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
고립주의는 국부 워싱턴의 유언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다.
*1914 미국 GDP : 4775억 4500만.
*1914 미국 인구 : 9900만명.
미국은 전쟁이 격화되는 동안 영국과 프랑스에 계속 군자금을 대주었습니다.
1차대전이 끝나고나서 미국은 30억달러의 채무국에서 150억 달러의 채권국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전후 세계 경제를 주도하기 시작합니다. &18
=> 하여튼 전쟁으로 일어나는 나라는 따로 있다니까요. ^^;;;;;
9.마지막으로 세르비아 얘기를 하려합니다.
저한테 워낙 이 나라 국왕이 인상깊었거든요.
세르비아: 동원 병력 18만명 규모.
세르비아 국토 대부분 지독한 산간지형, 도로사정은 끔찍한 수준이었음 그래서 모든 수송수단은 동물에 의존했습니다. 그러나 중동에서 중부유럽으로 가는 중요한 교통로 2곳이 이 나라를 지나감.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대군 앞에서 세르비아는 바람앞의 등불이었습니다.
세르비아의 국왕 페테르 1세는 손수 소총을 들고 왕자들과 함께 최전선 참호로 나와서 연설합니다.
“영웅들이여, 여러분은 두 가지 맹세를 했다. 하나는 국왕인 나에게 한 맹세고 다른 하나는 조국에 대한 맹세다. 나는 무덤갈 날만 기다리는 늙은이니, 앞의 나에 대한 맹세로부터 여러분을 해방시켜주겠다.
그러나 그 누구도 여러분이조국에 한 맹세로부터 여러분을 해방시켜 줄 수 없다. ---- 더 이상 싸울 수 없다 느낀다면 집으로 가도 좋다. 맹세컨대 집으로 간 이들에게 ---- 어떤 해도 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내 아들들은 끝까지 여기 남아 싸울 것이다.“
이 연설을 듣고 집으로 간 세르비아군인은 하나도 없었으며 압도적인 쪽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을 3번?!정도 패퇴시키면서 세르비아는 지연전을 펼칩니다!!!!! &19
이후 병약하고 노쇠한 국왕 페테르1세는 어디 다른 데 안 갔습니다. 말을 탈 때도 참모들이 도와야했던 늙은이가 병사들과 함께 산악행군도 같이 했다네요!!!
(좌) 1914년 알바니아로 철수하는 세르비아 군대 (우) 1917년 세르비아인을 처형하는 오스트리아 군대
다른 부분보다 특히 길고 지리할 수 있는 부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음.... 오스만투르크 내용에 대해 좋은 지적해주신 hyhn217님께 감사 드립니다.
중동쪽은 매우 무지해서 제가 그냥 아무 생각없이 메모한 것이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소지가 있었다
생각해서 님께서 지적하신 부분은 삭제토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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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엌 미국인구가 의아네요 그럼 몇십년 사이에 엄청난 인구증가?
미국은 인구 증가율이 굉장히 높지요. 저희 아버지는 미국 인구가 2억명인줄 아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제는 3억명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어 정말? 엊그제에 미국 인구가 2억명선을 돌파했다고 들은것 같았는데 ㅡㅡ;;' 이러시더군요. 이민과 보수적인 남부 백인들, 히스패닉계들의 높은 출산율으로 인해 미국의 인구는 2050년이면 4억 5천만명에 다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저도 아테네 올림픽때는 3억 안되는걸로 알고있었는데 그것도 좀많이 모잘란걸로....어떤 영화속대화중에서도 2억몇만명 자국민지킨다 어쩌구저쩌구했던 기억이 나네요 ㅎ 많은돈이 많은돈을 번다는것처럼 인구도 많아야 많게 뽑히는(?)군요 ㅎㅎ
막말로 민증있는 사람만 수년전에 3억 돌파입니다.없는 사람을 포함한다해도 별 차이는 없겠지만요.
이민자가 많으니깐요.
인구 얘기를 하니까 인상적인게 유럽 국가들의 인구는 100년전인데도 지금과 거의 엇비슷하군요. 백년동안 인구가 겨우 20% 정도밖에 증가하지 않았으니 유럽의 쇠퇴는 당연했던 것이겠지요. 당시 세계인구가 15억명쯤 되었을것이니 거기에 맞추어서 성장했으면 지금쯤 프랑스나 독일같은 나라들의 인구는 2억명쯤 되어야 맞는것인데...
1900년대만 해도 유럽의 세계인구 점유율이
20%를 넘었더랬죠... 지금은 10%도 안되는 대략안습의
상황..........
2050년에는 5%라더군요. 미국과 똑같아질 모양... 아무리 생각해도 국력에 인구만한것은 없는듯 해서 씁슬합니다.
러시아가 아마 오스트리아나 오스만 그나마 패주는거 보면. 프랑스가 그나마 1880년대부터 유럽에서 왕따탈출위해서 영국에게 쥐어터지던 러시아한테 이것저것 투자해준게 그나마 빛을본거라고 생각됩니다. 프랑스의 대규모 공채사재기 아니였음 공업수준이 저정도로 올라오지도 않았겠지오
음...... 감사합니다. 프랑스가 주로 투자했었군요... 러시아 공업발전이 외국인 투자자들 덕택인 것은 kweassa님 글보고 알았지만 정확히는 모르고 있었거든요.
알렉산드르 2세시절 농노해방하고 본격적으로 외채끌어다가 공업화를 나름준비하는데 빛을 본것은 다름아닌 반동노무새큌 라고 욕을먹던 알렉산드르 3세시지요 ㅡ;; 그분이프항스 동맹기념으로 다리놔준거 보면 참 므흣하다는 ㅋㅋ
빌헬름 2세 ㅅㅂㄹㅁ... 히틀러보다도 저놈이 독일역사상 제1의 역적이 아닐련지... 그 잘나가던 2제국을 한순간에 말아먹었으니..
흠.... 제 생각은 그 게 "전쟁은 정치의 연장선이다." , "우리가 공격당하지 않으려면 먼저 공격해야한다." 뭐 이런 생각이 팽배해있던 곳이 당시 저 곳이고 실제 그렇게 자기들나라를 발전시킨 나라입니다.
말년에 평화주의노선을 택한 비스마르크가 너무 시대를 꿰뚫어본 천재가 아닌가 싶군요.........
사회주의자를 막기 위해 사회보장법 따위를 제정한 것만 봐도... (이이제이?)
신기한건 러시아는 100년전에 비해서 오히려 인구가 줄었네요??... 100년전에 저정도 인구로 사회발달만 잘이루어져 있었으면 지금보다도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거슨 소비에트 혁명 대숙청 - 2차대전의 위엄.
실제로 러일전쟁당시 총사령관이었던 크로파트킨의 경우 자기 회고록에서 '21세기쯤 되면 러시아 제국 인구가 한 4~5억쯤 되지 않을까' 하기도 했습니다.
소련의붕괴도 한몫하지 않았을까용
국토면에서 러시아제국 > 소련연방 > 러시아 이런식으로 나갑니다. 80년대 초반쯤 해서 소련은 인구 3억을 찍습니다. 2차대전과 스탈린 치하동안 죽은사람 수 생각하면 꽤 선전한 것이지요. 근데 이후로 인구 고령화때문에, 그리고 소련 붕괴 이후로의 엄청난 이민물결 때문에 구소련 국가들 인구가 오히려 감소... 그래도 구소련 국가들 다 합치면 아직 2억 5천만은 될겁니다.
제정 러시아때는 발트3국과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중앙아시아의 술탄국들과 핀란드, 그리고
카프가스의 3국까지 점유하고 있었죠.
지금 그 나라들을 다합하면 2억 6천쯤은 될겁니다.
어디서 이야기를 들은게 있는데 빌헬름 2세가 전쟁을 선포하고 다시 전쟁을 취소(?)하려고 하자,군부에서 반대 해서 어쩔수 없이 진행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이거 진짜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실제로 독일 군부는 러시아가 더 강해져서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포위망에 꼼짝없이 갇히기 전에 상황돌파를 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다고 하더군요.
그 정신가간 강박증의 산물이 바로 슐리펜계획이지요. 외교적인 문제를 군부가 개입해서 총으로써먼저 제압하겠다는 마인드 OTL
벨기에 침공에 대해서 빌헬름 2세가 '벨기에 침공 안하면 안됨?' 하니까 몰트케가 '그거 계획에 다 짜여진 거라서 그대로 움직여야 함' 이라고 답변했지요.
오-헝제국의 인구에서 나온 오류는 아무래도 현재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나온 오류이지 않나 싶네요. 메디슨의 표에서 과거 오-헝제국의
인구를 추산하려면 오스트리아, 헝가리뿐만 아니라 그에 속했던 구 유고연방
과 폴란드등의 인구를 종합해야 될듯 싶습니다.. 허나 또 폴란드는 독일
러시아와 삼등분하고 루마니아도 오스만과 분할했기때문에 아무래도
메디슨의 표로는 오-헝제국의 인구를 추산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은..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저 거 제대로 뽑으려면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같은 나라를 조사해야 했는데, 윗 글 편집하느라 힘들어서 못했어요. ㅠㅠ;;;;
세르비아 국왕 쩌네요
멋지지 않습니까?????? 비록 약소국 국왕이었지만.
그리고 세르비아군이 오스트리아군을 몰아치지만 패배한것은 돌림병이 돌아서 세르비아군의 출혈이 매우 심각해져서라고 합니다. 세르비아의인구야 워낙작으니 병력의 소모는 큰타격이지요.. (오스트리아의경우 뭐 광대한영토의 징병만 해대면되니)
Arius님// 유럽 쪽 지도 하나를 보았는데 발칸 쪽은 특히 옛 유고 영토는 거의 산지로 보이던데요. 세르비아가 그 병력 규모로 선전한 이유에는 험악한 산지 탓도 있지 않나 생각했엇습니다.
오스만 '중심지역'은 어디고 '변경지역'은 또 어디인지. 1914년이면 오스만 제국에게 남은 영토는 아나톨리아와 샴 지방(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타인, 요르단) 정도였고-이라크, 발칸, 북아프리카, 이집트 등 주요 지역은 몽땅 잃어버린 상황이었죠. 아나톨리아를 제외한 아랍 지역은 100여년간의 중앙정부의 행정공백으로 인해 뭐 해놓은게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저 통계가 실제 인구와는 큰 차이가 있음을 감안해야겠군요.
그런데 오스만의 행정력이 왜 샴지방에는 못미친것입니까;; 철도도 깔고 한거보면 나름 신경쓴거 같은데...
[애국심으로 잘 무장된 병사 개개인의 강인함에 근거를 찾습니다] ← ?????? 그럼 오스만과 싸운 타 국가의 군대는 애국심도 없었고, 병사들도 수준 이하였단 이야기인가요? 그건 아니죠. '유럽의 병자' 라고는 불리웠지만 오스만 제국은 중동에서 유일하게 200년 가까이의 근대화 노력의 배경을 갖춘 나라입니다(괜히 현대 터키가 이스라엘이 눈치를 볼 정도인 중동의 유일한 국가가 된게 아닙니다) 그런 배경이 바로 오스만이 궁극적으로는 외세가 아닌 내부 움직임에 의해 종결되게 만든 것이었고, 1차대전에서도 국토를 몽땅 털리는 일은 막아낼 수 있었던거죠. 케말과 같은 자유 장교단이 배우도록 지원한건 오스만 술탄 정부였습니다.
hyhn217님// 음.. 애초에 이 문제는 제가 중동 쪽에 무지하여 오스만 투르크 쪽에 대한 이해가 딸려서 생긴 문제같습니다.
그러고보면 그 책의 내용 인용 중에 교보문고 폐점시간의 압박에 쫓겨서
결과와 영향부분만 메모했던 것이 생각나네요. 그러다보니 전체적 내용을 읽어보고 요약하지 못한 듯 합니다. ㅠㅠ;; 좀 부끄럽군요.
하지만 저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첨에는 솔직히 울컥했었는데, 곱씹어서 생각해보니 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꾸벅.
힌님은 오랜만에 뵈었고 "대한교과서 - 터키사" 를 읽으셨으니 좋은글 바랍니다ㅋㅋㅋ
오스만이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못이기고. 더욱이 아르메니아가 후방까지 털던 양면전선에서 이기지 못했다면 지금 터키영토는 갈갈이 찢겨있을겁니다.못해도 앙키라를 포함한 서부는 그리스가 점거햇을거고. 에르주름부터 반호까지 이르는 동부의경우 아르메니아가 점거했겠죠.불쌍하게도 아르메니아는 터키군 잘 패주다가 소련에 먹혔..
러시아도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상당히 선전하지만 독일한테는 신나게 털리고......
이탈리아도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대등하게 싸우나 독일한테는 신나게 털리고......
그 막강한 독일군을 상대로 전략적으로 선전한 벨기에가 대단한듯.....
이탈리아가 대등하게는 아니엿습니다;; 이탈리아가 그정도 병력을 운용하면서 해댄 삽질을 보면. 이건 엔베르 파샤는 퍼니하며 러시아의삼소노프는 아주 큐트한것이지요